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구간

나의 인생 나의 도전 가난을 넘어 죽음을 넘어

이태섭 저 | 서영 | 2015년 07월

북트리

정가
$27.60
판매가
$15.18 (45%↓) 최저가 보상
적립금
$0.30 (2%P)
출고예상일
2026년 10월 09일 수령예상일 안내
북카트 담기 바로구매하기 위시리스트담기

평점 -  ·  리뷰 0

리뷰 쓰기

ISBN : 9788997180486 / 272쪽 152 x 224 (㎜)

이 상품에 궁금하신점이 있으세요? 1:1상담문의

추천inside
Adobe Flash Player 가져오기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

아래의 도서와 구매하시면 이 도서들의 적립금을 즉시적용해 드립니다.

  • 15,120
  • 16,650
  • 15,300
  • 18,900

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 책 소개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남의 집 머슴살이로 시작한 인생! 역경과 고난을 이겨 내고 세상에 우뚝 서기까지 좌절을 딛고 일어선 한 인간의 진솔한 이야기, 오로지 성실과 끈기로 세상을 살아온 주) 라프 이태섭 회장의 자서전이다. 그는 현재 순자산 700억원대의 거부가 되었지만 어려운 시절을 잊지 않고 경로잔치와 효봉사활동을 하며 이 시대의 소금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 저자의 말 한없이 울고 싶었던 작은 변명 나의 지난날을 돌아보는 글을 쓸까 말까 참 많이도 망설였다. 몇 번이고 연필을 들고 원고지 앞에... ■ 책 소개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남의 집 머슴살이로 시작한 인생! 역경과 고난을 이겨 내고 세상에 우뚝 서기까지 좌절을 딛고 일어선 한 인간의 진솔한 이야기, 오로지 성실과 끈기로 세상을 살아온 주) 라프 이태섭 회장의 자서전이다. 그는 현재 순자산 700억원대의 거부가 되었지만 어려운 시절을 잊지 않고 경로잔치와 효봉사활동을 하며 이 시대의 소금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 저자의 말 한없이 울고 싶었던 작은 변명 나의 지난날을 돌아보는 글을 쓸까 말까 참 많이도 망설였다. 몇 번이고 연필을 들고 원고지 앞에 섰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 같은 인생이 과연…….” 이 단어 하나가 한없이 나를 괴롭혔다. 몇 달을 망설였다. “안 되겠다. 접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에 지인들의 권유가 나의 망설임에 종지부를 찍었다. 연필을 들었다. 못난 인생이지만 진정 나를 위해서, 해 준 것 하나 없는 나를 위해서, 뭐라도 하나 남겨두자는 생각이 들었다. 틈틈이 인생투정을 긁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연필만 들면 눈물이 나는지, 나는 몇 장을 쓰다말고 덮어야 했다. 심장까지 쿵쾅거렸다. 사무실 창가에 우두커니 서서 인왕산 정상을 바라본다. 56년이라는 세월의 절반이 눈물이었다. 참으로 모질게 살아왔다. 오뚜기처럼 일어서야야만 했고, 인동초처럼 살아남을 수밖에 없었다. 인생 자체가 잡초처럼 살아온 인생이었다. 어느새 힘들 때마다 틈틈이 떠올려 흥얼거렸던 故 김수영 시인의 ‘풀’을 또 읊조린다. 어려서부터 지금 이 시간까지 나를 가장 잘 대변해주고 있는 시라고 생각하고 있다. 풀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모아 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한참을 멍하니 창가에 섰다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일기를 쓰듯 한 칸 한 칸 글을 메웠다. 남들은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지만 나는 내 자신만의 인생 푸념을 그렇게 긁적였다. 그리고 몇 달 만에 건저낸 이 졸작을 오늘 세상에 내놓는다. 부끄럽다. 글을 쓰는 내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환희와 번민의 50대 후반의 인생여정이 결코 자랑거리가 못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훌륭한 업적도, 번듯한 명성도 축적하지 못했다. 그러나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야만 했던 그 생명력 하나만은 빛을 발하고 있기에 난 작은 자부심을 이 책에 고스란히 담았다. 서양속담에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했다. 이 말은 배고픔과 슬픔과 환란을 겪지 않은 사람은 큰일을 할 수 없다는 말이라 생각한다. 그러하기에 이 책에 건방지게 객기가 아닌 용기와 꿈의 경험까지 더했다. 어려서 겪을 수밖에 없었던 가난과 고통, 이어진 희열과 좌절, 그리고 고통과 슬픔의 교훈이 비록 이 세상에 한 톨 모래알로서 자리매김 한다 해도 그 가치는 분명 있을 것이기에. 나는 때때로 “내가 가는 이 길이 과연 나의 인생인가?”, “그토록 많은 시련과 고통을 감내하고 얻어 낸 나름의 값진 결과가 이것이었는가?”하는 의문을 갖곤 한다. 삼시세끼 굶지 않고 사는 것에 늘 감사하면서도 왠지 한켠으로는 허전한 마음을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단 하나다. 이제 인생 후반의 새로운 도전 앞에 또 다시 맞서야 하기에 그렇다. 이 책은 저명한 학자가 쓴 철학서도 아니요, 이름 난 대기업가나 유명 정치인들이 쓴 자서전도 아니다. 부족하기 이를 데 없는 한 인간의 푸념과 오묘한 인생경험을 함축시킨 고백서요, 자기성찰서 정도로 여겨주길 바랄 뿐이다. 작은 바람이 있다면 청운의 꿈을 안고 자라는 청소년들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닥치게 될 좌절 앞에서 다시 한 번 용기와 희망을 갖는 촉매제의 책이 됐으면 한다. 뿐만 아니다. 소중히 여겨야 할 생명을 헌신짝처럼 던져버리려는 이 시대 사람들에게 ‘자살’을 ‘살자’로 바꾸는 지혜와 힘을 조금이라도 보태주고 싶을 따름이다. 덧붙여 가난하지만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과 소통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끈끈한 밀알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끝으로 이 책을 내는 데 애써주시고 많은 용기를 주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특히 나 때문에 고통당하고, 아파했던 모든 분들께 이 책을 통해 용서를 구하고자 한다. 특히 내가 수렁에 빠졌을 때 손 내밀어 나를 건져주신 분들께 마음속으로부터의 따뜻한 고마움을 전한다. 2015년 7월 안국동에서 이태섭

저자 소개

• 충남 부여군 남면 송암리 호암부락 출생 
• (주)라프 대표이사 회장 
• 14년째 노인잔치 개최, 양로원, 고아원, 불우시 설 등 찾아 봉사활동 
• 다수 언론매체 부동산 컨설팅 칼럼 및 투자전략 등 연재 

머리말


■ 저자의 말
한없이 울고 싶었던 작은 변명
나의 지난날을 돌아보는 글을 쓸까 말까 참 많이도 망설였다. 몇 번이고 연필을 들고 원고지 앞에 섰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 같은 인생이 과연…….”
이 단어 하나가 한없이 나를 괴롭혔다. 몇 달을 망설였다.
“안 되겠다. 접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에 지인들의 권유가 나의 망설임에 종지부를 찍었다.
연필을 들었다. 못난 인생이지만 진정 나를 위해서, 해 준 것 하나 없는 나를 위해서, 뭐라도 하나 남겨두자는 생각이 들었다.
틈틈이 인생투정을 긁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연필만 들면 눈물이 나는지, 나는 몇 장을 쓰다말고 덮어야 했다. 심장까지 쿵쾅거렸다.
사무실 창가에 우두커니 서서 인왕산 정상을 바라본다. 56년이라는 세월의 절반이 눈물이었다. 참으로 모질게 살아왔다.
오뚜기처럼 일어서야야만 했고, 인동초처럼 살아남을 수밖에 없었다. 인생 자체가 잡초처럼 살아온 인생이었다.
어느새 힘들 때마다 틈틈이 떠올려 흥얼거렸던 故 김수영 시인의 ‘풀’을 또 읊조린다. 어려서부터 지금 이 시간까지 나를 가장 잘 대변해주고 있는 시라고 생각하고 있다.

풀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모아 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한참을 멍하니 창가에 섰다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일기를 쓰듯 한 칸 한 칸 글을 메웠다.
남들은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지만 나는 내 자신만의 인생 푸념을 그렇게 긁적였다. 그리고 몇 달 만에 건저낸 이 졸작을 오늘 세상에 내놓는다.
부끄럽다. 글을 쓰는 내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환희와 번민의 50대 후반의 인생여정이 결코 자랑거리가 못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훌륭한 업적도, 번듯한 명성도 축적하지 못했다. 그러나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야만 했던 그 생명력 하나만은 빛을 발하고 있기에 난 작은 자부심을 이 책에 고스란히 담았다.
서양속담에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했다. 이 말은 배고픔과 슬픔과 환란을 겪지 않은 사람은 큰일을 할 수 없다는 말이라 생각한다. 그러하기에 이 책에 건방지게 객기가 아닌 용기와 꿈의 경험까지 더했다.
어려서 겪을 수밖에 없었던 가난과 고통, 이어진 희열과 좌절, 그리고 고통과 슬픔의 교훈이 비록 이 세상에 한 톨 모래알로서 자리매김 한다 해도 그 가치는 분명 있을 것이기에.
나는 때때로 “내가 가는 이 길이 과연 나의 인생인가?”, “그토록 많은 시련과 고통을 감내하고 얻어 낸 나름의 값진 결과가 이것이었는가?”하는 의문을 갖곤 한다.
삼시세끼 굶지 않고 사는 것에 늘 감사하면서도 왠지 한켠으로는 허전한 마음을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단 하나다. 이제 인생 후반의 새로운 도전 앞에 또 다시 맞서야 하기에 그렇다.
이 책은 저명한 학자가 쓴 철학서도 아니요, 이름 난 대기업가나 유명 정치인들이 쓴 자서전도 아니다. 부족하기 이를 데 없는 한 인간의 푸념과 오묘한 인생경험을 함축시킨 고백서요, 자기성찰서 정도로 여겨주길 바랄 뿐이다.
작은 바람이 있다면 청운의 꿈을 안고 자라는 청소년들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닥치게 될 좌절 앞에서 다시 한 번 용기와 희망을 갖는 촉매제의 책이 됐으면 한다.
뿐만 아니다. 소중히 여겨야 할 생명을 헌신짝처럼 던져버리려는 이 시대 사람들에게 ‘자살’을 ‘살자’로 바꾸는 지혜와 힘을 조금이라도 보태주고 싶을 따름이다.
덧붙여 가난하지만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과 소통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끈끈한 밀알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끝으로 이 책을 내는 데 애써주시고 많은 용기를 주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특히 나 때문에 고통당하고, 아파했던 모든 분들께 이 책을 통해 용서를 구하고자 한다. 특히 내가 수렁에 빠졌을 때 손 내밀어 나를 건져주신 분들께 마음속으로부터의 따뜻한 고마움을 전한다.
2015년 7월 안국동에서 이태섭

책 속에서

수학여행 좀 보내주세요!

“할머니 수학여행 좀 보내줘유.”
“이놈아, 돈이 어디 있다고 수학여행을 갈려구 한다냐.”
“친구들은 모두 가는디 저도 좀 보내줘유…… 할머니.”
“학교에 낼 쌀은 또 어디 있냐, 안 된당게.”
초등학교 6학년 수학여행, 나에게는 눈물의 아픈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
반 전체 인원 62명 중 ‘쌀 두되, 돈 200원’이 없어 나 혼자만 가지 못했다. 못가는 것도 가슴 아픈데 친구들이 수학여행 간 2박3일 내내 난 지게를 지고 매일같이 땔감을 하러 뒷산을 오르내려야 했다.
아마도 이날 지게를 진 채로 뒷산에 외롭게 선 고목나무에 머리를 박고 통곡하듯 쏟아냈던 눈물이 내 일생 가장 많이 흘린 눈물일 것이다.
수학여행을 못가서 억울해서 흘린 눈물이 아니라, 여행을 가는 친구들이 너무도 부러웠기 때문이다.
나는 그날 친구들의 부러움을 삭히기 위해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된 채 들고 있던 지게작대기로 죄 없는 잡초만 한없이 두들겨 팼다.
땅이 움푹 패일만큼 내려친 잡초들의 그 아픈 상처. 그 상처만큼 내 가슴 한쪽에도 수학여행은 영원히 아물지 않을 찢어진 아픔으로 아로새겨졌다.
“왜 나만 이렇게 가난할까.”
“엄마 아빠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할머니는 왜…….”
고개를 들었다. 꽃구름 사이로 따스한 햇살은 수채화처럼 번지고 있었다.
어머니의 가슴처럼 푸짐한 언덕배기, 그 밑으로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하늘거리는 잡초들까지도 그렇게 행복해 보였다.
미물들로 가득 찬 자연은 고통과 상처를 속으로 삼키고도 여전히 나에게 가슴을 내밀어 따스함을 전해주고 있었다.
“난 뭔가?”
“내가 잡초보다 못하단 말인가?”
산속엔 온통 내가 뿜어낸 상처 난 메아리들만 내 주위를 윙윙 거리다 사라진다. 그리곤 이내 되돌아와 내 눈물을 스치며 지나갔다.
얼마나 울었을까. 또 얼마나 부러웠을까. 난 울다 지쳐서 지게를 등진 채 뒷산에서 잠이 들고 말았다.
한참을 잤나보다. 으스스한 느낌이 들어 잠을 깨보니 해는 서산 턱받이에 걸려 있었다. 허겁지겁 몸을 일으켜 세웠다. 당장 나무를 한 지게 지고 집으로 내려가야 했다.
외할머니가 기다리는 것보다 늦었다고 매 맞지는 않을까 내심 걱정이 됐다. 미친 듯 낫질을 해댔다. 다행히 30여분 만에 한 지게 가득 땔감을 묶었다.
지게를 지려는 순간 배에서 신호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아침을 굶은 데다 점심까지 걸렀으니 배에서는 꼬르륵 꼬르륵 거리는 소리만 요란하게 들려왔다.
다행히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굶는 것을 밥 먹듯 해서인지 어지간한 배고픔은 그래도 참을 수 있었다.
지게를 지려고 허리에 힘을 주니 현기증까지 나듯했다. 자칫하면 쓰러질 뻔했다.
빨리 가야한다는 생각에 지게작대기를 꼿꼿이 세우고 허리를 간신히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헐레벌떡 산을 내려왔다.
검정고무신이 미끄러워 몇 번이고 고꾸라질 뻔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오르내린 산이 아니어서 뒤뚱 갸우뚱 그렇게 산을 내려왔다.
땔감이 쌓여 있는 뒤안을 돌아 지게를 막 내리려는데 부엌에서 외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면아, 산에 가서 뭘 하다 이제 왔냐?”
뭐라도 변명하고 싶었지만 입조차 떼기 싫었다. 지게 바를 풀고 곧바로 골방으로 뛰어가듯 들어갔다. 한쪽 벽에 걸터앉아 지그시 눈을 감았다. 채 1분도 되지 않았는데 외할머니가 뒤따라 들어왔다. 방문 여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외할머니 오른손엔 회초리가 들려져 있었다.
“이놈이 할미가 수학여행 안 보내준다고…….”
변명도 하기 전에 외할머니가 들고 있는 회초리는 순식간에 내 등줄기를 갈라놓듯 아픈 통증으로 전해져 왔다.
외할머니는 내가 나무하러 아침에 산에 가서 저녁 무렵이 다 되어서야 집에 온 것이 수학여행을 안 보내줘 심통을 부리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라구! 아니라니께유!”
나는 울부짖듯 악을 쓰며 외할머니 왼손에 들려 있는 회초리를 잡았다. 그런데 외할머니 손에는 힘이 없었다. 힘을 쓰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이내 나를 와락 껴안았다. 그리고는 울먹이듯 뭔가를 말하고 계셨다.
“미안하구나, 할미가 미안하구나.”
“애미 애비 잘못 만난게 죄지…… 니가 뭔 죄가 있다고…….”
외할머니의 흐느낌 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손자에게 매질한 것보다 내가 너무 불쌍해 보였던 모양이다.
이윽고 외할머니의 뜨거운 눈물이 내 등줄기를 타고 허리춤까지 흘러내렸다. 나도 외할머니 품에 안겨 또 다시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쌀 두되, 돈 200원이 없어 너를 수학여행 못 보내는 내가 죽일 년이구나.”
외할머니의 한탄에는 나를 때린 미안함보다 찌든 가난의 아픔이 그대로 배어 있었다.
“미안하구나, 미안하구나!”
외할머니도 화가 나셨을 터인데 그렇게 당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외할머니 허리에 얼굴을 파묻은 채 한참을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사실 내가 살던 외할머니 댁은 너무도 가난했다. 당시 외할머니 댁 살림살이는 진짜 쌀 두되면 수학여행보다 입에 풀칠하는 하는 것이 더 급선무였을 정도였다. 세끼 중 두 끼는 굶어야 여럿 식구 한 끼라도 제대로 먹을 수 있었다.
그런 외할머니 댁에 우리 형제들이 엄마 아빠에게 버림받은 채 핏덩이로 맡겨졌던 것이다.
- 본문 中에서
“이태섭이도 살고 있습니다!”

유명 연예인의 갑작스런 자살, 유명 기업인의 자살, 유명 정치인의 자살, 전직 대통령의 자살, 어린 학생들의 자살, 노인 부부의 자살……. 자살이 해마다 늘고 있다. 이렇다보니 대한민국은 자살공화국이라는 오명의 타이틀까지 달고 있다.
자살이라고 하면 나 또한 예외일 수 없다. 죽기로 마음먹었으면 아마도 수 백 번을 자살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자살’이라는 단어를 ‘살자’로 바꿔 오늘 이렇게 남들과 같이 살고 있다.
태어나자 말자 운명처럼 올가미를 씌운 가난은 나를 몇 번이고 자살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지만 용케도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살아남을 수밖에 없었다.
‘성공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성공한 것’이라는 말을 정확히는 모르지만 성공을 위해 나는 살아남아야 했다.
본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내가 살아야만 했던 인생의 절반은 가시밭길이었다. 피할 수도 없었다. 찢기고 피투성이가 되어도 난 그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어 돌아서지 못하고 앞으로만 걸었다.
수없이 넘어졌고,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고통을 당했다. 돈이 없어, 가난 때문에, 못 배워서, 부도가 나서, 나는 이런 고생을 모두 이겨냈다.
물론 무일푼에서 세운 운수업이 화장품 사업에 잘못 엮여 부도가 났을 때 나는 정말로 자살을 결심했었다. 다행히 공주 뚝방 길에서 최면경 할아버지를 만나 새로운 인생을 찾았지만 그 때의 심정을 나는 잘 안다.
세상은 나약 할대로 나약해졌다. 내가 보기에는 별 것 아닌 것 때문에 너무도 쉽게 목숨을 끊는 사람들을 본다. 물론 핑계 없는 무덤이 없듯이 모두가 핑계가 있고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자살은 순간이요, 찰나다. 죽을 힘이 있으면 살아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반이다. 나머지 반은 어떻게든 그 고통과 싸워 이기겠다고 하는 용기다. 그래야만 자살을 살자로 바꿀 수 있다.
짬을 내 자살 통계를 찾아보니 가히 충격적이었다. 최근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중동 호흡기증후군(메르스)보다 더 무서운 자살을 우리는 너무도 태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어쩌면 방송을 통해 유명인들의 자살을 접하면서 ‘자살’이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면역반응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통계청 자료를 뒤져봤다. 한국 자살률은 2000년대 들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었다.
인구 10만 명 당 자살자 수(자살사망률)는 2011년 30명을 넘어섰다. 2013년에는 28.5명으로 다소 줄었지만 1999년(15명)에 비하면 10년 만에 2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특히 남성의 자살 사망률은 2013년 기준으로 여성보다 2.3배가량 높고, 나이가 많을수록 자살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70세 이상은 2012년 기준 자살률이 253.4명에 달한다.
그런데 나의 눈길을 끄는 통계는 20~30대의 경우 자살이 사망원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통계청 ‘사망원인통계결과’를 보니 2013년 사망원인에서 1~9세는 운수사고, 10세 이상은 자살이 사망원인 1위였다.
그 해 자살 사망자 수는 1만4,427명으로 사망률은 2012년 조사 때에 비해 0.4명 늘었고, 10년 전인 2003년(22.6명)보다는 5.9명 많아졌다.
또 다른 동계자료를 찾아봤다. 2014 사회조사를 보니 국민 중 6.8%가 자살충동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100명 중 7명 정도가 자살 욕구를 느낀 셈이다. 이 역시 13~19세가 8.0%로 가장 높았고, 60세 이상이 5.2%로 가장 낮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3년 조사 통계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자살충동 경험자 중 처음으로 자살을 생각한 시기는 10대 이하라고 응답한 비율이 76.4%로 가장 많았다.
10대 이하 비율은 2011년 19.8%, 2012년 58.4%에서 2013년에는 80%로 크게 늘었다. 우리나라는 점점 어린 나이에 자살을 생각하게 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는 증거다.
높은 자살률로 암 등을 제외한 사망 외적요인에 의한 사망률 1위 역시 자살이라고 한다. 교통(운수)사고나 추락사고보다 자살 사망이 더 많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2014년 4월 자살 사망자 통계와 자살 시도자에 대한 면접 조사, 자살 사망자 심리적 부검, 대국민 자살 인식조사 등을 토대로 한 대규모 자살 실태조사 결과 발표도 충격적이다.
지난 2007∼2011년 자살을 시도해 응급실을 찾은 8,848명 가운데 2012년 말 기준으로 실제 자살한 사람은 236명으로, 연간 10만 명 당 약 700명의 자살률을 기록했다.
이는 일반 인구의 자살 사망률인 10만 명 당 28.1명에 비해 무려 25배 가까이 높은 것으로, 한 번 자살을 시도한 사람의 자살 위험이 매우 높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전문가들은 자살은 삶에 대한 만족이 극도로 떨어졌을 때 취하는 극단적인 행동이라고 말한다. 또한 자살률이 높은 것은 사회가 개인을 보살피는 공동체로서의 기능이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말은 맞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그런 고통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제대로 파악하고 관리할 능력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나는 어려운 시대에 태어나 어쩔 수 없었다 치더라도 지금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어려움에 처했는데도 손을 내밀 곳을 몰라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이 없도록 범국가적 노력이 발동된다면 자살률은 확 줄어들 것이라 확신한다.
이는 정부의 관심만으로는 어렵다. 시민단체나 종교계가 앞장 서고 국민들 스스로도 내 주변을 살피는 대국민 의식전환이 필요한 때다.
나 역시도 뚝방 길에서 최면경 할아버지를 만나지 않았다면 벌써 저세상 사람이 됐을 것이다. 자살의 위기에 빠진 사람에게 누가 어떤 말을 해주느냐, 또는 어떤 관심과 배려를 하느냐에 따라 180도 달라질 수 있다.
용기와 희망은 분명히 자살을 이길 수 있다. 하찮은 내 경험이지만 그 고통을 참고 이겨내면 생명의 고귀함은 반드시 보상한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다. 불행했던 나의 지난 시절 돌이켜 보면 신은 인간에게 숱한 고통을 주는 것 같다.
그 고통을 하나하나 넘어가면서 살아가는 게 인간이 아닌가 생각한다. 문제는 그 고통이 힘들어 극단적 삶을 선택하는 데 그것은 무척 어리석은 짓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그 고통이 선택되어 따라 다닌다고 본다. 한번 보자. 가난도 나에게 선택된 고통이었고, 행복도 나에게 선택된 선물일 뿐이었다.
부자라고 해서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도 부자이기에 고통을 이겨내고 있다고 본다. 누구나 자신이 당하고 있는 현재의 아픔을 고통처럼 여기고 산다. 그 고통을 탓하기 전에 먼저 자신과 싸워 이겨야 한다.
이기면 삶의 지혜가 보이고 희망이 보인다. 고통을 겪으면 그것이 안 보일것 같지만 신은 그 고통을 이기려고 하는 사람에겐 반드시 용기와 힘을 준다고 믿는다.
그 고통을 이기면 비로소 삶의 희망이 보이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고통을 겪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 고통도 나에겐 커다란 자산이라고 여기고 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생활 속에서 한 번쯤은 실패를 경험한다. 그렇지만 실패나 그러한 실패에 대한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도전 중 하나다.
그런 의미에서 고뇌하는 청소년들에게 이 책을 통해 한마디만 하고자 한다.
먼저 미래 우리나라를 이끌 청소년들 중 벌써부터 낙심하여 인생을 포기해서는 절대 안 될 것이다. 현대사회가 물질적인 풍요는 대단히 잘 이루었지만 정신적으로는 너무나도 빈곤한 사회가 되어버렸다는 사실 청소년들도 인지해야 한다.
나약해진 만큼 스스로 이를 이겨낼 수 있는 용기를 충전시켜야 한다. 고통과 절망을 이겨낸 위인들의 인생에서 진정한 용기를 배워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잘 것 없는 내 인생에서 스스로 배운 깨우친 값진 교훈 하나를 선물 하고자 한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하찮은 것이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이다.
고통과 좌절을 이기려는 정신은 막강하고 신비스러운 힘이다. 정신은 최악을 최선으로 만들기도 하고, 최선을 최악으로 만들 수도 있다.
혼자라고 생각하지 마라. 천길 수렁에도 나를 바라보는 사람이 분명히 있다.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보라. 그대들과 똑 같이 고통 받고 있는 친구들이 있다.
무지는 두려움을 낳고, 두려움은 증오를 낳는다고 했다. 하지만 부딪혀 이기면 희망이 생긴다. 바로 그 희망을 쫒아야 자살이 도망간다. 인생에서 자살이라는 단어를 걷어내고 살아보라. 분명히 살 가치가 있을 것이다.
“청소년 여러분 절대 포기하지 마십시오. 희망을 저버리지 마십시오. 여기 이태섭이 같은 사람도 살고 있습니다.”
- 본문 中에서

목차

목차
추천사-안호원 박사(전 국민대 교수, 시인)
추천사-고영준(가수)
제1장 성장통
수학여행 좀 보내주세요!
‘가난’이라는 족쇄
내 친구 지게
입하나 줄이려고 서울로 간 큰누나
둘째누나까지 서울로 가다?
제2장 청운의 꿈을 안고
초라한 추억의 훈장 ‘슬픈 졸업식’
열다섯 살짜리 머슴
쌀 세가마니 세경 받아 서울 갈 차비 마련
15,000원 들고 도착한 용산시외버스터미널
제3장 고난의 세월
서울 신고식
구두닦이가 되다
찍새에서 딱새로 변신
제4장 작은 희망
작은 이모와의 극적인 상봉
남대문시장 식품가게 점원 되다
일당 300원짜리
제5장 변신과 기회
돈을 벌기위한 몸부림
운전기술 배우려 차 조수 되다
내 인생에 찾아 온 첫 번째 기회
제6장 성공과 실패
트럭 52대 굴리는 운수업체 사장이 되다
자살을 생각해야 했던 인생몰락
‘자살’을 ‘살자’로 바꿔라
병원 장례식장 노숙인
징역 1년, 철창신세가 되다
사채 빚 갚기 위해 사채소굴로 들어가
사업재기의 발판이 된 찜질방
제7장 눈물 젖은 빵
찜질방과 노인잔치
(주)라프 1, 2, 3으로 재기에 성공하다
쓰라린 인생 교훈, 눈물 젖은 빵
“이태섭이도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당신은 내 아버지입니다
*어머니! 보고 싶었습니다.
신문기사 및 칼럼 등 기고문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