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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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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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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준, 고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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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로 마키아벨리
- 2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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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새로운 무크지 『#hash tag 해시태그』가 선을 보인다. 인문무크지 해시태그의 첫번째 주제어는 ‘구멍’이다. 구멍이라 하면 사고, 침몰, 싱크홀 같은 우리 사회의 비극들이 연상된다. 동시에 구멍은 무언가를 들여다볼 수 있고 얻을 수 있고 탈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기도 하다. 구멍은 비어 있는 장소이자 채워야 할 장소, 들여다보는 곳이자 대면하고 손잡는 곳이다. 때문에 한국 사회 곳곳에 구멍이 있다면 그 허술함과 계략을 비판하는 동시에 무엇으로 그 위험을 채울지, 한국 사회 곳곳이 막혀 있다면 그 완고함과 구조에 어떻게 구멍을 낼지를 ‘이야기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구멍을 외면하는 대신, 이야기했다. ‘#구멍’이라는 해시태그를 통해 책 『장치란 무엇인가?』 『21세기 자본』 『결정장애 세대』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 영화 <만신> <구멍> <음란서생> 등 다양한 텍스트들이 모였고, 이를 통해 통합진보당 해산, 쌍용자동차 고공농성, 세월호 침몰, 밀양 송전탑 농성, 자본론, 비정규직, 일베, 서울시민인권헌장 등 다양한 키워드들이 깊이 있게 논의되었다. 인문무크지 해시태그는 다양한 감각과 관점으로 우리 사회 곳곳에 뚫린 구멍들을 이야기함으로써 구멍을 대면하고 사유하고자 했다. 『#hash tag 해시태그』를 읽고 독자들 또한 해시태그를 통해 소통하고 놀며 더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출판사 리뷰
세계는 미세하면서도 폭력적인 장치들로 가득하고, 동물화를 넘어 좀비화된 주체들이 이 장치들 속에서 삶 아닌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어딘가에는 통치-장치들이 끝까지 포획할 수 없는 주체들이 남아 있다. 완벽한 노예도, 완벽한 혁명가도 아닌 상태로, 그러나 분명 구멍 같은 존재로 남아 있다. 멀리서 보면 표면은 너무나도 매끄럽고 부드러워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그 속에는 미세한 구멍들이 곳곳에 있다. 구멍은 비어 있음으로서 존재하는, 즉 ‘없기’ 때문에 ‘있는’ 역설 자체다(꽉 차면 이미 ‘구멍’이 아니다). 구멍의 역설은, 따라서, ‘목적’으로 가득 차 있는 장치의 피할 수 없는 반대항이기도 하다. (…) 아무리 촘촘하다 해도, 장치는 구멍을 남겨두지 않을 수 없고, 비어 있는 상태로 존재하는 구멍의 역설을 넘어설 수도 없다.
- 문강형준 “장치와 구멍” 중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방식의 영화가 등장하게 되는 그 지점에 바로 ‘필름 구멍’이 있었다. 광학 장난감의 움직임과 사진적 이미지의 만남은 세계라는 빛과 움직임을 1초에 18장의(현대에는 보편적으로 24장의) 프레임으로 쪼개서 빠르게 포착하고 빠르게 상영할 수 있는 영화의 물리적 구조가 등장했을 때에야 비로소 실현될 수 있었다. 이를 가능하게 했던 것이 유연한 필름에 구멍을 뚫는다는 생각, 바로 ‘천공의 상상력’이었다. 그리고 질 들뢰즈(Gilles Deleuze)가 주목했던 것처럼, 바로 이 ‘천공의 상상력’이 이미지의 등간격성 역시 가능하게 했다. 영화란 무엇보다 “특정한 순간에 의거해서, 다시 말해 연속성의 인상을 부여하기 위해 선택한 등간격의 순간들에 의거해서 운동을 재생산하는 체계”인 것이다.
- 손희정 “천공(穿孔)의 상상력과 ‘영화-구멍’” 중에서
구멍은 구멍일 뿐이다. 그러니 구멍을 구멍이라고 말하고, 나아가 구멍을 메우자. 우리 사회의 약자들이 더는 이 심연으로 인해 실족하지 않도록 억압된 실재를 불러들여야 할 것이다. 어쩌면 ‘혁명은 세계의 기관차를 타고 여행하는 사람들이 잡아당기는 비상 브레이크(발터 벤야민)’일 것이다. 열차는 멈추게 될 것이고, 승객들은 모두 밖으로 나오게 될 것이다.
- 이원석 “우리 사회의 어두운 구멍” 중에서
그러니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노동 시계에 맞춰진 ‘저녁이 있는 삶’이 아니라 우리 욕망을 따르는 ‘음란한 삶’이다. 청와대의 헬스 기구 용도나 비서관의 나이도 국가 기밀이 되는 사회에서 우리는 지금도 너무 음란하지 못하다. 구멍으로 엿보는 자의 눈을 찌르고 <연인>에서처럼 손을 쓰다듬고 꼭 잡는 사랑만이 사회의 음란함을 구원할지 모른다. 영화 <웜 바디스>에서처럼 파국을 앞둔 우리가 ‘다른 존재’로 살아남을 가능성은 심장을 뛰게 만드는 그 느낌을 포기하지 않는 것일지도.
- 하승우 “구멍으로 엿보는 자, 누구인가?” 중에서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가 문화적 틀에 가둬버린 윤리적 강박은 우리 스스로 심리(학)적 모델이 되는 것에 거리낌이 없도록 조장하고 있다. 선택하는 동물인 ‘나’가 쏟는 에너지의 또다른 이름인 ‘세심한~’은 우리를 더욱더 강박적으로 보이게 하는, 내향적 모델로 여겨지도록 하는 표지일 뿐이다. 우리에게 정신병적인 것, 강박증적인 것, 신경증적인 것은 먼 거리에 있지 않다.
- 김신식 “진짜 선택의 공포”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