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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의 물리학과 힘 17세기의 동역학
원제 : Force in Newton’s Physics: The science of dynamics in the seventeenth century
시리즈 :
한국문화사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54]
리처드 샘 웨스트펄 저 | 차동우, 윤진희 역 | 한국문화사 | 2014년 11월
ISBN : 9788968171864 / 803쪽 160 x 2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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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책소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학은 17세기에 시작되었다 뉴턴이 만유인력 법칙과 운동 법칙을 발견하게 되기까지,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속도, 운동량, 충격량, 힘과 같은 새로운 개념, 새로?운 언어 ‘힘’과 ‘운동’을 인식하는 방법 자체에서부터 일어난 대변혁 기원전 3세기와 17세기 그리고 20세기는 그 어느 때보다 인간의 사고를 활발하게 전개하고 찬란하게 꽃피웠던 시기이다. 자연 현상을 지배하는 진리에 관한 생각을 크게 바꾼 시기이기도 하다. 이 책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학이 17세기에 시작되면서 무슨 ... 책소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학은 17세기에 시작되었다 뉴턴이 만유인력 법칙과 운동 법칙을 발견하게 되기까지,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속도, 운동량, 충격량, 힘과 같은 새로운 개념, 새로운 언어 ‘힘’과 ‘운동’을 인식하는 방법 자체에서부터 일어난 대변혁 기원전 3세기와 17세기 그리고 20세기는 그 어느 때보다 인간의 사고를 활발하게 전개하고 찬란하게 꽃피웠던 시기이다. 자연 현상을 지배하는 진리에 관한 생각을 크게 바꾼 시기이기도 하다. 이 책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학이 17세기에 시작되면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역동적으로 흥미진진하게 전해준다. 기원전 3세기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사람들은 천상을 지배하는 법칙과 지상을 지배하는 법칙이 서로 다르며, 천상은 완전하고 지상은 불완전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믿음은 근 2천 년에 이르는 중세 내내 계속되었다. 그러나 16세기에 이르러 그동안 진리라고 믿었던 것이 옳지 않다는 증거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행성 운동을 면밀하게 관찰한 브라헤의 자료를 수학적으로 분석한 케플러는 행성 운동에서 법칙을 도출해냈다. 그 뒤로 사람들은 행성이 완전한 원궤도가 아니라 타원궤도를 따라 회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갈릴레이는 이전까지의 지상 법칙, 지상 세계에 속한 물체는 힘을 받지 않으면 움직이다가도 결국 정지하게 된다는 법칙이 옳지 않음을 사고실험을 통해 증명했다. 이렇게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위시해 나타난 새로운 문제는 뉴턴이 만유인력 법칙과 운동 법칙을 발견하면서 한 번에 해결된 것처럼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어려웠다. 당시 옳다고 믿었던 천상 법칙이 행성에 적용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새로운 언어가 필요했다. 속도, 운동량, 충격량, 힘 등은 오늘날에는 당연하고 친숙하지만 당시에는 새로운 개념이었으므로, 개념 정의부터 먼저 해야 했다. 그중에서도 힘 개념이 가장 중요했고 운동이란 무엇인지 인식하는 방법 자체부터 대변혁이 요구되었다. 이 책은 17세기에 수많은 학자가 새로운 역학을 수립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지, 그 100년 동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 서문 이제는 기억하기조차 힘든 오래 전에, 나는 힘에 대한 뉴턴의 개념을 공부하려고 이 책의 집필을 시작했다. 과학 역사 도서관의 편집장인 미카엘 허스킨(Michael Hoskin)의 추천으로 붙이게 된 『뉴턴의 물리학과 힘』이라는 책 제목은 그 당시 프로젝트를 위해서 임시로 사용했던 것이다. 역사학자로서 나는 시작할 때부터 힘에 대한 뉴턴의 개념을 그 이름에 걸맞게 조사하려면 반드시 17세기 역학 전반을 아우르는 무대에서 보는 것이 필요함을 알았지만, 순진하게도 나는 그런 프로젝트가 얼마나 엄청난 일일지는 거의 깨닫지 못했다. UCLA의 갈릴레오 탄생 400주년 기념행사에서 갈릴레오에 관한 논문을 발표해달라는 초청을 받고서 힘의 개념이라는 관점에서 시작하여 갈릴레오의 역학을 새롭게 연구해보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때도 나는 여전히 뉴턴 자신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다. 뉴턴 이전의 17세기가 뉴턴의 동역학을 얼마나 잘 조명할 수 있는지 알고부터 나의 연구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아이디어도 생겼다. 뉴턴이 여전히 전체 분량의 4분의 1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연구는 초기 의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연구는 17세기 동역학의 역사를 상당 부분 포함하고 있어서, 『17세기의 동역학』이라는 부제(副題)를 추가하게 되었다. 이 연구가 17세기의 동역학에 대한 역사라면, 나는 그것이 색다른 역사라고 생각하고 싶다. 비록 동역학의 모든 중요 발전을 상당히 자세히 다루었지만, 이를 분류해서 모으는 데 주된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현대 동역학에 이르는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무엇이었는지 이해하려 했고, 또 풀어야만 했던 개념의 매듭이라는 다른 모습을 통해 바라보고자 했다. 내가 바라본 시각(視覺)이 17세기 동역학을, 그 과학을 만들어냈던 사람들의 눈을 통하여 보는 것이라 하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들이 자기들의 전문 분야에 전력을 다 했던 문제를 정의(定義)하고, 그리고 그 사람들이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지적(知的) 장치와 관련해서 제안했던 해결책이 무엇이었는지 보려 했다. 그렇지만, 동시에 나는 3세기에 걸쳐 조망할 수 있는 장점도 활용하려 했다. 나는 17세기의 어떤 과학자도 이 연구에서 논의한 일련의 질문들을 20세기 역사학자들이나 가능할 정도로 명료하게 기술했을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옳게 보이는 그들의 업적을 단순히 열거하는 정도로만 그치지 않기 위해서 그들의 눈으로 동역학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면, 그들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 그들의 혼동을 현재 우리의 위치에서 바라볼 필요도 있다. 나는 감동을 기대하면서 17세기의 동역학 공부를 시작했고, 그 결과에 실망하지 않는다. 기초 동역학은 이제, 총명한 학생이라면, 17세기 한 세기에 걸쳐 만들어 낸 모든 것을 불과 몇 주일 동안에 정복할 수 있을 정도로 합리화되고 체계화되었다. 그들이 어떻게 기초 동역학을 만들 수 있었는지 자세히 연구해보면 그 작업이 간단했으리란 의구심은 사라질 것이다. 앞서 얘기한 두 관점에서 보면, 17세기에 새로운 동역학의 창시는, ‘천재들의 세기’에 충분히 걸맞은 성공으로서 인간 정신이 이룩한 최고봉 중의 하나인 듯하다. 약간의 의문이라도 남을 경우를 대비해서, 솔직히 말하자면, 이것은 생각의 역사이다. 나는 동역학이 출현하게 된 사회적 그리고 경제적 무대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이 책이 끝났을 때, 부르주아 계급의 수준이 나의 노력으로 이 책의 첫 페이지가 시작될 때보다 1인치라도 더 높아진 것이 없다. 능력을 갖춘 많은 사람이 17세기 동안 일반적으로는 자연 과학에, 특히 역학에 전념했다는 사실은 유럽의 사회적 그리고 경제적 상황에 상당 부분 의존했다는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렇지만 내 경험을 조금이라도 따른다면, 역학에 대한 17세기의 문헌에서, 경제적 시스템에 따라 주어진 실용적인 생각이나 기술적인 문제들이 과학의 개념적 발전을 인도했고 결정했다고 결론을 내리기는 불가능하다. 당시에 동역학이 가장 중요하게 적용된 대상은 순수 과학에서의 문제들이었다. 한 예로, 뉴턴의 Principia에서는 여기서 등장하는 천체(天體) 동역학이 어디에 사용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17세기만 놓고 볼 때는, 그 결론을 효과적으로 사용한 사람들은 그 다음 시대의 기술자들이었는데, 이는 계획된 일이었기보다는 우연이었다. 이 책에서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사회적 상황이나 실용적 생각들이 아니라, 17세기 초에 제안된 운동에 대한 새로운 생각에 따른 개념의 발전에 관한 것이다. 비록 사회적 요소에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기술적이고 수학적인 의문들에 더 관심을 기울인 것도 아니다. 물론 17세기 동역학에서 수학의 중요성을 부정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예를 들어, 그때까지 정량적인 역학의 손에 닿지 않았던 전혀 새로운 영역의 문제들이 미적분학과 함께 정확하게 다룰 수 있게 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의 주된 관심사는 개념적 문제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뉴턴에 이르기까지 동역학이 개발되는 동안에, 나에게는 그런 문제들이 동역학이라는 과학의 중심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나의 시도는, 한편으로는 이어져 내려오던 생각에서 오는 한계와,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에 대해 널리 퍼져있던 철학이 부과한 한계 내에서 개념의 발전과정을 쫓아가는 것이었다
이제는 기억하기조차 힘든 오래 전에, 나는 힘에 대한 뉴턴의 개념을 공부하려고 이 책의 집필을 시작했다. 과학 역사 도서관의 편집장인 미카엘 허스킨(Michael Hoskin)의 추천으로 붙이게 된 『뉴턴의 물리학과 힘』이라는 책 제목은 그 당시 프로젝트를 위해서 임시로 사용했던 것이다. 역사학자로서 나는 시작할 때부터 힘에 대한 뉴턴의 개념을 그 이름에 걸맞게 조사하려면 반드시 17세기 역학 전반을 아우르는 무대에서 보는 것이 필요함을 알았지만, 순진하게도 나는 그런 프로젝트가 얼마나 엄청난 일일지는 거의 깨닫지 못했다. UCLA의 갈릴레오 탄생 400주년 기념행사에서 갈릴레오에 관한 논문을 발표해달라는 초청을 받고서 힘의 개념이라는 관점에서 시작하여 갈릴레오의 역학을 새롭게 연구해보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때도 나는 여전히 뉴턴 자신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다. 뉴턴 이전의 17세기가 뉴턴의 동역학을 얼마나 잘 조명할 수 있는지 알고부터 나의 연구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아이디어도 생겼다. 뉴턴이 여전히 전체 분량의 4분의 1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연구는 초기 의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연구는 17세기 동역학의 역사를 상당 부분 포함하고 있어서, 『17세기의 동역학』이라는 부제(副題)를 추가하게 되었다.
이 연구가 17세기의 동역학에 대한 역사라면, 나는 그것이 색다른 역사라고 생각하고 싶다. 비록 동역학의 모든 중요 발전을 상당히 자세히 다루었지만, 이를 분류해서 모으는 데 주된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현대 동역학에 이르는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무엇이었는지 이해하려 했고, 또 풀어야만 했던 개념의 매듭이라는 다른 모습을 통해 바라보고자 했다. 내가 바라본 시각(視覺)이 17세기 동역학을, 그 과학을 만들어냈던 사람들의 눈을 통하여 보는 것이라 하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들이 자기들의 전문 분야에 전력을 다 했던 문제를 정의(定義)하고, 그리고 그 사람들이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지적(知的) 장치와 관련해서 제안했던 해결책이 무엇이었는지 보려 했다. 그렇지만, 동시에 나는 3세기에 걸쳐 조망할 수 있는 장점도 활용하려 했다. 나는 17세기의 어떤 과학자도 이 연구에서 논의한 일련의 질문들을 20세기 역사학자들이나 가능할 정도로 명료하게 기술했을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옳게 보이는 그들의 업적을 단순히 열거하는 정도로만 그치지 않기 위해서 그들의 눈으로 동역학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면, 그들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 그들의 혼동을 현재 우리의 위치에서 바라볼 필요도 있다. 나는 감동을 기대하면서 17세기의 동역학 공부를 시작했고, 그 결과에 실망하지 않는다. 기초 동역학은 이제, 총명한 학생이라면, 17세기 한 세기에 걸쳐 만들어 낸 모든 것을 불과 몇 주일 동안에 정복할 수 있을 정도로 합리화되고 체계화되었다. 그들이 어떻게 기초 동역학을 만들 수 있었는지 자세히 연구해보면 그 작업이 간단했으리란 의구심은 사라질 것이다. 앞서 얘기한 두 관점에서 보면, 17세기에 새로운 동역학의 창시는, ‘천재들의 세기’에 충분히 걸맞은 성공으로서 인간 정신이 이룩한 최고봉 중의 하나인 듯하다.
약간의 의문이라도 남을 경우를 대비해서, 솔직히 말하자면, 이것은 생각의 역사이다. 나는 동역학이 출현하게 된 사회적 그리고 경제적 무대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이 책이 끝났을 때, 부르주아 계급의 수준이 나의 노력으로 이 책의 첫 페이지가 시작될 때보다 1인치라도 더 높아진 것이 없다. 능력을 갖춘 많은 사람이 17세기 동안 일반적으로는 자연 과학에, 특히 역학에 전념했다는 사실은 유럽의 사회적 그리고 경제적 상황에 상당 부분 의존했다는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렇지만 내 경험을 조금이라도 따른다면, 역학에 대한 17세기의 문헌에서, 경제적 시스템에 따라 주어진 실용적인 생각이나 기술적인 문제들이 과학의 개념적 발전을 인도했고 결정했다고 결론을 내리기는 불가능하다. 당시에 동역학이 가장 중요하게 적용된 대상은 순수 과학에서의 문제들이었다. 한 예로, 뉴턴의 Principia에서는 여기서 등장하는 천체(天體) 동역학이 어디에 사용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17세기만 놓고 볼 때는, 그 결론을 효과적으로 사용한 사람들은 그 다음 시대의 기술자들이었는데, 이는 계획된 일이었기보다는 우연이었다. 이 책에서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사회적 상황이나 실용적 생각들이 아니라, 17세기 초에 제안된 운동에 대한 새로운 생각에 따른 개념의 발전에 관한 것이다. 비록 사회적 요소에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기술적이고 수학적인 의문들에 더 관심을 기울인 것도 아니다. 물론 17세기 동역학에서 수학의 중요성을 부정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예를 들어, 그때까지 정량적인 역학의 손에 닿지 않았던 전혀 새로운 영역의 문제들이 미적분학과 함께 정확하게 다룰 수 있게 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의 주된 관심사는 개념적 문제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뉴턴에 이르기까지 동역학이 개발되는 동안에, 나에게는 그런 문제들이 동역학이라는 과학의 중심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나의 시도는, 한편으로는 이어져 내려오던 생각에서 오는 한계와,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에 대해 널리 퍼져있던 철학이 부과한 한계 내에서 개념의 발전과정을 쫓아가는 것이었다.
조금은 놀랍게도 원고를 완성하면서 나는 어쩌면 암묵적으로 오늘날 과학의 역사라는 분야를 괴롭히는 질문에 대해 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과학적 변화는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문제인가 아니면 급격한 패러다임의 전환인가? 본문에서 상세하게 제시하겠지만, 17세기 동역학을 연구하면서 가장 감동스러웠던 점은, 3세기만큼 떨어져서 보면 개념적 맥락에서 그들의 개념과 완전히 대치되어 보이는 생각들을 믿을 수 없을 만큼 끈질기게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뒤돌아보면, 우리는 갈릴레오에게서 뉴턴의 동역학을 찾으려 했다. 실제로, 수많은 능력자가 근 한 세기에 걸쳐서 노력한 다음에야 비로소 우리에게는 그렇게도 자명해 보이는 결과인 운동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추출해 낼 수 있었다. 그 밖에도, 그러는 과정 중에 너무도 친숙해서 그냥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중세나 고대의 역학에서 전해 내려온 일련의 아이디어들이 정량적인 동역학을 구축하는 데 큰 축이 되었다. 누군가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동역학에서 이 시기로의 변화를 찾고자 할지라도, 역학에 관한 17세기의 문헌에서는 극적으로 패러다임이 전환했다는 증거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 변화가 점진적이었으므로 기술적인 용어들이 상당히 애매모호했다. 나는 예외 없이 뉴턴의 동역학에서 사용하는 전문적인 용어들이 그 이전의 역학에서 흔히 사용하던 것들에서 전해져 내려왔다고 믿는다. 뉴턴에 와서야 정확한 의미를 얻게 된 단어들은 대부분 역학에서 오랜 동안 교류되어 온 신조어(新造語)의 일부분이었으며, 대체할 신조어의 부족으로 그 단어들은 17세기에도 계속 사용되었다. 그 단어들을 사용했던 사람들은 그 단어들이 충분히 분명하다고 생각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지만, 결국 새로이 등장했던 동역학과 관련해 그 단어들은 애매함이라는 결함을 드러냈다. 나는 독자들에게 그런 단어들에 현대적으로 정확한 의미를 부여하지는 말라고 경고해야만 한다. 라틴어로 된 본문에 ‘velocitas’가 나왔을 때, 그리고 프랑스어로 된 본문에 ‘gravité’가 나왔을 때, 그 단어들을 ‘velocity(속도)’와 ‘gravity(중력)’라고 번역하는 것 이외에는 달리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으며, 영어로 된 본문에 나오는 ‘force(힘)’를 다른 단어로 바꾸는 일은 거의 내 능력 밖의 일이었다. 내가 열거한 역사의 상당 부분은 정확한 용어의 발전과 관계가 있으며, 당시 널리 퍼져 있었던 애매함을 지적하는 것은 내가 해야 할 임무였다. 그래서 독자들이 그런 단어에 부과하는 의미는 신중히 할 것을 당부하고자 한다. 나의 경우에는, 17세기 동역학의 용어에 문제가 있음을 점점 더 많이 깨달아가면서, 특별히 ‘힘’이라는 단어의 사용법에 대해서 광범위한 에세이들을 작성하게 되었다. 이런 에세이들이 각주(脚註)에 인용한 부록이다.
사용법과 관련해 번역에 대해서도 역시 한마디 보태야겠다. 내가 포함한 모든 구절을 새로 번역하는 대신에, 그런 것이 나와 있다면 나는 표준으로 인정된 번역을 활용했다. 어떤 특별한 용어가 문제가 될 때마다, 나는 정확한 단어나 구절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 원래 원문을 참고했다.
상당한 분량의 원고를 완성한 모든 저자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많은 출처에서 여러 형태로 충분히 도움을 받았다. 미국 과학재단(National Science Foundation)이 없었더라면, 나는 결코 이 프로젝트를 진지하게 시작할 수 없었을 것이며, 미국 과학재단의 후한 지원에 감사드린다. 인디애나 대학(Indiana University)의 연구처에서 지급한 연구비도 최종 원고를 준비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이 연구는 대부분 케임브리지 대학 도서관, 하바드의 와이드너(Widener) 도서관, 그리고 인디애나 대학 도서관 등 세 도서관에서 했다. 세 도서관 직원들의 전문적인 도움에 감사드린다. 케임브리지 대학 도서관의 평의회에서는 고맙게도 그들이 소장하고 있는 뉴턴의 논문들을 광범위하게 인용할 수 있도록 허용해 주었다. 인디애나 대학 역사철학과의 직원들이 원고 준비과정에서 수고를 아끼지 않았으며, 특히 조이스 추바타우(Joyce Chubatow), 진 코핀(Jean Coppin), 그리고 이나 미첼(Ina Mitchell)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3세기나 떨어진 일에 전념하는 남편과 아버지를 오랫동안 견뎌준 나의 아내 글로리아(Gloria)와 자식들에게 갚을 수 없는 빚을 지었다. 이제 책을 완성했고 내가 20세기로 돌아올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지만,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내가 좋은 동행자가 될지는 역시 분명하지 않다.
목차
역자 해제
서문
01 갈릴레오와 새로운 역학
02 데카르트와 기계적 철학
03 17세기 중엽의 역학
04 크리스티안 호이겐스의 운동학
05 17세기 말엽의 역학 체계
06 라이프니츠의 동역학
07 뉴턴과 힘의 개념
08 뉴턴의 동역학
부록
참고문헌
찾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