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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손택의 말 파리와 뉴욕, 마흔 중반의 인터뷰

시리즈 :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6]

수전 손택, 조너선 콧 저 | 김선형 역 | 마음산책 | 2015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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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0902220 / 216쪽 148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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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파리와 뉴욕에서 수전 손택과 함께한 시간 35년 만에 완전히 공개된 마흔다섯 살의 인터뷰 1978년은 수전 손택에게 특별하다. 전해인 1977년 역작 『사진에 관하여』를 출간해 한창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었고, 1974년 유방암 선고를 받고서 수술과 투병으로 보낸 2년여 동안 구상한 또 다른 역작 『은유로서의 질병』이 출간된 해이기 때문이다. 1978년 수전 손택은 정확히 마흔다섯, 이를테면 사십 대의 절정에 이르렀고, 그간의 신념과 저서 그리고 자신의 일상을 돌아보는 일은 죽음을 관통해 생의 한가운데로 돌아온 그녀에게 남은... 파리와 뉴욕에서 수전 손택과 함께한 시간 35년 만에 완전히 공개된 마흔다섯 살의 인터뷰 1978년은 수전 손택에게 특별하다. 전해인 1977년 역작 『사진에 관하여』를 출간해 한창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었고, 1974년 유방암 선고를 받고서 수술과 투병으로 보낸 2년여 동안 구상한 또 다른 역작 『은유로서의 질병』이 출간된 해이기 때문이다. 1978년 수전 손택은 정확히 마흔다섯, 이를테면 사십 대의 절정에 이르렀고, 그간의 신념과 저서 그리고 자신의 일상을 돌아보는 일은 죽음을 관통해 생의 한가운데로 돌아온 그녀에게 남은 생의 방향을 잡는 일이 될 터였다. 그래서 수전 손택은 이즈음의 한 인터뷰에서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앎을 얻었지만, 또한 지금 죽지 않았다는 사실에 희열을 느낀다”고 말하며, 자신에 관한 가십거리 담론이 싫어서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깊은 속내를 털어놓았고, 그럼으로써 ‘살아 있음’을 재확인/재증명했다. 요컨대 인터뷰를 통해 그는 자기 삶의 전권이 여전히 자신에게 있음을 말하고 있었다. 『수전 손택의 말』은 이런 수전 손택이 1978년 《롤링스톤》과 가졌던 인터뷰를 오롯이 담은 책이다. 다양한 매체의 인터뷰를 엮은 것이 아니라, 하나의 긴 인터뷰를 원래의 호흡대로 담았다. 인터뷰에서 수전 손택은 자신의 책들의 내용과 표지에 관한 소소하고 즐거운 에피소드를 늘어놓을 뿐 아니라, 카프카, 베케트 등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 빌 헤일리 앤 더 코메츠, 척 베리 등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션, 그리고 글쓰기에 관한 지론은 물론이고 파리와 뉴욕 등 자신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는 도시들에 관해서도 서슴지 않고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문학, 영화, 음악, 사회, 성, 사랑, 여행 등 다양한 주제에 걸쳐 생기 있게 긴장과 이완을 번갈아가는 수전 손택의 말에서 여지없이 그만의 지성이 배어난다. 정갈하게 통제한 언어로 자기 노출을 삼가던 평소와 달리, 조금은 압력을 뺀 ‘사람 손택’의 진정한 모습을 보는 일이 즐겁다. 이 인터뷰는 1978년 6월 파리에서, 다섯 달 뒤인 11월 뉴욕에서 모두 12시간에 걸쳐 이루어졌고, 그중 3분의 1만이 《롤링스톤》 1979년 10월 4일 자에 게재되었다. 인터뷰 전문이 공개된 것은 35년 만에 이 책을 통해서가 처음이다. 그해 《롤링스톤》지에 인터뷰 기사를 게재한 바 있는 콧이 손택의 사후에 편집도 논평도, 그 어떤 다른 매개도 없이 열두 시간에 걸친 긴 대화 속에서 포착한 그녀의 ‘육성’을 그대로 다시 한 번 ‘옮겨 적어’야겠다고 결심한 건, 아마도 인터뷰어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첨언과 해석의 권리를 포기하고 불필요한 신화의 양산에 동조하지 않겠다는 뜻일 것이다. 그리하여 이 책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몰개성적 ‘글’이 아니라 1978년 싱그러운 어느 여름날, 파리와 뉴욕이라는 특수한 시공간에서 발화된 사적이고 특수한 ‘말’을 성실하게 포착한다. 추임새와 웃음소리를 포괄하는 이 대화 속 수전 손택의 말에는 목소리가 있고, 체온이 있고, 감정이 배어난다. 그녀의 삶을 종단하는 서사는 없지만, 그녀 삶의 짧은 한 순간을 함께 횡단하는 체험이 있다. -「옮긴이의 말」에서 ‘글’이 아닌 ‘말’로 읽는 수전 손택 사람 손택 내면의 방으로의 초대장 수전 손택의 시각은 달랐다. “나는 인터뷰라는 형식을 좋아해요.” 그녀는 언젠가 내게 말했다. “대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문답을 좋아하기 때문에 인터뷰를 좋아하는 거죠. 그리고 내 사고의 상당 부분이 대화의 소산이라는 걸 알고 있어요. 어떤 면에선 글쓰기에서 가장 어려운 점이 혼자 해야 하고 그래서 나 자신과의 대화를 꾸며내야 한다는 사실이에요. 이건 본질적으로 자연스럽지 못한 활동이거든요. 저는 사람들에게 말하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은둔자가 되지 않을 수 있는 거죠. 그리고 대화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낼 기회를 주죠. -「서문」에서 인터뷰에 대해 수전 손택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인터뷰는 그에게 “자신과의 대화를 꾸미는 일” “자연스럽지 못한 활동”에서 벗어나는 일이었고, 자신이 진정 생각하는 바를 알아내는 길이었다. 그래서 『수전 손택의 말』은 작심하고 쓴 그의 다른 저서들과는 결이 다르지만, 그 자체로 수전 손택 저서이자 수전 손택의 글과 철학과 취향과 생활을 한데 담은 진정성 있는 기록이 될 수 있었다. 수전 손택의 내밀한 모습을 담아내는 데에는 인터뷰어인 조너선 콧의 역할이 큰 몫을 했다. 《롤링스톤》 구상 단계부터 함께한 창립 공신 에디터이자 저술가인 조너선 콧은, 인터뷰 중에도 언급하듯, 수전 손택이 컬럼비아대학교에서 강의하던 시절 학부 수업을 들은 학생이었다. 졸업 후 그는 《롤링스톤》 유럽 지역 편집자를 맡고 기고하는 등 수전 손택과 꾸준히 교집합을 이루어갔고, 수전 손택이 『사진에 관하여』를 출간하고 『은유로서의 질병』 출간을 눈앞에 두었을 무렵 오랜 기다림 끝에 인터뷰를 제의했다. 그래서 『수전 손택의 말』은 수전 손택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에, 사제 간의 라포를 바탕으로, 그 어떤 인터뷰보다 편안하게 발화된 밀도 높은 대화를 담게 되었다. 최소한만 개입하며 일상 화제부터 철학적 난제까지 수준 높은 질문을 던지는 조너선 콧과, 모든 질문을 내다본 듯 다부진 답변을 내어놓는 수전 손택, 이 두 사람의 대화에는 여느 저서와 다른, 아늑한 거실에서 와인을 사이에 두고 나누는 말처럼 생생하고 느긋한 현장감이 있다. 수전 손택과 조너선 콧이기에 가능했던 화학작용이 이 책에 고유성을 더한다. 콧 / 프랑스의 삶과 문화에 특별한 동질감을 느끼시는 것 같은데요. 손택 / 그건 확실해요. 정말 그랬죠. 애초에 그래서 거기 정착하게 된 거예요. 전 머릿속에서 상상 속 프랑스를 그리고 있었어요. 발레리와 플로베르와 보들레르와 랭보와 지드로 이루어진 세계였죠. -183쪽 뉴욕은 내가 굳건한 소속감을 느끼는 장소고 내 본거지라는 느낌을 주며 내가 돌아갈 곳이기도 해요. -187쪽 수전 손택의 꾸미지 않은 모습을 담을 수 있었던 데엔 인터뷰 장소 또한 중요했다. 사후 수전 손택이 안장되었을 만큼 큰 친밀감을 형성했던 파리, 그리고 “뉴욕 지성계의 여왕”이라는 수식어에서 알 수 있듯 수전 손택의 거점이지 않은 적이 없었던 뉴욕. 수전 손택이 강한 소속감을 느낀 이 두 도시에서의 인터뷰는 수전 손택에게 홈경기와 같은 것이었고, 그 덕에 인터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인 ‘분위기’를 자유롭고 편안하게 이끌어낼 수 있었다. 파리와 뉴욕이 주는 안정감 안에서 수전 손택은 말하기를 자극받는다. 작품을 이야기할 땐 냉철하게, 가족을 이야기할 때 애틋하게, 세상을 이야기를 할 땐 비딱하게, 이 책에서 그는 누구의 선입견도 작용하지 않은 바로 그 수전 손택으로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전한다. “군더더기 없고, 정확하고, 요란하지 않고, 꾸밈없”는 수전 손택의 확실한 기록 1965년의 일기에서 수전은 다짐한 바 있다. “《파리리뷰》의 릴리언 헬먼만큼 명료하고 + 권위적이고 + 직접적인 말투를 갖출 수 있을 때까지 인터뷰는 일절 하지 않을 것.” 그로부터 13년 후, 6월 중순의 어느 햇살 맑은 날 나는 16구에 자리한 수전의 파리 아파트에 도착했다. 그녀와 나는 거실의 소파 두 개를 차지하고 앉았고, 나는 우리 사이에 놓인 테이블에 카세트테이프 녹음기를 꺼내놓았다. 그리고 나는 내가 던지는 질문들에 대한 그녀의 명료하고 권위적이고 직접적인 답변을 경청했다. 수년 전 스스로 목표로 했던 화법을 터득한 게 분명했다. -「서문」에서 이 인터뷰가 이루어진 1978년, 수전

저자 소개

미국 최고의 에세이스트이자 평론가, 소설가로 1933년 1월 뉴욕에서 태어났다. 첫 소설 『은인The Benefactor』(1963)과 에세이 「‘캠프’에 대한 단상Notes on 'Camp'」(1964)을 발표하면서 문단과 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66년 평론집 『해석에 반대한다』에서 서구 미학의 전통을 이루던 내용과 형식의 구별,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구별에 반기를 들며 화려한 명성을 얻었다. 그 뒤 극작가, 영화감독, 연극연출가, 문화비평가, 사회운동가 등 끊임없이 변신을 거듭한 손택은 ‘새로운 감수성의 사제’이자 ‘뉴욕 지성계의 여왕’, 그리고 ‘대중문화의 퍼스트레이디’로 미국 문화의 중심에 우뚝 섰다. 미국 펜클럽 회장을 역임하는 동안(1987~1989)에는 한국을 방문해 구속 문인의 석방을 촉구했고, 1993년에는 사라예보 내전 현장에 가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상연하는 등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의 면모도 아낌없이 보여 줬다. 2003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독일출판협회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한 『사진에 관하여』(1977)와 ‘전미도서상’ 소설 부분 수상작인 『인 아메리카』(1999)를 비롯해 네 권의 평론집과 여섯 권의 소설, 네 권의 에세이, 네 편의 영화 시나리오와 두 편의 희곡이 있으며 현재 32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널리 읽히고 있다. 2004년 12월, 골수성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유해는 파리의 몽파르나스 공동묘지에 안장됐다. 

에디터이자 작가. <롤링스톤>의 창립 공신이다. <롤링스톤>을 통해 존 레넌, 밥 딜런, 글렌 굴드, 레너드 번스타인 등과 명대담을 남겼고 책으로 출간했으며, <뉴욕타임스> <뉴요커> 등에 오랫동안 기고했다. 『옴 세티를 찾아서(The Search for Omm Sety)』 『기억의 바다에서(On the Sea of Memory: A Journey from Forgetting to Remembering)』 등 20여 권의 책을 냈다. 뉴욕에 살고 있다.


역자 소개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르네상스 영시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세종대학교 초빙 교수로 재직한 바 있으며 2012년 현재 서울시립대학교 연구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94년 아이작 아시모프의 《골드》를 첫 작품으로 번역 문학과 인연을 맺었고 C. S. 루이스의 《스크루 테리프의 편지》,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와 《재즈》,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 실비아 플라스의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카렐 차페크의 《도롱뇽과의 전쟁》, 존 케네디 툴르의 《바보들의 결탁》, 살만 루슈디의 《수치》, 시리 허스트베트의 《내가 사랑했던 것》,  로버트 갤브레이스의《쿠쿠스 콜링 1, 2》,  맥스 비어봄의《일곱 명의 남자》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2010년 유영 번역상을 수상했다.

책 속에서


수전 손택의 시각은 달랐다. “나는 인터뷰라는 형식을 좋아해요.” 그녀는 언젠가 내게 말했다. “대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문답을 좋아하기 때문에 인터뷰를 좋아하는 거죠. 그리고 내 사고의 상당 부분이 대화의 소산이라는 걸 알고 있어요. 어떤 면에선 글쓰기에서 가장 어려운 점이 혼자 해야 하고 그래서 나 자신과의 대화를 꾸며내야 한다는 사실이에요. 이건 본질적으로 자연스럽지 못한 활동이거든요. 저는 사람들에게 말하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은둔자가 되지 않을 수 있는 거죠. 그리고 대화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낼 기회를 주죠.
-「서문」에서


당신은 지금의 우리가 존재하는 양상의 전부와 과거의 우리 모습 모두가 문학 덕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책들이 사라진다면 역사도 사라질 것이고, 인간 역시 사라질 것이라고요. 나는 당신의 말이 옳다고 확신합니다. 책들은 우리 꿈 그리고 우리 기억의 자의적인 총합에 불과한 게 아닙니다. 책들은 또한 우리에게 자기 초월의 모델을 제공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독서를 일종의 도피로 생각할 뿐입니다. ‘현실’의 일상적 세계에서 탈피해 상상의 세계, 책들의 세계로 도망가는 출구라고요. 책들은 단연 그 이상입니다. 온전히 인간이 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서문」에서


프루스트 전공자인 제 친구가 아내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된 적이 있어요. 그는 끔찍한 질투심에 시달렸고 심한 상처를 받았어요. 그때 그는 질투를 다루는 프루스트의 작품을 완전히 다른 기분으로 읽게 되었고 질투의 본질에 대해 사색하기 시작하면서 그 관념들을 계속 집요하게 파고들었다고 내게 말했어요. 그 과정에서 프루스트의 텍스트들은 물론이고 자신의 경험과도 전적으로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었다고요. (…) 과거에 프루스트의 작품에서 질투에 대해 읽을 때는 자기 경험의 일환이 아닌 무언가를 읽는 사람의 방식으로 읽었던 거죠. 정말로 체험해보기 전까지는 진심으로 실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19쪽


나는 항상 상대의 잘못을 탓하기보다는 책임을 지는 쪽을 선호합니다. 나 자신을 희생자로 보는 게 정말 싫어요. 차라리 뭐랄까, 내가 이 사람과 사랑에 빠지기를 선택했는데 알고 보니 개새끼였어, 이렇게 말하는 게 나아요. 그건 ‘내가 한’ 선택이었으니까요. 더욱이 다른 사람을 탓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남을 바꾸기보다는 나 자신을 바꾸는 게 훨씬 쉽거든요.
-34쪽


성적인 전형들에 대해서 말하자면 말이죠, 얼마 전 밤에 빈센스대학 세미나에 초청을 받아 갔다가 데이비드(손택의 아들 데이비드 리프)와 겪은 상황이 있어요. 세미나가 끝나고 데이비드와 나 말고도 네 사람이 같이 커피를 마시러 갔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세미나에서 같이 온 사람들이 모두 여자였어요. 테이블에 다 같이 앉았는데 그중 한 여자가 프랑스어로 데이비드에게 말하더군요. “아, 딱한 남자 같으니. 여자 다섯하고 한 테이블에 앉게 돼서 어떡해요!” 그러자 모두 웃음을 터뜨렸어요. 그래서 내가 그 여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모두 빈센스대학의 교수였지요. “지금 무슨 말들을 하고 계시는지 알아요? 얼마나 자존감이 낮은 건지 아시냐고요?”
-38쪽


독서는 제게 여흥이고 휴식이고 위로고 내 작은 자살이에요. 세상이 못 견디겠으면 책을 들고 쪼그려 눕죠. 그건 내가 모든 걸 잊고 떠날 수 있게 해주는 작은 우주선이에요. 그러나 제 독서는 전혀 체계적이지 못해요. 굉장히 빨리 읽는다는 점에서는 아주 운이 좋은 편이죠. 대다수 사람들에 비해 저는 속독가라고 생각되는데, 많이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대단히 유리하지만 어디 한 군데 진드근히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단점도 많아요. 저는 그냥 전부 흡수한 후에 어디선가 숙성되기를 기다리거든요.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무식하답니다. -66쪽


사실 탐욕스럽게 퍼져 나가는 파시즘적 문화 충동이라는 게 저도 있다고 봅니다. 전통적인 사례를 들자면, 현대 대중문화에서 우리가 활용하는 모든 사례에 앞서는 전례가 있죠. 바로 니체입니다. 니체는 정말로 나치즘에 영감을 주었고, 그의 저작들에는 나치 이데올로기를 예시하고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내용들이 실제로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저는 니체를 전부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언제든 그런 방식으로 발전될 수 있는 사상이라는 걸 부정할 생각도 없지만요.
-73쪽


투손에서 로스앤젤레스로 가는 건 어마어마한 변화였죠. LA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버클리로 갔다가 시카고대학으로 진학했고, 다음에는 하버드대학원으로 갔어요. 그리고 캘리포니아에서 잠시 지내다가 뉴욕으로 갔어요. 사람들은 제가 뉴요커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스물여섯이 되어서야 이사한걸요……. 마침내 고향 모스크바에 돌아온 마샤(1967년 소련에서 태어난 러시아 언론인 겸 작가로 1981년 미국으로 이주했지만 10년 뒤 다시 모스크바로 돌아와 지금까지 살고 있다) 같은 기분이었죠. 전 항상 뉴욕에 살고 싶었고, 그렇게 될 거라는 걸 알았어요. 내가 선택해서 뉴요커가 된 사람이죠.
-184쪽

목차

목차
서문┃조너선 콧
수전 손택의 말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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