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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송 논어 맹자 동청룡 02

시리즈 : 낭송Q시리즈 [49]

공자, 맹자 저 | 류시성 역 | 북드라망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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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7969401 / 224쪽 115 x 1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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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동양고전의 낭송을 통해 양생과 수행을 함께 이루는, ‘몸과 고전의 만남’ “낭송Q시리즈” 동청룡(봄의 기운)편의 두 번째 책. 『논어』와 『맹자』는 두말할 것 없는 동양 최고의 고전이다. 그러나 이 책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위상이나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전혀 체계적이지가 않다. 우리가 생각하는 기승전결식의 전개는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 책들은 자기 식으로 읽어 내야 한다. 문장과 문장 사이를 자기 논리와 서사로 만들어 가면서 읽어야 하는 책들, 그러기 위해 무엇보다 자신의 몸에 새겨야 할 책이 바로 『논어』와 『맹자』다. 방법은 간단하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도 않다. 그저 소리 내서 읽고, 몸에 익히고, 익힌 것은 계속해서 써먹고 또 가르쳐 주면 된다.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낭송임은 말할 나위조차 없다. 아무도 써주지 않는데도 천하를 주유하며 자기자랑(?)을 멈추지 않았던 청년백수 공자와 맹자의 위풍당당함이 『논어』와 『맹자』를 유쾌한 책일 수 있게 했다는 풀어 읽은이(류시성)는 『낭송 논어/맹자』에서도 그 유쾌함과 당당함이 낭송자들에게도 그대로 전해질 수 있도록 새로 목차를 구성하고 문장을 배열했다.

<낭송 논어/맹자> 풀어 읽은이 인터뷰

1. 낭송Q시리즈의 기획자이신 고미숙 선생님은 “모든 고전은 낭송을 염원한다”고 하셨는데요, 낭송이 되기를 염원하는 여러 고전 중 특별히 <논어>와 『맹자』를 고르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논어』는 나를 동양고전의 세계로 이끌어준 책이다. 이 책을 좋아하게 된 덕분에 훌륭한 선생님들과 선배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논어』나 『맹자』로 인해서 이런 관계들을 선물 받았으리라고 생각한다. 그 관계들 덕분에 다른 고전들도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논어』와 『맹자』를 골랐다.
어찌 보면 이건 한 개인의 특별한 경험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인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청년들과 『논어』를 읽을 때 청년들도 내가 처음 『논어』를 읽을 때와 비슷한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재밌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하고, 뭐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무언가를 건드려 주는 책. 과연 이게 뭘까? 잘은 몰라도 『논어』와 『맹자』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우리의 질문에 여전히 생각해볼 만한 답변들을 내놓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청년들과 섞여서 이 책들을 읽어 나갔던 중년들도 이 점에 공감했다. 그리고 그들도 다른 동양고전들을 읽어 나간다. 지적 호기심이 생긴 것이다. 이건 어떤 것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논어』와 『맹자』가 이런 공통된 경로를 촉발한다는 것. 책이 존재의 행로에 끼어든다는 것. 이것보다 주목할 만한 책의 유용성이 또 있을까. 그래서 이 책들은 훌륭한 입구다. 이것이 『논어』와 『맹자』여야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논어』와 『맹자』는 공자와 맹자를 중심으로 하는 지식인그룹의 유랑기(流浪記)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앉아서 철학하지 않는다. 천하를 주유하면서 맞닥뜨린 현장의 문제들을 가지고 철학한다. 이전까지 경험해 본 적 없는 물질적 풍요와 그에 비해 턱없이 빈약한 삶의 기술들. 이것이 그들의 조건이었다. 그들은 이 조건 속에서 인의예지의 철학을 도출해 냈다. 그들 나름의 출구를 찾은 것이다. 나는 우리 시대도 그들의 시대와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인류 최대의 물질적 부를 이뤘고 그 대가로 정신적 빈곤에 시달린다고 하는 시대. 디지털로 끊임없이 유동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시대. 이것이 또한 『논어』와 『맹자』를 고른 이유다. 어찌 보면 공자와 맹자는 우리 시대의 롤모델이기도 하다. 비슷한 조건에서 자신들만의 삶의 윤리를 만들어 간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그들의 출구는 고리타분한 것도 꽉 막힌 것도 아니다. 오히려 생생하다.

2. 낭송Q시리즈의 <낭송 논어/맹자>는 공자와 맹자의 『논어/맹자』와 어떻게 다른가요?

사실 『논어』와 『맹자』는 뒤죽박죽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체계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기승전결식의 전개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섬처럼 띄엄띄엄 문장들이 나열되어 있다. 그래서 짜증이 나기도 하고 조급한 사람들은 견디지 못하고 내팽개쳐버린다. 달리 말하면 이건 자시 식으로 읽어내야 하는 책이라고 말이기도 하다. 문장과 문장 사이를 자기 논리와 서사로 만들어가면서 읽어야 하는 책들. 그런 점에서 『논어』와 『맹자』는 원석에 가깝다.
『낭송 논어/맹자』는 그 수많은 자기 독법들 가운데 하나다. 이미 훌륭한 지침이 되는 선배들의 수많은 『논어』·『맹자』 사용설명서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결국에 그 원석들을 활용하는 것, 활용되는 곳은 자신의 삶일 수밖에 없다. 『낭송 논어/맹자』도 이런 맥락에서 만들어졌다. 일단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들을 기준으로 문장들을 새롭게 배열했다. 공자와 제자들의 교실풍경을 가장 앞에 배치한 건 이 집합적 관계야말로 공자철학이 만들어진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공자에게 있어서 배움 혹은 진리란 늘 집합적 관계들을 통해서만 산출된다. 이것은 맹자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배움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공동체가 구성되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내 첫 번째 관심사였다.
두번째 관심사는 이 그룹들이 공부를 통해서 발견한 것, 가치 있는 삶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였다. 공자는 그것을 인(仁)과 예(禮)를 바탕으로 하는 삶이라고 했고, 맹자는 공자의 논의를 확장시켜서 인의예지의 철학으로 완성했다. 이 가치 있는 삶이라고 하는 것의 중심에 있는 인(仁)은 자기의 사적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문제, 타인과의 관계에서 공감의 능력을 발휘하는 문제, 그렇게 해서 도달하게 되는 삶이 가져다주는 정서의 문제들로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맹자는 이러한 삶을 살아가게 될 때 우리가 저절로 춤추면서 기뻐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존재를 기쁨으로 이끄는 철학, 그것이 삶의 중심이 되는 것, 그것을 향해 자기를 연마하는 것. 나는 이것이 그들이 추구한 가치 있는 삶이라고 생각했다.
세 번째 관심사는 그 바람들이 구체적 현장에서는 어떻게 드러나는가의 문제였다. 사람들과 관계 맺고 살아가는 ‘정치’의 장에서 어떻게 스스로 가치 있는 삶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실천하면서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 맹자는 그것을 위해서라면 논쟁을 마다하지 않았고 공자 또한 그것을 알아주는 군주를 찾아 천하를 떠돌았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모범적 인간상-군자와 대장부-을 구상해갈 수 있었다. 그 모범적 인간들이란 곧 어디에도 굴하지 않는 당당함과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를 누리는 인간들이었다. 이 당당함과 자유. 이것이 내가 『낭송 논어/맹자』를 새롭게 배열한 뼈대이자 『논어』와 『맹자』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것들이다. 『낭송 논어/맹자』는 그런 의도에서 만들어진 책이다.

3. 앞으로 <낭송 논어/맹자>를 낭송하게 될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 책은 말 그대로 ‘낭송용’이다. 직접적으로 목소리를 통해서 책과 만나는 것이고, 그 물질적인 경험을 ‘읽기’의 중요한 토대로 삼자는 의도이다. 신체적으로 보면 소리는 뼈를 울리면서 나온다. 그래서 뼈에 새긴다는 말은 사실 소리를 통해서 몸에 각인시킨다는 말이었다. 『논어』와 『맹자』는 이 소리를 통해서 오랫동안 ‘읽혀온’ 그야말로 낭송책들이다. 이 낭송책들을 읽는 소리가 어찌나 매력적이었던지 이웃집 처녀가 담을 넘는 사태들이 종종 발생하고 했다고 한다. 이 소리의 기억이 『낭송 논어/맹자』를 읽는 동안 되살아났으면 좋겠다. 너무 큰 바람인가?

서문에서도 밝혔지만 책을 읽는 방법은 간단하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도 않다. 그냥 소리 내서 읽고, 몸에 익히고, 익힌 것은 계속해서 써먹고 또 가르쳐주라는 것. 그러는 와중에 자연스럽게 『논어』와 『맹자』에 흥미를 가지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거 같다. 아니 그렇게 될 거다. 그게 『논어』와 『맹자』가 가진 힘이니까. 나를 가르쳐주신 선생님께서 늘 하시던 말씀도 떠오른다. “그런 책들은 평생 가까이 두고 읽으면 좋다.” 『낭송 논어/맹자』가 독자들에게 그런 입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무엇보다 겁내지 말고 부딪혀보라고 말하고 싶다. 『논어』와 『맹자』는 절대로 고리타분한 책도 그렇다고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아주 어려운 책도 아니다. 또한 읽다보면 저절로 공자와 맹자의 유쾌함에 전염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마음 놓고 이 책들과 만났으면 좋겠다. 아마도 신체적으로 이 책들과 엮이는 것. 그것이 앞서 말한 대로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경험했던 길을 열어 주리라고 생각한다.

저자 소개

중국 춘추시대 말기에 활동한 사상가이자 교육자로서 유교의 이론을 집대성한 인물이다. 유교의 개조(開祖)이며 세계 4대 성인의 한 사람으로, ‘공(孔)’은 성이며 ‘자(子)’는 ‘선생’이라는 뜻이다. 이름은 구(丘), 자는 중니(仲尼)이다. 공자는 기원전 551년 노나라 창평향 추읍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공자는 불우한 집안 환경으로 인해 여러 가지 미천한 직업을 가져야 했고 일정한 스승도 없었으나, 청소년기에 학문의 길에 대해서 명확하게 주관을 정리하고 30세 무렵에는 어느 정도 완성한 것으로 짐작된다. 공자는 학문에서 많은 진전을 보이고 관리로서 지위가 오르면서 도덕정치를 주창하며 뜻을 펼치고자 하였으나 현실적인 장벽에 부딪혀 숱한 좌절을 맛보았다. 56세에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군주를 찾아 중국 천하를 떠도는 주유열국(周遊列國)의 길에 올랐지만 아무도 그를 등용하지 않았다. 이에 실망한 공자는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던 고서들로 안회, 자하, 자로 등 제자들을 가르치는 데 더욱 힘썼다. 그러나 아들인 이(鯉)가 죽고, 가장 사랑하는 제자인 안회와 자로도 잇달아 죽는 등 만년에 여러 가지 불행을 겪다가 73세가 되던 해인 기원전 479년에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다. 공자가 세상을 떠난 후 제자들은 그가 남긴 어록을 모아서<논어>를 편찬했다. 그리하여 공자의 가르침은 유교의 경전으로서 오랜 세월에 걸쳐 전해 내려와 동아시아 문화와 사상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또 <시경(詩經)>, <서경(書痙)>, <춘추(春秋)> 같은 책을 엮고 <역경(易經)>을 끈이 세 번이나 떨어질 정도로 읽었다고 한다. 만년의 공자에게는 여러 가지 불행이 겹쳤다. 아들인 백어(白魚)가 죽고, 그 후에 가장 사랑하는 제자인 안회와 자로도 잇달아 죽었다. 공자는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은 없어졌다"고 하며 슬퍼하였다. 공자는 만년을 불행하게 지내다가 72세가 된 해인 기원전 479년에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다. 공자가 세상을 떠난 후 제자들은 스승이 남긴 어록을 모아서 <논어>라는 책을 저술하였다. 그리하여 공자의 가르침은 유교로서 오랜 세월에 걸쳐 중국에 전해 내려와 천 수백 년에 걸쳐 중국 사회의 정치, 윤리 도덕의 규범이 되었다. 그리고 한국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조선 시대에는 정치를 비롯하여 학문, 법률, 도덕, 윤리 등 사회를 다스리는 모든 규범이 유교 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름은 가(軻)이고, 자는 자거(子車) 또는 자여(子輿)라 하나 믿을 수는 없다. 전국(戰國) 시대 추(鄒)나라 사람으로, 공자(孔子)의 고향 곡부(曲阜)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지금의 산동성(山東省) 추성시(鄒城市)에서 태어났다. 3세 때 부친을 여의고, 그의 어머니가 그를 교육시켰는데, '맹모삼천(孟母三遷)'과 '맹모단기(孟母斷機)' 등의 유명한 일화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맹자는 자신의 학문을 이루고 난 후, 제(齊);송(宋);등;노(魯);위(魏)나라 등을 두루 다니며 당시 제후들에게 '인의(仁義)'와 천하 통일의 방법과 치국의 정책 등에 대해 강술(講述)하였으나, 그의 이론은 당시 제후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70세가 넘은 후에는 더 이상 유세하지 않았고 강학에 전념하였으며, 그의 제자들인 만장(萬章);공손추(公孫丑) 등과 함께 [맹자] 7편을 저술하였다. 맹자는 공자의 학설을 계승하여 후세에 아성(亞聖)이라 불려졌다. 
중국 전국시대의 명인. 성선설을 주장하였음.
사서중의 하나인 이 책은 맹자의 언행을 기록한 것으로 7편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는 공자의 인(仁)사상을 발전시켜 왕도국가의 실현과 인간의 본성은 착하다는 이상의 구현을 달성하고자 인의(人義)에 의한 도덕정치를 주장하였다. 

역자 소개

감이당’ 연구원. 지리산 자락에서 나고 자랐다. 어려서 집이 목장을 한 덕분에 소들과 함께 ‘방목’되었다. 그 영향으로 20대 내내 집밖을 떠돌았다. 서른이 다 되어갈 무렵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아니 공부밖에 할 게 없었다. 그때 『논어』와 『동의보감』을 만났다. 그 인연으로 고전과 한의학의 세계에 빌붙어 살아가는 중. 지금은 ‘감이당’에서 청년백수들과 함께 공부하고 있다. 함께 쓴 책으로 『갑자서당』, 『인물톡톡』, 『누드글쓰기』 등이 있다.

 

머리말

<낭송 논어/맹자> 풀어 읽은이 인터뷰


1. 낭송Q시리즈의 기획자이신 고미숙 선생님은 “모든 고전은 낭송을 염원한다”고 하셨는데요, 낭송이 되기를 염원하는 여러 고전 중 특별히 󰡔논어󰡕와 『맹자』를 고르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논어』는 나를 동양고전의 세계로 이끌어준 책이다. 이 책을 좋아하게 된 덕분에 훌륭한 선생님들과 선배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논어』나 『맹자』로 인해서 이런 관계들을 선물 받았으리라고 생각한다. 그 관계들 덕분에 다른 고전들도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논어』와 『맹자』를 골랐다.
어찌 보면 이건 한 개인의 특별한 경험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인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청년들과 『논어』를 읽을 때 청년들도 내가 처음 『논어』를 읽을 때와 비슷한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재밌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하고, 뭐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무언가를 건드려 주는 책. 과연 이게 뭘까? 잘은 몰라도 『논어』와 『맹자』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우리의 질문에 여전히 생각해볼 만한 답변들을 내놓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청년들과 섞여서 이 책들을 읽어 나갔던 중년들도 이 점에 공감했다. 그리고 그들도 다른 동양고전들을 읽어 나간다. 지적 호기심이 생긴 것이다. 이건 어떤 것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논어』와 『맹자』가 이런 공통된 경로를 촉발한다는 것. 책이 존재의 행로에 끼어든다는 것. 이것보다 주목할 만한 책의 유용성이 또 있을까. 그래서 이 책들은 훌륭한 입구다. 이것이 『논어』와 『맹자』여야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논어』와 『맹자』는 공자와 맹자를 중심으로 하는 지식인그룹의 유랑기(流浪記)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앉아서 철학하지 않는다. 천하를 주유하면서 맞닥뜨린 현장의 문제들을 가지고 철학한다. 이전까지 경험해 본 적 없는 물질적 풍요와 그에 비해 턱없이 빈약한 삶의 기술들. 이것이 그들의 조건이었다. 그들은 이 조건 속에서 인의예지의 철학을 도출해 냈다. 그들 나름의 출구를 찾은 것이다. 나는 우리 시대도 그들의 시대와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인류 최대의 물질적 부를 이뤘고 그 대가로 정신적 빈곤에 시달린다고 하는 시대. 디지털로 끊임없이 유동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시대. 이것이 또한 『논어』와 『맹자』를 고른 이유다. 어찌 보면 공자와 맹자는 우리 시대의 롤모델이기도 하다. 비슷한 조건에서 자신들만의 삶의 윤리를 만들어 간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그들의 출구는 고리타분한 것도 꽉 막힌 것도 아니다. 오히려 생생하다.


2. 낭송Q시리즈의 <낭송 논어/맹자>는 공자와 맹자의 『논어/맹자』와 어떻게 다른가요?


사실 『논어』와 『맹자』는 뒤죽박죽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체계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기승전결식의 전개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섬처럼 띄엄띄엄 문장들이 나열되어 있다. 그래서 짜증이 나기도 하고 조급한 사람들은 견디지 못하고 내팽개쳐버린다. 달리 말하면 이건 자시 식으로 읽어내야 하는 책이라고 말이기도 하다. 문장과 문장 사이를 자기 논리와 서사로 만들어가면서 읽어야 하는 책들. 그런 점에서 『논어』와 『맹자』는 원석에 가깝다.
『낭송 논어/맹자』는 그 수많은 자기 독법들 가운데 하나다. 이미 훌륭한 지침이 되는 선배들의 수많은 『논어』·『맹자』 사용설명서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결국에 그 원석들을 활용하는 것, 활용되는 곳은 자신의 삶일 수밖에 없다. 『낭송 논어/맹자』도 이런 맥락에서 만들어졌다. 일단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들을 기준으로 문장들을 새롭게 배열했다. 공자와 제자들의 교실풍경을 가장 앞에 배치한 건 이 집합적 관계야말로 공자철학이 만들어진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공자에게 있어서 배움 혹은 진리란 늘 집합적 관계들을 통해서만 산출된다. 이것은 맹자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배움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공동체가 구성되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내 첫 번째 관심사였다.
두번째 관심사는 이 그룹들이 공부를 통해서 발견한 것, 가치 있는 삶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였다. 공자는 그것을 인(仁)과 예(禮)를 바탕으로 하는 삶이라고 했고, 맹자는 공자의 논의를 확장시켜서 인의예지의 철학으로 완성했다. 이 가치 있는 삶이라고 하는 것의 중심에 있는 인(仁)은 자기의 사적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문제, 타인과의 관계에서 공감의 능력을 발휘하는 문제, 그렇게 해서 도달하게 되는 삶이 가져다주는 정서의 문제들로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맹자는 이러한 삶을 살아가게 될 때 우리가 저절로 춤추면서 기뻐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존재를 기쁨으로 이끄는 철학, 그것이 삶의 중심이 되는 것, 그것을 향해 자기를 연마하는 것. 나는 이것이 그들이 추구한 가치 있는 삶이라고 생각했다.
세 번째 관심사는 그 바람들이 구체적 현장에서는 어떻게 드러나는가의 문제였다. 사람들과 관계 맺고 살아가는 ‘정치’의 장에서 어떻게 스스로 가치 있는 삶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실천하면서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 맹자는 그것을 위해서라면 논쟁을 마다하지 않았고 공자 또한 그것을 알아주는 군주를 찾아 천하를 떠돌았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모범적 인간상-군자와 대장부-을 구상해갈 수 있었다. 그 모범적 인간들이란 곧 어디에도 굴하지 않는 당당함과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를 누리는 인간들이었다. 이 당당함과 자유. 이것이 내가 『낭송 논어/맹자』를 새롭게 배열한 뼈대이자 『논어』와 『맹자』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것들이다. 『낭송 논어/맹자』는 그런 의도에서 만들어진 책이다.


3. 앞으로 <낭송 논어/맹자>를 낭송하게 될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 책은 말 그대로 ‘낭송용’이다. 직접적으로 목소리를 통해서 책과 만나는 것이고, 그 물질적인 경험을 ‘읽기’의 중요한 토대로 삼자는 의도이다. 신체적으로 보면 소리는 뼈를 울리면서 나온다. 그래서 뼈에 새긴다는 말은 사실 소리를 통해서 몸에 각인시킨다는 말이었다. 『논어』와 『맹자』는 이 소리를 통해서 오랫동안 ‘읽혀온’ 그야말로 낭송책들이다. 이 낭송책들을 읽는 소리가 어찌나 매력적이었던지 이웃집 처녀가 담을 넘는 사태들이 종종 발생하고 했다고 한다. 이 소리의 기억이 『낭송 논어/맹자』를 읽는 동안 되살아났으면 좋겠다. 너무 큰 바람인가?^^
서문에서도 밝혔지만 책을 읽는 방법은 간단하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도 않다. 그냥 소리 내서 읽고, 몸에 익히고, 익힌 것은 계속해서 써먹고 또 가르쳐주라는 것. 그러는 와중에 자연스럽게 『논어』와 『맹자』에 흥미를 가지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거 같다. 아니 그렇게 될 거다. 그게 『논어』와 『맹자』가 가진 힘이니까.^^ 나를 가르쳐주신 선생님께서 늘 하시던 말씀도 떠오른다. “그런 책들은 평생 가까이 두고 읽으면 좋다.” 『낭송 논어/맹자』가 독자들에게 그런 입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무엇보다 겁내지 말고 부딪혀보라고 말하고 싶다. 『논어』와 『맹자』는 절대로 고리타분한 책도 그렇다고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아주 어려운 책도 아니다. 또한 읽다보면 저절로 공자와 맹자의 유쾌함에 전염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마음 놓고 이 책들과 만났으면 좋겠다. 아마도 신체적으로 이 책들과 엮이는 것. 그것이 앞서 말한 대로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경험했던 길을 열어 주리라고 생각한다.

 

책 속에서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먹는 데 배부름을 구하지 않고, 거처하는 데 편안함을 구하지 않는다. 맡은 일은 민첩하게 처리하고, 말은 신중하게 한다. 부족한 것이 있으면 도를 아는 사람을 찾아가 배우고 자신을 바로잡는다. 이 정도면 ‘배우기를 좋아한다’[好學]고 할 만하다.”_「학이」, 14
(본문 52쪽)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가 신중하지 않으면 위엄이 없으니, 배워도 견고해지지 않는다. 자기 마음을 다하고[忠] 남에게 믿음을 주는 것[信]을 중시하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은 벗으로 삼지 않으며, 잘못이 있으면 고치는 것을 꺼리지 않아야 한다.”_「학이」, 08
(본문 108쪽)

양혜왕이 말했다.
“과인이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을 몽둥이로 죽이는 것과 칼로 죽이는 것에 차이가 있습니까?”
양혜왕이 대답했다.
“차이가 없습니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을 칼로 죽이는 것과 정치로 죽이는 것에 차이가 있습니까?”
양혜왕이 대답했다.
“차이가 없습니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왕의 푸줏간에는 살진 고기가 있고 마구간에는 살진 말이 있는데, 백성들은 굶주린 기색이 역력하고 들에는 굶어 죽은 시체가 있다면 이것은 짐승들로 하여금 사람을 잡아먹게 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짐승들이 서로를 잡아먹는 것도 싫어합니다. 하물며 백성의 부모인 왕이 되어 정치를 하면서 짐승들로 하여금 사람을 잡아먹도록 한다면 백성의 부모인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공자께서 말하길 ‘처음으로 순장에 쓰이는 인형을 만든 자는 후손이 없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사람을 본떠서 장례에 사용했기 때
문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백성들을 굶어 죽게 만든단 말입니까?”_「양혜왕」 상, 04
(본문 1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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