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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토사론

시리즈 : 최남선 한국학 총서 [19]

최남선 저 | 경인문화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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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49909875 / 331쪽 153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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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최남선은 1890년 4월 26일 관상감 기사로 근무하며 한약방을 경영한 최헌규(崔獻圭, 1859∼1933)의 3남 3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위로 누나가 둘, 형이 하나 있었으며, 어머니 진주 강씨 역시 한약방을 운영하던 중인 집안 출신이었다. 최남선의 가문은 19세기에 이르러 중인 기술관으로 정착했으며, 그의 직계 가문은 잡과 합격자를 많이 배출한 집안이었다. 부친 최헌규는 관상감에서 지리학을 공부한 뒤 스물한 살에 음양과(陰陽科)에 합격, 관상소에서 대궐이나 능 터와 형세를 살피는 상지관으로 근무해 종2품 기사까지 올랐으며, 관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약재 도매업과 책력 출판 사업을 벌여 서울 시내에 가옥 80여 채와 많은 전답을 소유했던 명민한 사람이었다. 1904년 최남선은 황실 파견 유학생 50명에 선발되어 11월 일본 동경부립제일중학교에 입학했다가 12월 중퇴, 1906년 4월 다시 도일해 와세다대 고등사범부 역사지리과에 입학했다. 두 차례에 걸친 유학은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가 새로운 세계를 향해 눈뜨는 중요한 계기였다. 최남선은 조국으로 돌아온 뒤 일본에서 활판 인쇄기를 들여와 신문관을 설립하고 1908년 ≪소년≫을 창간한다. 최남선은 학술 잡지와 서적 간행을 통해 청년들을 중심으로 한 민족 계몽에 주력한다. 한일합방을 전후로 출판 운동을 통해 활발한 민족 계몽운동을 전개하던 최남선은 1919년 최린, 송진우 등과 함께 3·1운동을 모의하고 <기미독립선언서>를 기초한다. 3·1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투옥되어 1921년 10월까지 2년 8개월간 수감 생활을 마친다. 
출옥한 최남선은 조선인의 손으로 조선학을 정립할 것을 주창하고 역사학과 민속학 연구자로 변모함으로써 1920년대를 조선학 연구자로서 살아간다. 민족 지사로서 이러한 행보는 ‘반도사’ 편찬 사업을 위해 조선총독부가 설립한 관변단체 ‘조선사편수회’에 들어가면서 반민족 친일로 돌아서고, 이후 그는 민족 반역자라는 지탄을 받게 된다.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문≫에 적극적으로 글을 기고했으며, 1936년 6월부터 21개월간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역임했고, 1939년에는 만주국의 건국대학 교수로 부임하면서 최남선은 본격적인 친일 협력의 길로 들어선다. 1941년 일본의 침략 전쟁을 지지하는 협력 단체 ‘흥아보국단’의 준비위원과 상임위원을 지내면서 대동아공영권과 대동아전쟁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지지하는 활동을 하였다. 해방 이후 반민족행위자처벌법(1948)이 발효되고 반민특위에 의해 이광수와 더불어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지만 곧 보석으로 풀려났으며, 반민특위가 지지부진해지면서 최남선의 친일 행위에 대한 사법적 판단은 일단락된다. 한국전쟁 시기에 해군전사편찬위원회에서 일했고 휴전 후 서울시 시사편찬위원회 고문을 지냈으며 육군대학에서 한국사를 강의했다. 1955년 뇌일혈로 쓰러져 1957년 10월 10일 향년 69세로 별세했다. 

목차

목차
제1부 해양
해상대한사
1100년 전의 동방 해상왕 신라 청해진 대사 장보고
한국해양사 서문
제2부 영토 분쟁
울릉도와 독도
독도 문제와 나
간도와 조선인
제3부 지리
조선의 산수
부록
해제
최남?선 한국학 총서를 내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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