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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날 위의 평화 노무현 시대 통일외교안보 비망록

이종석 저 | 개마고원 | 2014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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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57692356 / 576쪽 152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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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노무현의 피스게임 평화를 위한 불화를 넘어서 천안함 침몰로 장병 46명 사망?실종, 연평도 포격으로 군인과 민간인 100여 명 사상, 휴전선 초소로 북한 병사 ‘노크 귀순’, 청와대 하늘 위로 북한 무인기 비행…… 하지만 이런 종류의 사건 하나 없이도, 정부가 국가안보에 무능하다고 격렬히 비난받던 시기가 있었다. 바로 참여정부 시절! 그렇다면 여기엔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걸까? “나는 이(종석)차장이나 (이해찬)총리하고 생각이 달라. 두 사람은 통일이 목표지만 나는 평화가 목표야.”(69쪽) 2005년 어느 날, 대통령 관... 노무현의 피스게임 평화를 위한 불화를 넘어서 천안함 침몰로 장병 46명 사망?실종, 연평도 포격으로 군인과 민간인 100여 명 사상, 휴전선 초소로 북한 병사 ‘노크 귀순’, 청와대 하늘 위로 북한 무인기 비행…… 하지만 이런 종류의 사건 하나 없이도, 정부가 국가안보에 무능하다고 격렬히 비난받던 시기가 있었다. 바로 참여정부 시절! 그렇다면 여기엔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걸까? “나는 이(종석)차장이나 (이해찬)총리하고 생각이 달라. 두 사람은 통일이 목표지만 나는 평화가 목표야.”(69쪽) 2005년 어느 날, 대통령 관저에서 NSC 사무차장으로서 보고를 마친 이 책의 저자 이종석에게 노무현 대통령이 그런 말을 건넸었다. 노무현 시대의 통일외교안보 정책과 철학이 ‘평화번영’에 두어져 있음을 또렷이 보여주는 장면이지만, 이 상식적이고도 보편적인 가치를 관철해내는 일이 국내외적으로는 수다한 저항과 불화를 불러오곤 했다. 도대체 왜 그런 반발에 부딪친 걸까? 대통령직 인수위원에서부터 통일부장관에 이르기까지 정책참모로서는 참여정부에서 가장 오래 일했지만, 애초 비망록 같은 건 쓸 생각이 없었다는 저자가 한 권의 책을 내놓게 만든 배경이기도 하다. “감히 말하자면 이 책은 노 대통령의 시각에서 노무현 시대를 돌이켜보는 회고록의 성격도 부분적으로 지”닌다며. 참여정부가 물러난 지 벌써 8년차, 이제 와서 굳이 그때의 일들을 되짚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저자는 두 가지를 말한다. 첫째, 참여정부와 노무현 대통령은 그동안 한쪽에서는 북한에 끌려다니며 국가안보를 위험에 빠뜨렸다고, 다른 쪽에서는 미국에 굴종하면서 주권을 팔아넘겼다고 비난받아왔다. 이제 그런 비난들이 과연 얼마나 사실에 부합하는지 확인한다는 의미다. 둘째, 크든 작든 참여정부가 이뤄낸 외교안보적 성취를 무(無)로 돌리지 않기 위해서이다. 즉, 국정 운영의 암묵지(暗?知) 전수가 ‘전임 정권 흔적 지우기’라는 병폐로 단절되지 않게끔 하려는 뜻이다. 참여정부에서 국가안보 컨트롤타워의 소임을 감당했던 책임자로서, 저자는 ‘평화’라는 지향점을 떠받치는 두 축을 ‘자주’와 ‘균형’이란 단어로 압축하고 있다. 자주국방과 균형외교를 지렛대 삼은 노무현식 평화는 기존 외교안보노선에 익숙한 국내외 세력은 물론 보다 급진적인 변화를 바라는 입장과도 불화를 피할 수 없었다. 이는 곧 칼날 위에 선, 위태로운 평화를 조율해가는 일이기도 했다. ‘이라크 추가파병’ 강행의 이유 이라크 파병은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 자신의 지지기반을 허물어뜨린 정치적 실책이었다고 평가된다. 그렇다면 이라크전을 명분 없는 전쟁이라고 말한 노 대통령이 왜 그런 결정을 했던 걸까?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지지자 절반을 잃는 문제를 고려요소에 넣지 않았다. 대신 파병 요청의 ‘수용’과 ‘거절’ 사이에서 균형추를 기울게 할 요소는 북핵문제라고 결론지었다. 대통령은 북핵문제로 불안정해진 한반도 평화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미국의 전향적 입장이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 우리가 능동적으로 미국과 협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대통령은 여러 회의에서 반복해서 우리가 추가파병을 하게 된다면 한반도 상황의 안정이 그 전제가 돼야 한다며 북핵문제의 진전을 강조했다. (197쪽) 정부 안에서도 적지 않은 이들이 북핵문제와 파병을 연계시키지 말자고 했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미국은 한국에 대해 불편한 소리를 했지만 6자회담 진전을 희망하는 한국 정부의 입장에 대해 점차 긍정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했다. 워싱턴을 방문한 라종일 보좌관으로부터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제2차 6자회담이 조기에 개최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고 있다”며, 한발 더 나아가 “6자회담이 조기에 재개되고 회담에서 실질문제 협의에 진전이 이루어지는 여건이 조성될 경우, 파병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지”에 관심을 표명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210쪽) 이렇게 미국이 6자회담 개최와 대화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게 되면서 노무현 대통령은 추가파병(자이툰 부대 파병)을 결정했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은 절반의 지지자를 잃게 되었지만, 북핵문제는 대화를 통한 해결 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었다. 북한을 대화 테이블에 끌어 앉힌 ‘비료’ 참여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6자회담이 개최되었지만, 2004년 여름 남북관계가 얼어붙는 사건이 일어났다. 베트남에 있던 탈북자 468명을 대거 한국으로 이송하여 북한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온 것이다. 정부는 다양한 외교라인을 통해 베트남 정부와 접촉하여 문제해결을 시도했다. 이 외교협상 과정에서 우리 정보기관도 큰 역할을 했다. 그 결과 6월 말 베트남 정부는 언론에 노출시키지 않고 철저히 대외 보안을 지킨다는 전제로 우리측 전세기를 이용한 탈북자의 국내 이송에 동의했다. 양국은 베트남 체류 탈북자 전원을 7월 27∼28일 양일간 전세기편으로 우리나라로 이송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이 사실이 이송 바로 전날 베트남 현지에서 탈북자를 돕는 선교단체를 통해서 국내 언론에 알려졌다. (…) 정부는 우리 대사관을 찾은 탈북자에 대해서 국가의 의무를 다해 보호했다. 그러나 그 대가는 컸다. 먼저 이 사건을 계기로 남북관계가 일시적으로 단절되었다. 북한은 이 사건을 자국민 납치로 규정하고 남한을 맹렬하게 비난했으며, 8월로 예정된 남북장관급회담을 무산시켰다. (…) 국가의 의무를 지키기 위해 너무 많은 대가를 치른 사건이었다. (286쪽) 이 일 이후로 2004년 하반기에는 공식적인 남북대화가 단절되었다. 정부가 추진한 대북특사 파견도 북한이 거부했다. 상황을 바꾼 것은 비료제공 문제를 둘러싼 남북간의 줄다리기였다. 2005년 초 북한은 한국적십자에 그해 농사에 필요한 비료를 요청해왔다. 정부는 비료제공을 늦추며 북한이 대화 테이블로 이끌었다. 북한은 1월부터 3월까지 일곱 차례나 전통문을 보내오며 협박조에 가깝게 비료제공을 갈구했지만, 정부는 계속 버티며 북한의 대화 복귀를 촉구했다. 결국 5월에 북한을 비료제공과 함께 남북대화를 재개하기로 결정한다. 북한은 5월 16일에 ‘남측에서 비료를 실은 첫 배를 띄우는 것과 동시에 차관급을 수석대표로 하는 실무회담을 개성 또는 금강산에서 갖자’고 제의해왔다. 북한은 “북남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돌파구 마련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 북남관계를 풀어나가는 데 가장 절박한 현안 문제는 비료협력 문제임을 강조”했다. 이렇게 해서 4개월을 끈 남북간의 ‘전통문 줄다리기’는 막을 내리고 전면적인 남북대화 시기가 도래했다. 4개월간의 지루한 ‘기싸움’이 끝나고 대화로 접어드는 조정국면은 ‘순간’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짧았다. (292쪽) ‘주한미군 감축’ 이면에 숨겨진 미국 일방주의와의 쟁투 2004년 한국 사회를 분열에 가깝게 몰고 간 주한미군 감축 문제는, 그 사회적 공론화를 둘러싸고 바람직한 동맹관계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져줬다. 그리고 참여정부는 강대국의 일방주의에 맞서 약소국의 지혜로운 줄타기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미국은 처음부터 일방적으로 주한미군 감축계획을 통보했다. 다음날 저녁 윤영관 장관으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다. (…) 럼스펠드는 미측의 계획을 노 대통령 방미 때 통보하자고 주장했으나 국무부 등이 성공적인 한미정상회담을 위해 미루자고 하여, 한미정상회담 후 롤리스가 방한하여 전달하는 방식을 택했다는 것이다. 나는 윤 장관의 전화를 받고 나서 NSC사무처의 판단이 옳았다는 안도감보다 비애감을 느꼈다. 1만2500명의 주한미군 감축은 그것이 한국 안보에 실질적으로

저자 소개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정치 외교학과에서 정치학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제1차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을 지냈으며 참여정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과 통일부장관을 역임했고, 현재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이 북한을 제대로 알고, 통일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습니다. 쓴 책으로는 《새로 쓴 현대 북한의 이해》,  《북한-중국관계:1945~2000》, 《분단시대의 통일학》, 《조선로동당연구》 등이 있습니다. 

목차

목차
책을 펴내며 4

1부 역사의 무대로 들어서다
1장 역사적 순간 그리고 새로운 임무
대선전야, “역사가 이런 우연으로 바뀌나” 17 / 크리스마스 이브에 맡겨진 중임 21 / 미국의 ‘맞춤형 봉쇄’를 반대한 인수위원들 24 / 평화번영정책, 작명으로 고생하다 28

2장 평양 방문과 노무현 당선자의 메시지
당혹스러운 특사 동행 요청 32 / 뜻밖의 난관, 노 당선자의 CNN 인터뷰 35 / 장성택과의 러브샷과 오바이트 39 / 불거진 대북송금 문제, 김용순과의 공방 43 / 험난한 한반도의 미래를 절감하며 47

3장 새 출발하는 NSC와 함께
NSC 체제를 설계하다 50 / 위기의 안보, 방치된 NSC 55 / “NSC 설계자가 들어와 맡으시오” 61

2부 자주국가를 향한 꿈
1장 노무현 대통령이 꿈꾼 나라
노 대통령에게 ‘자주국방’이란 69 / ‘인계철선’ 용어를 혐오한 대통령 72 / 자주국방 노선 천명과 군의 불만 80 / 국방비 증액과 군의 ‘남한 열세’라는 강박 85

2장 자주를 향한 의지와 난관들
NSC도, 외교부도 몰랐던 미국의 ‘미군 감축’ 계획 통보 91 / 친서 전달과 정상 통화, 그리고 혼선에 대한 복기 97 / 노 대통령, 감축에 대한 능동적 대비를 주문하다 102 / 자주국방 로드맵을 그리다 107 / “감축, 국민에게 공개하고 협상하라” 111 / 명확한 지침과 모호한 협상태도의 충돌 114 / 10월 10일 공론화 통보와 절충안의 등장 122 / 연기 합의와 대통령의 유감 126 / “곧장 협상을 시작하라” 130 / 협력적 자주국방과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의 길 137

3장 한미관계의 딜레마, 주권과 동맹 사이에서
‘개념계획 5029’의 작계화를 중단시키다 144 / ‘5029’의 언론 유출과 누설자의 정체 148 / ‘전략적 유연성’ 합의에 대한 상반된 평가 155 / 전략적 유연성 협상의 분수령, 한미정상회담 161 / 부시정부의 미국, 동맹은 스트레스인가? 169

3부 이라크 추가파병, 자주와 평화 사이에서
1장 한 사람의 소신과 대통령의 의무
“전쟁은 막아야 한다” 181 / 한미정상회담, ‘추가적 조치’와 ‘정치범수용소’ 188/ 대통령의 고뇌, “이런 사람들에게 몇 명을 손에 쥐어준들” 194 / 미국의 추가파병 요청과 NSC의 한국형 모델 모색 202

2장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한 선택
10월 18일 1단계 결정, 얻은 것과 잃은 것 207 / “2000~3000명 비전투병 파병이 합리적” 발언 214 / 2차 조사단의 파견과 NSC 출신 단장 218 / 대미협의단의 파견과 무샤라프 대통령의 조언 223 / 대통령의 최종 지침과 백악관의 응답 “땡큐” 230 / 12월 17일, 추가파병 최종 결정과 이후 236 / 다시 돌이켜보며 241

4부 평화로 가는 좁은 길
1장 평화를 위한 첫 걸음
대북 특사 파견 포기, 북핵과 남북관계 사이에서 249 / 6자회담 출범, 미국의 의도 VS 한국의 구상 253 / 문성근 대북 특사와 북한의 태도 변화 260 / 어둠 속에서 길 찾기 266

2장 남북관계, 성취와 시련
남북의 NLL 합의: 대통령의 안보구상 VS 군의 이해 270 / 군의 보고 누락과 석연치 않은 ‘항명’ 277 / 국가의 의무 수행과 그 대가: 어긋나는 남북관계 283/‘ 7차례의 전통문 묵살’과 전면적인 대화 재개 287

3장 9ㆍ19공동성명을 향하여
북핵문제, “미국에게 1년간 우리한테 맡겨달라고 해보라” 294 / 북한의 핵보유 선언과 대통령의 분노 304 / 중대제안의 탄생과 정동영 특사의 김정일 면담 310 / 4차 6자회담 1단계 회의와 촉진자의 길 318 / 합의를 위한 잠시 동안의 정중동 324 / 역 ‘1 대 5’ 구도의 형성과 9ㆍ19공동성명의 탄생 329

4장 흔들리는 평화의 꿈
9ㆍ19공동성명을 유린한 ‘BDA 사건’ 340 / ‘BDA 사건’, 잠정 합의된 남북정상회담을 불발시키다 350 / 틔우다 만 싹, 한반도평화체제 논의 355

5부 균형외교의 성취와 못다 푼 숙제
1장 균형외교의 실천과 성과
균형외교와 지키지 못한 동북아균형자론 363 / 균형외교의 힘, ‘핵물질 사건’의 성공적 해결 370 / 균형외교를 위한 승부수,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376

2장 숙제로 남은 동북아 역사문제
대통령도 넘기 어려운 벽, 한일관계 386 / ‘동북공정’의 기억, 10년 만의 대통령 지시 이행 397

6부 NSC, 국가안보의 컨트롤타워를 맡다
1장 NSC의 일과 사람들
지하벙커로 들어간 NSC사무처 407 / 컨트롤타워로서 NSC 체제를 갖추다 417 / ‘세븐 일레븐’과 NSC 식구들 424 / NSC 체제를 통해 맺은 인연들 432 / 화물연대 파업과 포괄적 위기관리체계의 수립 438 / NSC와 나, 운명의 만남 446

2장 외부의 비난과 내부의 견제를 뚫고서
‘자주파 대 동맹파’ 갈등의 진실 450 / 지속되는 내부 견제와 대통령의 뜻 456 / 청와대 참모, NSC 차장으로 산다는 것 463

7부 야심찬 구상, 미완으로 남기다
1장 통일부장관으로 일하며
일요일 오후 대통령의 호출, 통일부를 맡다 477 / 남북관계의 새로운 단계를 향한 도전 480 / ‘국가의 기본책무’ 수행과 남북협력사업의 연계 추진 485 / 비책을 통한 해결 모색: 경수로 청산, 김영남 모자 상봉 491

2장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잠에 빠지다
“평화도 인권이다” 501 / 북핵 실험, 연구실로 돌아오다 509

나의 이력서 522

후주 540
찾아보기 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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