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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읽어주는 인문학

안용태 저 | 생각의 길 | 2014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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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5132851 / 280쪽 150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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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저자 소개

안용태는 블로그 를 운영하며 인문학, 영화 비평 등을 특유의 시선으로 재해석하여 인문학 블로그로는 이례적으로 방문자가 300만 이상을 기록했다. ‘다음 인문학 파워 블로그’로 선정되었으며 ‘영화와 함께 보는 인문학’ 팟캐스트를 통해 인문학으로 영화를 읽으며 우리 사회에 얽혀 있는 불안, 아픔, 무기력 등을 풀어냈다. 현재는 영화 인문학 강의를 하며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하며 영화, 문학, 음악, 춤, 철학에 이르는 글을 쓰고 있다.

블로그
http://nermic.tistory.com
http://blog.naver.com/nermic10


책 속에서

사실 기억이라는 것은 명증한 사실의 종합이 아니라 스스로도 파악하지 못한 주관적 감정의 덩어리라고 볼 수 있다. 똑같은 사건을 경험하더라도 각 개인이 그 안에서 느끼는 감정은 다를 수 있기에, 한 가지 사건 속에도 여러 기억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기억은 견고한 토대 없이 항시 일부를 잃어버리고 다른 것으로 변해버리는 특징을 가진다. 과거에 긍정적이었던 기억이 부정적으로 바뀌기도 하고 부정적이었던 기억이 긍정적으로 바뀌기도 한다. 따라서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것은 상당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잃어버린 시간에 담긴 감정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 순간의 감정은 강한 유대를 가진 무언가를 통해 다시 되살아나기도 한다. 클레멘타인은 어렴풋한 감정을 통해 잃어버린 시간을 떠올린다. 다만 스스로 삭제해버린 기억이기에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을 뿐, 사랑했던 시간과 흔적은 온몸에 각인되어 있다. 그래서일까? 조엘마저 기억이 완전히 삭제된 이후 그들은 우연히 바닷가에서 다시금 만나 사랑에 빠져든다. 비록 사랑했던 이유는 사라졌으며, 아마도 같은 이유로 지겨워지고 싸울 것도 뻔하지만, 그 감정의 흔적은 남아 있기에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기억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사랑했던 이유는 생각나지 않더라도 그 순간의 감정이 다시금 나타났을 때 과거는 현재에서 재현된다. 과거의 감정은 지금 이 순간에 의미를 더해준다. 이것은 경험해봤기에 가능한, 과거가 나에게 주는 선물과도 같은 것이다.
-본문 18~19쪽

파이는 이 둘의 조화를 이루어낸다. 즉 이성을 중심에 둔 채 신비적 체험과 믿음을 통해서 자신의 살아 있음을 지속적으로 확인한 것이다. 본질만 바라본다면 호랑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본질에 앞서는 성현의 체험과 믿음은 리처드 파커를 존재하게 만들었다. 믿음을 통해 존재하게 된 리처드 파커는 생존이라는 본질에 영향을 주게 된다. 결국 믿음이 본질을 바꾸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비적 체험과 믿음이 가져온 마술적 효과이다. 그렇다면 두 가지 이야기는 모두 진실이 된다. 호랑이가 정말로 존재했느냐 아니냐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건 파이는 믿었다는 것이고, 그 믿음을 통해 나타난 성현은 파이에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전달해 주었다는 것이다. 즉 믿음이 존재의 여부를 결정지은 것이다.
-본문 32쪽

감옥에서 탈출한다는 것은 단순히 자유를 얻는 것을 넘어 새로운 가치의 창조를 의미한다. 어차피 콘크리트와 쇠창살로 이루어진 감옥은 바뀌지 않는다. 감옥을 지배하는 도덕과 규범의 허구성을 폭로 한다고 하더라도 많은 사람은 여전히 그 안에서 살아갈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앤디는 감옥에 입소한 그날부터 고귀한 삶을 위한 탈옥을 준비하였다. 하지만 준비를 하는 것과 실제로 실행에 옮기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결단의 순간에 결단을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엄청난 용기인 것이다. 결국 앤디는 그 어떤 쇠창살도 존재하지 않는 바다의 품으로 뛰어들어 무한한 자유를 얻게 된다.
-본문 60쪽

아담은 사과를 따 먹을 수 있지만 그것을 따 먹었을 때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알지 못하기에, 그 가능성 앞에서 불안함을 느끼며 불안의 대상이 무엇인지도 이해하지 못한다. 따라서 불안은 무(無)일 수밖에 없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무에서 인간은 실존적 불안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현기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 큰 쾌락(유한성)에 집착하며 도망치기를 원한다. 불안과 절망은 인간으로 하여금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불안은 모든 인간이 겪어야 하는 본래적인 것이다. 만약 인간이 동물이나 천사라면 불안을 느끼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이기에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으며, 더 깊은 불안을 느낄수록 인간은 더욱 위대해진다. 불안은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인 것이다.
-본문 83쪽

인간에게 불안은 가장 강력한 교육 수단이다. 불안을 제대로 교육받은 자는 불안의 원인이 유한성과 무한성에 대한 집착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현대인이 끊임없이 불안한 이유는 부, 쾌락, 명성 따위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유한성에 집착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제대로 정립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러한 집착에서 불안이 싹튼다. 따라서 불안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이 잘못 정립되었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알려주어, 진정한 구원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자극한다. 결국 인간은 불안을 느끼면 느낄수록 위대해진다.
-본문 87쪽

타인의 시선은 나에게 상당한 두려움과 수치심을 안겨준다. 낯선 타인의 등장은 나를 중심으로 형성된 세계에 균열을 일으키며, 나의 모든 것은 낯선 그의 세계로 흘러간다. 예컨대 아무도 없는 바닷가를 혼자 어슬렁거리며 울기도 하고 고함쳐 보기도 하면서 고독을 즐기던 순간, 웬 여자가 갑자기 바닷가에 나타났다고 해보자. 나 혼자 바닷가에 있을 때는 모든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구성됐지만 여자가 들어오는 순간 상황이 바뀌게 된다. 그 여자가 신경 쓰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여자를 신경 쓰는 순간 나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던 세계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나의 세계를 이루던 모든 존재와 의미가 그녀에게 흘러가기 시작한다. 사르트르는 이를 내출혈이라고 표현했다.
-본문 100쪽

처음 안느가 수술에 실패하여 마비되었을 때 조르주는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본다. 그때 안느의 얼굴은 조르주에게 상당한 당혹스러움과 낯섦을 선사한다. 평생을 두고 바라본 사랑하는 이의 얼굴이지만 그 순간만큼 아내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본 적도 없었을 것이다. 낯설게 다가온 아내의 새로운 얼굴은 조르주에게 큰 흔들림을 경험하게 만든다. 이때 조르주가 느끼는 것이 바로 정서적 동요이다. 이는 타인의 고통 받는 얼굴과의 예고 없는 만남을 통해 발생하는 것이다.
-본문 110쪽

하지만 물속에 담긴 젓가락은 사실 휘어 있지 않은 직선 형태다. 직선 형태의 젓가락은 우리의 인식이 닿지 않는 젓가락의 진정한 본질로서 바로 사물 자체(Ding an sich)이다. 하지만 젓가락을 물컵에서 꺼내지 않는 이상 우리는 그 사실을 결코 알 수 없다. 물컵에 담긴 젓가락이라는 사물 자체는 직선이지만 우리는 휘어진 현상만을 인식하게 되므로, 젓가락의 사물 자체는 절대로 인식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경계의 바깥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치부되는 사물 자체라고 볼 수 있다. 경계 안의 공간은 사람들에게 휘어진 젓가락만을 보여주면서 집단을 위한 희생을 강요한다. 각자가 자신의 위치에서 집단을 위해 희생해야만 그 집단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이때 개인보다 우위에 서는 집단은 국가, 민족 따위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본문 196쪽

중의 모든 인물은 서로에게 다가가고 싶어 하지만 지속적으로 실패한다. “나의 본질은 이것이다. 나의 실체는 바로 이러하다. 난 이런 괴물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외치고 싶지만 자신의 본질은 타인에게 내보이기 싫은 상처일 뿐이다. 하지만 나의 상처를 내 스스로 직시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남에게 이해를 바랄 수 있을까? 나의 그림자조차 직시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남의 그림자를 이해할 수 있을까? 콜은 자신의 비밀을 말콤에게 말해주지만 그는 콜을 믿지 않을뿐더러 떠나려한다. 말콤은 자신의 상처만을 생각할 뿐이다. 자신이 치료하는 데 실패했던 아이에 대한 죄책감만이 그의 정신을 지배한다. 그 죄책감을 해결하기 위해 비슷한 아이인 콜을 찾았지만 다시금 치료에 실패할 듯하자 그는 도망치려 한다. 그러자 콜은 말콤에게 말한다. “날 믿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날 돕겠다는 거죠?”
-본문 208쪽

배트맨은 악을 처단하기 위한 수단이자 자신의 두려움을 감추기 위한 가면이다. 즉 자신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악을 처단하기 위해 배트맨이라는 허상의 존재를 만들어낸 것이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자신의 공포를 이겨낸 것이 아니라 배트맨이라는 허상을 통해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한계를 보여준다. 이에 그는 여전히 두려움에 사로잡힌 브루스 웨인과 허상의 존재인 배트맨으로 분열되어버린다. 그렇다면 그는 도대체 무엇이 되는 것일까? 배트맨일까? 브루스 웨인일까? 무엇이 되었건 그는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가면을 쓴다. 그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마스크로 가리며 웨인 그룹의 사장으로 일상적인 생활을 살아가는 데에는 성공한다. 두려움과 적당히 적대적으로 공존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는 더 이상 폐인처럼 전 세계를 떠돌 필요가 없으며, 이것이 바로 브루스 웨인과 조커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사실 배트맨과 같은 존재는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적 두려움 또는 억압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찾지만 주된 선택은 ‘또 다른 나’의 창조이다. 얼마나 간단한가? 새로운 나를 만들어냄으로써 과거의 나와 단절을 도모하고 이를 통해 과거의 나를 이루고 있던 다양한 억압적 요소들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본문 247쪽

에바는 끊임없이 먼곳을 바라본다. 외로운 개인으로서 광장으로 나아가 그 외로움을 해결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케빈은 끊임없이 엄마를 바라본다. 외로운 개인으로서 엄마를 통해 그 외로움을 해결하고자 한다. 도대체가 좁힐 수 없는 이 관계는 어린 시절의 케빈의 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동생이 곧 태어날 거라고, 이제 같이 놀 사람이 생길 거라고 말하자 케빈은 필요 없다고 말한다. 에바가 동생을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달래지만 케빈은 동생이 안 좋으면 어떡할 거냐고 되묻는다. 케빈의 말에 익숙해져야지라고 대답하자 케빈은 ‘익숙해진다고 좋아하는 건 아니라고 엄마도 나한테 익숙해지지 않았냐’고 되묻는다. 결국 둘의 관계는 결코 이해할 수 없고 사랑할 수 없는, 마지못해 익숙해지기만 할 뿐 파국으로 끝맺는다. 영화의 마지막에 에바는 케빈에게 묻는다. 도대체 왜 그랬냐고 말이다. 그러자 케빈은 말한다. ‘아는 줄 알았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고 말이다.
-본문 280쪽

목차

목차
들어가며
1. 이터널 선샤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라이프 오브 파이- 균형 잡힌 삶이란 무엇일까?
3. 어둠 속의 댄서- 행복의 시학
4. 쇼생크 탈출- 고귀한 삶을 위한 여정
5. 마이너리티 리포트- 나에게 자유의지가 있을까?
6.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인간이 느끼는 불안과 절망
7. 타인의 삶- 지옥이 되어버린 타인이라는 감옥
8. 아무르- 죽어가는 타인의 얼굴
9. 눈먼 자들의 도시- 소유의 투쟁과 존재 양식의 삶
10. 설국열차- 태초에 열차가 있었다
11. 피에타- 소외된 자를 위한 성전
12. 지구를 지켜라- 잉여 인간의 숭고함
13. 사랑을 카피하다- 가짜 사랑, 진짜가 될 수 있을까?
14. 공동경비구역 JSA- 우리라는 이름의 감옥
15. 식스 센스- 내 안의 그림자와 화해를 꿈꾼다
16. 인셉션- 꿈과 환상으로의 도피
17. 뷰티풀 마인드- 내 안의 또다른 나와의 대화
18. 다크 나이트- 영웅의 두 얼굴
19. 바람이 분다- 악의 평범성
20. 케빈에 대하여- 유동하는 공포와 악의 합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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