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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3706626 / 308쪽 145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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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40여 년간 한국을 연구해 온 일본 인류학자가 그동안 한국에서 겪은 일들을 쓴 책. 학자로서 논문에서 이야기하지 못했던, 한국의 농촌과 도시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며 얻은 소중한 깨달음과 느낌들을 모았다. 지은이가 마을 사람들과 주막에서 한담을 나누고, 젊은이들의 소풍에 따라가고, 마을회의나 공동작업에 함께 참여하는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한 편의 짧은 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출판사 리뷰
한국 연구의 제1세대 외국인 인류학자와 한국의 첫 만남
1969년 8월, 도쿄대를 졸업한 한 일본인 남학생이 유네스코의 대학생 상호방문 프로그램에 참여해 한국을 방문했다. 부산으로 들어와 울산, 경주, 대구, 대전, 그리고 서울까지 약 보름 동안 한국을 여행했다. 버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농촌 풍경, 각지 사람들과 나눈 대화, 또래 한국 학생들과의 만남. 호기심에서 시작한 한국 방문은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귀국할 무렵에는 한국 연구를 전공으로 삼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인생의 방향이 정해진 결정적인 16일이었다.
1974년 2월, 호기심과 의욕이 충만하던 대학원생은 현지조사를 하기 위해 전라도의 작은 농촌 마을을 찾아갔다. 본격적인 인류학자로서 내딛은 첫걸음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1년간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살았다. 초보적인 회화만 간신히 할 줄 아는 낯선 일본인은 한국의 시골 마을에서 무사히 지낼 수 있었을까?
모든 것이 서툴렀던 그에게 한국어 실전 특훈을 해준 이들은 거의 매일 밤 그의 방에 놀러와 준 마을 청년들. 그들과 언덕에서 한담을 나누고, 함께 소풍을 가고, 같이 술잔을 나누며 그의 한국어 실력은 나날이 올라갔고, 더불어 한국에 대한 이해도 깊어 갔다. 그로부터 40여 년 동안 이어진 한국 연구의 길이 그렇게 열렸다.
개성 있는 한국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얻은 깨달음
한국을 오고 가며 논문을 쓸 때마다 그의 마음에는 늘 아쉬움이 남았다. 연구논문을 실제로 지탱해주는 자료는 각기 개성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얻어지지만, 정작 그들의 서로 다른 얼굴과 개성은 논문에서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비록 연구논문에는 실을 수 없었지만, 어떻게 해서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 두고 싶었다. 이 책은 바로 그 같은 바람의 소산이다.
<시마 상, 한국 길을 걷다>는 지은이가 1974년부터 2004년까지 인류학자로서 한국의 농촌과 도시를 돌아다니며 얻은 깨달음과 느낌을 모은 문화적 에세이다.
제1부에서는 1974년부터 1984년까지 한국에서 겪었던 일들 중 인상 깊었던 일화들을 엮었다. 전라도의 청산동과 경상도의 상월동(모두 가명이다)에서 각각 1년씩 생활했을 때의 이야기, 조사차 한국 각지를 돌아다니던 중에 겪었던 인상 깊은 장면들을 은근히 재치 있게, 때로는 통찰력 있는 시선으로 묘사해 낸다. 특히 청산동과 상월동의 이야기는 농촌과 농민에게 내재된 정감을 해학 어린 문체로 표현해낸 이문구의 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를 준다. 옮긴이가 실감 나게 번역한 마을 사람들의 사투리를 읽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그들의 대화를 입으로 중얼거리게 될지도 모른다.
제2부에서는 그 뒤 20년간 한국을 오고 가는 동안 보고 생각해 온 것들을 정리했다. 족보와 호적을 연구할 때의 에피소드와 느낌, 여러 도시와 국립중앙도서관, 노점 등 다양한 곳에서 만난 사람들, 농촌 마을이 도시로 변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가진 소회 등을 기록했다.
여행과도 같았던 한국 연구 이야기
보통 사람들은 무언가를 연구하는 학자는 정해진 목표를 향해 잘 짜인 계획에 따라 나아갈 것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지은이는 그동안 자신이 한 일 가운데 미리 계획을 짜고 준비해서 간 것은 맨 처음에 한 청산동 조사 한 번뿐이었다고 고백한다. 주제를 정해서 현장에 갔다가도 그곳에서 주제가 엎어지거나 다른 것으로 바뀌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마치 잔뜩 계획을 짜서 떠났지만 정작 현지에서는 계획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배낭여행 같다고나 할까. 지은이에게 한국 연구는 그런 여행과도 같았다. 그리고 이제 그는 내 한국 여행은 이러했다고, 그 이야기를 한번 들어 주십사 하고 조용히 우리에게 작은 책 한 권을 내밀고 있다.
예전에 ‘효도’에 대해서 성추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효도란 게 뭣일까이? 되도록 부모님이 바라시는 걸 해드리는 것이 아닐까이? 내 생각에 쪼까 억지라고 생각되더라도, 고게 부모님이 바라시는 거믄 내 생각을 누르고라도 부모님 바라는 대로 해드려야제. 아, 자기를 버리고, 마음으로부터 부모의 소원을 들어 드려서 부모의 마음이 흡족하게코롬 해드리는 게 진짜 효도가 아인가?”
이건 마치 “임금이 비록 임금답지 못하다 하더라도 신하는 신하됨을 끝내 포기해서는 안 된다.”가 아닌가? 나랑 동갑인 성추의 입에서 나온 이 말에 나는 내심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족보: 역사를 짊어진 아이덴티티’ 중에서
무료하게 재실에 앉아 있는데, 새하얀 삼베로 된 한복을 입은 어르신이 뒷짐 진 손에 지팡이를 든 채 낮은 문으로 허리를 굽히며 들어오셨다. 백발의 머리카락은 짧게 쳤지만, 길고 멋진 흰 수염이 가슴까지 늘어져 있었다. 걸음걸이에서도 완고함이 배어 나오는 듯했다. 잽싸게 담배를 끈 나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어르신은 마루에 올라와 양반다리를 하고 앉으시더니,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면서 물으셨다.
“니 누고? 처음 보는 얼굴인데.”
“예, 저는 시마(嶋)라고 합니다. 일본에서 왔습니다.”
“흠……, 일본서 왔다꼬? 담배를 끄는 걸 보이, 한국 예절을 잊아뿐 건 아니구만. 그란데, 누구 자식이고?”
“저어, 일본 사람입니다.”
“그래? 우리 일가 아이가? 성은 뭐꼬?”
“‘시마’입니다.”
“심(沈) 가라꼬? 이 동네에는 심 가는 없을 낀데. 조상 성묘라도 왔나?”
“‘심’이 아니고 ‘시마’입니다. 한국 사람이 아니고 일본 사람입니다.”
“일본에도 성은 있겠지. 짐승이 아닌 다음에사.”
“‘시마’라는 게 일본의 성입니다.”
“허어, 일본 간 지는 몇 대나 됐노? 성을 묻고 있지 않나? 왜놈 성(일본식 성)으로 갈았다 캐도, 잊아 뿌지는 않았겠제. 성을 잊으면 조상님께 면목이 없제.”
처음 뵈었을 때의 이 오해는 끝내 바로잡히지 않았다. 어르신은 내가 일본 사람이라는 것을 끝까지 이해해 주지 않으셨던 것이다.
—‘난세를 살았다: 상봉 어른, 85세’ 중에서
다시 며칠 뒤. 우리는 충청남도 남부 보은읍 근처의 마을을 찾았다. 아침저녁으로 한 대씩 있는 버스도 마을에서 몇 킬로미터 앞의 큰길을 지나갈 뿐인 산골 동네로, 여든 가까운 노부부가 두 간짜리 작은 집에 살고 계셨다. 조부가 여기로 이사를 왔지만, 마을에는 일가친척도 없다고 하셨다. 가난 때문에 이주한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이제, 외아들도 서울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찾아뵌 뜻을 듣고 어르신이 꺼내 오신 족보는 붓글씨로 직접 쓴 것이었다. 물론 그 일가 전체의 족보가 아니라 자기와 관련된 지파 부분만이지만, 그것만 해도 두께가 4센티미터나 되었다. 베껴 쓰는 것도 큰일이었으리라.
“일가헌티 족보를 빌려다가 우리 애가 일일이 베낀 거유. 한자랑 붓글씨는 내가 갈쳤지유. 암만 가난해두 교육은 제대로 시켜야 허니께.”
그렇게 말씀하시며 어르신은 자랑스러운 듯 미소를 지으셨다.
“촌동네라 대접할 거이 암것두 읎는디, 그려두 요기라두 허구 가셔유.”
허리가 꼬부라진 할머니가 들고 오신 상에는 인스턴트 라면에 반 되 남짓한 막걸리가 곁들여져 있었다. 이토록 기억에 남는 라면은 두 번 다시 맛보지 못했다.
—‘한국의 손님접대: 잊지 못한 만남들’ 중에서
이문화 이해는 해석이다. 하지만 단지 해석일 뿐이라는 견해에 나는 찬성하지 않는다. 해석을 불러일으킨 사건은 엄연히 존재한다. 다만, 사건이 사건으로 관찰자의 눈에 포착되는 순간, 거기에는 이해와 오해가 뒤섞인 의미 부여의 필터가 개입된다는 것도 분명하다. 그러니까 같은 문화 안에서도 견해의 차이가 일상다반사로 일어나는 것이다.
의도적 행위로서의 이문화 이해는, 특수하고 개별적인 현상을 발판으로 삼아 그것들을 해석하고 추상화해서, 일반론적으로 타당해 보이는 전체상을 끌어내려는 시도라고 하겠다. 그러나 추상화란, 실은 몇 겹으로 의미가 부여된 필터를 통과한 ‘사실’에서마저도 더 멀어져 가는 과정이다. 그런 가운데 만들어진 전체상이란, 노골적으로 왜곡된 것이 아니더라도, 관찰자의 눈에 비친 부분만이 유독 확대된 그림일 것이다.
—‘오해와 이해: 이문화(異文化) 사이에서’ 중에서
나 같은 외국인한테 민속촌은 근대화되기 이전의 한국의 생활풍속을 손쉽게 볼 수 있는 장소다. 현대화된 한국의 도시에서 자란 젊은이들한테도 일상생활에서 사라져버린 과거 한국의 풍속을 학습하는 장이 된 듯하다.
하지만 농촌에서 단체여행을 가는 사람들도 민속촌을 관광 코스에 넣어서 구경하러 온다. 이 사람들로서는 바로 얼마 전까지 자기들이 쓰던 도구며 사는 모습이 거기 전시되어 있는 셈이다. “아, 저랬지. 맞아, 이랬지.” 하고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한테 해설은 무용지물이다. 어느 농가에 들어선 두 명의 여성이 반쯤 재미로 공이를 집어 들고 절구를 찧기 시작했을 때, 전시품과 구경꾼 사이의 거리는 사라지고 없었다.
—‘융성하는 전통: 1992년’ 중에서
한국의 독자들에게
들어가며
제1부 만남: 한국 농촌에서 시작된 여행길
청산동(靑山洞): 1974∼1975년
1. 현수의 리어카: 장래를 고민하는 청년
2. ‘남녀칠세부동석’이지만……: ‘유교’ 윤리의 지속과 변용
3. 술은 어른 앞에서 배워라: 장유유서(長幼有序)라는 것
4. 족보: 역사를 짊어진 아이덴티티
5. 윤택이의 세계: 역사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6. 연애결혼: 부모의 눈, 남들의 눈
7. 발전과 농촌: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8. 임금교섭: 상호의존이 지탱하는 생활의 장
상월동(上月洞): 1980∼1981년
9. 참외보다 큰 것: ‘농한기’가 없어진 마을
10. 상월동의 새마을운동: ‘연대’보다 ‘이윤 계산’
11. 난세(亂世)를 살았다: 상봉 어른, 85세
12. 다방의 역할: 커뮤니케이션의 장으로서의 찻집
여행길에서
13. 한국의 손님 접대: 잊지 못할 만남들
14. 양반이라는 것: 전통과 사회적 입장
15. 나 좀 봅시다: 관철되는 논리, 뒤얽히는 현상
16. 오해와 이해: 이문화(異文化) 사이에서
제2부 해후: 전통과 현대의 틈바구니에서
길을 둘러서 역사로
17. 전환점: 다시 족보와 마주치다
18. 호적: 역사와의 또 한 번의 만남
19. 융성하는 전통: 1992년
20. 고전운영실의 사람들
21. 조암(租巖)을 찾아서
도시의 현재: 1996∼2004년
22. 도시 개발과 씨족집단의 현재
23. 활성화되는 문중의 전통
24. 노상(路上)으로 나가다
25. 노점상가의 풍경
26. 단결
27. 오가는 길모퉁이
28. 생각지도 않았던 해후
종장: 30년 세월을 건너
맺으며
옮긴이의 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