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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조선역사

시리즈 : 최남선 한국학 총서 [19]

최남선 저 | 경인문화사 | 2016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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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49909851 / 256쪽 154 x 2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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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저자 소개

최남선은 1890년 4월 26일 관상감 기사로 근무하며 한약방을 경영한 최헌규(崔獻圭, 1859∼1933)의 3남 3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위로 누나가 둘, 형이 하나 있었으며, 어머니 진주 강씨 역시 한약방을 운영하던 중인 집안 출신이었다. 최남선의 가문은 19세기에 이르러 중인 기술관으로 정착했으며, 그의 직계 가문은 잡과 합격자를 많이 배출한 집안이었다. 부친 최헌규는 관상감에서 지리학을 공부한 뒤 스물한 살에 음양과(陰陽科)에 합격, 관상소에서 대궐이나 능 터와 형세를 살피는 상지관으로 근무해 종2품 기사까지 올랐으며, 관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약재 도매업과 책력 출판 사업을 벌여 서울 시내에 가옥 80여 채와 많은 전답을 소유했던 명민한 사람이었다. 1904년 최남선은 황실 파견 유학생 50명에 선발되어 11월 일본 동경부립제일중학교에 입학했다가 12월 중퇴, 1906년 4월 다시 도일해 와세다대 고등사범부 역사지리과에 입학했다. 두 차례에 걸친 유학은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가 새로운 세계를 향해 눈뜨는 중요한 계기였다. 최남선은 조국으로 돌아온 뒤 일본에서 활판 인쇄기를 들여와 신문관을 설립하고 1908년 ≪소년≫을 창간한다. 최남선은 학술 잡지와 서적 간행을 통해 청년들을 중심으로 한 민족 계몽에 주력한다. 한일합방을 전후로 출판 운동을 통해 활발한 민족 계몽운동을 전개하던 최남선은 1919년 최린, 송진우 등과 함께 3·1운동을 모의하고 <기미독립선언서>를 기초한다. 3·1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투옥되어 1921년 10월까지 2년 8개월간 수감 생활을 마친다. 
출옥한 최남선은 조선인의 손으로 조선학을 정립할 것을 주창하고 역사학과 민속학 연구자로 변모함으로써 1920년대를 조선학 연구자로서 살아간다. 민족 지사로서 이러한 행보는 ‘반도사’ 편찬 사업을 위해 조선총독부가 설립한 관변단체 ‘조선사편수회’에 들어가면서 반민족 친일로 돌아서고, 이후 그는 민족 반역자라는 지탄을 받게 된다.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문≫에 적극적으로 글을 기고했으며, 1936년 6월부터 21개월간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역임했고, 1939년에는 만주국의 건국대학 교수로 부임하면서 최남선은 본격적인 친일 협력의 길로 들어선다. 1941년 일본의 침략 전쟁을 지지하는 협력 단체 ‘흥아보국단’의 준비위원과 상임위원을 지내면서 대동아공영권과 대동아전쟁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지지하는 활동을 하였다. 해방 이후 반민족행위자처벌법(1948)이 발효되고 반민특위에 의해 이광수와 더불어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지만 곧 보석으로 풀려났으며, 반민특위가 지지부진해지면서 최남선의 친일 행위에 대한 사법적 판단은 일단락된다. 한국전쟁 시기에 해군전사편찬위원회에서 일했고 휴전 후 서울시 시사편찬위원회 고문을 지냈으며 육군대학에서 한국사를 강의했다. 1955년 뇌일혈로 쓰러져 1957년 10월 10일 향년 69세로 별세했다. 
서강대학교 사학과 졸업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역사학과 졸업(문학박사)
2014년 현 데이터밸류 소장

주요 논저 
『최남선의 역사학』(2003)
『테마로 읽는 우리 역사』(2004)
『영토한국사』(공저, 2006)
「북한 역사학의 학문체계와 연구동향」(2007)
「일제시기 단군을 둘러싼 한일간의 공방」(2010)

목차

목차
상고
제1장 신시
제2장 단군 왕검
제3장 부여
제4장 위만 조선
제5장 삼한
제6장 옥저와 예
제7장 낙랑
제8장 민족의 자각
제9장 고구려의 강대함
제10장 백제와 신라
제11장 부루의 가르침
제12장? 유학과 불교
제13장 고대의 음악
제14장 왜
제15장 신라의 장성
제16장 수나라를 꺾다
제17장 당나라를 누르다
제18장 신라의 삼국 통일
제19장 자장과 원효
제20장 선덕 여왕ㆍ진덕 여왕
제21장 발해
제22장 백제ㆍ고구려의 유민
제23장 9주와 5경
제24장 신라의 전성기
제25장 해상 활동
제26장 거타지 이야기
제27장 민간 설화의 세계색
제28장 만불산
제29장 삼국이 다시 벌어짐
제30장 신라의 학예
제31장 가배
중고
제32장 고려와 북방 대륙
제33장 성종의 제도 정리
제34장 제위보와 대비원
제35장 압록강 이동을 얻다
제36장 잇따른 요의 침략
제37장 해외의 교통
제38장 대왜 무역
제39장 고려 자기
제40장 여진의 복속
제41장 9성의 다툼
제42장 번인의 투화
제43장 팔관회
제44장 해상 개발
제45장 대위국
제46장 문학 숭상
제47장 홍관과 이녕
제48장 최씨 정방
제49장 몽고의 걱정
제50장 석성의 쾌승
제51장 귀주의 역
제52장 강화로 들어감
제53장 대장경 판각
제54장 활자
제55장 격구
제56장 원과의 관계
제57장 세계와의 연락
제58장 유학의 흥기
제59장 원나라 배척
제60장 홍두적
제61장 왜구
제62장 최영과 이성계
제63장 화포를 쓰다
제64장 목면 수입
제65장 국론 분열
제66장 고려의 패망
제67장 남국의 내조
근세
제68장 한양으로 천도함
제69장 태종의 내치
제70장 대마도 정토
제71장 건주 여진 정토
제72장 세종의 제작
제73장 훈민정음
제74장 세조의 계적(繼跡)
제75장 경진 북정
제76장 이시애의 난
제77장 정해 서정
제78장 편찬 사업
제79장 경국대전
제80장 면화 장려
제81장 남만과의 교통
제82장 사화
제83장 삼포 왜변
제84장 유학의 융성
제85장 당론
제86장 임진왜란
제87장 정유재란
제88장 무기의 신발명
제89장 왜란의 영향
제90장 서력 동침의 여파
제91장 조선 전기의 학술
제92장 조선 전기의 공예
제93장 불교의 추이
제94장 광해주와 인조
제95장 정묘ㆍ병자의 호란
제96장 나선을 물리치다
제97장 대동법과 상평통보
제98장 탕평
제99장 영조와 정조
제100장 문화의 진흥
제101장 인삼의 발달
제102장 김씨 세도
제103장 세계의 소식
제104장 천주학이 퍼짐
제105장 신학술
제106장 민중의 각성
최근
제107장 대원군의 혁신
제108장 양요
제109장 외국 통교
제110장 임오 군변
제111장 개화당의 작변
제112장 신풍조
제113장 서북 경략
제114장 동남 개척
제115장 세계 정국의 파동
제116장 갑오 경장
제117장 을미 8월의 변
제118장 대한제국
제119장 러ㆍ일의 대항
제120장 일본과의 관계
제121장 민간의 신 운동
제122장 신사물
제123장 정미 정변
제124장 국욕이 오다
제125장 조선 후기의 학예
제126장 간도 문제
제127장 독립의 싸움
제128장 총론
해제
최남선 한국학 총서를 내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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