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구간

고사통

시리즈 : 최남선 한국학 총서 [19]

최남선 저 | 경인문화사 | 2016년 06월

북트리

정가
$40.00
판매가
$22.00 (45%↓) 최저가 보상
적립금
$0.44 (2%P)
출고예상일
2026년 10월 07일 수령예상일 안내
북카트 담기 바로구매하기 위시리스트담기

평점 -  ·  리뷰 0

리뷰 쓰기

ISBN : 9788949909844 / 300쪽 154 x 226 (㎜)

이 상품에 궁금하신점이 있으세요? 1:1상담문의

추천inside
Adobe Flash Player 가져오기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

아래의 도서와 구매하시면 이 도서들의 적립금을 즉시적용해 드립니다.

책 소개

출판사 리뷰

저자 소개

최남선은 1890년 4월 26일 관상감 기사로 근무하며 한약방을 경영한 최헌규(崔獻圭, 1859∼1933)의 3남 3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위로 누나가 둘, 형이 하나 있었으며, 어머니 진주 강씨 역시 한약방을 운영하던 중인 집안 출신이었다. 최남선의 가문은 19세기에 이르러 중인 기술관으로 정착했으며, 그의 직계 가문은 잡과 합격자를 많이 배출한 집안이었다. 부친 최헌규는 관상감에서 지리학을 공부한 뒤 스물한 살에 음양과(陰陽科)에 합격, 관상소에서 대궐이나 능 터와 형세를 살피는 상지관으로 근무해 종2품 기사까지 올랐으며, 관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약재 도매업과 책력 출판 사업을 벌여 서울 시내에 가옥 80여 채와 많은 전답을 소유했던 명민한 사람이었다. 1904년 최남선은 황실 파견 유학생 50명에 선발되어 11월 일본 동경부립제일중학교에 입학했다가 12월 중퇴, 1906년 4월 다시 도일해 와세다대 고등사범부 역사지리과에 입학했다. 두 차례에 걸친 유학은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가 새로운 세계를 향해 눈뜨는 중요한 계기였다. 최남선은 조국으로 돌아온 뒤 일본에서 활판 인쇄기를 들여와 신문관을 설립하고 1908년 ≪소년≫을 창간한다. 최남선은 학술 잡지와 서적 간행을 통해 청년들을 중심으로 한 민족 계몽에 주력한다. 한일합방을 전후로 출판 운동을 통해 활발한 민족 계몽운동을 전개하던 최남선은 1919년 최린, 송진우 등과 함께 3·1운동을 모의하고 <기미독립선언서>를 기초한다. 3·1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투옥되어 1921년 10월까지 2년 8개월간 수감 생활을 마친다. 
출옥한 최남선은 조선인의 손으로 조선학을 정립할 것을 주창하고 역사학과 민속학 연구자로 변모함으로써 1920년대를 조선학 연구자로서 살아간다. 민족 지사로서 이러한 행보는 ‘반도사’ 편찬 사업을 위해 조선총독부가 설립한 관변단체 ‘조선사편수회’에 들어가면서 반민족 친일로 돌아서고, 이후 그는 민족 반역자라는 지탄을 받게 된다.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문≫에 적극적으로 글을 기고했으며, 1936년 6월부터 21개월간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역임했고, 1939년에는 만주국의 건국대학 교수로 부임하면서 최남선은 본격적인 친일 협력의 길로 들어선다. 1941년 일본의 침략 전쟁을 지지하는 협력 단체 ‘흥아보국단’의 준비위원과 상임위원을 지내면서 대동아공영권과 대동아전쟁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지지하는 활동을 하였다. 해방 이후 반민족행위자처벌법(1948)이 발효되고 반민특위에 의해 이광수와 더불어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지만 곧 보석으로 풀려났으며, 반민특위가 지지부진해지면서 최남선의 친일 행위에 대한 사법적 판단은 일단락된다. 한국전쟁 시기에 해군전사편찬위원회에서 일했고 휴전 후 서울시 시사편찬위원회 고문을 지냈으며 육군대학에서 한국사를 강의했다. 1955년 뇌일혈로 쓰러져 1957년 10월 10일 향년 69세로 별세했다. 
고려대학교 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표 저서로는 《최남선 연구》, 《최남선 평전》 등이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 「1920년대 전반기 「유물사관요령기」의 번역ㆍ소개 및 수용」, 「1930ㆍ40년대 ‘동경삼재(홍명희, 최남선, 이광수)’의 일제 협력과 저항」 등이 있다. 
현재 광주와 호남지역에 관한 공부와 함께 서양 사상의 수용과 번역, 한국적 정체성의 형성 과정에 관한 문화적, 사상적 접근을 하고 있다.

목차

목차
상고
제1장 조선의 여명
제2장 상고의 문화
제3장 백민의 남방 분포
제4장 중국인의 북새질
제5장 삼국의 정립
제6장 동해와의 교통
제7장 고구려의 융성
제8장 고구려와 북족(北族)의 여러 나라
제9장 서역 문물의 전래
제10장 수와 당의 침입
제11장 동북 문화의 홍통(弘通)
제12장 고대의 남방 교섭
제13장 신라의 무사 정신
제14장 신라의 통일
제15장 발해의 따로남
제16장 삼국 시대의 문화
제17장 역외의 진인
제18장 신라의 융성
제19장 신라의 명절
제20장 후삼국
중고
제21장 고려의 입국
제22장 거란과의 관계
제23장 여진과의 관계
제24장 해상 여러 섬들
제25장 번인의 귀화
제26장 협동 생활 단체
제27장 사회 시설
제28장 불교 문화의 착종
제29장 해외 무역
제30장 고려와 송의 문화 교류
제31장 진역의 공예품
제32장 고려의 병폐
제33장 최씨의 집권
제34장 몽고의 화
제35장 고려 문화의 자랑
제36장 고려의 명절
제37장 원과의 관계
제38장 고려와 몽고의 문화 교류
제39장 고려와 몽고 사이의 인물 출입
제40장 원 궁중에 있는 고려인
제41장 이슬람과 교섭
제42장 유학의 흥기
제43장 홍두족과 해구
제44장 고려의 쇠망
제45장 남해의 교통
제46장 고려 말의 외래 물건
제47장 고려의 사회
제48장 고려의 학예
근세
제49장 조선의 창업
제50장 도시 시설
제51장 세종의 제작
제52장 세조와 성종의 계승
제53장 관측의 학술
제54장 편찬 사업
제55장 후생 정책의 애씀
제56장 후생 기관
제57장 남만의 내항
제58장 사화
제59장 교학의 융성
제60장 당론
제61장 임진ㆍ정유의 전란
제62장 신무기
제63장 예업(藝業)의 유통
제64장 활자의 전파
제65장 인구의 유출
제66장 남만의 물품
제67장 인조의 대립
제68장 병자호란
제69장 러시아 격퇴
제70장 청조의 조선인
제71장 노론ㆍ소론의 다툼
제72장 경제의 새로운 정책
제73장 외국 무역
제74장 탕평의 기운
제75장 문화의 진흥
제76장 세도 정치
제77장 서학의 유행
제78장 민중의 기동(起動)
제79장 구사회의 계급
제80장 부녀 생활
제81장 감자와 아편
제82장 조선의 명절
최근
제83장 대원군의 집정
제84장 일본과의 관계
제85장 일본과 청의 불화
제86장 갑신 10월의 변
제87장 새로운 풍조
제88장 새로운 시설
제89장 세계 정국의 파동
제90장 갑오경장
제91장 러시아와 가까워짐
제92장 개혁 운동
제93장 일본과 러시아의 대항
제94장 일본과의 새로운 관계
제95장 문화 운동
제96장 광무 연간의 신문물
제97장 재판 제도
제98장 융희의 시대
제99장 간도 문제
제100장 조선의 학예
해체
최남선 한국학 총서를 내기까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