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구간

1차 세계대전 - 두레아이들 교양서 6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

원제 : THE WAR TO END ALL WARS: WORLD WAR Ⅰ
시리즈 : 두레아이들 교양서 [8]

러셀 프리드먼 저 | 강미경 역 | 두레아이들 | 2013년 09월

미리보기 북트리

정가
$24.00
판매가
$13.20 (45%↓) 최저가 보상
적립금
$0.26 (2%P)
출고예상일
2026년 10월 08일 수령예상일 안내
북카트 담기 바로구매하기 위시리스트담기

평점 -  ·  리뷰 0

리뷰 쓰기

ISBN : 9788991550483 / 230쪽 188 x 240 (㎜)

이 상품에 궁금하신점이 있으세요? 1:1상담문의

추천inside
Adobe Flash Player 가져오기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

아래의 도서와 구매하시면 이 도서들의 적립금을 즉시적용해 드립니다.

  • 15,300
  • 15,120
  • 19,800
  • 11,700

책 소개

출판사 리뷰

1차 세계대전은 왜 일어났는가?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부터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기 전까지 유럽은 평화를 유지해오고 있었다. 나라들 간의 갈등은 회담과 협상으로 해결했다. 하지만 1870년대 들어서면서 신생국 독일이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를 상대로 벌인 전쟁에서 승리하고 이웃 나라들과 경쟁에 뛰어들면서 평화에 균열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또한 유럽 열강들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서로 지원을 약속하는 형태의 복잡한 군사 동맹을 맺는데, 대표적인 것이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와 이탈리아의 삼국동맹과, 프랑스와 영국과 러시아의 삼국협상이다. 이러한 동맹들은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이렇듯 서로 편이 갈리면서 유럽 국가들은 군비 경쟁에 열을 올린다. 군사 우위를 통해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유례없이 대규모로 육군과 해군을 모집하고, 최신 무기를 모아들이고, 국경 지역에 더 넓고 더 막강한 요새를 지었다. 이런 와중에 세르비아 인들은 터키의 지배에 몇 세기 넘게 저항하다가 1878년 마침내 독립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국경이 붙어 있는 세르비아 왕국을 위협으로 여기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1908년 인구의 대부분이 세르비아 인으로 구성된 보스니아를 강제로 합병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에 러시아는 곧바로 발칸 반도 내 슬라브 민족의 힘을 강화하기 위한 지원을 확대하게 되고, 이는 1912~13년 두 차례에 걸쳐 발칸 전쟁이 벌어지는 결과로 이어졌다(물론 1차 발칸 전쟁은 발칸 동맹국들과 투르크 제국, 2차 발칸 전쟁은 불가리아와 다른 발칸 동맹국들 간에 벌어진 전쟁임). 이후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로 변해 버린 발칸 반도에 1914년 세르비아계 보스니아 청년이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암살하면서 불씨를 던진 것이다. 유럽 열강들끼리 경쟁적으로 맺은 군사동맹과 1910년대에 본격화된 발칸 반도의 민족적이고 정치적인 갈등, 오스트리아의 보스니아 합병, 프랑스와 러시아의 야망, 신생 제국주의 세력의 도전으로 인한 영국의 불안, 여기에 독일의 극단적 민족주의와 안보 위협에 대한 불안감이 더해져, 1918년 7월 23일 오스트리아의 세르비아에 대한 전쟁 선포를 시작으로 유럽은 걷잡을 수 없는 불길에 휩싸이게 된다. “거의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고, 또 원하지도 않았던 전쟁에 유럽 전체가 뛰어들었”고, 이후 “유럽은 논리와 상식을 저버린 채 재앙으로 치달았다.” 현대식 무기로 대량 살상을 벌인 세계 최초의 전면전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당시의 군대 모습은 나폴레옹이나 카이사르, 알렉산드로스 시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4년 동안 치열한 전투를 치르는 동안 참전국들은 자신들이 가진 과학과 기술을 모두 동원해서 신무기를 개발하거나 기존의 무기를 발전시켰고, 그 결과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전쟁터의 모습이 전쟁 초기와는 완전히 달라졌다. 얼마 전 시리아 내전에서 치명적인 독가스인 ‘사린 가스’가 사용되어 1천 명이 넘게 죽은 것으로 알려져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 가스는 독성이 청산가리의 500배에 이르는 최악의 신경가스라고 알려져 있다. 이런 치명적인 독가스는 언제 발명되었을까? 바로 1차 세계대전이다. 인류의 식량난을 해결한 공을 인정받아 훗날 노벨화학상을 받은 독일의 유대인 화학자이자 ‘독가스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프리츠 하버(Fritz Haber, 1868~1934)가 만든 염소 가스가 1차 세계대전 당시 처음 전쟁에 사용된 것이다. 물론 이후에 방독면이 개발되고 또 가스가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은 탓에 독가스가 전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적은 없지만, 그래도 독가스 공격은 수만 명을 죽음에 이르게 하거나 시력을 앗아가거나 불구로 만들었다. 이러한 끔찍한 결과 때문에 전쟁이 끝나고 대부분의 나라들은 독가스와 세균을 퍼뜨리는 무기 사용을 금지하는 제네바 의정서에 서명하게 된다. 독가스뿐만 아니라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당시에는 ‘보잘것없고 신기한 발명품’에 불과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에서 폭탄을 투하할 수 있게 되면서 새로운 공포를 몰고 온 비행기, 영국군이 서부 전선에서의 교착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비밀리에 발명한 ‘신무기’인 탱크(당시는 장갑차), 1분에 최대 600발까지 쏠 수 있는 기관총, 참호를 빈틈없이 보호해준 ‘의외의 발명품’ 가시 철조망, 1918년 7월 7일에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항공모함, 비록 효과는 제한적이지만 끔찍한 무기인 화염방사기 등이 모두 1차 세계대전 당시 발명되거나 상용화된 현대식 무기들이다. 이전의 전쟁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이런 엄청난 화력을 갖춘 신무기가 전쟁에 투입되었기에 1차 세계대전의 피해와 충격이 더욱 컸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끔찍한 전쟁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유럽의 지도를 새로 그리다 오스트리아(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보통 오스트리아라고 부름)와 세르비아의 갈등으로 시작되어 4년 동안 계속된 1차 세계대전은 1918년 불가리아(9월 29일)의 항복을 시작으로 터키(10월 30일), 오스트리아(11월 3일), 그리고 마지막으로 독일(11월 11일)이 차례로 항복을 뜻하는 정전 협정에 서명하면서 연합군의 승리로 막을 내린다. 전쟁의 결과는 유럽을 여러모로 바꾸어 놓았다. 먼저 독일은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무장을 해제하는 것은 물론, 외국 식민지를 양도하고, 연합국이 입은 피해에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해야 했으며, 알자스-로렌 지방을 프랑스에 다시 내주어야 했다. 아울러 벨기에와 새로 독립한 폴란드 같은 이웃 나라들뿐만 아니라 연합국 정치인들이 유럽의 지도를 다시 그리면서 탄생한 신생국들에도 큼지막한 덩어리의 땅을 떼어줘야 했다. 그런가 하면 중동에서는 영국군에 패배를 거듭하던 터키의 몰락으로 7세기의 역사를 자랑하던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여러 개의 나라로 쪼개지면서 합스부르크 제국도 막을 내렸다. 특히 “오스만 제국의 몰락으로 터키의 지배에서 벗어난 아랍은 둘로 쪼개져 각각 영국과 프랑스의 영향권 아래로 들어갔다. 프랑스는 레바논과 시리아를 차지했고, 영국은 팔레스타인을 통치하면서 유럽의 유대인을 이주시키는 한편, 이라크(이전의 메소포타미아)라는 새로운 꼭두각시 왕국을 세워 미래 세대에 물려줄 불화와 갈등의 씨앗을 심었다.” 베르사유 조약, 그리고 2차 세계대전 1차 세계대전을 공식적으로 끝낸 조약인 ‘베르사유 조약’(1918년 6월 28일, 베르사유 궁정의 ‘거울의 방’에서 체결)은 전쟁 책임을 오로지 그리고 전적으로 독일에 있다고 못 박으며, 패전국 독일에 가혹한 강화 조건을 부과했다. 당시 독일과 독일의 동맹국들은 협상에 참여하지 못했기에 서명을 거부했지만 이미 그들에게는 힘이 없었다. 하지만 저자는 이 조약이 어느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한 타협이었다고 평가한다. 프랑스 육군 원수 페르디낭 포슈는 이 조약을 두고 “이것은 평화가 아니다. 이것은 20년 동안의 휴전일 뿐이다.”라고 말했으며, 영국 수상 로이드 조지도 ‘끊임없이 분노를 자극해’ 독일인들 사이에 적의를 부추길지도 모른다고 염려하며 “25년 뒤 우리는 또 한 번의 세계대전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포슈와 로이드 조지의 예견은 그대로 들어맞아 20년 뒤인 1939년 9월, 유럽은 ‘2차 세계대전’이라는 더 끔찍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오늘날 역사학자들 대부분은 베르사유 조약이 2차 세계대전의 무대를 마련했다는 데 동의한다. 평화 조건은 독일인들에게 쉽게 가시지 않는 원한을 심었다. 즉, 많은 동포들이 다른 나라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는 사실에 분개하고, 지불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막대한 배상 요구도 부당하다고 생각했으며, 조약 체결 과정에서 독일에는 어떤 발언권조차 주지 않았다는 사실도 부당하다고 여겼다. 독일의 원한이 갈수록 곪아가던 1930년대 초반에 불황이 닥치자 독일인들은 이 경제 재앙을 조약의 요구 탓으로 돌렸다. 많은 사람들이 나치당과 그 지도자인 히틀러한테로 돌아섰다. 히틀러는 평화 조약을 비난하면서 잃어버린 독일 영토를 되찾고 군사력도 예전대로 돌려놓겠다고 약속했다. 1차 세계대전 때의 막대한 희생과 끔찍한 유혈 사태를 다시 겪고 싶지 않던 주변국들이 독일에 유화 정책을 펴는 사이에 히틀러는 군사력을 회복하고, 1939년 9월 마침내 폴란드를 침공해 1차 세계대전에서 참패한 지 20년 만에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접기

저자 소개

1929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어린이들을 위한 책의 저자이자 논픽션 베스트셀러 작가로 유명하다. AP 통신 기자 출신이며, 한국 전쟁 때에는 제2보병사단의 일원으로 참전하기도 했다. 1988년에 『링컨(Lincoln: A Photobiography)』으로 뉴베리 상을 받으며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이후 『엘리너 루스벨트(Eleanor Roosevelt)』, 『라이트 형제(The Wright Brothers)』, 『매리언 앤더슨(Marian Anderson)』 등으로 뉴베리 명예 상을 받았다. 1998년에는 아동 문학에 평생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로라 잉걸스 와일더 상(Laura Ingalls Wilder Medal)을 비롯해 국립인문학훈장, 보스턴 글로브-혼 북 상, 오르비스 픽투스 상, 시버트 상, 메이힐 아버스노트 상 등 아동용 논픽션 작가에게 주는 상은 거의 모두 받았다. 프리드먼이 지금까지 어린 독자들을 위해 쓴 책은 그 밖에도 『마르코 폴로의 모험』, 『아메리카를 누가 처음 발견했을까?』, 『대공황 시절의 어린이들』, 『마사 그레이엄』,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친말의 삶과 죽음』 등 50종이 넘는다. 현재 뉴욕 시에

역자 소개

1964년 제주 출생으로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했다.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며 인문교양서를 비롯해 영어권의 다양한 양서들을 우리말로 옮겼다. 번역서로는 《유혹의 기술》,《내가 만난 희귀 동물》, 《나의 그림 읽기》, 《동물의 영혼》, 《나무 위의 여자》 등 다수가 있다.

책 속에서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현대전의 공포와 그 뒤에 따라오는 고통과 슬픔을 담아내려는 시와 소설과 회고록과 노래와 연극과 영화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훗날 영국 수상의 자리에 오르게 되는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는 그 전쟁을 단 한 번만이라도 솔직하고 정확한 언어로 표현해 낼 수 있다면 전 세계 사람들이 전쟁 중단을 요구하고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9쪽)

 

“독일 황제 빌헬름은 승리를 자신하며 전쟁터로 출발하는 군대에 ‘낙엽이 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의 병사들은 파리를 점령해 보무도 당당하게 샹젤리제 거리를 행진할 꿈에 부풀었다. 프랑스 군대는 프랑스 군대대로 의기양양하게 베를린에 입성해 그 도시의 유명한 운테덴린덴 거리를 보란 듯이 행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41-42쪽)

 

“인명 피해 말고도 묘비와 다름없는 조그만 석조 기념비를 통해서만 기억될 뿐 지도상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린 도시와 마을도 한두 곳이 아니었다. 비옥하던 그 수많은 농토가 포탄에 맞고 불에 타 온통 곰보 자국투성이의 황무지로 변했다. 유럽 경제는 완전히 엉망이 되고 말았다. 나아가 전쟁은 분노라는 씁쓸한 유산과 복수의 꿈을 남겼다. 불행과 고통의 4년이 끝나고 유럽 어딜 가나 사람들은 이 전쟁이 ‘모든 전쟁을 끝내는 전쟁’이 되기를 희망하며 기도했고, 또 어느 정도는 그렇게 믿었다.”(208-209쪽)

 

“많은 독일인들이 베르사유 조약 조항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 1936년 히틀러는 베르사유 조약을 어기고 비무장 지대로 정해 놓은 독일 라인 지방으로 군대를 보냈다. 프랑스와 영국은 그를 저지하기 위한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 뒤에도 조약 위반이 줄줄이 꼬리를 물었다.… 프랑스와 영국은 아직도 1차 세계대전 때의 막대한 희생과 끔찍한 기억에 사로잡힌 채 그런 유혈 사태를 두 번 다시는 겪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치 독일의 요구에 저항하기보다 유화 정책을 폈다.… 1939년 9월, 히틀러는 폴란드를 침공해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참패한 지 20년 만에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216-219쪽)

 

목차

목차
대전쟁
01장 사라예보에서 벌어진 살인
02장 군비 경쟁
03장 베를린으로! 파리로!
04장 세계 역사에서 가장 잔인한 8월
05장 막다른 골목
06장 죽음과 파괴의 과학기술
07장 참호-삶과 죽음의 현장
08장 희망이 사라지다
09장 베르? 전투
10장 솜 전투
11장 바다를 점령하라!
12장 폭동, 혁명, 그리고 군대의 붕괴
13장 \"라파예트, 우리가 왔소!\" - 미국이 전쟁에 뛰어들다
14장 마지막 공격과 제국의 몰락
15장 빛을 잃어 가는 평화
참고 문헌
감사의 글ㆍ사진 출처
찾아보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