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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리히 본회퍼 신학자-그리스도인-동시대인

원제 : Dietrich Bonhoeffer. Eine Biographie
시리즈 : 하나님의 사람 시리즈 [17]

에베히르트 베트게 저 | 김순현 역 | 복있는사람 | 2014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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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3601373 / 1468쪽 / 2,055g / 223 x 1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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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저자 소개

본회퍼 전기작가이자 본회퍼의 유고를 편집하여 세상에 알린 그의 제자이자 친구다. 1909년 8월 28일 마그데부르크 바르하우에서 태어났고, 쾨니히스베르크, 베를린, 빈, 튀빙겐, 할레-비텐베르크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1935년 칭스트와 핑켄발데의 고백교회 신학원에 입학해 본회퍼를 알게 되었으며, 1937년 본회퍼가 그로스-슐뢴비치(이후 지구르츠호프)에 차린 수련목회자 모임의 연구장학관이 되었다. 둘 사이의 끈끈한 우정은 1945년 본회퍼가 처형될 때까지 서신을 왕래하며 계속되었고, 이때 나눈 편지는 본회퍼의 전기와 사상을 구성하는 주요한 단서가 되었다. 1940-1945년 베를린 그로스너 선교회의 선교 감독관을 역임하고, 1943년 5월 15일 본회퍼의 조카딸 레나테 슐라이허와 결혼함으로써 본회퍼 일가와 한가족이 되었다. 1944년 “7월 20일 사건” 이후 이탈리아에서 체포되어 베를린 레어터 슈트라세 3 교도소에 수감되었다가, 1945년 4월 25일 감옥에서 나와 오토 디벨리우스 감독의 개인 보좌관으로 일했다. 1945년에는 훔볼트 대학교, 1949년에는 베를린 공과대학의 교목을 역임했다. 1953년 런던에서 목회하고, 1961-1976년에는 렝스도르프에 있는 라인 목회자 신학교 학장으로 재직했으며, 1969년 본 대학교의 실천신학 담당 객원교수로 부임했다. 2000년 3월 18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본회퍼의 저서들을 출간하고 연구하는 일에 매진하여, 본회퍼에 관한 가장 권위 있는 기록인 이 전기를 남겼다. 

역자 소개

감리교신학대학교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여수 돌산 갈릴리교회 목사로 섬기면서 아름다운 자연과 어촌 주민들을 벗 삼아 창조 영성을 익히고, 영성 고전을 번역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디트리히 본회퍼』『안식』『베풂과 용서』『메시지』(복 있는 사람),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분도출판사),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창세기에서 배웠다』(IVP) 등이 있다.

책 속에서

디트리히 본회퍼는 체격이 다부졌다. 어머니의 금발과 푸른색 눈동자를 타고났고, 예민한 입과 도톰하면서 날렵한 입술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았다. 두 손은 가냘파 보여도 힘이 대단했다. 대화를 나눌 때면 대개 왼손가락에 낀 반지를 만지작거리곤 했는데, 거기에는 본회퍼 가문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본회퍼는 특히 강인한 사람이었다. 늘 강의와 글쓰기에 몰두하고, 결단을 내리고, 그 근거들을 추적하고, 사람들을 돕거나 그들의 주의를 일깨웠다. 요컨대 그는 자신의 압축된 생애가 요구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 힘을 다했다.
_ ‘디트리히 본회퍼의 초상’ 중에서(32쪽)

 
충성심의 분열을 겪어 보지 못한 사람과 민족은 가장 양심적인 사람이 치욕을 당해야 하는 한계 상황을 그대로 느끼기 어려운 법이다. 당시의 한계 상황을 자기의 원칙에 의거하여 성급하게 가늠하거나 그 상황의 특수성을 일부러 무시하는 자는 그 상황의 윤곽을 날조하고 그 세월의 실재를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보통의 안목 없는 예법으로는 독일의 명성을 더 이상 구출할 수 없었다. 이 세상에서 사리사욕을 꾀하여 조국에 손해를 끼치려 하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국가전복죄“에 속한다. 하지만 오스터, 도나니, 본회퍼의 경우는 정반대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_ '11장. 수련목회자 모임' 중에서(935쪽)

 
본회퍼는 1942년 성탄절에 공모자들을 위해 쓴 ‘10년 후’라는 소론에서 아래와 같이 말했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한다면, 자유를 누리는 가운데 시간을 포착하여 위험에 맞서는 책임 있는 행동 속에서, 그리고 참된 자비 속에서 그리스도의 너른 마음에 참여해야 한다. 이 참된 자비는 불안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고통당하는 이들을 해방하시고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비롯된다. 하는 일 없이 기다리며 흐리멍덩하게 구경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자세가 아니다. 자기 몸으로 겪어 얻은 지식들이 아니라, 동료 형제들―그리스도께서는 이들 때문에 고난을 당하셨다―의 몸을 통해 얻은 지식들이 그리스도인을 행동과 자비로 부른다.”
_ ‘12장. 출장 여행’ 중에서(10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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