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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 한국문학을 권하다 16

시리즈 : 한국문학을 권하다 [43]

이광수 저 | 애플북스 | 2014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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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4353609 / 744쪽 / 967g / 140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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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밤을 새워 춘원의 작품을 읽고서 감동하여 나는 가슴이 설레어 잠도 잘 수 없었다.” _ 소설가 고정욱 출세를 향한 욕망을 버리고 고난의 황무지로 내려가 운명을 개척한 지식인의 사랑과 용서, 헌신의 대서사 고정욱 작가가 이광수의 작품을 추억하는 추천글 수록 책 소개 는 누구나 제목 정도는 알고 있으나 대개는 읽지 않은, 위대한 한국문학을 즐겁게 소개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즐겁고 친절한 전집’을 위해 총서 각 권에는 현재 문단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10명의 작가들이 “내 생애 첫 한국문학”이라는 주제로 쓴 각 ... “밤을 새워 춘원의 작품을 읽고서 감동하여 나는 가슴이 설레어 잠도 잘 수 없었다.” _ 소설가 고정욱 출세를 향한 욕망을 버리고 고난의 황무지로 내려가 운명을 개척한 지식인의 사랑과 용서, 헌신의 대서사 고정욱 작가가 이광수의 작품을 추억하는 추천글 수록 책 소개 는 누구나 제목 정도는 알고 있으나 대개는 읽지 않은, 위대한 한국문학을 즐겁게 소개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즐겁고 친절한 전집’을 위해 총서 각 권에는 현재 문단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10명의 작가들이 “내 생애 첫 한국문학”이라는 주제로 쓴 각 작품에 대한 인상기, 혹은 기성작가를 추억하며 쓴 오마주 작품을 어려운 해설 대신 수록하였고, 오래전에 절판되어 현재 단행본으로는 만날 수 없는 작품들까지도 발굴해 묶어 국내 한국문학 총서 중 최다 작품을 수록하였다. 한국문학을 권하다 《흙》에는 작가 고정욱이 이광수의 작품을 읽었던 청소년 시기의 감동을 글로 담아 한국문학을 즐겁게 소개하고 있다. 이광수 장편소설 《흙》은 1932년 4월부터 1933년 9월까지 에 연재되었던 작품으로, 당시 독자들의 폭발적인 반응과 함께 최고의 인기를 누린 작품이자 1980년대까지도 국내 소설 베스트 분야에서 빠지지 않은 작품이다. 그 대중적 인기를 등에 업고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세 차례나 영화화되었다. 삼각관계를 다룬 연애 이야기라는 평가와 더불어 민족주의 문학·농촌문학·계몽문학이라고도 불리는 만큼 《흙》은 문학성과 대중성을 모두 거머쥔 뛰어난 작품이다. 출간 의의 및 특징 작가 이문구는 에 실린 글에서 이렇게 밝힌 바 있다. “책을 읽는 이면 으레 있게 마련인 난독 시대를 나는 중학생 때에 보냈는데 그 무렵의 내 안목에 우리나라 작가에는 이광수만한 이가 없었고 나는 특히 《흙》을 제일로 쳤다. 그리고 빈농 맹한갑의 어머니가 뚝배기 대신 호박잎에 된장찌개를 끓이는 것이 ‘된장에 있던 구더기가 뜨거운 것을 피해서 잎사귀 가장자리로 기어 나오기 때문’이라는 데에 이르면 번번이 가슴이 떨리곤 했다. 나도 이광수가 《흙》을 쓴 나이가 되면 이 정도는 쓸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으로 설레는 가슴을 누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광수가 편집국장 시절에 귀농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연재한 《흙》이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감동적인 까닭은 후대 소설가들이 인정한 대로, 언어 표현력과 그 안에 담긴 생생한 삶의 모습, 그리고 보편적인 인간 욕망이 잘 어우러져 한 편의 소설로 가장 완벽하게 구현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어, 풍속, 욕망의 삼중주에 빠져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신문 연재 시에 같은 번호로 두 편이 실리면서 번호가 하나씩 당겨졌는데, 이후 책으로 묶으면서 빠뜨린 경우가 많았다. 애플북스의 이광수 장편소설 《흙》은 그 누락된 내용을 다시 싣고 잘못된 순서를 바로잡았다. 는 그동안 전체 원고가 아닌 편집본으로 출간되었거나 잡지에만 소개되어 단행본으로 출간된 적 없는 작품들까지 최대한 모아 총서로 묶었다. 종이책은 물론 전자책으로도 함께 제작되어 각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대학교의 도서관은 물론 기업 자료실에도 꼭 필요한 책이다. 내용 소개 허숭은 보성전문 법과에 다니는 농촌 출신의 고학생으로, 여름 방학 때 고향 살여울에 돌아가 야학을 가르치면서 유순에게 마음이 끌린다. 졸업한 후 변호사가 된 허숭은 유순을 잊지 못한 채 장안의 갑부인 윤 참판의 딸 정선과 결혼한다. 이즈음 살여울에서 한갑이 유순의 뺨을 때린 농업기수를 때려눕히는 사건이 일어난다. 평소 농촌운동에 관심이 있었던 허숭은 결국 아내 정선과 다투고 살여울로 내려가 한갑을 변호하고 고향 사람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한다. 그러던 중 정선이 김갑진과 불륜 관계임을 알고 경성으로 올라온 허숭이 아내에게 실망해 다시 귀향하려 하자 정선은 열차에 뛰어들어 자살을 기도하고, 결국 한쪽 다리를 잃고 만다. 과거를 뉘우친 정선은 선화, 허숭과 함께 살여울로 내려가 유치원을 열고 농촌운동에 힘쓴다. 허숭이 고리대금업자 정근의 모함으로 감옥에 간 뒤에도 정선은 살여울을 지킨다. 김갑진은 허숭의 영향을 받아 검불랑에 들어가 개간 사업을 하며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난다.

저자 소개

이광수(1892∼1950)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춘원(春園) 이광수는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아명은 보경(寶鏡)이고, 작가이자 문학평론가, 사상가이자 기자, 논객으로 활동하며 고주(孤舟), 외배, 올보리, 장백산인(長白山人), 춘원생, Y생 등의 필명을 썼다.
이광수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1905년 일진회(一進會) 유학생으로 도일해 일본 와세다 대학 문학과와 철학과에서 수학하면서 신학문을 접하게 된다. 홍명희·최남선 등과 교류하고 톨스토이·바이런 등의 외국 사상가의 저서를 읽으면서 세계를 향해 시야를 넓혀 가던 이 시절은 그가 한국 근대문학의 기틀을 닦는 사상적 자양분을 마음껏 흡수할 수 있던 시기였다. 이때 발표한 <문학이란 하오>는 한국 근대문학의 범주와 방향을 제시한 본격적인 근대문학론이라 할 수 있다. 이광수는 1909년 첫 작품 <사랑인가>를 발표한 이후 <어린 벗에게>, <윤광호>, <소년의 비애> 등의 소설을 통해 자유연애를 옹호하고 기성의 도덕을 부정하는 진보적 사상을 고취했다. 특히 1919년 학비 보조를 위해 ≪매일신보≫에 연재하기 시작한 ≪무정≫은 계몽주의적 자유연애론과 근대적 자아의 각성 문제를 다룸으로써 인습에 반기를 들고 신문명의 기치를 든 청년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소설뿐 아니라 시와 논설, 평론 등을 발표해 사상가로서 초석을 닦고 있던 이광수는 이미 재일 유학생 사회에서 저명인사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였다. 이에 따라 그는 자연스럽게 유학생 활동에 앞장서면서 1919년 ‘2·8독립선언서’의 초안을 작성하는 일을 맡게 된다. 이후 상하이로 탈출해 그곳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관지인 ≪독립신문≫의 주간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여기서 그는 도산 안창호를 만나고 그의 사상에 깊이 감화되어 그를 ‘아비’로 칭하고 평생에 걸쳐 존경심을 표한다.
1921년 귀국한 즉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지만 춘원의 후원자인 아베 요시이에(阿部充家)의 도움을 받아 불기소처분을 받아 풀려난 뒤로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지낸다. 1921년 ≪개벽≫에 조선 민족의 민족성을 개조하자는 내용을 골조로 하는 <민족 개조론>을 연재해 조선 사회에 엄청난 반향과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춘원의 집과 개벽사가 습격당할 만큼 거센 반발이 있었지만 그의 입장에서 이 논설은 돌출되거나 변질된 사상이 아니라 그가 일관되게 주장해 온 민족 개조론과 실력 양성론을 실천적으로 구체화한 글이라 할 수 있다.
1924년 ≪동아일보≫에 발표한 소설 ≪재생≫은 문학사적 의의 외에도 이광수가 본명을 사용한 첫 소설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이를 계기로 춘원은 10여 년간 가장 왕성한 문학 활동을 펼치면서 문단의 중심에 서게 되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그는 순문예지 ≪조선 문단≫의 주재로 활동했고, ≪혁명가의 아내≫, ≪사랑의 다각형≫, ≪삼봉이네 집≫에 이르는 ≪군상≫ 3부작과 역사소설 ≪단종애사≫, ≪마의태자≫ 등의 작품을 발표했을 뿐 아니라 ≪흙≫(1932), ≪유정≫(1933) 등의 대표작을 남겼다. 특히 ≪흙≫은 그가 조직한 흥사단의 국내판 수양동우회와 ≪동아일보≫ 편집국장 신분으로 전개한 ‘브나로드 운동’의 방편으로 쓰인 농촌계몽소설이다. 1938년에 발표한 전작 소설 ≪사랑≫에는 아들의 죽음, 도산의 죽음, 수감 생활로 이어지는 일련의 고통스러운 사건을 거친 후 종교적 세계에 안주하려는 춘원의 현실 초극 의식이 잘 드러나 있다.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은 이광수에게 변절의 오명을 덧씌운 결정적 계기가 되는데, 이 사건 이후 그는 “천만 동포를 천황의 독자로 만드는 데 여생을 바치겠다”는 맹세에 따라 친일 행각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그는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로 창씨개명을 하고, 황국 위문 작가단을 결성하고, 친일 단체인 조선문인협회 초대 회장으로 앞장서 내선일체 구현을 강조하는 일본어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후에 이 모든 행위가 조선 민족을 보호하기 위한 타협책이었다고 변명하기도 했으나 광복 후 반민특위에 의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러나 이때 이미 폐병과 결핵으로 온몸이 만신창이 상태였던 이광수는 아들의 탄원 덕분에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불행히도 1950년 납북된 후 그의 마지막 모습은 확인할 수 없으나, 평양감옥에 수감되었다가 자강도 고개동에서 사망, 모처에 매장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광수의 삶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해방에 이르는 역사의 파고 가운데 민족의 운명과 더불어 부침을 겪었다. 그는 문사(文士)이자 지사(志士)로 공론의 장에 참여해 목소리를 높이면서 역사 속으로 자신의 삶을 투항했다. 비록 친일의 낙인이 찍힌 ‘흠 많은’ 우리 문학의 아버지일지언정, 이광수의 삶과 문학에는 우리 근대사의 공과가 그대로 새겨져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책 속에서

p. 266~267
“그야, 양반이란 것들이 나라 정사를 잘못해서, 이를테면 국민을 바로 지도하지를 못해서 조선을 망쳐버린 것이야 사실이겠죠. 그렇지만 백성들은 왜 남 모양으로 혁명을 못 일으키우? 그놈의 양반 계급을 다 때려 부수고 왜 상놈 정치를 해보지 못했소?”
하고 정선은 상놈 공격을 시작한다.
“(중략) 양반, 중인, 상놈을 금을 그어가지고는 벼슬은 양반만 해먹고, 중인은 역학이나, 의학이나, 수학 같은 기술 방면에밖에 못 나가고, 나머지 상놈 계급은 자자손손이 아전 노릇이 아니면 농, 상, 공업밖에 못 해먹고—농, 상, 공업이 천한 것이 아니겠지마는 조선 양반들은 그것을 천한 것으로 작정을 해놓았거든. (중략) 그분들이 농사 개량을 했겠소, 상공업 발전을 생각했겠소, 국방을 생각했겠소? 생각이라고는 어떡허면 높은 벼슬을 많이 하고 어떡허면 돈을 많이 벌까 하는 것뿐이었소. (중략) 그러니까 말이오, 양반들이 죄를 지어서 농촌을 저 모양을 만들었으니 양반이 그 죄를 속해야 하지 않겠소. 어디 당신 양반을 대표해서 한번 농민 봉사를 해보구려.”
하고 숭은 웃었다.

p. 515
이때에 날카로운 고동 소리가 들렸다. 긴 고동 뒤에는 작은 고동이 몇 마디 연해 들리고 차는 급자기 정거하려고 애쓰는 격렬한 진동을 하였다. 산월은 마치 무서운 소리를 들은 어린애 모양으로 숭의 조끼 가슴에 낯을 파묻고 숭에게 매어달렸다. 차는 정거하였다.
숭은 가까스로 산월을 떼고 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보았다. 온통 눈이다. 바른손 편을 보니 거기는 산 옆을 깎은 비탈이다. 소나무들이 눈을 이고 있다.
승무원들이 등을 들고 기관차 편에서 뛰어온다.
“무슨 사고요?”
하고 숭은 차에 매어달리면서 물었다.

p. 690~691
“난 서울 안 가요. 살여울서 농사짓고 있을 테야요. 작년에도 나허구 을순이허구 둘이서 농사를 지어서 벼 스무 섬허구, 조 열 섬, 콩 두 섬 했답니다. 금년에두 농사를 벌여놓았는데 벌써 모두 절반이나 나구…… 난 밥을 짓고 소 먹이지요. 내 손 좀 보아요.”
하고 꺼멓게 그을고 거친 손을 가지런히 숭의 눈앞에 내어보인다.
“정말?”
하고 숭은 고개를 앞으로 숙여서 정선의 손을 보았다. 조그마한 손이 커질 리는 없지마는 피부는 많이 거칠었다.
“그럼, 인제는 나도 농사를 많이 배웠어요. 소만에 목화 심고 망종에 모내고…….”
하고 정선은 웃었다.
“오라잇. 그러면 내가 나가도록 살여울을 지키시오!”
하고 숭은 더욱 유쾌하게,
“그래, 손수 지은 쌀로 손수 지은 밥맛이 어떻소? 서울서 먹던 밥맛과?”
하고 숭은 소리를 내어 웃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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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원 닮은 나_ 고정욱
흙
작가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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