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구간

신을 불쾌하게 만드는 생각들

원제 : Islam And Modernity (2015년)
시리즈 : 글항아리 이슬람 총서 [2]

슬라보예 지젝 저 | 배성민 역 | 글항아리 | 2015년 03월

미리보기 북트리

닫기 샤를리 에브도 사건 이후로 두 달, “사태의 열기를 유지하면서 사태를 사고하는” 지젝의 신간 - MD 추천

정가
$12.00
판매가
$6.60 (45%↓) 최저가 보상
적립금
$0.13 (2%P)

품절된 상품입니다.

이 책을 꼭 원하시는 고객님께서는 아래 "상품문의"를 클릭 후 구매의사를
알려주세요. 책이 확보 될 경우 연락 드리겠습니다.

북카트 바로구매 위시리스트

평점 -  ·  리뷰 0

리뷰 쓰기

북셀프

1시간도 길다! 5분만에 OK! 매장에서 직넙 책을 찾아가세요. 500원 추가적립!(선착순 천명/일)

가능매장 : 목동점

북셀프로 구매하기 북셀프란?

ISBN : 9788967351854 / 100쪽 127 x 210 (㎜)

이 상품에 궁금하신점이 있으세요? 1:1상담문의

추천inside
Adobe Flash Player 가져오기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

아래의 도서와 구매하시면 이 도서들의 적립금을 즉시적용해 드립니다.

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샤를리 에브도 사건 이후로 두 달, “사태의 열기를 유지하면서 사태를 사고하는” 지젝의 신간 자유주의 좌파는 왜 가짜 좌파인가?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은 왜 가짜 근본주의자들인가? 샤를리 에브도 사건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2015년 1월 7일 프랑스 파리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주지하다시피 이슬람 근본주의의 성향을 지닌 두 형제 테러리스트가 풍자 주간신문인 샤를리 에브도 사에 들이닥쳐 총기를 난사했다. 총격 끝에 열두 명이 숨졌다. 이 경악스러운 테러는 언뜻 샤를리 에브도에 실린 만평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샤를... 샤를리 에브도 사건 이후로 두 달, “사태의 열기를 유지하면서 사태를 사고하는” 지젝의 신간 자유주의 좌파는 왜 가짜 좌파인가?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은 왜 가짜 근본주의자들인가? 샤를리 에브도 사건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2015년 1월 7일 프랑스 파리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주지하다시피 이슬람 근본주의의 성향을 지닌 두 형제 테러리스트가 풍자 주간신문인 샤를리 에브도 사에 들이닥쳐 총기를 난사했다. 총격 끝에 열두 명이 숨졌다. 이 경악스러운 테러는 언뜻 샤를리 에브도에 실린 만평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샤를리 에브도는 이미 여러 번 이슬람을 풍자하는 만평을 실었고, 그 때문에 폭탄 테러나 방화로 의심되는 화재 사건을 겪기도 했다. 그럼에도 샤를리 에브도는 이슬람을 풍자하는 만평 게재를 중단하지 않았다. 이 사건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분노가 극단적인 테러로 이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정말 그럴까? 지젝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더 사고해야 한다. (…) 이 사건을 감싸는 큰 흐름을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 그렇다면 샤를리 에브도 사건을 감싼 큰 흐름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더 사고해야 하는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샤를리 에브도는 이슬람을 풍자하는 만평을 실었다. 그렇지만 그러한 만평이 테러나 방화 사건을 불러왔을 때 잠깐 잘 팔렸을 뿐 늘 적자에 시달리던 인기 없는 신문이었다. 그렇다면 질문. 어째서 두 형제는 이런 한물간 신문에 실린 만평에 ‘분노’를 느꼈을까? 진정한 근본주의자에게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특징들이 그들에게는 유독 보이지 않는다. 진짜 근본주의자에게는 시기도 원한도 없다. 그는 불신자가 사는 방식에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질문을 바꾸자. 어째서 두 형제는 이런 한물간 신문에 실린 만평에 ‘위협’을 느꼈을까? 어째서 그들은 불신자에게 ‘위협’을 느꼈을까? 지젝은 이미 《예수는 괴물이다》나 《죽은 신을 위하여》에서 기독교를 분해하고 비판했다. 이 책은 대상을 이슬람교로 바꾸고 그 연장선상에 있는 작업이다. 그는 묻는다. 혹시 테러리스트가 보이는 저 열정은 오히려 그에게 진짜 확신이 없음을 증거하는 게 아닐까? 얼마나 믿음이 연약했기에 풍자 주간지에 실린 한심한 만화를 보고 위협을 느꼈겠는가! 말하자면 이슬람 근본주의자가 휘두른 폭력은 자신이 남보다 우월하다는 확신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 스스로 열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가 이미 우리와 비슷하다는 것, 우리가 세운 기준을 슬그머니 이용해 자신을 판단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바꿔 말할 수 있겠다. 많은 이가 테러에 맞서 “나는 샤를리다JE SUIS CHARLIE”를 외치면서 자유롭게 말할 자유를 옹호했지만,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 이슬람 근본주의 사이에 대립관계는 명확하지 않다.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 이슬람 근본주의의 대립은 결국 가짜 대립이며, 두 세력은 상대를 전제하면서 서로를 만들어낸다. 이슬람 근본주의는 전근대적인가, 근대적인가? 세계 자본이 민족국가의 힘을 잠식하는 방식에 반대하는 투쟁이 전개되면서 ‘이슬람국가IS’가 나타났다. 그러나 세계 자본이 가져온 경악과 두려움을 똑같이 일으키는 주체가 IS 체제이기도 하다. 이슬람 근본주의는 바로 이 IS 안에서 자신의 극단적인 모습을 발견했다. 사실 ‘근본주의’라는 말은 아랍어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슬람 근본주의’라는 용어도 서구권, 특히 영어권에서 붙인 이름이다. 원리주의라고도 일컫는 근본주의가 단지 전통과 교리 준수를 중시하는 것이라면 모든 이슬람 종파가 그러할 것이다. 여기서 근본주의가 가리키는 것은 테러를 단행하는 등 훨씬 과격한 태도다. 그렇다면 이슬람 근본주의는 단지 전근대적이기만 한 걸까? 이때 벤야민의 오래된 통찰이 여전히 유효하다. “파시즘이 부상한다는 것은 혁명이 실패했음을 입증한다.” 즉 파시즘의 부상은 좌파가 실패했음을 뜻한다. 특히 그것은 좌파가 미처 동원할 수 없었던 혁명적 잠재력과 불만이 있었음을 뜻한다. 요컨대 좌파는 총체적으로 실패했다. 세계 각국에서 IS에 합류하기 위해 비행기 티켓을 끊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고, 프랑스는 9.11 테러 이후 미국처럼 우경화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 휩싸여 있다. 어째서일까? 이것은 역설이다. 이슬람 근본주의자에게 자신이 우월하다는 진짜 ‘인종주의’다운 확신이 없었듯이,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는 이슬람 근본주의에 맞서 자유와 평등을 지킬 만큼 강하지 않다.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에 실제로 내재하는 결함에 대한 반응이 바로 이슬람 근본주의다. 바꾸어 말해 이 순간 근대적 자유주의와 전근대적 근본주의라는 도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슬람 근본주의는 근대적인가? 이 물음은 언뜻 어불성설인 것처럼 보인다. 이미 말했듯 이슬람 근본주의는 전통 및 교리 준수를 다른 종파보다 훨씬 중시하기 때문이다. 어째서일까? 세계 자본주의에 저항하기 위해 꼭 전근대적 전통이나 전통적 생활양식에 기댈 필요는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전근대적 전통으로 되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이미 근대적 언어로 말하고 있다. 내용은 전통적일지라도 말하는 방식은 근대적이다. 가령 IS 지도자인 아부 바르크 알 바그다디의 사진을 보라. 그는 멋진 스위스제 시계를 차고 있다. 이 장면이 말해주는 사실은 이런 것이다. IS는 온라인으로 선전하고 금융거래를 할 만큼 잘 조직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근대화를 극구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도착적 근대화를 보여주는 사례에 가깝다. 그렇다면 다시 묻자. 그들은 착취당하고 지배당하면서 식민주의가 가하는 폭력과 모욕에 시달렸다. 그런데도 왜 그들은 서구 유산 가운데 좋다고 여길 만한 것들을 파괴하려는 걸까? 왜 평등주의나 개인의 자유를, 모든 권위에 대한 건강한 조롱과 풍자를 파괴하려는 걸까? “그들은 착취하고 폭력을 행사할뿐더러 상처를 더 후벼 파려고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잔인성을 과시함으로써 자유주의를 추구하는 서구를 참을 수 없게 만든 것은 아닐까?” 무엇이 신을 불쾌하게 만드는가? 샤를리 에브도가 그랬듯, 이슬람교도가 사소한 일상생활을 규제하는 것을 비웃는 건 쉽다. 그렇지만 우리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관점 안에 내재해 있는 모순을 강조해야 한다. 정치적 올바름도 성차별적·인종차별적 농담을, 심지어 종種차별적 농담을 규제한다. 말하자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우리 반대편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다.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 이슬람 근본주의 사이에 대립관계가 명확하지 않듯이, ‘이슬람 파시즘’의 부상이 좌파의 실패를 폭로하듯이, 그들은 어떤 거울상처럼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이슬람교도가 신성모독을 대면할 때 침묵하지도, 가만히 있지도 못한다면 우리 역시 그렇지 않은가? 기독교의 낙태반대운동에서 똑같은 태도가 나타난다. 매년 태아가 수십만 명 살해되는 상황 앞에서 낙태를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은 침묵하지도, 가만있지도 못했다. 이런 차원에서 자유주의적 민주주의가 내세우는 정치적 올바름은 종교 근본주의와 유사하다. 정치적 올바름도 나름대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말하기 때문이다. 자유지상주의자는 정치적이고 영적인 모든 권위를 비웃고 풍자한다. 그런데 이런 태도는 타인이 겪는 고통과 모욕에 대한 과민한 반응을 유발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하여 2011년 프랑스는 이른바 ‘부르카 금지법’을 만들었고, 이에 대해 파키스탄 출생의 한 여성이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제소하기에 이르렀지만 유럽인권재판소는 그것이 적법하다고 판시했다. 두 인종이나 두 종교 집단이 함께 살지만 양립할 수 없는 삶의

저자 소개

1949년 슬로베니아 수도인 류블랴나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철학 및 사회학 등을 전공하고, 류블랴나 대학 사회학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파리8대학에서 라캉 연구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라캉과 마르크스, 헤겔을 접목한 독보적인 철학으로 ‘동유럽의 기적’ 혹은 라캉 정신분석학의 전도사로 일컬어지는 세계적인 석학이다. 지젝이 처음에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을 통해 서구 지식사회에 등장했을 때, 대중문화로 철학을 더럽히는 ‘MTV 철학자’라 불리기도 했다. 이제 ‘현존하는 가장 위험한 철학자’가 된 그는 매년 꾸준히 2~3권의 책을 출간할 정도로 왕성하게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

한편, 정치에도 관심을 보여 1990년에는 슬로베니아 공화국 대통령 선거에 개혁파 후보로 나서기도 했다. 현재는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 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선임 연구원으로 있으며, 슬로베니아의 주간지 〈믈라디나〉의 정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삐딱하게 보기』,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까다로운 주체』, 『신체 없는 기관』, 『혁명이 다가온다』,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 『HOW TO READ 라캉』, 『죽은 신을 위하여』, 『시차적 관점』 등이 있고, 함께 쓴 책으로 『항상 라캉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감히 히치콕에게 물어보지 못한 모든 것』, 『매트릭스로 철학하기』, 『아부 그라이브에서 김선일까지』, 『성관계는 없다』, 『우연성, 헤게모니, 보편성』 『레닌 재장전』등이 있다.

역자 소개

영남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철학과 환경교육을 전공했다. 현재 <바꾸다> 학습 컨설팅을 운영하면서 철학과 심리학, 교육학 분야의 책을 번역하고 있다. 경북대학교 박사 과정에서 철학을 공부한다. 옮긴 책으로는 『유기적 공동체』(배성민·박삼종 공역, SFC, 2010), 『누가 포스트모더니즘을 두려워하는가?』(배성민·박삼종 공역, 살림, 2009), 『우리는 왜 아플까?』(동녘사이언스, 2011) 등이 있다.

목차

목차
시작하며
1장 이슬람교는 생활이다
2장 이슬람교의 기록보관소에는 무엇이 있을까?
옮긴이의 말
주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