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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베스트셀러 작가 앤드류 니키포룩, 석유와 그 주인들이 만들어낸 세상의 진실을 말하다! “끝없는 성장이라는 미망에서 깨어나야만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놀라운 평론!” -로널드 라이트 《진보의 소사short history of progress》 저자 “우리 사회를 압도하고 있는 석유 의존성은 주로 경제적인 관점에서 논의되어왔다. 하지만 이 책은 프로메테우스적인 석유산업의 위업을 윤리적 렌즈로 살펴본다. 그 결과는 충격적인 동시에 깊은 깨달음을 준다. 석유를 일용할 양식으로 삼는 모든 사람들이 더 늦기 전에 이 책을 읽... 베스트셀러 작가 앤드류 니키포룩, 석유와 그 주인들이 만들어낸 세상의 진실을 말하다! “끝없는 성장이라는 미망에서 깨어나야만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놀라운 평론!” -로널드 라이트 《진보의 소사short history of progress》 저자 “우리 사회를 압도하고 있는 석유 의존성은 주로 경제적인 관점에서 논의되어왔다. 하지만 이 책은 프로메테우스적인 석유산업의 위업을 윤리적 렌즈로 살펴본다. 그 결과는 충격적인 동시에 깊은 깨달음을 준다. 석유를 일용할 양식으로 삼는 모든 사람들이 더 늦기 전에 이 책을 읽어야 한다.” -리처드 하인버그 《제로 성장의 시대가 온다The End of growth》 저자 “앤드류 니키포룩의 글은 강력한 메타포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면서 독자를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 그는 우리의 석유 종속성을 현대판 노예제도라고 적고, 이제는 지구촌 단위에서 노예제도 폐지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말한다.” -타라스 그레스코 《손잡이를 잡고 선 승객Straphanger》 저자 책의 개요 ♠ “지금 우리는 일인당 200명이 넘는 에너지 노예를 부리며 산다. 그 착한 노예들이 내일도 고분고분 내 시중을 들 것이라 믿는가?” 2009년, 네 개의 침실이 딸린 영국 한 가정을 대상으로 불온한 에너지 실험이 진행되었다. 평온한 일요일 아침. 가족 구성원 4인이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전원 스위치를 올리는 순간, 바로 옆집에서 인간 발전소가 작동했다. 한 무리의 건장한 자원자들이 자전거 페달을 돌려 옆집이 필요로 하는 에너지를 생산해낸 것이다. 토스트 두 장을 굽기 위해 11명이 페달을 돌려야 했고, 오븐을 데우는 데에만 24명의 중단 없는 노역이 요구됐다. 그날 하루가 저물 무렵, 아무것도 모르던 현대판 노예 소유주들은 자기 가족의 소소한 휴일을 떠받치느라 녹초가 돼버린 사람들을 BBC 방송 팀에게 소개받고는 아연실색했다. 그날 자전거 페달을 돌렸던 사람들은 일을 마치자마자 쓰러져버렸고, 그 중 몇 명은 며칠 동안 걷지도 못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따로 있었다. 노예를 자처한 사람들이 그날 음식으로 섭취한 에너지는 페달 밟기로 얻은 에너지보다 훨씬 많았다. 베스트셀러 작가 앤드류 니키포룩, ‘에너지 노예’사회의 위기를 조망하다 지금 우리는 로마시대 황제보다 사치스럽게 산다. 엄밀히 말해 매우 검소한 도시인조차 과거 부유한 귀족이 부리던 수보다 더 많은 에너지 노예를 거느린다. 가전제품과 자동차, 반짝이는 스마트폰이 현대인의 삶에 행사하는 위력은 과거 왕의 궁전이나 사탕수수 농장에 예속됐던 인간 노예들의 노동력을 한참 웃돈다. 지각 있는 귀족과 농장주들은 적어도 족쇄 채운 인간의 땀에 의지하는 현실을 두고 가책이라도 느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 많은 기계 노예들이 어디서 왔는지 숙고하지 않는다. 그러다 누군가 이 하인들에 관해 진지한 이야기라도 꺼낼라 치면 불뚝성을 낸다. 이 책 《에너지 노예, 그 반란의 시작》은 이렇듯 완강하고 둔감한 세상의 시선을 전복시켜 더 늦기 전에 지속가능한 세계를 구축해보겠다는 열정으로 써내려간 역작이다. 독보적이고 정확한 세계 해석으로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내며 서구사회를 각성시킨 앤드류 니키포룩. 그가 이번에 주목한 대상은 수백억의 ‘에너지 노예’에 의해 굴러가는 위기의 현대사회다. 모두가 짐작하다시피, 현대인의 일상을 떠받치는 기계 노예의 든든한 젖줄은 석탄과 석유로 대표되는 화석연료다. 니키포룩은 이들 화석연료 발견으로부터 화려하게 꽃피운 기계문명과 그것이 인류 정신 및 사고체계를 왜곡시킨 과정, 그리고 끝없는 성장신화에 갇혀버린 현대 사회의 위태로운 풍경을 정치적?경제적?문화적?윤리적 렌즈로 다양하게 조망한다. 그리하여 주류의 개발논리나 편협한 환경논리 중 하나에 손쉽게 편승했던 독자를 전혀 낯선 인식의 세계로 인도한다. 인간 노예에서 에너지 노예로… 불편한 사실이지만 인류는 오랜 세월 노예제도라는 비윤리적 문화에 기대어왔다. 고대 문명은 쇠사슬을 채운 인간의 근력에 의존해 작물을 키우고 황제가 입을 옷을 마련하고 도시를 건설했다. 로마제국 멸망과 함께 수그러들었던 이 제도는 근대 패권주의 문명과 함께 부활했다. 19세기 초엽, 노예무역은 지구상에서 가장 수익이 많이 나는 사업 중 하나였다. 장구한 시간 동안 인간사회를 지탱했던 야만적인 제도는 1850년 마침내 폐지되었지만 진실을 말하자면, 때마침 석탄과 석유로 가동되는 수백억 무생물 노예가 등장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940년 미래학자 벅민스터 풀러에 의해 명명된‘에너지 노예’들은 이제껏 보지 못한 다재다능한 일꾼이었다. 늙지도 지치지도 않는 이 착한 존재들은 섭씨 2,760도의 작업환경도 문제없고 잠을 자지 않아도 되며 1인치의 1, 즉 0.254밀리미터의 오차 범위 안에 있는 작업 결과물을 내놓았다. 100만 배율 확대도 가능하고 거대한 압력도 너끈히 견디고 초당 30만 킬로미터의 민첩성을 발휘하며 일하기도 했다. 단 하나, 그들에게 필요한 연료만 공급하면 그만이었다. 기실 화석연료는 자연의 풍화와 태양 에너지가 오랜 세월 힘을 합쳐 지구 깊숙한 곳에 저장해둔 보물이었다. 운 좋게도 석탄을 태워 나오는 열로 기계 돌리는 법을 터득한 유럽은 근대화에 가속도를 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독보적 근면성으로 신대륙을 일구던 미합중국의 개척자 중 몇 명이 땅속에서 뿜어올린 냄새나는 검은 액체의 놀라운 용도를 간파해냈다. 바야흐로 석유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검소한 침례교도로 숫자를 다루는 재주가 비상했던 존 록펠러는 석유를 이용해 미국 경제에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정착시켰다. 경쟁자를 짓밟고, 독과점을 구축하고, 유관사업을 싹쓸이하고, 정책입안자들에게 뒷돈을 대는 록펠러의 방식은 후세 기업인들의 기준이 되었다. 석유, 인류의 비아그라가 되다 그 누구도 석유와 석유 개척자들의 기세를 막을 수 없었다. 연료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발전소가 곳곳에 세워지고 철도망에 이어 쭉쭉 뻗은 고속도로가 세상의 풍경을 바꿔놓았다. 철철 흘러넘치는 석유를 이용해 20세기 마이카 시대를 활짝 열어젖힌 주인공은 헨리 포드였다. 이전까지 주류 학문으로 인정받지도 못했던 과학계의 별들은 앞다퉈 석유를 먹이로 하는 온갖 발명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석유는 결코 무한정한 자원이 아님을, 무분별한 자원 채취와 낭비야말로 후세의 몫을 절취하는 악덕임을” 경고하는 지성인들이 더러 있었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바람에 스쳐가는 딴 세상 얘기였다. 물질문명의 편리에 금세 길들어 오만불손해진 사람들은 기하급수적인 성장이 정상상태이고, 사리 추구는 늘 이성적이며, 자본이 물적 자원과 단절되어 있다는 망상을 진실로 믿는 단계에 이르렀다. 역사학자 J. R. 맥닐에 따르면 20세기는 1900년 이전 1,000년 동안 사용한 에너지의 10배를 쓴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정치인, 기업가들과 손잡고 가당찮은 흐름을 강화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한 무리의 지식인들이 있었으니 경제학을 “부의 학문”이라고 규정지은 뒤 광란의 열풍에 그럴듯한 논리를 제공한 일단의 경제학자들이었다. 자본가를 증오하면서도 정작 값싼 에너지 노예라는 요소를 주목하지 못한 채 눈앞의 잉여에만 쌍심지를 켜기는 카를 마르크스도 마찬가지였다. 니키포룩은 근 100년 동안 탄화수소 노예가 만들어낸 잉여 분배를 두고 핏대를 높인 자본주의자와 공산주의자들을 일컬어, 마치 상속유산을 더 갖겠다고 싸우는 못난이 형제와 닮은 모습이었다고 일갈한다. 가차없이 손절되는 생명들, 회복불가능한 지구 생태계 석유는 사람들의 의
지금 우리 대다수는 화석연료 사용이 도덕적으로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17세기 영국 상인들도 대서양 노예무역에 대해 그렇게 생각했다. 로마인들이 인간 노예를 바라보는 방식 역시 다를 바 없었다. -10쪽
영국의 사회비평가 G. K. 체스터턴은 1920년대에 이 새로운 물질만능주의 왕국을 방문했다가 그 경솔함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기적이고 선정적인 자기선전”을 열정적으로 반기는 풍경을 보고 어처구니없어 했다. 체스터턴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과거 새로운 땅을 개척하면서 영웅적으로 싸우는 사람이라고 믿었던 사람들 상당수가 잘못된 신조나 특정 유행에 대책 없이 빠져들었다. 그들은 성공이라는 혐오스러운 이름으로 불리는 이상을 좇고 있다.” -72쪽
“화석연료는 은행에 예치한 자본과 비슷하다. 신중하고 책임감 있는 부모라면 최대한 많은 유산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그 자본을 절약해서 사용할 것이지만,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부모는 방종한 생활을 하면서 자본을 탕진하고 자손들이 어떻게 살아갈지는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85쪽
부유한 이웃이 사는 도시에서는 거식증에 걸려 몸무게가 50킬로그램에 불과한 여자가 500그램짜리 체중조절 음료 한 상자를 사기 위해 50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자동차를 몰고다니는 걸 볼 수 있다. -96쪽
현재 북미인은 신용대출에 의지해서 에너지 노예를 부양하고 다른 에너지 노예가 생산한 불필요한 상품을 구매한다. “모두가 빚을 지고 있다. 그래서 본질적로 보자면 빚을 갚기 위해 원하지도 않는 일을 하면서 고용주에게 자신을 대여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마법처럼 미국으로 오게 된다면 미국 국민 대다수가 노예 상태에 있다고 결론내릴 것이다. 그에게 있어 스스로를 파는 것이나 스스로를 대여해주는 것의 차이는 관료적 형식에 따른 말장난일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대인의 대다수가 노예 상태라고 인식했을 상황을 자유라는 개념으로 가까스로 덮어놓고 있다.” -102쪽
“병충해와 기생충, 질병 그리고 기후변동과 극단적인 기상 변화가 사라지자마자 이들에 대한 저항력도 사라졌다. 흙에서 나오는 저항력과 흙에서 태어나는 생명력은 우리가 건강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흙의 저항력과 흙의 생명력을 통제하는 대가로 우리는 건강을 포기해버렸다.” 벨의 글이다. -125쪽
동시대 도시 사상가들과 달리 쾨르는 석유와 전기, 원자력 동원이 우리 사회가 겪는 어려움의 본질을 바꾸지 못할 것이라는 걸 인지했다. 오히려 문제를 심화시기만 한다고 그는 보았다. “이제 문제는 전쟁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대형’과의 전쟁이다. 실업이 문제가 아니라 대규모 실업 사태가 문제고, 탄압이 아니라 엄청난 규모의 탄압이 문제다. 예수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을 거라고 믿는 가난한 인간이 문제가 아니라 그 가난한 사람들이 불명예스러운 규모로 많아진 게 문제다.” -171쪽
조지스쿠-로젠은 무한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고 착각하는 경제학자들의 궤변에 의문을 제기했다. 천연자원 매장량 추정치가 부정확하다고 해서 그것이 곧 “자원의 무궁무진함을 증명하는 건 아니다.” 풍부하다고 믿었던 자원조차 경제적 측면에서는 접근이 용이하지 않을 수 있다. 희소성 문제는 “자원 집약적 상품을 줄이고 다른 것을 더 늘리는” 대안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을 들은 조지스쿠-로젠은 웃어버렸다. “먹을 것이 충분하지 않은데 셔츠를 더 입는다고 주린 배가 채워질 리 없다.” 영원불변의 성장이란 “모든 사람이 불멸의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말에 버금가는 거짓말이다.” -200쪽
찰스 홀은 켄트 클리트가드와 함께 결론내리기를, GDP의 5~10퍼센트인 에너지 비용을 현재 세계 경제에서 빼내면 나머지의 97퍼센트가 사라지게 된다고 했다. “에너지 추출비용만 부담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매우 운이 좋은 사람들이다. 메커니즘만 마련되었다면, 대자연은 우리에게 생산비용과 사회적 가치 그리고 대체 가치까지 모두 청구할 수 있었을 일이다. 또 에너지 가격을 전부 지불해야 한다면, 자연의 가치 하락 비용까지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연료 자체의 가치 하락은 물론이거니와 에너지를 추출하고 선적하고 사용함으로써 파괴되는 자연, 나아가 자원 효용성을 확보하기 위한 군사비용까지 계산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이런 비용을 부담하지 않는다. 만에 하나 우리의 운이 다해서 이런 비용의 지급일을 맞이하게 된다면(조만간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 경제학은 새로운 종목이 되어서 그 목표를 생산으로 다시 정한 뒤, 에너지 투자와 통화에 관해 새로운 사유를 하게 될 것이다.” -203쪽
“우리는 ‘석유 사다리’의 맨 꼭대기에 올라왔지만 이제는 어떻게든 아래로 내려가야만 한다. 완만한 하강을 하기에는 이미 늦었을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추락의 충격을 완화시켜줄 두툼한 안전매트를 만들 시간은 아직 남아 있을지 모른다.” 알레크렛의 글이다. -208쪽
엘륄의 주장에 따르면, 페니실린의 발견은 원자력 기술로 히로시마가 대대적으로 파괴된 것이나 과학적 석유 채굴로 파괴된 니제르 델타에 대한 보상이 되지 못한다. 과학기술의 유익한 영향력은 파괴적인 영향력과 따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216쪽
코트렐의 주장에 따르면 햇빛에 의존하는 저에너지 사회는 득실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인다. 산출 에너지보다 투입 에너지가 더 많아져 에너지 적자가 생기고, 에너지의 빚을 지게 되면 필연적으로 문화 붕괴를 맞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석유에 중독된 사회에서는 “이런 사실을 발견하기가 무척 어렵다.” 석유가 너무 많은 잉여를 생산해내기 때문에 대부분 사람들이 에너지에 대한 생각 자체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268쪽
우림에서 적용되는 법칙은 문명사회나 석유를 바탕으로 세워진 제국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아주 단순한 문제다. 숲은 광합성으로 만들어내는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할 수 없다. 인간의 문명 역시 태곳적 지구가 만들어준 화석연료나 태양으로부터 오는 것보다 많은 양의 에너지를 사용할 수는 없다.” -286쪽
재생에너지를 생산하려면 땅도 훨씬 많이 필요하다. 1,000메가와트 전력을 생산하는 석탄 화력발전소는 약 4평방킬로미터 면적을 차지하지만, 이만큼의 전력을 태양전지판으로 생산하려면 50평방킬로미터라는 소도시 크기의 땅이 필요하다. 바람으로 같은 양의 에너지를 생산하려면 태양열 농장보다 3배나 큰 토지가 필요할 수도 있다. 실제로 현재 세계 에너지 필요량의 3분지 1을 풍력에서 충당하려면, 0.8킬로미터 간격으로 1,300만 개의 풍력터빈 탑을 세운다고 가정했을 때 780만 평방킬로미터의 땅이 소요된다. 세계 전체 토지의 약 5퍼센트에 해당하는 면적이다. 이 메가프로젝트를 행하는 데 드는 비용만 적어도 15조 달러이다. 석유 대신 차량 연료로 사용되는 바이오연료용 곡물을 수확하려면 태양력발전소에서 만들어지는 에너지의 50퍼센트를 여기에 쏟아부어야 한다. -294쪽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흐를지라도 이번의 경고를 잊지 마라.” 그러나 석유 사슬에 포박된 일본은 테트라포드를, 그리고 석유로 만든 무생물 노예를 맹신했다. 그들은 석문의 경고를 무시했다.-318쪽
목차
프롤로그
1장 인간 노예에서 에너지 노예로… / 2장 산업시대의 증기기관차 / 3장 석유 개척자들 / 4장 새로운 예속이 시작되다 / 5장 위기에 빠진 농업을 구하라! / 6장 인류의 비아그라 / 7장 욕망의 용광로?가 된 도시 / 8장 공상과학 소설을 쓰는 경제학자들 / 9장 과학은 이미 정점을 찍었다 / 10장 롤러코스터를 타는 석유국가들 / 11장 바닥난 에너지 곳간 / 12장 석유는 우리를 행복으로 인도했는가 / 13장 에너지 노예의 배신과 일본의 붕괴
에필로그 / 참고문헌 / 찾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