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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후 1 현대 중국의 기초를 만든 통치자

장융 저 | 이종인 역 | 책과함께 | 2015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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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6293249 / 304쪽 152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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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전 세계 베스트셀러 《대륙의 딸》《마오》의 저자 장융이 들려주는 난세의 여걸, 서태후의 생애와 시대 한나라 여후, 당나라 측천무후와 함께 중국의 3대 악녀, 야망으로 가득 찬 후궁, 권모술수로 국가를 손에 넣은 독재자……. 열여섯 살에 후궁으로 간택되어 마침내 황실의 최고 결정권자가 되어 50여 년 동안 청나라를 통치한 서태후에 대해 갖고 있는 일반적인 이미지일 것이다. 서태후의 생애를 다룬 기존의 책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아서, 실존 인물의 회고를 바탕으로 하거나 상상력을 가미하고 가상 인물을 앞세운 역사소설이 대부분이었다... 전 세계 베스트셀러 《대륙의 딸》《마오》의 저자 장융이 들려주는 난세의 여걸, 서태후의 생애와 시대 한나라 여후, 당나라 측천무후와 함께 중국의 3대 악녀, 야망으로 가득 찬 후궁, 권모술수로 국가를 손에 넣은 독재자……. 열여섯 살에 후궁으로 간택되어 마침내 황실의 최고 결정권자가 되어 50여 년 동안 청나라를 통치한 서태후에 대해 갖고 있는 일반적인 이미지일 것이다. 서태후의 생애를 다룬 기존의 책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아서, 실존 인물의 회고를 바탕으로 하거나 상상력을 가미하고 가상 인물을 앞세운 역사소설이 대부분이었다. 감성적으로 ‘여성 서태후’에 초점을 맞추어 궁중의 암투를 서술했고, 이는 기존의 서태후의 이미지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었다. 서태후가 사망한 지 3년 만에 청나라가 무너지고 공화국이 들어섰지만 이내 군벌들이 난립해 나라가 산산조각 나버렸다. 살아서 악녀로, 죽어서는 망국의 장본인으로 역사에 남은 서태후. 야사와 정치적 암투를 걷어내고 진정한 서태후의 삶을 복원하는 일이 가능할 것인가. “지난 100년은 서태후에게 매우 부당한 시기였다. 서태후는 폭정을 거듭한 사악한 인물이거나 아니면 절망적으로 무능력한 인물로 평가되었다. 혹은 그 둘 모두이기도 했다. 서태후가 성취한 업적 중 일부분만이 인정되었는데, 그나마 그 공은 언제나 그녀의 부하 몫으로 돌아갔다. 이는 대체로 그녀가 여성이기 때문에 광서제의 이름으로만 통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서태후의 정확한 역할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정확한 정보와 지식이 결여된 상태에서 풍문만 무성했고 거짓말이 계속 만들어졌는데, 사람들은 이를 믿었다.” (570쪽) 쓰촨 성 첫 해외 유학생으로 영국에서 공부하고 지금은 영국으로 귀화한 작가 장융이 《대륙의 딸》 《마오》에 이어 평전 《서태후》를 집필하였다. 저자 장융은 명 왕조와 청 왕조 자료의 보고(寶庫)인 중국 제1역사당안관(第一歷史?案館), 대만 국립고궁박물원 기록보관소를 비롯한 중국어 자료들과 미국 의회도서관, 영국 국립보존기록관, 영국 윈저 궁의 왕립문서보관소,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외교부기록보관소, 옥스퍼드대학과 케임브리지대학 도서관 등 서구의 자료를 섭렵하고, 특히 중국에서 새로 나온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서태후 전기에 하나의 전범(典範)이라 불릴 만한 책을 완성했다. 궁중뿐 아니라 서구 세력까지 장악했던 치밀한 정치력, 경쟁과 협조를 넘나들며 타협을 이끌어내는 리더십, 외세의 침략과 내부 반란에 맞서 싸운 강인함, 자신의 초상화를 그린 영국 화가와의 나이와 국적을 초월한 우정, 비극으로 끝난 환관과의 사랑, 불타버린 원명원을 재건하려는 집착……. 잔혹하기만 했던 이미지를 뒤엎고, 복잡하고 다양한 인간 서태후의 삶을 청나라의 역사와 함께 생생하게 그려낸 《서태후─현대 중국의 기초를 만든 통치자》를 만나보자. 서세동점의 시대에 최후의 권력을 누린 악녀인가, 중국을 근대로 이끈 혼란기의 개혁가인가 파격적이면서도 설득력 있는, 새롭게 읽는 서태후 평전 열여섯 살에 함풍제의 무수한 후궁 중 한 명으로 선택된 서태후! 함풍제가 1861년에 사망하고 황제 사이에 낳은 아들이 황위에 오른 뒤로 서태후는 중국의 실질적인 통치자가 되었다. 이 책은 서태후가 1908년 사망할 때까지 47년 동안 중국을 다스리면서 중국 개혁을 가로막는 엄청난 장애물들과 어떻게 싸웠는지 생생하게 묘사함으로써 그녀가 완고한 보수파이고 잔인한 전제군주라는 통설을 완전히 뒤집는다. 이를 테면, 흔히 서태후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정적을 살해했다고 말하지만 저자는 그 수가 수십 명도 되지 않고, 게다가 대부분이 서태후를 암살하려 했기 때문에 그 결과로 목숨을 앗아갔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아들 동치제와 동태후를 독살했다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고 일축한다. 동치제는 평소 생활방식에 따라 매독에 걸렸거나 아니면 당시 유행한 천연두가 사인일 것이고, 동태후는 의료 기록에 따르면 뇌출혈로 사망한 것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동태후는 10대 시절부터 친한 친구이자 20여 년을 함께 해온 정치적 동반자로서 서로에게 힘을 주었다고 덧붙인다. 이처럼 서태후에 대한 중상과 비방은 정확한 근거가 결여된 상태에서 만들어지고 퍼져갔는데, 펄 벅이 이야기한 것처럼 ‘서태후를 증오하는 이들이 그녀를 사랑하는 이들보다 목소리가 더 컸을 뿐’이었을 수 있다. 반면에 태평천국운동과 의화단운동, 서구 열강 및 일본과의 전쟁 등 심각한 국가적 위기를 헤쳐 나온 통치자의 면모나 개혁군주로서 성취한 업적들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광서제나 개혁파들의 치적으로 남았다고 역설한다. 서태후가 다스리는 동안 중국은 근대 국가의 기반을 닦았는데, 전기, 전선, 철도 등 기간시설을 다지고 최신식 병기로 군대를 정비했으며, 의회 선거를 도입하여 공화국의 틀을 이룩하고자 했다. 제한적 교육체계인 과거를 폐지하고 근대식 교육 시스템을 구축했으며, 최초로 해외에 대사를 파견하고 국제무역 시대를 열었다. 1천 년 넘게 중국 여성을 고문하던 전족 폐지, 비인권적인 노예제와 노예무역을 근절, 형벌제 등 억압적 관습 철폐 역시 서태후 치하에 이뤄낸 성과이다. 서태후의 바람대로 최종적으로 입헌군주제가 도입됐다면 잇따른 봉기로 인한 내전과 뒤 이은 군벌들의 난립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저자의 이러한 주장에는 어느 정도 수긍되는 바가 있는데, 거의 비슷한 시기에 중국과 일본이 근대화 사업을 시작했는데 일본은 성공하고 중국은 실패한 사례를 살펴보면 참고가 된다. 두 나라의 성패는 지도자와 그 지지 세력의 일치단결이 있느냐 없느냐로 결판났다. 일본은 권력자의 명분과 현실이 합치되어 있어서 메이지 일왕과 그 신하들 그리고 국민 전체가 선진국을 향해 나아가려는 진취적 태도를 보인 반면, 서태후의 중국은 그녀가 황제 뒤에서 격화소양(隔靴搔?)의 통치를 해나가려다 보니 국민 전체의 지지를 활기차게 이끌어내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면서 서태후의 파란만장한 삶을 조망함과 동시에 최고 통치자가 국가의 진운과 융성에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그 때문에 서태후 전기는 100여 년 전 중국의 역사로 끝나는 게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화두인 것이다.” (582쪽, ‘옮긴이의 말’에서) 현재의 중국은 100년 전의 서태후처럼 진정한 부국강병의 꿈을 스스로 이루어나가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국가 일방이 주도하는 부국강병 정책은,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부정부패, 언론 탄압과 지식인 통제 등으로 그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장융이 궁중 기록과 외교 문서, 공식 문서와 개인 편지, 일기와 목격자 회고담 등 다양하고 신뢰할 만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그려낸 서태후의 강력한 힘의 근원은 청 제국에 대한 자존심이었다. 반면 새로운 국가를 이뤄나갈 동반자는 없었던 서태후, 지금의 중국에 꼭 있어야 할 것 또한 부강한 나라를 향해 함께 꾸는 꿈일 것이다. 빠른 전개와 매혹적인 드라마로 가득한 《서태후》는 현대 중국의 탄생을 개관하는 동시에 한 여인의 이야기를 담은 친밀한 초상화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후궁에서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을 다스리는 절대군주가 된,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여인 서태후의 삶과 그 시대가 펼쳐진다. 《대륙의 딸》 《마오》를 잇는 중국 역사 드라마 ‘온갖 어려움, 박탈, 정치적 시련을 겪었으나 인간의 위엄을 잃지 않은 여성들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국방장관), ‘가장 많이 읽힌 중국 관련 서적’(《아시아 월스트리트 저널》)이라는 평을 받은 《대륙의 딸》

저자 소개

1952년 중국 쓰촨 성에서 태어났다. 열네 살에 홍위병이 되어 문화혁명기 동안 농촌에서 살았다. 공장에서 주물공과 전기공 일을 하다가 대학에 들어갔고, 졸업 후 쓰촨대학교 영어과 강사로 재직했다. 공산당 집권 이후 쓰촨 성의 첫 외국 유학생이 되어 1978년 영국으로 건너가 1982년에 요크대학교에서 언어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영국에 귀화하여 현재 런던에서 살고 있다. 저서로 《대륙의 딸Wild Swans: Three Daughters of China》(1992), 남편 존 핼리데이와 함께 쓴 《마오―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Mao: The Unknown Story》(2005)이 있다. 두 권 모두 국내에서 번역, 출간되었고 4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서 1500만 부 이상 팔렸다.

역자 소개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한국 브리태니커 편집국장과 성균관 대학교 전문번역가 양성과정 겸임 교수를 역임했다. 주로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교양서를 번역했고 최근에는 E.M.포스터, 존 파울즈, 폴 오스터, 제임스 존스 등 현대 영미작가들의 소설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전문 번역가로 활동한 이래 지금까지 140권의 책을 번역했으며, 500권을 목표로 열심히 번역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번역을 잘 할 수 있을까, 늘 고민하며 20만 매에 달하는 번역 원고를 주무르는 동안 글에 대한 안목이 희미하게 생겨났고 번역 글쓰기에 대한 나름의 체계를 정리할 수 있었다. 또한 유현한 문장의 숲을 방황하는 동안 흘낏 엿본 기화요초의 추억 덕분에 산문 30여 편을 모아 수필집을 내기도 했다. 앞으로도 우자일득(愚者一得: 어리석은 자도 많은 궁리를 하다 보면 한 가지 기특한 생각을 할 때가 있다)의 넉자를 마음에 새기며 더 좋은 번역, 글을 써 볼 생각을 갖고 있다. 

책 속에서

P.19 : 아름다운 후궁에서 만인의 군주가 된 여인, 서태후 
1852년 봄에 있었던 청 황실의 정기적인 전국 규모 궁녀 간택에서 16세의 소녀가 황제의 눈에 들어 궁녀로 뽑혔다. 중국 황제는 한 명의 황후와 그가 원하는 만큼의 후궁을 둘 수 있었다. 황실 등기부에 그녀는 단지 ‘나랍씨 가문의 여자’라고만 올라 있고 이름은 기재되어 있지 않았다. 여자의 이름은 너무 하찮아서 기재할 필요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10년도 안 되는 세월 동안에, 그 이름이 영원히 묻혀버릴 뻔했던 이 소녀는 악전고투하며 권력의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가 중국의 최고 통치자가 되었고, 그 후 1908년 사망할 때까지 수십 년 동안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에 달하는 사람들의 운명을 양손에 쥐고 흔들었다. 그녀는 바로 자희 황태후이다.

 
P.96~97 : 아들을 대신해 나라를 다스리다 
대신들은 접견이 시작되기 전에 소박한 천으로 덮인 평범한 탁자와 의자 들을 갖춘 집무실에 앉아 몇 시간씩 기다렸다. 군기대신들과 회의가 끝나면 두 태후는 전국 각지에서 온 관리들을 접견했다. 어린 동치제가 장막 앞의 옥좌에 앉아서 신하들을 마주하노라면, 그의 뒤로 두 황태후가 희미하게 보였다. (…) 주로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서태후였다. 그녀는 아주 권위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후궁 지역에 있을 때 그녀는 생기가 넘치고 웃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환관이 다가와 무릎을 꿇고서 건청궁으로 갈 가마가 대령되었다고 알리면 그녀는 웃음을 싹 거두고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장막이 중간에 가로막고 있었지만 신하들은 당당한 그녀를 느낄 수 있었다. 또 그녀도 신하들의 인품을 잘 파악했다. 서태후를 만나본 많은 사람들이 그녀가 ‘우리의 생각을 읽는 것 같았다’고 말했고 또 ‘그녀는 딱 보면 상대방의 성격을 간파하는 것 같았다’는 말도 했다.

 
P.108 : 세관을 개혁하다 
하트의 지휘 아래 중국 세관은 노후하고 부패한 조직에서 잘 정비된 근대적 기관으로 탈바꿈하여 중국 경제에 크게 기여했다. 1865년 중반부에 이르기까지 5년 동안, 세관은 중앙정부에 3200만 테일이 넘는 돈을 올려 보냈다. 영국과 프랑스에 대한 배상금은 이 관세 수입으로 지불되었고 1866년 중반부에 완불되었는데, 배상금이 국가 전반에 미친 고통은 미미했다. 
새로운 부(富)가 확보되자 서태후는 대규모로 식량을 수입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오래전부터 자급자족할 수 있는 식량을 생산하지 못했기에 곡식 수출을 금지했다. 1867년부터 세관 기록부는 무관세 수입품들을 체계적으로 기록했다. 1867년에 주식인 쌀 수입은 110만 테일어치였다. 식량 조달과 구매는 하트 휘하의 세관이 맡은 주된 업무였다. 서태후는 이 업무를 총 지휘하는 하트에 대하여 각별한 신임을 보냈다.
 

목차

목차
*이 책의 출전에 관하여
*도판 목록
제1부 폭풍우 시대의 황실 궁녀(1835∼1861)
1. 황제의 후궁(1835∼1856)
2. 아편전쟁과 원명원의 전소(1839∼1860)
3. 함풍제의 사망(1860∼1861)
4. 중국에 변화를 가져온 신유정변(1861)
제2부 아들의 옥좌 뒤에서 통치하다(1861∼1875)
5. 근대화 대장정의 첫걸음(1861∼1869)
6. 서방에 최초의 시찰단을 파견하다(1861∼1871)
7. 비운으로 끝난 사랑(1869)
8. 서구에 대한 복수(1869∼1871)
9. 동치제의 생애와 죽음(1861∼1875)
제3부 입양한 아들을 내세워 통치하다(1875∼1889)
10. 세 살 난 아이가 황제로 선포되다(1875)
11. 근대화에 박차를 가하다(1875∼1889)
12. 제국의 수호자(1875∼1889)
제4부 아들 광서제의 친정(1889∼1898)
13. 서태후에게서 멀어지는 광서제(1875∼1894)
14. 이화원(1886∼1894)
15. 은퇴 후의 한일한 시기(1889∼1894)
16. 일본과의 전쟁(1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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