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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46046054 / 296쪽 223 x 1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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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1962년 가을, H 목사로부터 두툼한 우편물이 날아왔다. 외로운 미국 유학 2년생에게는 고국에서 오는 모든 소식이 반갑지만 오랜만에 받은 이 편지는 유난히 반가웠다. 편지의 내용인즉 어떤 좋은 여대생을 소개한다는 것이다. 명문 S 대학교 가정과 3학년에 재학 중인 규수인데 앞으로 유학의 꿈을 가진 수재란다. 칭찬이 대단하다. H 목사는 이 여대생이 자기 아내의 후배여서 오래 보아왔고, 그녀의 부모와도 어느 정도 이야기가 되었으니 꼭 편지를 하라고 신신 당부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일이다. 그러나 한편 주저되는 일이다.
아, 그런데 같은 이름의 여자다! 분명히 다른 사람인데 이 무슨 조화인가?
‘백숙희(가명)!’ 나에게는 이미 같은 이름의 여자가 있었다. 이 여자, 이를테면 ‘제1의 백숙희’와는 1년이나 편지 교환을 하고 있지 않은가? (15쪽)
“동수야 빨리 가자! 할아버지 돌아가셨다!”
나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갑자기 할아버지가 가시다니! 어머니가 정신없이 서둘러 나를 데리고 후암동 좁은 골목을 내려가 택시를 타고 달렸다. 할아버지가 총을 맞고 돌아가셨단다. … 왜, 누가 우리 할아버지를 죽였을까?!
사실 그분은 진짜 내 할아버지가 아니다. 나는 내 친할아버지를 본 일이 없다. 우리 집안이 만주에서 고향 평양에 돌아왔을 때 외할아버지를 꼭 한 번 보았을 뿐이다. 그러니 나를 사랑하시고 내가 유일하게 알던 그 할아버지가 나의 참 할아버지인 양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며칠 전에도 할아버지는 나의 손을 잡고 ‘곱게 생겼다’느니 ‘공부 잘하라’ 타이르며 초콜릿, 인삼정과, 생과자 등을 내놓으셨다. 그날은 특별히 손바닥만 한 당신 사진 하나를 꺼내 뒷면에 ‘東秀世ㅇ’라고 써주시면서 “갖다가 잘 건사(보관)하라. 내가 죽으면 이 사진이 귀하다. 이걸 보고 나를 기억하라”고 하셨다. … 어머니가 말하던 ‘김구 선생’이 아버지가 늘 말하던 ‘백범 선생’과 같은 분이라는 것을 안 것은 해방 직후의 일이다. (90쪽)
기다렸다는 듯이 나는 그의 도전에 응전했다.
“많은 기독교 신자들이 하는 행동으로 보아서 그들의 신, 즉 사랑의 하나님을 믿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얼마 전에 화려한 호텔에서 장로님 대통령을 모시고 3,000여 기독교 지도자들이 국가 조찬 기도회를 했지요? 그 막대한 돈으로 아침을 거르는 노숙자들을 모아 대접했더라면 한 달을 계속했을 것입니다. 얼마나 감동적인 사랑의 증거가 되었을까요? 아무리 좋은 음악도 악보만 보면 우리는 이해나 감동이 없습니다. 전도의 목적이나 방법도 말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감상할 수 있는, 아니 감동할 수 있는 음악으로 연주해야 믿게 되는 것입니다. 감동이 있어야 심령의 변화가 오는 것입니다. 행동으로, 생활로, 인간관계로, 사회적인 책임 의식으로, 전 인생으로 멋지게 연주해주면 감동을 받고 믿을 수 있겠지요. 작곡가의 예술을 가장 아름답게 연출하는 삶이 필요하답니다. 미안합니다마는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감동을 줄 만한 음악을 연주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쉽게 우리 동네에서 교회에 열심히 나가는 사람들을 봅시다.”
“아- 그래서 전도하지 말라는 것이군요. 그 뜻은 상당히 이해하겠습니다마는 그래도 우리는 전도를 해야 합니다. 그것은 주님의 지상 명령입니다.”
예수쟁이 신사의 태도가 결연하다. (215쪽)
모두 죽은 듯 조용한데 내 뒷자리에 앉은 여자의 요동이 유난히 심하다. 슬쩍 돌아보니 여자가 흠칫 놀라서 물러앉는다. 내 어깨너머로 내 것을 넘보는 게 틀림없다. 조금 있자니 다시 몸을 앞으로 옆으로 움직이며 또 내 답안지를 훔쳐보는 것이 아닌가! 이 여자를 어떻게 막아낼까? 이 가파른 계단식 강의실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앞사람 가슴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
“왼손 좀 비켜주세요. 아니 더 밑으로, 밑으로…….”
속삭이지만 당당하게 말하는 소리. 여자는 더 대담해져서 자기 부정행위를 위해 특별 주문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화가 난다기보다 어이가 없다. 왜 답안지는 이렇게 크고 긴 종이로 만들었을까? 감추려는 남자와 벗기려는 여자의 황당한 게임은 첫 시간부터 시작되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용서하세요. 이 시험에 제 운명이 달려 있어요.”
이 아름다운 숙녀가 바로 내 뒤의 나쁜 여자라니. 여자가 말을 이었다. (250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