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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만나는 세종대왕 100리 전3권세트

시리즈 : 이야기로 만나는 세종대왕 100리 길 [4]

오미경, 연지민, 연규상 외 저 | 샘터 | 2014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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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46418677 / 812쪽 152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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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세종대왕 100리’는
1444년 세종대왕이 ‘초정약수’로 유명한 초정리에 행궁을 짓고 123일간 요양을 하며 한글 창제 및 다양한 문화정책을 펼친 것에 착안하여 지역 문화유산의 역사적 가치를 높이고 문화관광 자원을 특화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상당산성의 숲길, 초정약수의 물길, 증평의 들길을 중심으로 역사와 문화예술, 자연과 생태, 신화와 전설, 농경과 삶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으로 재탄생시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문화의 숲, 예술의 바다로 가꾸고자 한다.

이야기가 있는 숲길, 물길, 들길 - 세종대왕 100리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조선 4대 세종대왕은 한글 창제(1443년) 후, 약 123일간(1444년 3월∼4월, 같은 해 7월∼9월) 현재의 충북 청원군 초정리에 행궁을 짓고 요양하며 눈병과 위장병 등을 치료했다고 전해진다.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이하 청주문화재단)은 청주시 상당산성, 청원군 초정약수, 증평군 율리휴양촌 및 좌구산을 역사.문화 이야기로 이은 ‘세종대왕 100리’를 조성하고, 권역별 길에 담긴 역사, 신화와 전설, 자연환경, 주민들의 삶 등을 집대성해 책으로 엮었다. 책은《숲길, 오래된 미래를 품다》(상당산성권),《물길, 세종대왕 꿈을 담다》(초정약수권),《들길, 이야기 따라 걷다》(증평권) 총 세 권으로 구성했다.

《숲길, 오래된 미래를 품다》는 충북 청주시에 위치한 상당산성을 중심으로 우리 역사 속 유의미한 사건들과 국가의 흥망성쇠를 돌아본다. 삼국시대 토성으로 세워져, 조선 숙종 때 개축된 4.2킬로미터에 이르는 상당산성은 청주.초정.증평을 아우르는 ‘세종대왕 100리’의 출발점이다. 굴곡진 역사 속에서 산성의 주인 또한 여러 차례 바뀌었다. 이처럼 오랫동안 시대의 풍파를 겪은 성곽에는 역동적인 우리 역사의 자취가 오롯이 살아 있다. 숲길은 상당산성을 중심으로 청주문화산업단지, 국립청주박물관, 옛 산성길, 산성마을, 산성호수, 상당산성휴양림 등을 아우르며 과거의 역사는 물론, 오늘날 세상과 소통하는 성곽의 모습까지 조명한다.

《물길, 세종대왕 꿈을 담다》는 충북 청원군 초정리를 중심으로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과정을 상세히 담았다. 1444년 세종대왕은 123일간 두 차례에 걸쳐 초정에 머물며 ‘초정약수’의 초수로 눈병을 치료하고 한글 연구에 매진했으며, 양로연?농업?과학?음악??조세등 다양한 정책을 펼쳤다. 길은 또한 역사 속 걸출한 인물의 행적을 따라간다. 한글 창제의 뒷이야기가 흥미로운 세종대왕 산책길, 한국 화단에 새로운 예술의 꽃을 피운 운보 김기창 화백의 예술길, 천 년 전 삼국시대의 영웅호걸들이 패권을 다툰 격전지 구라산성과 그 중심에 있었던 김유신 장군의 리더길, 구한말 독립운동을 펼쳤던 번개대장 한봉수의 충효길이 다채롭게 이어진다. 물길은 청원군 초정리, 우산리, 비상리, 형동리 등을 아우른다.

《들길, 이야기 따라 걷다》는 충북 증평군 율리와 남하리를 중심으로 신비로움을 간직한 숲과 호수에 깃든 이야기들을 좌구 할매의 구수한 사투리 입담으로 풀어낸다. 들길은 조선 중기 최고의 시인으로 칭송받는 독서광 김득신의 흔적이 담긴 율리를 비롯해 전설이 살아 숨 쉬는 증평 마을(죽리, 남하리, 남차리)의 이야기를 아우른다.

충북(청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문 글 작가, 화가, 사진작가가 작업에 참여해 책에 더욱 애정을 담았다. 글은 역사적 고증을 바탕으로 하되 누구나 공감하며 흥미롭게 읽을 수 있게 재구성했다. 사진은 ‘세종대왕 100리’의 사계를 담아내 현장성을 높였으며, 그림은 지역의 자연환경, 길 주변의 풍경, 주민의 삶 등을 화폭에 담았다.

역사의 향기를 간직한 숲길, 상당산성 길
‘세종대왕 100리’ 상당산성권역의 이야기를 담은《숲길, 오래된 미래를 품다》에서는 금속으로 융숭한 문화를 꽃피웠던 청주의 새로운 문화 산업의 현주소를 살펴볼 수 있다.
담배 생산 중단으로 쇠락의 길을 걸었던 연초제조창 자리에는 ‘청주문화산업단지’가 들어서 2년 마다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가 개최되고 있다. 이곳은 교육 ? 문화 융합 콘텐츠를 생각하는 ‘에듀테인먼트’로 특화된 문화산업의 전진기지로 다시 태어나 하나의 문화가 끝난 곳에서 새로운 문화가 태어나고 성장하여 또 다른 문화와 융합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세종대왕 100리’의 출발점 청주문화산업단지에서 우암산걷기길을 따라 걷다 보면, 한국의 대표적인 건축가 고(故) 김수근 씨가 설계한 국립청주박물관을 만난다. 전시실을 가득 채운 고려시대 사찰 사뇌사(思惱寺) 출토 유물은 고려시대 직지를 찍을 당시(1377년) 청동 유물로 청주가 왜 금속의 고장인지를 잘 보여준다. 길은 또다시 동심을 담은 청주랜드와 300여 점의 다양한 옹기를 전시하고 있는 옹기박물관 그리고 상당산성으로 이어진다.
백두대간인 속리산 천왕봉에서 발원한 한남금북정맥의 허리에 위치한 4.2킬로미터에 이르는 상당산성은 토성으로 세워져, 조선 숙종 대에 개축되었다. 공남문(남문)을 비롯해 미호문(서문), 진동문(동문) 등 3개의 문과 2개의 암문(동암문 ? 남암문) 그리고 치성 3개소, 수구 3개소가 위치한다. 굴곡진 시대의 풍파를 겪으며 나라를 지킨 상당산성은 조선 시대의 축성 기술과 산성 문화를 집약해 보여주는 살아 있는 교육장이다. 아울러 천 년이라는 긴 역사만큼 상당산성에는 수많은 역사적 사실과 설화들이 존재한다.
오래도록 가뭄이 지속되었을 때는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는데, 1671년 청주목사 남구만(1629~1711)이 쓴 <상당산성기우제문>에는 이에 대한 내용을 자세히 기록한다. 또한 변방의 긴급한 상황을 밤에는 햇불로, 낮에는 연기를 피워 알렸던 통신 제도인 봉수 제도에 대한 내용도 흥미롭다.《세종실록지리지》(청주목 봉수 편)에 나오는 상당산성 것대산 봉수대는 1998년 11월 20일 충청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으며 2004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이 밖에도 난공불락의 요새 상당산성 탈환에 얽힌 야사를 다룬《상당산성고금사적기》에 관한 이야기를 비롯해 상당산성 길 정자에 15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얼음을 갖다 놓았던 얼음골 아저씨 이야기 등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전해지는 비화(秘話)들은 상당산성의 위대한 역사를 보여준다.
현재 상당산성은 중부내륙 산성군의 핵심으로서 유네스코 문화유산 잠정목록에 오르는 등 중요 문화재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 책은 상당산성에 이르는 길을 모두 8개 구역으로 나누고 그 코스를 모두 걸으면 상당산성의 개요를 알 수 있도록 곳곳에 숨겨진 역사와 유물, 전설 등 인문학적인 배경(더 깊이 알기)을 곁들여 구성했다. 아울러 1728년 청주읍성과 상당산성을 함락했던 이인좌의 난을 모티브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두 편의 소설로 담았다.

세계 3대 광천수 ‘초정약수’ 물길에 피어난 문화 예술의 혼을 만나다
‘세종대왕 100리’ 초정약수권역의 이야기를 담은《물길, 세종대왕 꿈을 담다》에서는 현존하는 역사 기록을 바탕으로 세종대왕이 초정에 남긴 흔적을 상세히 재현한다. 안질(眼疾)을 앓고 있었던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 후, 초정으로 이궁하여 매일 아침저녁으로 ‘초수’로 눈병을 치료하고 탕실에 들어가 정성껏 몸과 마음을 다스렸다. 세계 3대 광천수로도 꼽히는 ‘초정약수’는 세종 임금이 조용히 한글 연구에 매진하며 내실을 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초청 행차의 역사를 복원한 초정약수공원에서는 누구나 언제든 톡 쏘는 맛이 일품인 ‘초수’를 맛볼 수 있다. 아울러 매년 ‘초정약수축제’를 통해 세종대왕 어가 행렬을 재현한다.

한글의 창제에 매진했던 세종대왕이 남긴 이야기는 초정의 미래와 함께 또 다른 물길로 이어진다.
한국 화단에 새로운 예술의 꽃을 피운 운보 김기창 화백은 평생 예술 동반의 길을 걸어온 아내를 떠나보내고, 어머니의 고향인 내수읍 형동리에 머무르며 마지막 예술의 혼을 불사른다. 세종대왕과 운보의 인연은 운보가 만원권 지폐 도안의 원본이기도 한 세종대왕의 어진(御眞)을 그리며 시작되었는데 초정에서 다시 조우한 것이다.
김기창은 여덟 살에 장티푸스로 청각을 잃고 평생 장애인으로 살면서도 70여 년간 작업에 몰두하며 평생 2만여 점에 이르는 작품을 그린 한국 화단에서 유일무이한 화가다.
그는 1979년 형동리에 ‘운보의 집’을 짓고 장애인을 위한 일을 시작했으며, 장애인을 위한 복지와 사회적 지위를 위해 여생을 바쳤다. ‘운보의 집’은 대지면적 약 3만여 평에 김기창 화백이 생전에 기거하던 전통한옥을 중심으로 미술관과 분재공원, 수석공원, 조각공원으로 조성돼 있다.《물길, 세종대왕 꿈을 담다》에서는 누구보다도 예술을 사랑했던, 초정에 문화 예술 발전의 싹을 틔운 운보 김기창 화백의 삶을 다시금 조명하며, 그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는 그림을 수록하였다.
또한 초정은 천 년 전, 아득한 시간 속에서 이미 난세의 영웅(신라의 김유신, 후삼국시대의 궁예, 왕건, 견훤)들이 왕이 되고자 머문 곳이기도 하다. 삼국의 변방인 충북 지역에는 이 당시 크고 작은 산성들이 많이 생겨났는데 봉우리가 높아 초정 마을을 호위하는 역할을 하는 구라산에 자리한 구라산성은 공격과 방어에 유리한 성을 차지하기 위한 각축장이 되었다.
《물길, 세종대왕 꿈을 담다》는 역사에 근거하여 구라산을 중심으로 펼쳐진 왕들의 전쟁을 이야기한다. 아울러 성을 지으며 생겨난 축성설화들을 설득력 있게 전한다. 그뿐만 아니라 일본의 침략이 본격화되던 구한말, 독립운동을 펼쳤던 번개대장 한봉수 의병장의 행적과 초정의 자연을 닮아 거짓 없이 올곧게 살아간 사람들의 충효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들길 따라 이야기 따라 구수한 입담으로 전하는 증평 마을 이야기
‘세종대왕 100리’ 증평권역은 ‘좌구산 제1문’이 위치한 율리 삼거리부터 좌구산 휴양림까지 이어진다.
상당산성권의 숲길과 초정약수권의 물길이 산을 넘고 물을 건넜다면, 증평권역은 좌구산 아래 펼쳐진 평화로운 들판이 함께한다. 풍수에서 제일로 가는 배산임수를 자랑해온 이곳은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어 옹기종기 마을이 형성되었고 마을마다 재미난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왔다.
증평에서 가장 높은 산인 ‘좌구산’은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산은 아니지만 어머니 품처럼 편안하고 정겨운 산이다. 산 모양이 거북이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좌구산(座龜山)’은 나중에 ‘개(狗)’한테 이름을 빼앗겨 ‘좌구산(座狗山)’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들길, 이야기 따라 걷다》에서는 삼기천을 따라 펼쳐지는 증평 지역 마을의 이야기를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좌구 할매’의 입담으로 풀어낸다. 좌구산을 비롯하여 조선 중기 최고의 시인으로 칭송받는 독서광 김득신의 흔적이 담긴 율리, 넓은 들을 품고 있는 죽리, 마애불과 미륵불이 지켜주는 남하리, 굽이굽이 전설이 살아 있는 남차리 마을에 펼쳐진 삶의 흔적을 따라간다
율리는 증평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마을로 조선 최고의 시인이자 간서치(看書癡)로 유명한 김득신(1604~1684)이 탄생한 곳이다. 김득신은 능력을 타고났다기보다는 끊임없이 노력한 대기만성 형이었다. 다른 사람이 책을 열 번 읽으면 밤낮 가리지 않고 백 번, 천 번, 만 번을 읽었다. 그의 독서 기록은 말년을 보내며 괴산 능촌리에 그가 직접 세운 취묵당(충북 문화재자료 제61호) 앞에 걸려 있는 ‘독수기(讀數記)’에 잘 나타나 있다.

《들길, 이야기 따라 걷다》는 독서, 시 짓기와 관련된 김득신의 여러 가지 일화와 사람 됨됨이를 살펴볼 수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는 마흔 해가 넘게 꾸준히 책을 읽고 시를 공부한 끝에 말년에 ‘당대 최고의 시인’이라고 불릴 만큼 이름을 날렸다. 남들의 손가락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황소처럼 느린 걸음으로 묵묵히 걸어간 그의 묘비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다.
‘재주가 남만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말라. 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겠지만 결국에는 이룸이 있었다. 모든 것은 힘쓰는 데 달렸을 따름이다.’
율리마을을 지나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가족단위 관광객들이 편하게 쉬어갈 수 있는 좌구산 휴양림이 나온다. 근처 좌구산 천문대에는 국내에서 가장 큰 굴절망원경이 설치돼 있어 하늘의 신비를 두 눈으로 또렷이 관찰할 수도 있다. 또한 우스꽝스러운 돌미륵불상이 위치한 남하리 절터 앞 ‘증평민속체험박물관’에서는 전통 민속 문화 체험이 가능하다.
증평 마을은 노동요인 ‘두레농요’가 지금까지 전해질 정도로 한국 전통의 농경문화가 살아 있는 곳이다. 김득신이 해 질 녘 저녁노을에 취해 지은 시 <죽리고연(竹里孤煙)>의 배경이 되었던 죽리마을에 자리한 선돌 한 쌍과 커다란 느티나무는 역사를 머금으며 든든히 마을을 지켜온 산증인이다. 이 밖에도 역사와 전통이 깃든 마을에 수호신으로 뿌리내린 불상, 샘, 나무는 소박한 농민들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한다. 책에서는 증평 지역 민요 십여 편을 통해 구성진 가사 속에 담긴 농민들의 애환을 들려준다.
<이야기로 만나는 세종대왕 100리>시리즈는 역사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에게 한국의 전통과 문화 예술을 이해할 수 있는 새롭고 즐거운 경험을 제공한다. 아울러 테마 여행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세종대왕 100리’ 답사에 더할 나위 없는 안내서가 될 것이다.

저자 소개

1965년 충청북도 청원에서 태어났으며 아이들의 눈과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동화를 쓰는 일이 행복한 자칭 철없는 동화작가다. 1998년에 등단해《교환일기》《선녀에게 날개옷을 돌려줘》《금자를 찾아서》《신발귀신나무》《사춘기 가족》《일기똥 싼 날》《들길 이야기 따라 걷다》등을 펴냈다. 2012년《사춘기 가족》으로 올해의 아동청소년문학상을 받았다.


 


 

충청북도 청주에서 태어났으며 2000년 문단에 등단해 자연생태와 역사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충청의 천연기념물 그 천혜의 비상》《콩닥콩닥 휴》《충북의 박물관 미술관》《천년의 미소에서 꽃이 피다》《물길 세종대왕 꿈을 담다》등이 있다. 현재《충청타임즈》문화부 기자로 일하고 있다.


충북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으며, 2010년《경향신문》신춘문예에 단편 <개가 돌아오는 저녁>이 당선되었다. 일간지 기자를 거쳐 주간지《충청리뷰》를 창간해 7년 동안 일하기도 했다. 현재는 박물관이나 전시관의 디자인, 실내건축 등을 맡는 전시 기획사를 운영하고 있다. 


저서 《숲길 오래된 미래를 품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졸업했다. 1993년 서울에서의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뉴욕, 프랑스, 독일, 일본, 중국 등 국내외에서 다수의 개인전 및 페어전을 열었으며 300여 회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현재 충청북도미술협회장을 맡고 있으며,《충북일보》에 ‘강호생의 그림과 이야기’를 연재했다.


저서 《숲길 오래된 미래를 품다》


 

충북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1996년 <여성과 삶>을 주제로 한 첫 개인전을 연 이후, <비 갠 뒤의 평화> <생생지도> <삶 꽃> 등 생명·평화를 주제로 한 작품들을 그려왔다. 채송화, 대나무, 솔방울 등을 평면․입체로 표현해 한국의 서정을 담은 개인전을 17회에 걸쳐 열었고 200여 회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올해의 청년예술가상, 올해의 좋은 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충북민미협 회장을 맡고 있다.
저서 《물길 세종대왕 꿈을 담다》


 

충북대학교 미술교육과를 졸업했으며 동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1983년 청주에서 첫 개인전을 가진 후 서울, 대구, 부산, 미국 등지에서 22회의 개인전과 200여 회의 단체전을 열었다. 현재 충청북도 진천공예마을에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 《들길 이야기 따라 걷다》

책 속에서

《숲길, 오래된 미래를 품다》 (상당산성권)

금속과 문화가 융합한 최초의 사례는 고려시대에 꽃피운 불교 유물입니다. 국립청주박물관 전시실을 가득 채우고 있는 고려시대 사찰 사뇌사(思惱寺) 출토 유물은 청주가 왜 금속의 고장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1993년 10월 용화사에서 100여 미터 떨어진 무심천 변, 제방 확장 공사를 하던 중 고려시대의 금속공예품 수백 점이 발견됩니다. 의식구, 공양구, 장엄구, 생활용구 등 378점의 유물은 모두, 직지를 찍을 당시(1377년)의 고려시대 청동 유물이었습니다.
_p26 <제1부 폐허에서 감성으로, 역사에서 일상으로>

상당산성을 향해 난 길은 여럿입니다. 그중 상봉재를 거쳐 상당산성에 오르는 코스가 가장 오래된 길입니다. 명암타워에서 상당산성 도로를 따라 걷다가 로드파크부터 시작되는 상봉재 옛길로 접어드는 길입니다. 다만 자동차 도로를 따라 걷기가 불편하다면, 명암저수지에서 출발해 풍주사를 거쳐 상봉재에 오르는 것도 좋습니다. 상당산성 도로를 새로 내면서 상봉재 옛길이 많이 사라졌지만, 애기바위부터는 옛길이 남아 있고 암각선정비와 옹달샘, 서낭당도 깔끔하게 정비되어 옛길의 정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_p41 <제2부 이야기 길, 상당산성 길>

공남문(남문) 앞에 조성된 드넓은 잔디밭은 소풍 나온 시민들의 쉼터이자 역사공원입니다. 소나무 숲이 만들어주는 그늘은 시원하고 그곳에 앉아 바라보는 공남문은 한 폭의 그림입니다. 곳곳에 세워진 비석들은 상당산성의 옛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공남문 광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이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의 시비입니다. 세상천지를 떠돌며 살았던 매월당의 발길은 예의 상당산성에도 닿았고 여기서 느낀 감회를 시로 남겼습니다. 매월당 김시습은 누구일까요? ‘비는 아니 오는데 천둥소리 어디서 나는가, 누른 구름 조각조각 사방으로 흩어지네(無雨雷聲何處動 黃雲片片四方分)’ _p79 <제3부 상당산성의 문화 발원지, 공남문 광장>



둘레 4.2킬로미터의 상당산성을 한 바퀴 돌 때, 그 들머리로 삼는 곳이 바로, 상당산성의 정문인 공남문입니다. 공남문은 <대조영>, <태왕사신기>, <카인과 아벨> 등 많은 드라마가 촬영된 명소입니다. 공남문은 상당산성의 세 개문 중에서 유일한,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입니다. 조선시대 왕이 피신하는 행궁에는 모든 문을 홍예문으로 세웠습니다. 행궁이 아니라 지방 전선 사령부였던 상당산성에는 공남문 한 곳에만 홍예문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_p97 <제4부 다 함께 돌자 산성 한 바퀴>

충청도 54개 고을의 육군을 총괄하는 충청병마절도사영이 옮겨 오자 청주읍성은 큰 변화를 겪습니다. 우선 청주목 관아 옆으로 그보다 큰 병영이 들어서고, 정삼품 청주목사보다 한 등급 높은 종이품의 충청병사가 부임합니다. 병영을 옮겨 오고 3년 뒤인 1654년에는 옥천에 있던 중영(中營)마저 청주로 옮깁니다. 이로써 청주는 행정과 사법은 물론, 군사의 기능을 아우르는 내륙의 중추도시가 됩니다. _p122 <제5부 청주읍성 종소리, 상당산성에서도 들리네>

상당산성은 1716년 석성으로 개축된 이래 꼭 한 번 함락됩니다. 외세의 침입에 의해서가 아니라 반란군에 의해서였습니다. 바로 18세기 최대의 반란 사건인 ‘이인좌의 난’ 때입니다. 1728년 3월 15일, 이인좌의 군사들은 청주성과 상당산성을 함락합니다. 뒤이어 영남의 정희량과 호남의 박필현 등도 잇따라 거병합니다. 전국에서 거병한 군사를 모두 합치면 이십만 명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큰 반란이었습니다.
_p151 <제6부 산은 물을 건너지 못하고, 물은 산을 건너지 못하네>

한옥마을은 이미 1999년, 상당산성 사적 공원화 사업 기본 계획에 따라 산성 밖으로 옮기기로 하였으나 마을 사람들의 반대로 무산된 적이있습니다. 2005년 수립된 상당산성 정비 계획도 한옥마을 이전을 전제로 수립되었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묘수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지금 한옥마을 주민들도 마을 이전을 포함한 대안을 찾자는 데 합의하고 있어, 조만간 수립되는 산성복원 종합 계획에는 현명한 방법이 담길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_p170 <제7부 어떤 것도 사람의 화합만 못하다>

산책은 새로운 걷기의 형식입니다. 산책은 질주에 대한 반성이자, 걷기에 대한 환기입니다. 산책하는 사람의 걸음은 시장에 물건을 사러 가는 사람이나 들에 일을 하러 나가는 사람과 같지 않습니다. 살금살금 걷는 도둑이나 시간에 쫓겨 서두르는 사람의 걸음과도 확연히 다릅니다. 모양과 속도뿐만 아니라 목적마저 다릅니다. 산책은 무엇을 하기 위한 걸음이 아니라 걸음 자체가 목적입니다. 빠르게 걸어야 할 이유도, 남모르게 걸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산책자는 관찰자이기에 낯익은 일상에서 비범한 통찰을 얻는 것도 이 순간입니다.
_p209 <제9부 물길과 들길로 건너가는 상당산성 숲길>

청주성은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삼남이 한양으로 향하는 길목이었다. 거사의 거점으로 안성맞춤이었다. 또한 청주는 우암 송시열을 모시는 화양서원이 있는 노론 정치의 심장부였다. 청주를 얻는 것은 노론의 정신적 고향을 빼앗는 일이었다. 게다가 충청도 병마절도사영이 있는 군사기지이기 때문에 청주를 점령하면 나라의 절반을 얻는 것과 같았다. 병영의 군사와 무기는 덤이었다. 여기에 청주의 전투성인 상당산성을 거둔다면 일은 거의 끝난 것이었다. _p255 <동암문 이야기>

곡절 많은 인생이라지만 우리 모자의 운명은 어찌 이리 혹독한지요. 바람 앞에 호롱불처럼 지켜온 아이인데 요절수라니, 원망과 두려움에 온몸이 떨렸어요. 발걸음을 돌려 나가시는 스님을 붙잡고 어찌해야 할지를 물었어요. “나는 상당산성 보국사 주지인 해원이라 하오. 저 아이가 열 살이 될 때까지 내게 맡기십시오. 아들이 보고 싶으면 열흘에 한 번씩 서낭당 고개에서 기다렸다가 만나야 합니다. 다만 서낭당을 한 발짝이라도 넘어서서는 안 됩니다.” _p292 <상봉재 이야기>



《물길, 세종대왕 꿈을 담다》 (초정약수권)

임금 맞을 채비를 끝낸 초정은 다시 차분해졌다. 산울림처럼 퍼져 나가던 목수의 망치 소리도 관원의 말발굽 소리도 산자락 아래로 잦아들었다. 부스스 잠에서 깨어나고 있는 마을에 훈풍이 불어왔다. 경칩을 앞두고 얼었던 땅이 풀리고, 웅숭그레 어깨를 맞대고 있던 산자락에도 옅은 연둣빛 촉들이 어른댔다. 문득 조선의 중심이 된 초정의 하늘은 시리도록 파랗게 드리워져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_p15 <제1부 세종대왕 산책길>

“내 병이 이미 위중하므로 정사에 힘쓸 도리가 없다. 나라를 다스리는 데 이와 같이 소홀하게 할 수는 없다. 근래에 와서 병이 더욱 심해졌다. 왕위에 30년 동안이나 있었으므로 부지런해야 할 정사에 게으름을 피운 지 오래되었다. 임금이 늙고 병들면 세자가 정사를 섭행하는데, 이것은 예로부터 내려오던 관례다.” _p37 <제1부 세종대왕 산책길>

오랜 침묵을 깨우듯 운보의 집을 찾았다. 행랑채와 안채를 구분하는 담장 사이로 잘 다듬어진 정원이 눈에 들어온다. 운보의 체취를 따라 마당으로 들어서니 단아하면서도 과하지 않고, 고졸하면서도 기품이 있는 한옥이 모습을 드러낸다. 정갈한 마당에 서니 까마득한 어느 날 설핏 보았던 운보 선생이 떠오른다. 하얀 한복 차림으로 안채 마루에 걸터앉아 망연히 하늘을 쳐다보고 계셨던 할아버지. 무엇 때문에 갔는지 누구와 갔는지는 기억을 못 하지만 먼발치에서 보았던 운보 선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모습은 아직도 선명하다. _p112 <제2부 운보 예술길>

“나는 귀가 들리지 않는 것을 불행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듣지 못한다는 느낌도 까마득히 잊을 정도로 지금까지 담담하게 살아왔습니다. 더구나 요즘같이 소음 공해가 심한 환경에서는 늙어갈수록 조용함 속에서 내 예술에 정진할 수 있었다는 것은 오히려 다행이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다만 고인이 된 아내의 목소리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게 유감스럽고 또 내 아이들과 친구들의 다정한 대화 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것이 한이라면 한이지요.”
_p118 <제2부 운보 예술길>

세력을 모으는 중심지는 청주였다. 궁예에게 청주는 근거지와 같았다. 경주에서 도망 나와 세달사에서 승려의 삶을 청산하고 처음으로 세상과 인연을 맺은 곳이 청주였다. 양길의 휘하에서 친구가 된 신훤 역시 청주 출신 호족이었다. 훗날 궁예가 철원으로 도읍을 옮기며 청주 사람 천호를 철원으로 이주시켜 자신의 지지 기반으로 삼았을 정도로 청주와의 인연은 각별했다. _p138 <제3부 김유신 리더길>

구라산성의 축성설화를 증거하듯 지금도 성안에는 양지 바른 곳에 10여 기의 무덤이 나란히 있다. 쓸쓸한 성터에서 만나는 무덤은 설화와 버무려져 애잔하다. 무덤의 실체는 죽은 아홉 딸과의 연관성 여부를 떠나 구라산성을 떠받쳐주고 있다. 나란히 조성된 무덤을 보면 설화의 무게로 인해 아홉 딸들의 죽음이 현실처럼 다가온다. 광활한 영토를 차지하며 호령하던 고구려의 기상은 아홉 딸이 쌓은 구라산성 설화 속에서 천년 역사의 잠을 깨운다. _p153 <제3부 김유신 리더길>

탕!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탕! 탕! 다시 두 발의 총성이 들녘으로 퍼져 나갔다. 놀란 말들의 울음소리가 하늘로 솟구쳤다. 방향을 알 수 없는 총성이 이어지면서 평화롭던 들녘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말을 탄 일본 헌병이 총을 맞고 그 자리에서 고꾸라졌다. 바닥은 붉은 피로 낭자해졌다. 일순 벌어진 기습이었다. 방향을 잃고 우왕좌왕하던 일본 헌병 두 명은 황급히 말고삐를 움켜잡고 뒷걸음쳐 도망쳤다. 멀어지는 말발굽 소리와 함께 짧은 정적이 흘렀다.
_p175 <제4부 한봉수 충효길>

초정약수공원을 빠져나오면 길은 다시 갈라진다. 증평 율리로 넘어가는 고개와 미원으로 넘어가는 이티재 그리고 청주로 가는 길이다. 그 삼각지점에 초수로 목욕하는 약수탕이 위치해 있다. 약수 중에서도 초수의 독특한 물로 유명한 초정약수원탕은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아올 정도로 인기 있다. 톡 쏘는 초수에 목욕한 후 시원하게 마시는 물맛의 비결에 다시 찾게 되는 곳이다. _p222 <제5부 마음으로 만나는 세종대왕 100리길>


《들길, 이야기 따라 걷다》 (증평권)

좌구산은 사람 기죽이게 높지도 않구, 삐죽삐죽 저를 드러내려구 애쓰지도 않구, 그저 소잔등마냥 밭이랑마냥 구불구불 편안하게 내리뻗은 산이여. 그 좌구산 이 골짝 저 골짝에서 맑은 물이 솟아 나와 내를 이루어 흘러내리는데 그게 바로 삼기천이여. 삼기천은 물길 따라 흘러내려 증평에서 보강천이랑 만나구 다시 미호천이랑 만나서 금강 줄기로 흘러내려가.
_p19 <제1부 길 따라 이야기 따라>

신경행은 일흔둘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데, 무난히 과거에 급제했구 벼슬길도 순탄했던 편이여. 벼슬살이를 하며 청백리로 뽑히기도 하구, 공신으로서 후한 대접도 받구 말이여. 죽은 뒤에도 예조판서에 증직되구 ‘충익’이라는 시호도 내려졌어. 신경행은 ‘이로움을 얻었을 때는 정의를 생각하고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목숨을 바치라’를 평생 좌우명으로 삼으며 살었어. 이렇게 평생 소신을 지키면서 살어간 덕분에 벼슬도 오르구 좋은 일이 따렀던 게 아닐까?
_p61 <제2부 굽이굽이 전설이 살아 있는 남차리>

김득신이 남긴 수백 편의 시 중에 밤티마을에 대해 쓴 시도 몇 수 전해지구 있어. 그중에 <밤티골(栗峽)>이란 시 하나만 소개해줄게. 김득신 묘소 옆에 ‘밤티골’ 시비가 세워져 있어. ‘산기슭 시냇가의 너럭바위 대(山畔溪頭石作臺)/올라 굽어보니 석양도 황홀해(登臨斜日兩眸開)/시흥에 겨워 자주 붓대를 잡고(詩因有興頻抽筆)/시름을 삭히고자 술잔을 거듭해(酒爲銷愁每把盃)/나그네 혼 꿈길로 서울을 찾고(客子夢魂京裡去)/벗의 서찰은 산촌까지 전해오네(故人書札峽中來)/봄이 오는 이즘 무단히 놀람은(無端警覺新春近)/잔설 속에 망울 트는 매화 때문(積雪初融欲綻梅)’
_p71 <제3부 최고의 책벌레 김득신을 낳은 율리>

책벌레 김득신의 책 읽기에 대한 얘기는 엄청 많어. 이번엔 혼례를 치르던 날 벌어진 얘기여. 사윗감이 책을 좋아한다는 말을 들은 장모는 소문을 확인해볼 겸 신방에 있는 책을 모두 치웠어. 사위가 책을 병적으로 좋아하다 보니께 첫날밤까지 책만 끼구 밤새 읽다가, 딸 옷고름도 안 풀어줄까 봐 염려되기도 했을 겨.
_p92 <제3부 최고의 책벌레 김득신을 낳은 율리>

죽리마을은 사방이 넓은 들판으로 뒤덮여 있어. 김득신은 해 질 녘에 어느 집 난간에 기대어 서쪽 들녘을 바라보다가 술에 취한 듯 풍경에 취했던 모양이여. 아마 하늘엔 고운 비단자락을 펼쳐놓은 양, 저녁노을이 펼쳐져 있었을 겨. 노을에 물든 저녁 들녘은 원앙금침을 깔어놓은 신방마냥 고요하면서도 아늑했겄지. 그 모습에 괜스레 누가 휘저어놓은 듯 맘이 일렁거렸을 테구. 흥취에 젖어 시 한 수를 읊구 나서, 김득신은 주막에 들어가 주모랑 객쩍은 농을 주구받으며 농주 한잔했을지도 몰러. _p168 <제5부 넓은 뜰을 품고 있는 죽리>

솔모루 샘이 지금은 그 특별한 능력을 보여주진 않지만, 샘 둘레에 높게 시멘트로 담을 치지 않은 옛 모습 그대로라면 더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어. 그러면 샘가에 쪼그리구 앉어 옛 전설을 떠올리면서 얼굴이라도 비춰볼 수 있을 텐데 말이여. 속이 시커멓든 하얗든 샘물은 그 사람 생긴 그대로의 모습을 비춰주겄지. 그러면 샘물에 거울처럼 자기 얼굴을 비춰보면서, 옷매무새를 여미구 매만지듯이 흐트러진 맘을 가지런히 해 볼 수도 있을 텐데 말이여.
_p207 <제6부 마애불과 미륵불이 지켜주는 남하리>

농한기에 베를 짜다 졸리면 바가지에 고드름을 따놓구 입에 하나씩 넣어가며 베를 짰어. 그런데 남편이나 살어 있으면 베틀을 돌리는 장단도 신바람이 나겄지만, 남편이 먼저 가버려 없으면 뭔 신명이 그리 나겄어. 남편이라도 있으면 동지섣달 엄동설한보다 매서운 시집살이라도 따뜻한 남편 품이 녹신녹신 녹여줄 텐데 말이여. 그러니 그저 나오느니 한 숨이요, 눈물이었을 겨. _p248 <제7부 굽이굽이 인생길, 노래로 넘어가세!>

 

목차

《숲길, 오래된 미래를 품다》 (상당산성권)
들어가며
코스 소개

1부 폐허에서 감성으로, 역사에서 일상으로
(청주문화산업단지~국립청주박물관~청주랜드~청주옹기박물관 구간)

2부 이야기 길, 상당산성 길
(우암어린이회관~명암저수지~상봉재~것대산 봉수대 구간)

3부 상당산성의 문화 발원지, 공남문 광장
(것대산 봉수대~상당산성 공남문 광장 구간)

4부 다함께 돌자 산성 한 바퀴
(공남문~남암문 구간)

5부 청주읍성 종소리, 상당산성에서도 들리네
(남암문~미호문 구간)

6부 산은 물을 건너지 못하고, 물은 산을 넘지 못하네
(미호문~기우단~동암문 구간)

7부 어떤 것도 사람의 화합만 못하다
(동암문~진동문~보화정~산성마을 구간)

8부 상당산성의 ‘오래된 미래’ _상당산성 복원 종합 계획

9부 물길과 들길로 건너가는 상당산성 숲길
(상당산성~상당산성자연휴양림 구간)

소설로 보는 상당산성 이야기
_ 동암문 이야기
_ 상봉재 이야기


《물길, 세종대왕 꿈을 담다》 (초정약수권)
들어가며
코스 소개

1부 세종대왕 산책길_ 초정에서 피운 창조의 꽃
_ 세종, 초정에 들다
_ 눈이 머물고 마음이 머물고
_ 필연이 되고 운명이 되고
_ 도전으로 피운 창조의 꽃
_ 환궁과 두 번째 행차
_ 학이 품은 마을 왕을 품은 초정
_ 옛 시로 만나는 초정리 마을

2부 운보 예술길_ 초정에 핀 예술의 혼
_ 인연
_ 그곳에 사랑이 있었네
_ 삶의 소리, 화폭에 담다
_ 소리, 붓끝에서 울리고
_ 꽃은 또 다시 꽃으로 피어나고

3부 김유신 리더길_ 구라산성, 왕들의 전쟁터
_ 난세의 영웅들
_ 통일을 위해 오른 김유신
_ 왕이 되고자 성에 오르다
_ 구라산에서 펼쳐진 왕들의 전쟁
_ 축성설화 속에 숨은 역사 코드(남매 축성설화)
_ 왕들이 꿈꾼 미래(구려사 미륵불, 일광삼존불, 영하리 부처)
_ 천 년 뒤, 성에 오르다

4부 한봉수 충효길_ 번개대장의 독립운동
_ 평민에서 의병으로
_ 명포수에서 번개대장으로
_ 동에 번쩍, 서에 번쩍
_ 독립운동으로 다시 역사에
_ 길에서 만나는 충과 효

5부 마음으로 만나는 세종대왕 100리길
_ 길과 길이 만나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들길, 이야기 따라 걷다》 (증평권)
들어가며
코스 소개

1부 길 따라 이야기 따라
_ 난 좌구 할매여
_ 새로 쓰는 토끼와 거북이

2부 굽이굽이 전설이 살아 있는 남차리
_ 장내마을 : 쉬파리를 쫓아온 자린고비 이야기
_ 수살거리 : 장마에 떠내려온 수살 이야기
_ 술바위 전설
_ 호랑이를 만난 할아버지 이야기
_ 청난공신 신경행 이야기
: 이로움을 얻었을 땐 정의를 생각하라.

3부 조선 최고의 책벌레 김득신을 낳은 율리
_ 봉천이마을 : 세조의 눈을 피해 온 봉씨들의 보금자리
_ 밤티골 : 김득신 묘소와 시비가 있는 마을
_ 말없이 들어주고 받아주는 미륵불
_ 노력의 가치를 보여준 책벌레 김득신 이야기

4부 김치의 운명을 바꾼 좌구산
_ ‘불귀의 객’이 될 운세에 놓인 김치
_ 김치와 심기원, 한밤중 운명적인 만남
_ 개에게 이름을 뺏긴 거북이, 좌구산
_ 일지화 아래서 영원히 잠들다
_ 염라대왕이 된 김치

5부 넓은 뜰을 품고 있는 죽리
_ 죽리의 마을 이름 유래와 선돌 이야기
_ 청안에서 초정.청주로 넘어가는 쉼터, 원평마을

6부 마애불과 미륵불이 지켜주는 남하리
_ 교육에 힘쓰고 덕을 베푸는 둔덕마을
_ 느티나무랑 샘이 지켜주는 솔모루마을
_ 글 읽는 소리 끊이지 않았던 염실마을
_ 부모의 똥까지 맛본 효자 이야기

7부 굽이굽이 인생길, 노래로 넘어가세!
_ 증평 지역 민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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