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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국새를 삼켰는가 우리가 모르는 대한민국 4대 국새의 비밀

조정진 저 | 글로세움 | 2014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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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7222575 / 320쪽 153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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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이 책은

“우리가 모르는 대한민국 4대 국새의 비밀”


대한민국 4대 국새는 국민공모를 통해 인뉴와 인문 모두 민홍규가 당선되어 전통기법으로 제작한 유일한 전통 금국새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30년 이상 사용해도 이상이 없다”는 검사결과가 있었고 2008년부터 3년 이상 잘 사용해왔다. 그런데 2010년 8월, 한 언론이 민홍규의 국새 사기사건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민홍규가 전통국새를 만드는 비법도 없으면서 마치 있는 것처럼 속여 국새 국민공모에 당선됐고, 국새를 만들고 남은 금을 빼돌려 금도장을 만들어 정·관계, 언론계에 로비하였다고 보도했다.
수사기관은 언론보도를 뒤따라가며 속전속결로 수사를 진행해 민홍규를 사기죄로 구속했다. 전형적인 여론재판이자 마녀사냥이었다. 수사 결과, 민홍규의 금 횡령과 금도장 로비는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 기소조차 안 됐거나 모두 무혐의 처리됐다. 민홍규는 자신이 전통기술이 있음을 시연하여 보이겠다고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누누이 말하였지만 이를 묵살당한 채 ‘전통기술 없이 국새를 제작한 사기’라는 죄로 3년형을 선고받았다.
왜 이 국새사건이 3년이 지난 2010년 느닷없이 보도되었으며, 수사기관이나 재판부는 사실 검증이나 증거 확보도 없이 주물보조 이창수 한 사람의 말만으로 이 사건을 결정짓고 한 사람을 사지로 몰고갔을까.
이 사건의 무료변론을 맡았던 박찬종 변호사는 “나는 민홍규의 무죄를 확신한다. 명확한 증거들이 있음에도 이를 배척한 사법부의 판단을 이해할 수 없다. 몇몇 사기꾼들의 어설프고 조잡한 모함에 놀아난 수사기관은 부끄럽게 여기고 재수사해야 한다”고 하였다. 23년 동안 판사 생활을 한 황종국 변호사 또한 “이 사건은 배후에서 누군가가 진두지휘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며 수사기관과 재판 과정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국새사건을 맡았던 한 검사는 판결 후 민홍규에게 “우리가 한 게 아니다. 언론이 떠들고 해서 한 것이다. 개인적 감정은 없다”고 했다.
과연 이 사건의 의혹은 무엇이며 가려진 진실은 무엇일까.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이 책은 “우리가 모르는 대한민국 4대 국새의 비밀” 대한민국 4대 국새는 국민공모를 통해 인뉴와 인문 모두 민홍규가 당선되어 전통기법으로 제작한 유일한 전통 금국새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30년 이상 사용해도 이상이 없다”는 검사결과가 있었고 2008년부터 3년 이상 잘 사용해왔다. 그런데 2010년 8월, 한 언론이 민홍규의 국새 사기사건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민홍규가 전통국새를 만드는 비법도 없으면서 마치 있는 것처럼 속여 국새 국민공모에 당선됐고, 국새를 만들고 남은 금을 빼돌려 금도장을 만들어 정·관계,... ●이 책은 “우리가 모르는 대한민국 4대 국새의 비밀” 대한민국 4대 국새는 국민공모를 통해 인뉴와 인문 모두 민홍규가 당선되어 전통기법으로 제작한 유일한 전통 금국새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30년 이상 사용해도 이상이 없다”는 검사결과가 있었고 2008년부터 3년 이상 잘 사용해왔다. 그런데 2010년 8월, 한 언론이 민홍규의 국새 사기사건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민홍규가 전통국새를 만드는 비법도 없으면서 마치 있는 것처럼 속여 국새 국민공모에 당선됐고, 국새를 만들고 남은 금을 빼돌려 금도장을 만들어 정·관계, 언론계에 로비하였다고 보도했다. 수사기관은 언론보도를 뒤따라가며 속전속결로 수사를 진행해 민홍규를 사기죄로 구속했다. 전형적인 여론재판이자 마녀사냥이었다. 수사 결과, 민홍규의 금 횡령과 금도장 로비는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 기소조차 안 됐거나 모두 무혐의 처리됐다. 민홍규는 자신이 전통기술이 있음을 시연하여 보이겠다고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누누이 말하였지만 이를 묵살당한 채 ‘전통기술 없이 국새를 제작한 사기’라는 죄로 3년형을 선고받았다. 왜 이 국새사건이 3년이 지난 2010년 느닷없이 보도되었으며, 수사기관이나 재판부는 사실 검증이나 증거 확보도 없이 주물보조 이창수 한 사람의 말만으로 이 사건을 결정짓고 한 사람을 사지로 몰고갔을까. 이 사건의 무료변론을 맡았던 박찬종 변호사는 “나는 민홍규의 무죄를 확신한다. 명확한 증거들이 있음에도 이를 배척한 사법부의 판단을 이해할 수 없다. 몇몇 사기꾼들의 어설프고 조잡한 모함에 놀아난 수사기관은 부끄럽게 여기고 재수사해야 한다”고 하였다. 23년 동안 판사 생활을 한 황종국 변호사 또한 “이 사건은 배후에서 누군가가 진두지휘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며 수사기관과 재판 과정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국새사건을 맡았던 한 검사는 판결 후 민홍규에게 “우리가 한 게 아니다. 언론이 떠들고 해서 한 것이다. 개인적 감정은 없다”고 했다. 과연 이 사건의 의혹은 무엇이며 가려진 진실은 무엇일까. ●출판사 리뷰 “민홍규는 여론 재판의 희생양이다” 2010년 8월 말 터진 국새사기사건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가뜩이나 짜증나 있던 국민을 화나게 했다. 국새사건은 대한민국 4대 국새의 제작단장을 맡았던 민홍규가 국새를 만들고 남은 금을 빼돌려 금도장을 만들어 정·관계 인사들에게 로비용으로 돌렸다는 언론보도로 시작됐다. 여기에 600년 비전(秘傳)이라는 전통기술이 없으면서 전통기법으로 국새를 만들었다고 거짓말을 했고, 국새에 버젓이 자기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는 데에 이르러 여론은 절제력을 잃었다. 수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여론재판은 끝났다. 민홍규는 파렴치한 사기꾼이고 국가를 농락한 국사범이 되어 있었다. 민홍규 관련 기사와 수사는 국새제작단의 주물보조를 지낸 제보자 이창수의 진술에만 의존한 채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민홍규에게 제기된 의혹은 마치 모든 게 사실인양 보도됐다. 언론들은 최소한의 확인 과정도 거치지 않고 연일 대서특필했다. 민홍규의 입장이나 진술은 단 하나도 반영이 되지 않았다. 수사는 제보자의 진술을 언론이 먼저 보도하고, 수사기관이 그 뒤를 따라 확인하는 수순으로 진행되었다. 전형적인 여론재판이자 마녀사냥이었다. 지극히 비정상적인 처리였다. 냉정한 이성과 법리가 지배해야 하는 법정은 요식 절차로 전락했다. 수사 결과, 민홍규의 금 횡령과 금도장 로비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기소조차 안 되었거나 재판 과정에서 모두 무혐의 처리됐다. 국새사건을 맡았던 한 검사는 판결 후 민홍규에게 “우리가 한 게 아니다. 언론이 떠들고 해서 한 것이다. 개인적 감정은 없다”고 했다. 검찰 스스로 여론에 끌려 다녔음을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민홍규는 자신이 전통기술이 있음을 시연하여 보이겠다고 하였지만 이를 묵살당한 채 ‘전통기술 없이 국새를 제작한 사기’라는 죄로 3년형을 선고 받았다. 재판부는 왜 민홍규의 전통기술 시연을 막는가. “이창수는 왜 거짓증언을 일삼는가” 국새사건의 불을 지핀 사람은 민홍규가 국새제작단에 주물보조로 고용한 이창수(종로에서 반지 등을 주물해주던 일을 함)였다. 이창수는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현대식으로 만든 국새를 민홍규가 바꿔치기해서 국가에 납품하였다”고 주장했다. 이를 시작으로 행정안전부가 서울지방경찰청에 수사를 의뢰하며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이창수는 국새제작단에서 15일 일하고 급여로 126만 원을 받은 말 그대로 보조였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였다. 4대 국새 공모전에 조각과 글씨 부문에서 각각 1등으로 당선된 작가는 민홍규이고, 국새제작단장과 총괄책임자도 민홍규였다. 주물보조에 불과한 국새제작단의 일개 단원이 국새를 만들었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러나 언론은 그렇게 보도했고, 경찰과 검찰은 그렇게 수사해 기소했고, 재판부는 그렇게 판결했다. 취재도 엉터리, 수사도 엉터리, 판결도 엉터리였다. 제보자 이창수는 방송 인터뷰, 수사기관에서의 진술뿐만 아니라 재판정에 증인으로 출석해서도 지속적으로 진술을 번복하였다. 이창수의 거짓 증언의 압권은 2007년 12월 1일과 2일 국새 제작 장소인 경남 산청에 가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이창수가 그날 현장에 있었느냐 없었느냐는 국새사건의 진위를 판가름하는 핵심이었다. 왜냐하면 그날 이창수는 민홍규가 국새를 만들 때 옆에서 주물을 도왔고 그것이 확인되면 민홍규가 국새를 만든 것이 사실이 되기 때문이었다. 이창수는 처음엔 12월 3일 아침에 산청에 왔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주물하는 과정을 본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2월 2일 이창수가 현장에 있는 사진을 증거자료로 제출하자 12월 2일 밤늦게 도착해 3일 개물식 행사에만 참석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2월 1일에도 이창수가 현장에 있었다는 사진을 제출하자 급기야 사진의 날짜를 조작했다고 주장한다. 국립과학수사원에 사진조작여부를 의뢰한 결과 ‘조작 흔적이 없다’고 나왔다. 하지만 검찰은 국과수의 감정결과가 “재판에 도움이 안 된다”며 무시한 채 민홍규를 구속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사법부인가. “국새사건의 발단은 황금퍼트사업이다” 민홍규가 국새를 만든 후 그 밑에서 일하던 행정담당 박희웅은 골프퍼트 제작업자 박준서와 함께 황금퍼트 사업을 하기로 한다. 그들은 ‘국새장인이 만든 퍼트’라는 이력이 필요해 민홍규를 동업자로 끌어들이려 했으나 이를 거부하자 민홍규 대신 이창수를 내세우기로 한다. 이창수에게 민홍규에 버금가는 스펙을 만들어주어야 했기에 먼저 [국새백서]의 이창수 자격을 조작하였다. 여기에 [국새백서] 제작을 담당했던 국립민속박물관 관계자와 행정자치부 일부 공무원 등도 연루되어 있다. 또 황금퍼트를 홍보하기 위해 이창수는 조선조 옥새 복원 등 민홍규의 이력을 자신의 것인 양 도용했다. 민홍규는 [국새백서]의 조직도가 사실과 다르게 인쇄되어 나오자 이의를 제기했고, 이를 껄끄럽게 여긴 관련자들이 ‘민홍규 죽이기’에 나선 것이다. 이들은 재판 과정에서 민홍규를 고발하기 위해 1년을 준비했다고 실토하기도 했다. 민홍규를 제거한 이유가 국새를 만든 장인이 따로 있다고 하여 그 스펙을 이용해 황금퍼트사업을 홍보하고 판매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속셈이 드러난 것이다. “40억 다이아몬드 옥새 진품은 따로 있다” 롯데백화점 다이아몬드옥새 전시회도 진실을 알고 나면 허탈한 웃음만 나온다. 다이아몬드옥새 전시회는 두 차례 이루어졌다. 첫 번째는 2006년 재

저자 소개

  • 저자 : 조정진
저자 조정진은 [세계일보] 논설위원. 서강대 국문과·언론대학원, 북한대학원대학교 박사과정에서 공부했다. 1988년 기자 생활을 시작해 [세계일보] 문화부장, 한국기자협회 기획위원장, 동덕여대 강사, 월간 [신문과방송] [국회도서관보] 편집위원, 시사통일신문 대표 겸 편집국장, 열린포럼21 대표를 역임했다. 기자협회·서울시교육청 저널리스트 멘토로 4년째 활동 중이다. 농촌농민문학상(1986)·한국신문협회장상(1993)을 수상했고, 이번 책의 근간이 된 [골프채 업자에 놀아난 ‘민홍규 죽이기’ 게이트](2013)와 [가산 이효석 선생의 혈육을 만나다](2014)로 기자협회 ‘취재 이야기’, ‘기자의 세상보기’ 공모에 당선됐다. [한국언론공정보도투쟁사] [한국신문필화사]를 펴냈고, [왜 정부는 하는 일마다 실패하는가]를 번역했다.

역자 소개

 <세계일보> 논설위원. 서강대 국문과·언론대학원, 북한대학원대학교 박사과정에서 공부했다. 1988년 기자 생활을 시작해 <세계일보> 문화부장, 한국기자협회 기획위원장, 동덕여대 강사, 월간 <신문과방송> <국회도서관보> 편집위원, 시사통일신문 대표 겸 편집국장, 열린포럼21 대표를 역임했다. 기자협회·서울시교육청 저널리스트 멘토로 4년째 활동 중이다. 
 농촌농민문학상(1986)·한국신문협회장상(1993)을 수상했고, 이번 책의 근간이 된 <골프채 업자에 놀아난 ‘민홍규 죽이기’ 게이트>(2013)와 <가산 이효석 선생의 혈육을 만나다>(2014)로 기자협회 ‘취재 이야기’, ‘기자의 세상보기’ 공모에 당선됐다. <한국언론공정보도투쟁사> <한국신문필화사>를 펴냈고, <왜 정부는 하는 일마다 실패하는가>를 번역했다.

책 속에서

정치인 금도장 로비설과 관련된 내용은 2011년 5월 검찰이 모두 무혐의 처리했다. 국새제작단장 임명은 국새제작자문위원회의 석상에서 모든 위원들이 모인 가운데 “국새공모 당선작가 민홍규가 국새뿐 아니라 그동안 국새 의장품도 제작, 전시하였고 국새에 관계된 책도 집필하였으니 단장으로 임명하자”는 한 자문위원의 제안에 모두 좋다고 찬성하여 자연스럽게 된 것이다.
_본문 37쪽

경찰과 검찰은 왜 국새사건을 정·관계 및 언론계 로비사건으로 몰고 갔을까. 여기에는 정치적인 이유가 있다. 4대 국새는 참여정부에서 행해진 일이었고, 이명박정부에서는 이전 정부를 뒤엎을 뭔가가 필요했다는 얘기다. 당시 정부는 4대강 사업 반대 기류와 민간인 사찰 문제가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돼 코너에 몰려 있었다.
금 횡령, 정・관계 로비 등 모든 것이 여의치 않자 수사기관은 결국 민홍규를 전통기술이 없음에도 있다고 속이고 국새를 만든 사기꾼으로 몰아가게 된 것이다.
_본문 38쪽

인뉴는 2006년 11월 24일 정부서울청사 1916호실에서 심사하였고, 인문은 2006년 11월 27일 심사하여 결정했다. 작품 출품인의 이름을 가린 이른바 블라인드 테스트로 심사를 하였으며, 심사위원들에게는 당선작이 누구 것인지도 말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자문위원들에게는 심사 후 인뉴, 인문 당선작이 모두 민홍규의 작품이라는 것을 말한 후 자문을 구하였다는 것이다. 인뉴 조각과 인문 글씨에 대해 심사위원들이 공정하게 심사하여 민홍규의 작품이 모두 당선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_본문 45쪽

경찰은 민홍규에게 2007년 12월 2일 주물작업을 하면서 금을 녹이는 도구로 가스토치를 사용하였느냐고 물었다. 12월 2일은 개물식 전날로 인면에 주물을 붓던 날이다. 그날 산청은 날씨가 춥고 바람도 거세 금 주물이 금세 식을 위험이 있었다. 가스토치는 주물을 하는 동안 녹인 금이 금방 굳을 수 있다는 이창수의 말에 산청의 문화해설사 민향식 씨가 친구에게서 빌려온 것이었다. 민홍규는 가스토치를 사용해본 적도 없고 다룰 줄도 몰랐지만 이창수가 자신이 전문이라며 도가니의 주둥이 부분을 달궈 금 주물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었다.
민홍규에게는 중요하지도 않고 생각지도 못한 가스토치에 대해 경찰이 묻고 있었던 것이다.
“가스토치를 사용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아, 예. 물론 이창수가 들고 도가니 주둥이에 금이 식지 말라고 쓰긴 했습니다만….”
“가스토치는 전통식입니까, 현대식입니까?”
“아, 그거야 요즘 쓰는 물건이니 현대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만….”
민홍규는 얼떨결에 ‘가스토치는 현대적’이라고 답변했다.
“그럼, 현대식이 맞네.”
원하던 답변을 얻어낸 경찰은 곧장 기자실로 달려가 “민홍규가 현대식으로 했다고 시인했다”고 브리핑했다. 민홍규와 직접 접촉할 수 없었던 기자들은 경찰이 불러주는 대로 ‘민홍규 현대식 시인’이라고 보도했다.
_본문 48-49쪽

민홍규가 다음 날 경찰조사에 임하러 서울지방경찰청에 들어설 때 간단한 언론 인터뷰를 하게 했다. 순진한 민홍규는 자신과 관련된 이런 일이 생긴 것 자체가 국민에게 송구스럽다는 의미로 “물의를 일으켜 국민께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SBS 기자는 앞에 민홍규가 전통기술이 없다는 멘트를 넣은 다음 민홍규의 이 말을 교묘히 편집하여 방송하였다. 당연히 민홍규가 “전통기술이 없는데 이런 일을 저질러서 죄송합니다”로 받아들이게끔 짜깁기하여 보도한 것이다.
_본문 52-53쪽

2009년 여름 박희웅이 전각전 공사장으로 민홍규를 찾아왔다. 박희웅은 식당 겸 사무실로 사용하던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무릎을 꿇고 퍼터사업을 도와달라고 간청한다. 눈물까지 글썽였다. 박희웅은 “이 사업을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며 민홍규가 나서 줄 것을 간곡히 요청하였다. 이에 민홍규는 박희웅이 소개한 골프퍼트 제조업체인 ㈜뱅코스 대표 박준서를 만나게 된다.
_본문 55쪽

박준서와 이창수가 동업하는 황금퍼터사업 관련 문서에는 이창수의 이력이 조작되어 나온다. 민홍규의 이력을 그대로 도용해 이창수의 이력으로 둔갑시켰다.
이창수가 1998년, 1999년, 2000년, 2002년, 2005년 5회에 걸쳐 조선 옥새 복원작업을 하였고, 국새제작 실행위원이라고 되어 있다. 이창수는 옥새 복원을 한 적도 없으며 할 능력도 없다. 또한 <국새백서>나 행정자치부의 어떤 문서에도 국새제작 실행위원이란 직책은 없다.
_본문 58-59쪽

박희웅은 왜 거짓말로 민홍규를 사지로 몰아넣는 것일까. 자신이 하자고 졸라 전시회를 열고, 자신이 다 알아서 판매할테니 걱정 말고 있으라고 했던 그가 왜 그랬을까.
민홍규는 봉황옥새가 모조품이라는 사실을 처음부터 박희웅에게 알렸고, 롯데백화점 측에도 그 사실을 분명히 밝혔다고 주장한다. 또한 샘플로 홍보를 하고, 실제 주문이 들어오면 진품 다이아몬드로 제작해 주려고 했다고 한결같이 주장한다. 사기를 치려 하지도 않았고, 매수 희망자에게 거짓말도 하지 않아 범행이 착수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정민조는 누나가 자신 몰래 <고옥새간회정도>를 민홍규에게 전달했다는 사실을 언론보도를 통해 알고 무척 분개했다. 이 일로 누나와 사이가 틀어졌을 뿐만 아니라 민홍규에게도 나쁜 감정을 갖게 되었다. 아버지의 유품이라면 당연히 유일한 아들인 자신이 물려 받아야 하는데 누나가 민홍규에게 전해 준 사실에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그리고 민홍규도 설령 누나에게 받았다 하더라도 자신에게 가져와야지 몰래 가지고 있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_본문 76쪽

국새제작단에서 이창수의 지위가 몇 번이나 조작되었다는 점이다. 행정자치부는 2007년 국새 및 국새 의장품을 확정하고 국새제작단이 발족하면서 공식 명단을 발표한다. 이는 2008년 행정안전부에서 발간한 소책자 <국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이창수는 민홍규 산하 ‘세불옥새연구소 전수공’으로서 담당 분야가 ‘보조’로 기재되어 있다. 그런데 2009년 11월 24일 민홍규에게 보낸 <국새백서> 초고 메일에는 이창수를 ‘귀금속 가공 기능장’으로 변조해 놓았다.
민홍규가 이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였지만 완성된 백서에는 이창수를 ‘국새 제작’ 분야의 ‘금장’으로 변조해 놓았고 본문에는 ‘전통금속공예가’에 ‘금장’으로 둔갑해 놓았다.
_본문 86쪽

수사기관의 조사내용을 보면 민홍규는 이창수를 2003년경 처음 만났고, 연성흠을 만난 지도 10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민홍규가 주물기술이 없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는 다음 두 가지 의문점이 해소되어야 한다.
첫째, 연성흠과 이창수를 만나기 전에 민홍규가 만든 옥새 복원품 등은 누가 만들어 주었을까. 둘째, 민홍규가 도장을 만들 때 주물은 누가 해주었을까 하는 점이다.
_본문 101쪽

최종 확정된 국새 제작 예산은 1억 9,000만 원이다. 이 금액은 국새 제작에 소요되는 전체 비용이었다. 금 국새 1점, 동국새 1점, 16종의 국새 의장품을 만드는 재료비, 국새제작단 인건비, 진행비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국새 제작의 핵심은 바로 국새이며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이 주재료인 금 구입비였다. 국새 총제작비 1억 9,000만 원 중에서 금 구입에 책정된 예산은 총 8,960만 원이다.
_본문 105쪽

민홍규는 왜 현대식 전기로를 구입했을까. 그는 국새를 만드는 동안 몇 번의 주물실험을 하게 된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완벽한 국새 주물을 위해 실험이 필요했고, 주물보조인 이창수로 하여금 현대식 주물방식으로 실험하도록 하여 그 데이터를 전통방식에 참고하려고 했다.
전통방식으로 실험을 하지 않은 이유는 진흙거푸집을 만드는 시간이 오래 걸릴 뿐더러 많은 양의 금이 손실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민홍규는 반지 등 다른 금세공과 달리 국새 제작을 위한 전통주물에 쓰일 합금 비율과 용융점, 강도 등 몇 가지 중요한 데이터를 알아야 했다. 그래서 실험이 필요했다.
_본문 124쪽

이창수의 처음 주장은 개물식 전날 산청에서의 주물 작업은 아예 없었다고 하였다. 자신은 개물식 날 아침에 산청에 내려가 행사에만 참석하였고 민홍규는 주물기술이 없기 때문에 주물작업을 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그러다 민홍규와 이창수가 함께 주물하는 사진이 나오자 이창수는 민홍규가 바꿔치기 하였다고 공격하기 시작했다. 개물식에 사용된 국새는 이창수의 주장대로 2007년 12월 3일 새벽에 바꿔치기 된 것인가. 민홍규는 언제 국새를 바꿔치기 할 수 있었을까.
_본문 148쪽

무엇보다 국새 전각이나 전각가들에게는 자기 작품에 서명하는 것은 통례이며 법칙이다. 서예 전각가 정도일 선생은 “국새도 전각인데 전각 작품에 작가 이름을 넣는 것을 가지고 문제 삼는 것은 문제 삼는 이들이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작가들은 작품 어딘가에 반드시 자신의 서명을 새겨 넣는다. 민홍규가 국새에 자기 이름을 서명으로 새겼다는 뉴스를 들은 조각가 이긍범은 “당연한 것 아니냐”며 전혀 놀라지 않았다.
_본문 195쪽

민홍규가 15세가 되던 1969년 겨울방학에 민영보는 종손 민홍규를 데리고 부산에 사는 석불 선생을 찾아간다. 석불의 작업 서재인 고죽산방에 들어서니 만주에서 오세창 선생이 석불 선생의 동장을 보고 칭찬한 글과 나무판에 전각을 새긴 현판 작품이 걸려 있었다.
첫 대면에서 석불 선생은 민홍규의 입문에 흔쾌히 답하기보다 친아들이 이에 전념하지 않음을 안타까워했다. 그 후 민홍규는 틈틈이 전각의 역사를 공부했다.
_본문 225쪽

옥새를 복원했다는 1998년은 1966년생인 이창수가 불과 32세가 되는 해이다. 이창수는 전남 여수에서 어린 나이에 상경해 귀금속 공방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재판 과정과 수사기관의 조사에서 금도장에 새겨진 한자를 읽지 못한다고 진술했다. 이창수의 이력을 조작하더라도 앞뒤가 어느 정도 맞아떨어져야 하지 않은가. 이창수의 옥새 복원 주장은 명백한 거짓말이다. 이창수 이력으로 조작한 기록은 민홍규가 옥새를 복원하여 경기도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전시한 내용이다.
현재도 이창수는 자신이 황금퍼터를 제작했다고 주장하며 각종 골프용품 전시회나 백화점 판매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특히 2013년 연말에는 모 방송사 다큐멘터리에 출연하여 조선 옥새를 복원한 장인이 자기라며 스스로를 소개했다고 한다. 기가 막힌 일이다.
_본문 259-260쪽

목불은 언론보도를 통해 조선시대 옥새 계보도와 1대 국새가 날인되고 제작 과정이 담긴 아버지 정기호의 유고집 <고옥새간회정도>를 아들인 자신이 아닌 민홍규가 갖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매우 불쾌하게 생각했다. 목불은 이 책의 가치가 상당한 것으로 생각했고, 민홍규가 아버지 몰래 훔쳐간 것이라고 의심을 품게 된다. 그런데 자신의 누나가 석불 사후에 유품을 정리하며 발견해 제자인 민홍규에게 준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목불은 누나에게 불같이 화를 내었고, 민홍규에게도 자신에게 가져오지 않았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목불은 민홍규가 아버지의 제자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면, 자신이 석불의 유일한 제자가 되어 민홍규 대신 부와 명성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_본문 2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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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책 머리에
프롤로그 민홍규는 여론재판의 희생양이다 / 박찬종 변호사
제1장 국새사건의 진실
국새사건은 무엇인가
제작비를 횡령했는가
국새 로비는 있었나
국새 공모 심사에 로비가 있었나
전통기술이 없다고 자백했는가
황금퍼터사업의 진실
40억 다이아몬드 봉황옥새
국새백서는 왜 조작되었는가
제2장 국새는 누가 만들었나
민홍규는 전통기술이 있는가
금을 횡령하였는가
오합토와 거푸집은 제작하였는가
현대식 전기로는 왜 구입했는가
오합금은 무엇인가
인면 내부 봉 기둥의 진실게임
국새 바꿔치기가 가능한가
국새 주물 현장에 누가 있었는가
개물식 국새는 누가 만들었나
금의 함량이 다르다
인뉴는 누가 만들었나
왜 국새에 이름을 새겼을까
제3장 국새에 얽힌 비밀
1대 국새는 누가 만들었나
석불 정기호는 누구인가
민홍규는 석불의 제자인가
민홍규는 100억대 부자인가
서울시무형문화재 심사 숨은 진실
국새전각전 건립 횡령 의혹
제4장 풀어야 할 의혹들
주변 인물들은 왜 돌아섰는가
이 사건으로 누가 이익을 보는가
왜 전통기술의 시연을 막는가
어떤 증인과 증거물이 부정되었는가
진실을 외면하는 검찰 공소장
수사기관은 왜 진실을 외면하는가
에필로그 진실 그리고 새로운 시작 / 황종국 변호사
사진으로 보는 국새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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