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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에게서 소년에게 - 큰글한국문학선집 027

시리즈 : 큰글한국문학선집 (글로벌컨텐츠) [45]

최남선 저 | 글로벌콘텐츠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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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58520687 / 196쪽 210 x 2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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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 최남선, 그리고 한국 최초의 자유시 1908년 『소년(少年)』 창간호 권두(卷頭)에 발표된 7행 6연으로 된 이 작품은, 신체시(新體詩) 혹은 신시(新詩)라고 불리었다. 엄격한 정형시(定型詩) 중에서도 한시(漢詩)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던 때에, 재래 가사(歌辭) 형식을 그대로 이어오던 창가(唱歌)의 형식을 깨뜨리고 등장한 한국 최초의 자유시(自由詩)라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미가 크다. 내용은 창가적인 것을 완전히 탈피하지는 못했으므로, 문학작품으로서 그 가치가 새로운 것은 되지 못하지만, 형식의 자유로움...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 최남선, 그리고 한국 최초의 자유시 1908년 『소년(少年)』 창간호 권두(卷頭)에 발표된 7행 6연으로 된 이 작품은, 신체시(新體詩) 혹은 신시(新詩)라고 불리었다. 엄격한 정형시(定型詩) 중에서도 한시(漢詩)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던 때에, 재래 가사(歌辭) 형식을 그대로 이어오던 창가(唱歌)의 형식을 깨뜨리고 등장한 한국 최초의 자유시(自由詩)라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미가 크다. 내용은 창가적인 것을 완전히 탈피하지는 못했으므로, 문학작품으로서 그 가치가 새로운 것은 되지 못하지만, 형식의 자유로움은 하나의 혁신적인 사실로 한국 근대시(近代詩)의 초석이 된 작품이다.

저자 소개

최남선은 1890년 4월 26일 관상감 기사로 근무하며 한약방을 경영한 최헌규(崔獻圭, 1859∼1933)의 3남 3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위로 누나가 둘, 형이 하나 있었으며, 어머니 진주 강씨 역시 한약방을 운영하던 중인 집안 출신이었다. 최남선의 가문은 19세기에 이르러 중인 기술관으로 정착했으며, 그의 직계 가문은 잡과 합격자를 많이 배출한 집안이었다. 부친 최헌규는 관상감에서 지리학을 공부한 뒤 스물한 살에 음양과(陰陽科)에 합격, 관상소에서 대궐이나 능 터와 형세를 살피는 상지관으로 근무해 종2품 기사까지 올랐으며, 관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약재 도매업과 책력 출판 사업을 벌여 서울 시내에 가옥 80여 채와 많은 전답을 소유했던 명민한 사람이었다. 1904년 최남선은 황실 파견 유학생 50명에 선발되어 11월 일본 동경부립제일중학교에 입학했다가 12월 중퇴, 1906년 4월 다시 도일해 와세다대 고등사범부 역사지리과에 입학했다. 두 차례에 걸친 유학은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가 새로운 세계를 향해 눈뜨는 중요한 계기였다. 최남선은 조국으로 돌아온 뒤 일본에서 활판 인쇄기를 들여와 신문관을 설립하고 1908년 ≪소년≫을 창간한다. 최남선은 학술 잡지와 서적 간행을 통해 청년들을 중심으로 한 민족 계몽에 주력한다. 한일합방을 전후로 출판 운동을 통해 활발한 민족 계몽운동을 전개하던 최남선은 1919년 최린, 송진우 등과 함께 3·1운동을 모의하고 <기미독립선언서>를 기초한다. 3·1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투옥되어 1921년 10월까지 2년 8개월간 수감 생활을 마친다. 
출옥한 최남선은 조선인의 손으로 조선학을 정립할 것을 주창하고 역사학과 민속학 연구자로 변모함으로써 1920년대를 조선학 연구자로서 살아간다. 민족 지사로서 이러한 행보는 ‘반도사’ 편찬 사업을 위해 조선총독부가 설립한 관변단체 ‘조선사편수회’에 들어가면서 반민족 친일로 돌아서고, 이후 그는 민족 반역자라는 지탄을 받게 된다.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문≫에 적극적으로 글을 기고했으며, 1936년 6월부터 21개월간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역임했고, 1939년에는 만주국의 건국대학 교수로 부임하면서 최남선은 본격적인 친일 협력의 길로 들어선다. 1941년 일본의 침략 전쟁을 지지하는 협력 단체 ‘흥아보국단’의 준비위원과 상임위원을 지내면서 대동아공영권과 대동아전쟁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지지하는 활동을 하였다. 해방 이후 반민족행위자처벌법(1948)이 발효되고 반민특위에 의해 이광수와 더불어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지만 곧 보석으로 풀려났으며, 반민특위가 지지부진해지면서 최남선의 친일 행위에 대한 사법적 판단은 일단락된다. 한국전쟁 시기에 해군전사편찬위원회에서 일했고 휴전 후 서울시 시사편찬위원회 고문을 지냈으며 육군대학에서 한국사를 강의했다. 1955년 뇌일혈로 쓰러져 1957년 10월 10일 향년 69세로 별세했다. 

목차

목차
모르네 나는 7
해(海)에게서 소년에게 12
가을 뜻 16
가는 배 17
천만 길 깊은 바다 18
소년 대한 20
벌[蜂] 23
우리의 운동장 27
밥벌레 31
신 대한소년(新大韓少年) 33
구작 삼편(舊作三篇) 37
꽃? 두고 42
막은 물 45
우리 님 47
아느냐 네가 50
삼면환해국(三面環海國) 51
대한소년행(大韓少年行) 55
태백범[太白虎] 59
태백산부(太白山賦) 62
태백산의 사시(四時) 66
태백산과 우리 72
봄맞이 77
또 황령(皇靈) 80
대동강 81
압록강 83
때의 부르짖음 85
대 조선정신 87
더위치기 90
시 삼편 92
님 97
어린이 꿈 98
물레방아 100
붓 102
새해 103
추위 105
붕(鵬) 106
봄의 선녀 108
나 110
내 속 112
여름 길 113
봄의 앞잡이 114
앞에는 바다 119
여읜 어머니 121
궁거워 122
안겨서 129
떠나서 136
단군굴(窟)에서 143
석굴암에서 146
대동강에서 149
웅진(熊津)에서 152
금강(錦江)에 떠서 155
백마강(白馬江)에서 158
동산에서 161
일람각(一覽閣)에서 164
봄길 167
혼자 앉아서 170
혼자 자다가 171
어느 마음 172
한강의 밤배 173
구월산 가는 길에서 174
근십 삼편(近什三篇) 175
추색(秋色) 177
추의(秋意) 178
봄바람 179
북창(北窓) 180
광명 181
가톨릭 청년에게 줌 182
거짓말 183
감우(甘雨) 184
광복 십주년 185
국화 186
새봄 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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