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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왕

원제 : Oidipous tyrannos
시리즈 : 범우 희곡선 [42]

소포클레스 저 | 황문수 역 | 범우 | 2015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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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3651323 / 284쪽 128 x 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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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숙명에 의해 아버지인 왕을 죽이고 어머니를 아내로 맞아들인 오이디푸스 왕- 그 놀라운 운명의 힘을 3대 비극으로 만나다 삶이 무엇이냐? 이 수수께끼는 아직 풀리지 않았다. 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인간은 ‘운명’이라 표현한다! | 이 책을 읽는 분에게 | 소포클레스의 비극을 읽으면 놀라운 운명의 힘을 만나게 된다. 성인도, 위대한 학자도 인생의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한다. 인생은 그만큼 광막하고 인간은 그만큼 무한하다. 대우주가 넓은 것이 아니라 ‘육척단구(六尺短軀)’로 표현되는 우리 인간의 삶이 ... 숙명에 의해 아버지인 왕을 죽이고 어머니를 아내로 맞아들인 오이디푸스 왕- 그 놀라운 운명의 힘을 3대 비극으로 만나다 삶이 무엇이냐? 이 수수께끼는 아직 풀리지 않았다. 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인간은 ‘운명’이라 표현한다! | 이 책을 읽는 분에게 | 소포클레스의 비극을 읽으면 놀라운 운명의 힘을 만나게 된다. 성인도, 위대한 학자도 인생의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한다. 인생은 그만큼 광막하고 인간은 그만큼 무한하다. 대우주가 넓은 것이 아니라 ‘육척단구(六尺短軀)’로 표현되는 우리 인간의 삶이 넓은 것이다. 그러므로 수천, 수억,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간이 살았으면서도 ‘삶이 무엇이냐?’는 수수께끼만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 영원히 풀리지 않을 수수께끼일지도 모른다. 이 수수께끼를 인간은 즐겨 ‘운명’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행복도, 불행도, 성공도, 실패도, 사랑도, 미움도 인간이 이루는 것이 아니라, 미지의 거대한 힘이 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젊었을 때 삶의 신기함에 현혹되어 인생의 비밀을 풀려고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온갖 위대한 학설을 다 익혀도 결국 인생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고 하는 오마르 카이얌의 체념은 결코 소극적인 단념이 아니라 광대한 우주와 일체를 이루는 승화일지도 모른다. 그 운명의식(運命意識)은 참으로 엄숙하지 않은가. 이러한 운명 의식에 철저한 것이 소포클레스의 비극이다. 그의 삼대 비극이라고 일컬어지는 《오이디푸스 왕》,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안티고네》는 테바이의 저주받은 한 왕가의 운명을 집요하게 추적하며 인간의 힘을 초월해 있는 운명의 두려움을 드러낸다. 소포클레스의 가장 훌륭한 비극이라 할 수 있는 《오이디푸스 왕》에서 오이디푸스의 양친, 라이오스 왕과 이오카스테는 오이디푸스를 낳자마자 버린다. 그가 친아버지를 죽이고 친어머니를 아내로 삼을 저주받은 인간이라는 신탁(神託)에 놀라서 라이오스 왕과 왕비는 오이디푸스를 내다 버림으로써 이 저주받을 운명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그러나 오이디푸스는 목자(牧者)의 손에 구원되어 코린토스 왕가에서 자라난다. 세월이 흐른 다음 오이디푸스는 인적이 드문 곳에서 라이오스 왕을 만나 아버지인 줄 모르고 그를 죽인다. 그리고 테바이로 들어와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고 왕위에 올라 이오카스테를 아내로 맞이한다. 이오카스테의 몸에서 자녀를 낳고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테바이에는 전염병이 창궐한다. 극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오이디푸스의 운명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오이디푸스는 자기의 맹세에 속박되어 장님이 되고 나라를 잃는다. 우리는 이 비극을 읽으면서 인간의 힘을 초월해 있는 운명의 힘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가를 절감하게 된다. 저 비극적인 아이러니, 자기도 모르고 지껄이는 말이 엉뚱하게도 사실은 자기를 비웃고 있다는 아이러니는 소포클레스의 비극작법일 뿐 아니라 운명의 작희(作?)이기도 한 것이다. 오이디푸스는 자기가 라이오스 왕의 살해자임을 까맣게 모르고 살인범을 저주한다. 그러나 그 저주는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저주였다는 비극적인, 어쩌면 희극적이기도 한 아이러니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는 나라를 잃고 방랑하는 오이디푸스의 최후를 그리고 있다. 딸 안티고네의 손에 끌려 각처를 유랑하던 오이디푸스는 약속된 죽음의 땅, 콜로노스에 이르러 최후를 장식하지만 운명의 손은 아직도 그를 풀어 주지 않는다. 그는 자기의 운명을 저주하고 두 아들을 저주하고 친구들을 저주하며 신에게로 돌아간다. 이 무서운 저주는 낱낱이 실현되는 것이다. 이 저주는 오이디푸스의 저주가 아니라 바로 ‘운명’의 저주이기 때문이다.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 딸 안티고네와 아들 폴류네이케스의 비참한 운명을 그리고 있다. 형제끼리 왕위를 놓고 다투다가 두 형제는 모두 쓰러진다. 그러나 새로 왕위를 차지한 크레온 왕은 꽤 분별이 있는 사람이었건만, 이상한 고집을 부려 안티고네와 자기 아들 그리고 아내를 자살하게 만든다. 이렇게 해서 라이오스 왕가에 깃든 저주는 막을 내린다. 오이디푸스 일가의 운명은 어쩌면 인간 운명의 축도일지도 모른다. 서로 싸우고 저주하며 제멋대로 살아가는 듯하지만, 그 뒤에는 그들을 비웃으며 조종하는 운명이 있다. 이 운명은 신이라고 해도 좋고 도도하게 흐르는 인간의 역사라고 해도 좋다. 하여튼 인간은 살다 보면 밀어 낼 수 없는 벽에 부딪힌다는 소포클레스의 운명 의식은 우리를 전율하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악착 같은 욕망, 우리의 부질없는 공명심, 우리의 보잘것 없는 오만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한다. 소포클레스의 비극을 읽고 옷깃을 여미는 것은 바로 옷깃을 여미고 인생을 대하는 것이다. 그만큼 이 작품들은 우리에게 무한한 것을 가르쳐 준다. “지혜야말로 최고의 행복. 오만한 자의 호언장담은 언제든 큰 타격을 받고, 벌 받은 자는 늙어서야 현명해진다”는 《안티고네》의 마지막 대사처럼 우리는 삶의 처절한 진실 앞에서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비극적인 것은 현실 존재의, 그것도 인간의 현실 존재의 몸서리쳐지는 두려움을 인간 존재라는 포괄적인 존재를 근원으로 하는 무서운 갈등을 통해 나타낸다. 그러나 비극적인 것을 볼 때에는 그것을 봄으로써 비극적인 것으로부터 풀려나 일종의 카타르시스, 니르바나(涅槃)를 이루게 된다.” 20세기의 위대한 철학자 칼 야스퍼스가 그의 《비극론》에서 한 이 말은 음미할 가치가 있다. 독자들은 이 비극과 함께 야스퍼스의 《비극론》을 읽으면 비극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게 될 것이다. 소포클레스(Sophocles, B.C. 496~406)는 그리스 아테네 근처의 콜로노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사회적으로는 상류 계급에 속해 있었고 뛰어난 용모와 재주를 겸비하고 있어 남들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소포클레스가 비극 작가로 등장한 것은 기원전 468년이었다. 그는 곧 선배 작가 아이스퀼로스를 능가하는 인기를 얻었다. 그는 비극 작가로서의 왕좌를 만년까지 지켰다. 그가 죽은 다음 아테나이 사람들은 그를 영웅으로 숭배하고 해마다 제사를 지냈다는 것을 보더라도 그의 비극 작가로서의 인기가 얼마나 높았는가를 알 수 있다. 소포클레스는 매우 많은 작품을 남겨 놓았다. 전부 123편, 또는 130편의 작품을 썼다고 전하지만 현재 완전히 전해 내려오는 것은 《안티고네》, 《아이아스》, 《엘렉트라》, 《오이디푸스 왕》, 《트라키스의 여인들》, 《필로크테테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등 일곱 편뿐이다. 제일 먼저 쓴 작품은 《안티고네》이고 마지막 작품은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이다. 소포클레스는 아이스퀼로스와는 달라 삼부작(三部作)은 비극의 형식으로서 적당치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씌어진 연대는 각기 다르지만, 《오이디푸스 왕》,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안티고네》는 거의 완벽한 삼부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 하나하나는 독립된 작품으로서 거의 완벽한 모티브와 구성을 갖고 있다. ( - 옮긴이)

저자 소개

소포클레스는 ≪시학≫의 저자 아리스토텔레스가 그 어느 작가보다도 높이 평가했던 그리스 극작가다. ≪시학≫의 비극론은 바로 소포클레스의 비극을 토대로 해 집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괴테는 소포클레스를 다음과 같이 칭찬하고 있다. “소포클레스 이후 그 어떤 사람도 내게 더 호감이 가는 사람은 없다. 그는 순수하고 고귀하고 위대하며 쾌활하다. 현존하는 소포클레스의 작품이 몇 편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유감이다. 그러나 몇 편의 작품일지라도 이 작품들은 읽으면 읽을수록 더 좋게 느껴진다.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작품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기원전 496년 그리스 아테네 근교에 자리 잡은 콜로노스에서 태어난 소포클레스는 아테네가 문화적으로 가장 성숙했던 시기에 배우인 동시에 극작가로 활동했다. 수려한 용모와 배우로서 손색이 없는 신체적 조건을 갖추고 있어서 처음에는 배우로서 명성을 날렸다. 기원전 468년, 28세에 첫 작품을 발표했고 이는 경연대회에서 일등상을 받았다. 이후 123편의 작품을 썼고 24회나 일등상을 받았다. 정치가로서도 탁월한 식견을 지녔던 소포클레스는 기원 전 445년, 델로스(Delos) 동맹이 결성되었을 때, 아테네 동맹국의 재정을 통괄하는 재정관에 선출되었다. 또한 기원전 443년에 페리클레스와 더불어 10명의 지휘관 직에 선출되었으며, 기원전 440년에는 사모스(Samos) 섬 원정에 출전할 장군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평생을 아테네에 살면서 그가 보여준 애국심과 진지한 인품은 시민들의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일생동안123편의 작품을 발표했지만 현존하는 작품은 다음 7편뿐이다.<아이아스>, <안티고네>, <오이디푸스 왕>, <필록테테스>, <엘렉트라>, <트라키스의 여인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가 그것이다.


 

역자 소개

고려대학교 문리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고려대와 한양대 강사를 역임했으며 경희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지냈다. 지은 책으로 《실존과 이성》, 《고균 김옥균》, 《동학운동의 이해》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소크라테스의 변명》(플라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니체), 《이성과 실존》(야스퍼스), 《철학 이야기》(윌 듀렌트), 《역사철학》(윌리엄 드레이), 《실존철학》(프리츠 하이네만), 《현대인의 소외》(프리츠 파펜하임), 《사랑의 기술》(에리히 프롬), 《의식과 사회》(스튜어트 휴즈) 등이 있다

머리말


| 이 책을 읽는 분에게 |

소포클레스의 비극을 읽으면 놀라운 운명의 힘을 만나게 된다.
성인도, 위대한 학자도 인생의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한다. 인생은 그만큼 광막하고 인간은 그만큼 무한하다. 대우주가 넓은 것이 아니라 ‘육척단구(六尺短軀)’로 표현되는 우리 인간의 삶이 넓은 것이다. 그러므로 수천, 수억,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간이 살았으면서도 ‘삶이 무엇이냐?’는 수수께끼만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 영원히 풀리지 않을 수수께끼일지도 모른다.
이 수수께끼를 인간은 즐겨 ‘운명’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행복도, 불행도, 성공도, 실패도, 사랑도, 미움도 인간이 이루는 것이 아니라, 미지의 거대한 힘이 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젊었을 때 삶의 신기함에 현혹되어 인생의 비밀을 풀려고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온갖 위대한 학설을 다 익혀도 결국 인생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고 하는 오마르 카이얌의 체념은 결코 소극적인 단념이 아니라 광대한 우주와 일체를 이루는 승화일지도 모른다.
그 운명의식(運命意識)은 참으로 엄숙하지 않은가.
이러한 운명 의식에 철저한 것이 소포클레스의 비극이다. 그의 삼대 비극이라고 일컬어지는 〈오이디푸스 왕〉,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안티고네〉는 테바이의 저주받은 한 왕가의 운명을 집요하게 추적하며 인간의 힘을 초월해 있는 운명의 두려움을 드러낸다.
소포클레스의 가장 훌륭한 비극이라 할 수 있는 〈오이디푸스 왕〉에서 오이디푸스의 양친, 라이오스 왕과 이오카스테는 오이디푸스를 낳자마자 버린다. 그가 친아버지를 죽이고 친어머니를 아내로 삼을 저주받은 인간이라는 신탁(神託)에 놀라서 라이오스 왕과 왕비는 오이디푸스를 내다 버림으로써 이 저주받을 운명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그러나 오이디푸스는 목자(牧者)의 손에 구원되어 코린토스 왕가에서 자라난다. 세월이 흐른 다음 오이디푸스는 인적이 드문 곳에서 라이오스 왕을 만나 아버지인 줄 모르고 그를 죽인다. 그리고 테바이로 들어와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고 왕위에 올라 이오카스테를 아내로 맞이한다. 이오카스테의 몸에서 자녀를 낳고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테바이에는 전염병이 창궐한다. 극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오이디푸스의 운명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오이디푸스는 자기의 맹세에 속박되어 장님이 되고 나라를 잃는다.
우리는 이 비극을 읽으면서 인간의 힘을 초월해 있는 운명의 힘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가를 절감하게 된다.
저 비극적인 아이러니, 자기도 모르고 지껄이는 말이 엉뚱하게도 사실은 자기를 비웃고 있다는 아이러니는 소포클레스의 비극작법일 뿐 아니라 운명의 작희(作戲)이기도 한 것이다. 오이디푸스는 자기가 라이오스 왕의 살해자임을 까맣게 모르고 살인범을 저주한다. 그러나 그 저주는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저주였다는 비극적인, 어쩌면 희극적이기도 한 아이러니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는 나라를 잃고 방랑하는 오이디푸스의 최후를 그리고 있다. 딸 안티고네의 손에 끌려 각처를 유랑하던 오이디푸스는 약속된 죽음의 땅, 콜로노스에 이르러 최후를 장식하지만 운명의 손은 아직도 그를 풀어 주지 않는다. 그는 자기의 운명을 저주하고 두 아들을 저주하고 친구들을 저주하며 신에게로 돌아간다. 이 무서운 저주는 낱낱이 실현되는 것이다. 이 저주는 오이디푸스의 저주가 아니라 바로 ‘운명’의 저주이기 때문이다.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 딸 안티고네와 아들 폴류네이케스의 비참한 운명을 그리고 있다. 형제끼리 왕위를 놓고 다투다가 두 형제는 모두 쓰러진다. 그러나 새로 왕위를 차지한 크레온 왕은 꽤 분별이 있는 사람이었건만, 이상한 고집을 부려 안티고네와 자기 아들 그리고 아내를 자살하게 만든다. 이렇게 해서 라이오스 왕가에 깃든 저주는 막을 내린다.
오이디푸스 일가의 운명은 어쩌면 인간 운명의 축도일지도 모른다. 서로 싸우고 저주하며 제멋대로 살아가는 듯하지만, 그 뒤에는 그들을 비웃으며 조종하는 운명이 있다. 이 운명은 신이라고 해도 좋고 도도하게 흐르는 인간의 역사라고 해도 좋다. 하여튼 인간은 살다 보면 밀어 낼 수 없는 벽에 부딪힌다는 소포클레스의 운명 의식은 우리를 전율하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악착 같은 욕망, 우리의 부질없는 공명심, 우리의 보잘것 없는 오만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한다.
소포클레스의 비극을 읽고 옷깃을 여미는 것은 바로 옷깃을 여미고 인생을 대하는 것이다. 그만큼 이 작품들은 우리에게 무한한 것을 가르쳐 준다. “지혜야말로 최고의 행복. 오만한 자의 호언장담은 언제든 큰 타격을 받고, 벌 받은 자는 늙어서야 현명해진다”는 〈안티고네〉의 마지막 대사처럼 우리는 삶의 처절한 진실 앞에서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비극적인 것은 현실 존재의, 그것도 인간의 현실 존재의 몸서리쳐지는 두려움을 인간 존재라는 포괄적인 존재를 근원으로 하는 무서운 갈등을 통해 나타낸다. 그러나 비극적인 것을 볼 때에는 그것을 봄으로써 비극적인 것으로부터 풀려나 일종의 카타르시스, 니르바나(涅槃)를 이루게 된다.”
20세기의 위대한 철학자 칼 야스퍼스가 그의 《비극론》에서 한 이 말은 음미할 가치가 있다. 독자들은 이 비극과 함께 야스퍼스의 《비극론》을 읽으면 비극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게 될 것이다.

소포클레스(Sophocles, B.C. 496~406)는 그리스 아테네 근처의 콜로노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사회적으로는 상류 계급에 속해 있었고 뛰어난 용모와 재주를 겸비하고 있어 남들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소포클레스가 비극 작가로 등장한 것은 기원전 468년이었다.
그는 곧 선배 작가 아이스퀼로스를 능가하는 인기를 얻었다. 그는 비극 작가로서의 왕좌를 만년까지 지켰다. 그가 죽은 다음 아테나이 사람들은 그를 영웅으로 숭배하고 해마다 제사를 지냈다는 것을 보더라도 그의 비극 작가로서의 인기가 얼마나 높았는가를 알 수 있다.
소포클레스는 매우 많은 작품을 남겨 놓았다. 전부 123편, 또는 130편의 작품을 썼다고 전하지만 현재 완전히 전해 내려오는 것은 〈안티고네〉, 〈아이아스〉, 〈엘렉트라〉, 〈오이디푸스 왕〉, 〈트라키스의 여인들〉, 〈필로크테테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등 일곱 편뿐이다. 제일 먼저 쓴 작품은 〈안티고네〉이고 마지막 작품은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이다.
소포클레스는 아이스퀼로스와는 달라 삼부작(三部作)은 비극의 형식으로서 적당치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씌어진 연대는 각기 다르지만, 〈오이디푸스 왕〉,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안티고네〉는 거의 완벽한 삼부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 하나하나는 독립된 작품으로서 거의 완벽한 모티브와 구성을 갖고 있다. ( - 옮긴이)

목차

목차
이 책을 읽는 분에게 7
오이디푸스 왕 13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105
안티고네 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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