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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80973569 / 368쪽 152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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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조선이 임진왜란을 극복할 수 있었던 사상적 배경과
유성룡이 『징비록』을 남긴 이유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임란전록』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파격적인 용인술로 이순신과 권율을 천거한 유성룡과 병란에 앞서 부국강병을 강조한 이율곡을 만나야 할 시점이 무르익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0여 년 전, 북방에서는 누르하치가 이끄는 여진족들이 들불처럼 일어나고 남방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00여 년의 전국시대(戰國時代)를 마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서로 나누어진 당쟁의 그늘은 조선사회를 약화시키고, 끝내는 조선 백성들을 병란의 불길 속으로 던져 넣었다.
일에는 반드시 전조가 따르기 마련이다. 임진왜란도 이탕개의 난에서 우리는 그 징조를 찾아볼 수 있다. 이탕개의 난을 통해 이율곡은 조선이 안고 있는 심각한 폐단을 절감하고는 선조에게 미래를 대비하는 정책들을 쏟아놓지만 그의 정책은 당파에 함몰되어 폐기되어 버린다.
하지만 이탕개의 난에 등장하는 신립, 이순신, 김시민과 같은 젊은 장수들과 휴정, 유정 등은 훗날 임진왜란에서 큰 몫을 담당하게 된다.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조선을 구원한 이순신과 권율을 천거한 인물이 유성룡이었고, 이는 파격적인 정책으로 가능하였다. 당시 병조판서로 이탕개의 난을 진압했던 이율곡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던 유성룡은 임진왜란을 극복하는 원동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임란전록』은 유성룡이 왜란을 극복할 수 있었던 사상적 배경이 어디에서 왔는지, 『징비록』을 쓴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역사소설로 그리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국가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게 되면 백성들이 가장 큰 피해를 당하게 되는 건 변함이 없다. 백성을 지켜주지 못하는 나라를 우리는 국가라고 말할 수 있는가. 임란전록은 이러한 물음에 강한 울림을 전해준다
저자는 임란전록을 저술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서인인 이율곡과 동인인 유성룡. 정반대의 노선을 걷고 있던 두 사람은 실제로 친분이 두터웠다. 흔히들 이율곡의 십만양병설을 반대한 사람이 유성룡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와는 다르다. 이율곡은 서인이었지만 당파를 구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외톨이 신세였다. 유성룡은 동인이지만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율곡과 소통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두 사람은 시비로 다투지 않고 정책으로 다투었다. 그것은 합리적 소통이었다.
유성룡이 저술한 징비록은 임진왜란의 기록물이었다. 하지만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0여 년 전에 일어난 이탕개의 난을 통해 우리는 당시의 시대상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조선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은 이미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임진왜란을 극복하게 되는 요인도 이탕개의 난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임란전록’은 징비록을 이해하기 위한 지침서라 할 수 있다.
당파의 분쟁 가운데서 신념을 지키며 죽기 전까지 나라의 위급을 구하기 위하여 몸을 바쳤던 이율곡의 삶은 오늘날 재조명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또한 병란의 위기에서 파격적인 정책으로 나라를 구원했던 유성룡의 사상 또한 재조명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나라에 큰 병화가 생겼을 때, 몸을 바쳐 싸웠던 이름 없는 민초들의 희생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고승인 대주와 범이, 임백손과 같은 민초들이 없었다면 조선은 500년이라는 긴 시간을 존속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소설을 통해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미래를 대비하지 않으면 몰락한다’는 역사의 교훈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조선이 임진왜란을 극복할 수 있었던 사상적 배경과 유성룡이 『징비록』을 남긴 이유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임란전록』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파격적인 용인술로 이순신과 권율을 천거한 유성?룡과 병란에 앞서 부국강병을 강조한 이율곡을 만나야 할 시점이 무르익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0여 년 전, 북방에서는 누르하치가 이끄는 여진족들이 들불처럼 일어나고 남방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00여 년의 전국시대(戰國時代)를 마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서로 나누어진 당쟁의 그늘은 조선사회를 약화시키고, 끝내는 조선 백성들을 병란의... 조선이 임진왜란을 극복할 수 있었던 사상적 배경과 유성룡이 『징비록』을 남긴 이유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임란전록』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파격적인 용인술로 이순신과 권율을 천거한 유성룡과 병란에 앞서 부국강병을 강조한 이율곡을 만나야 할 시점이 무르익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0여 년 전, 북방에서는 누르하치가 이끄는 여진족들이 들불처럼 일어나고 남방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00여 년의 전국시대(戰國時代)를 마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서로 나누어진 당쟁의 그늘은 조선사회를 약화시키고, 끝내는 조선 백성들을 병란의 불길 속으로 던져 넣었다. 일에는 반드시 전조가 따르기 마련이다. 임진왜란도 이탕개의 난에서 우리는 그 징조를 찾아볼 수 있다. 이탕개의 난을 통해 이율곡은 조선이 안고 있는 심각한 폐단을 절감하고는 선조에게 미래를 대비하는 정책들을 쏟아놓지만 그의 정책은 당파에 함몰되어 폐기되어 버린다. 하지만 이탕개의 난에 등장하는 신립, 이순신, 김시민과 같은 젊은 장수들과 휴정, 유정 등은 훗날 임진왜란에서 큰 몫을 담당하게 된다.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조선을 구원한 이순신과 권율을 천거한 인물이 유성룡이었고, 이는 파격적인 정책으로 가능하였다. 당시 병조판서로 이탕개의 난을 진압했던 이율곡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던 유성룡은 임진왜란을 극복하는 원동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임란전록』은 유성룡이 왜란을 극복할 수 있었던 사상적 배경이 어디에서 왔는지, 『징비록』을 쓴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역사소설로 그리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국가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게 되면 백성들이 가장 큰 피해를 당하게 되는 건 변함이 없다. 백성을 지켜주지 못하는 나라를 우리는 국가라고 말할 수 있는가. 임란전록은 이러한 물음에 강한 울림을 전해준다 저자는 임란전록을 저술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서인인 이율곡과 동인인 유성룡. 정반대의 노선을 걷고 있던 두 사람은 실제로 친분이 두터웠다. 흔히들 이율곡의 십만양병설을 반대한 사람이 유성룡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와는 다르다. 이율곡은 서인이었지만 당파를 구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외톨이 신세였다. 유성룡은 동인이지만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율곡과 소통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두 사람은 시비로 다투지 않고 정책으로 다투었다. 그것은 합리적 소통이었다. 유성룡이 저술한 징비록은 임진왜란의 기록물이었다. 하지만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0여 년 전에 일어난 이탕개의 난을 통해 우리는 당시의 시대상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조선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은 이미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임진왜란을 극복하게 되는 요인도 이탕개의 난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임란전록’은 징비록을 이해하기 위한 지침서라 할 수 있다. 당파의 분쟁 가운데서 신념을 지키며 죽기 전까지 나라의 위급을 구하기 위하여 몸을 바쳤던 이율곡의 삶은 오늘날 재조명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또한 병란의 위기에서 파격적인 정책으로 나라를 구원했던 유성룡의 사상 또한 재조명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나라에 큰 병화가 생겼을 때, 몸을 바쳐 싸웠던 이름 없는 민초들의 희생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고승인 대주와 범이, 임백손과 같은 민초들이 없었다면 조선은 500년이라는 긴 시간을 존속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소설을 통해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미래를 대비하지 않으면 몰락한다’는 역사의 교훈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선조가 절벽 위의 불길을 가리키며 임진별장에게 물었다.
“저 정자 이름이 무언고? 누가 불을 피웠기에 이렇게 비가 오는 날 꺼지지도 않고 활활 타오르는고?”
임진별장이 읍하며 말하였다.
“저곳은 화석정이라는 정자이온데 소신도 어찌 된 영문인지는 알지 못하옵니다.”
선조는 더욱 이상하게 생각하며 다시 물었다.
“저것을 만든 이가 누구더냐?”
“화석정은 원래 고려 말에 길재(吉再)가 살았던 곳인데 이명신(李明晨)이 건립하고 이숙함(李淑?)이 이름을 지었다고 정기(亭記)에 쓰여 있었사옵니다. 옛날 이명신의 후손인 이율곡이 저곳을 증수하곤 자주 경치를 완상하다가 지금은 그 후손이 관리하고 있는데 오늘 같은 날 갑자기 저렇게 불이 나다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옵니다.”
“이율곡?”
“네, 그렇지 않아도 전날 그 후손들이 매양 정자 기둥에 두껍게 기름칠하는 것을 보고 이상하여 물었더니 죽은 이율곡의 명이라 하였사옵니다. 율곡이 죽은 후 한 달에 한 번씩 기름칠을 하여 그 두께가 손가락 한 치 만큼 하더니 오늘 같은 때에 불이 나 상감마마를 곤경에서 구하였으니 기이한 일이옵니다.”
선조가 세차게 비를 퍼붓는 하늘을 우두커니 올려다보다가 불타는 화석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억수 같은 빗줄기에도 꺼지지 않은 화석정의 불빛이 용안을 따라 흐르는 두 줄기 눈물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선조의 가마 옆에서 비를 맞으며 시립하고 있던 유성룡은 조용히 고개를 들어 화석정을 바라보았다. 세차게 퍼붓는 빗줄기속에서 화석정의 불빛이 환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화석정을 휘감은 불길 속에서 이율곡의 얼굴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임제? 가만, 가만. 그렇다면 네놈이 기생 황진이 무덤에서 시를 짓고서 좌천(左遷)되었다는 바로 그 임제냐?”
“화적 주제에 들어먹은 선성은 있는 모양이구나. 그렇다. 내가 바로 그 임제다.”
“음하하하. 네놈 이름은 익히 들었다. 당대 호걸이라 하더니 헛말이 아니구나.”
“도적놈아, 내 이름을 알았으면 너도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이 아니냐?”
“하하하. 미안하지만 내 이름은 말해줄 수가 없구나. 어떡하냐?”
“당파싸움을 말하십니까?”
“네. 저는 내부의 변란이 이 나라의 백성을 죽음과 고통으로 몰아넣을 것을 두렵게 생각합니다. 변란을 막을 방법을 물어보셨지요? 내부의 변란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외부의 변란은 예정된 것이올시다. 그렇지만 그 역시 정해진 길이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변란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입니다.”
목차
화석정(花石亭)
징조(徵兆)
백두산 지킴이
세상 속으로
씨름대회
노을처럼 가다
출새행(出塞行)
용호군(龍虎軍)
건원보 전투
온성의 철기군(鐵騎軍)
정쟁(政爭)
용장은 억울하게 떠나고
사향노루가 봄 산을 지나니
후회(後悔)
작가의 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