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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의 반란 1948년 4월 3일 제주 4.3. 사건의 진실

시리즈 : 대한민국 정체성 총서 [33]

현길언 저 | 백년동안 | 2014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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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95263875 / 156쪽 150 x 1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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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왜곡된 미화를 넘어 진실로 바라본 제주4.3사건 남로당은 4.3을 어떻게 계획했고 이용했는가 반(反)대한민국 세력은 4.3을 어떻게 왜곡하고 이용하는가 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반(反) 인권적 사례 때문에 자유민주주의국가 건설을 거부하려는 그 반란의 목적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또한 이 사건이 반국가적 반란이라 하더라도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야기된 반(反)인권적 폭력 또한 정당화될 수 없다. 이것이 4.3사건의 실상을 밝히고 그 아픔을 치유하는 대전제가 되어야 한다. ▶ 내용 소개 노무현 정부 당시 ‘4.3 진... 왜곡된 미화를 넘어 진실로 바라본 제주4.3사건 남로당은 4.3을 어떻게 계획했고 이용했는가 반(反)대한민국 세력은 4.3을 어떻게 왜곡하고 이용하는가 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반(反) 인권적 사례 때문에 자유민주주의국가 건설을 거부하려는 그 반란의 목적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또한 이 사건이 반국가적 반란이라 하더라도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야기된 반(反)인권적 폭력 또한 정당화될 수 없다. 이것이 4.3사건의 실상을 밝히고 그 아픔을 치유하는 대전제가 되어야 한다. ▶ 내용 소개 노무현 정부 당시 ‘4.3 진상규명위원회’의 반역사성 노무현 정부는 재임 당시 “잘못된 역사바로잡기” 사업을 추진한 바 있다. 그 중 ‘과거사 청산’의 차원에서 이루어졌던 것이 바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이다. 저자는 이 위원회에서 만든 ‘제주4.3사건 진상 보고서’에 많은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 보고서는 4.3 사건 당시 정부의 잘못을 찾아내서 양민들의 희생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그래서 저자는 강조한다.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국가의 명령을 받고 싸우다가 죽은 사람들,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주의 국가를 이룩하기 위한 제헌국회 의원선거 일을 담당했던 사람들, 내 남편이나 내 아들이 면장이었다고, 마을 일을 맡아 심부름꾼처럼 일했던 이장(里長)이라고, 경찰관이라고, 우익청년단체 간부였다는 이유만으로 유격대원들에게 목숨을 잃은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이들은 4.3희생자 명단에서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 왜냐 하면 저항운동의 주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진영 논리에 다름 아니다. 이렇게 보면 ‘제주4.3사건 진상보고서’는 역사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만들어진 보고서가 아니다. 정치 논리로 4.3을 왜곡시키기 위해 작성된 것이나 다름없다. 정치권력으로 역사를 바꾸려 했던 폭력의 극치인 셈이다. 저자는 이런 해악을 극복하기 위해 학문적 양식을 가진 전문가 집단이 다시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속적이고 학술적으로 4.3의 실상을 온전히 밝혀내야 한다는 것이다. 제주4.3사건의 실상 1부에서 저자는 객관적 시선으로 4.3을 직접 조사하여 그 전개과정과 실상을 독자들에게 자세히 들려준다. 남로당은 대한민국의 첫 총선을 무효화시키기 위해 온갖 음모를 펼쳤다. 겉으로 ‘남북 분단 반대’라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이들의 목적은 정부를 뒤집는 것뿐이었다. 이런 목적으로 제주 남로당은 지속적으로 폭동을 일으키고 무기를 확보해 반란에 돌입했다. 불행했던 것은 미군정과 경찰이 “제주 사람들은 모두 좌익”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이 점점 더 과격해졌다. 결국 수많은 양민들이 희생되었다. 저자는 4.3사건의 본질은 반란군과 국군 양쪽에서 제주 사람들에게 희생을 강요당했다고 말한다. 3부에서 저자는 자신이 직접 겪은 4.3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부모님과 삼촌들과 형제들이 당시 어떤 고초를 겪었고, 지금은 어떤 감정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있는지 말하는 것이다. “진실의 눈으로 보라.” 저자 현길언은 4.3사건을 왜곡과 미화를 넘어 진실의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반(反)인권적 사례 때문에 자유민주주의국가 건설을 거부하려는 그 반란의 목적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강조한다. 그렇지만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야기된 반(反 )인권적 폭력 또한 정당화할 수 없다고 말한다. 바로 이것이 4.3사건의 실상을 밝히고 그 아픔을 치유하는 대전제일 것이다.

저자 소개

제주에서 출생하여 제주대학교와 한양대학교에서 25년간 교수 생활을 한 현길언은, 현재 평화의문화연구소 소장과 『본질과 현상』 발행·편집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성경과 제주 설화의 토양에서 소설을 쓰고 연구해온 현길언은 땅의 가치를 초월하는 기독교와의 만남으로 문학과 신앙의 합일점을 찾기에 이른다. 그는 인간의 주변적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문학의 몫임을 확인하면서 신앙과 문학과 생활이 만나는 자리를 찾게 된다. 198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뒤, 『용마의 꿈』, 『배반의 끝』, 『나의 집을 떠나며』, 『유리벽』, 『누구나 그 섬에 갈 수 없을까』 등 소설집과 『한라산』, 『열정시대』를 비롯한 여러 장편소설을 썼다. 현대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녹원문학상, 기독교문학상, 김준성문학상, 백남학술상 등을 수상했다. 

소설의 이론과 창작의 접점을 찾기 위해 소설 연구 작업을 계속하여 『문학과 사랑과 이데올로기』를 비롯, 『한국현대소설론』, 『소설쓰기의 이론과 실제』, 『소설에서 만나는 한국인의 얼굴』 등 이론서와 연구서를 썼다. 또 성경을 이해하는 방법론을 모색한 『문학과 성경』, 그 이론을 적용한 『인류 역사와 인간탐구의 대서사, 어떤 작가의 창세기 읽기』, 『솔로몬의 지혜』를 썼으며, 주변부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제주문화론』도 썼다. 또한 성장소설 3부작인 『전쟁놀이』, 『그때 나는 열한 살이었다』, 『못자국』을 써서 어린이 문학의 새로운 양식을 도모했다. 현길언은 소설의 몫이 인간의 진실을 탐구하는 데 있음을 신뢰하는 리얼리스트이다.


 


 제주 설화 모티브를 소설로 형상화한 작품으로 단편 <김녕사굴 본풀이> <광정당기> 장편으로 『섬의여인 김만덕/꿈은 누가 꾸는가』가 있다. 

책 속에서

p8
지난 여름 내 인생살이에서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일을 모질게 경험했다. 참여정부 시절에 만든『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 대한 내 생각을「본질과현상」에 게재했는데, 제주 4.3관련 단체와 일부 지방 언론이 입에 담을 수 없는 모욕적인 언어로 나를 매도했다. 처음에는 약간 충격을 받았는데, 그런 분위기가 일부에 그친다는 사실을 알았다. 또한 내 글을 비난했던 그들조차 4.3에 대한 지식이 피상적이고 이념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 사건의 진상을 나름대로 팩트(fact)를 중심으로 써야 하겠다는 어떤 의무감을 갖게 되었다.

p24
좌익계는 이러한 사회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전략을 준비하고 있었다. 반면에 지주계층이나 전통 양반 문벌이 형성되지 않은 제주 사회에서 우익 세력은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지식층은 좌익 성향의 인사들과 일제 관료나 일제 산업 기관에서 종사했던 친 체제 사람들 그리고 각급 학교교원들이었다. 그런데 교원들 중에는 좌익 세력에 치우친 사람이 많았다.

p33
이 두 사건을 계기로 미군정과 경찰은 ‘제주도 사람은 모두 좌익’이라는 편견을 갖게 된다. 그것은 군정 산하의 모든 공공기관 특히 도청과 군청, 면사무소, 초등학교까지 파업에 참가했기 때문이다.

p60
반란군은 쉬지 않고 5.10선거 방해 책동을 벌였고 선거가 끝난 후에도 계속했다. 8월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의원 선출을 위한 지하선거가 38 이남에서 실시되었는데, 제주에서는 소위 “손도장 찍기” 선거로 주민의 85%가 참가했다. 5.10선거를 거부한 도민이 이 선거에는 적극적으로 참가한 것은 당이 조직적으로 주민을 협박 선동하여 강제로 투표하였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강요하는 대로 했다.

p79
4.3사건은 변동기 정치이데올로기의 희생물이었다. 남로당이 추구하는 사회주의에 대한 동경과 그 실현은 사실 제주 사람들 것이 아니었다. 섬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동경하게 되었고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고, 제주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사로잡는 위력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p80
이제 60년이 지나서 4.3은 다시 이념논쟁으로 나타나면서 제주사람들에게 새로운 갈등과 반목을 만들어주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해법을 정치논리로, 외세의 힘을 빌어서 찾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해법은 단 하나이다. 진실 위에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어떤 보상이나 거짓 명예를 통해서 가능하지 않다. 명예는 스스로 얻는 것이다.

p87
논점의 궁극적인 의도는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자주적 결정권을 억압하는 외세를 배격하여 반미사상을 강조하는데 있었다. 희생당한 주민의 명예를 회복한다는 애초의 주요 목적까지도 수단으로 전락하게 되었다『보고서』는 4.3의 진상을 규명하지 않고 정치적인 의도로 역사를 왜곡시켰다.

p96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말은 조용조용한데, 살아있는 자들의 목소리는 거칠다. 왜 그럴까? 아마 겪었던 사람들은 진실을 말하기 때문에 큰소리를 칠 필요가 없지만, 사태를 바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큰 소리로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야만 그 큰 소리로 그들이 의지할 가치나 이념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p149
경찰에 한평생 몸담고 살았던 셋삼촌은 두 동생을 생각할 때마다 소리없이 울었다. 어느 날 꿈에 두 동생이 집 올레 정낭 밖에 서 있는데, 셋삼촌이 ‘왜 거기 서 있느냐, 어서 올레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해도, 두 동생은 물끄러미 형을 바라보다가 등을 돌리더라고 꿈 이야기를 했다. 그러한 꿈을 꾸기까지 두 동생의 죽음에 집착해 있었던 셋삼촌의 가슴은 까맣게 타들었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4.3 사건에 희생된 영령들을 위로하는 일인지.

목차

목차 1장 제주 4.3 사건의 실상 1948년 4월 3일 주변지역 “섬” 일제 강점기 제주도 해방기의 제주 풍경 미군정기 제주지역의 정치 상황 3.1사건과 3.10총파업 반란 반란의 결정과 유격대의 병력 규모 인민유격대와 국방경비대 9연대 남로당의 선거 방해와 선거 무효 제주도경비사령부 설치와 중산간(中山間) 부락 100 전투사령부 설치 내전(內戰)의 태풍이 휩쓸고 간 땅 2장 노무현 정부의 “과거사 청산의 반(反) 역사성” 위원회 조직의 문제 정치권력과 역사 왜곡의 실상 3장 한 작가가 겪은 제주 4.3 2013년 여름 1947년 여름 1948년 봄 1948년 가을과 겨울 불타는 마을 마을 재건 1954년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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