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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학의 [완역 정본]

박제가 저 | 안대회 역 | 돌베개 | 2013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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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기 한문학자 안대회 교수의 손을 거쳐 최초로 완역된 [북학의] 정본 - 에디터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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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1995525 / 544쪽 158 x 2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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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최초의 원문 교감 작업을 통해 탄생한 완역 정본 『북학의』 『북학의』(北學議)는 조선의 경장(更張)을 꿈꾼 18세기 후반의 사상가 박제가(朴齊家, 1750~1805)의 저술이다. 이 책은 선진적인 중국의? 문물을 배워서 부국강병을 이루자는 주장을 담고 있다고 알려졌으나 그렇게 단순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없다. 위기에 봉착한 조선 사회의 현실에 대한 통렬한 분석과 자기부정을 통해 미래를 설계하고자한 뼈아픈 자각과 통찰의 저작이기때문이다. 『북학의』는 출간되지 않은 채 필사본으로 널리 읽혔다. 현재까지 알려진 사본의 수는 ... 최초의 원문 교감 작업을 통해 탄생한 완역 정본 『북학의』 『북학의』(北學議)는 조선의 경장(更張)을 꿈꾼 18세기 후반의 사상가 박제가(朴齊家, 1750~1805)의 저술이다. 이 책은 선진적인 중국의 문물을 배워서 부국강병을 이루자는 주장을 담고 있다고 알려졌으나 그렇게 단순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없다. 위기에 봉착한 조선 사회의 현실에 대한 통렬한 분석과 자기부정을 통해 미래를 설계하고자한 뼈아픈 자각과 통찰의 저작이기때문이다. 『북학의』는 출간되지 않은 채 필사본으로 널리 읽혔다. 현재까지 알려진 사본의 수는 대략 20여 종을 웃돈다. 비교적 조선의 대표적 글이라고 일컬어지는 『북학의』조차도 이제껏 원문 교감 작업은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 『완역 정본 북학의』는 20여 종의 사본을 교감하고 주해하는 작업을 거쳐 탄생한, 말 그대로 ‘정본’(定本)이다. 이 책의 교감과 번역, 주석 작업을 한 안대회 교수(성균관대 한문학과)는 국내는 물론 일본과 미국 등에 흩어져 있는 국외의 이본들을 모두 수집하여 교감 과정을 거쳐 정본을 만들고, 완역 작업을 이루었다. 『북학의』의 제대로 된 완역은 이 책이 최초이다. 개혁과 개방의 열린사회를 꿈꾸다! 초정 박제가의 『북학의』 『북학의』(北學議)는 이름 그대로 풀이하면 북쪽을 배우자는 논의다. 『북학의』는 결국 조선의 학자가 문화가 발달한 중국에 가서 선진문물을 배우자는 주장을 담고 있다. 실제로 『북학의』에는 “중국을 배워야 한다”(學中國)는 언급이 20번쯤 나온다. 문제 해결의 열쇠를 중국 문화와 기술의 학습으로 환원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과도한 점은 있으나 박제가는 당시 조선의 문화 수준과 기술 상태가 남에게 배우지 않고는 세계 수준에 도달할 수 없다고 보았다. 반드시 ‘중국’이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북학의』를 보면, 박제가가 배워야 할 대상으로 일본의 제도와 기술의 선진성을 여러 차례 언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보면, 박제가의 북학론은 중국 문물의 맹목적 수용을 의미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세계로 향해 문호를 열어 우리보다 나은 문화와 제도와 기술을 배워서 부국강병과 윤택한 생활을 성취하자는 것이다. 박제가는 “중국의 배하고만 통상하고 해외의 많은 나라와는 통상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것은 임시변통하는 책략에 불과하고 정론(定論)은 아니다. 국력이 조금 강성해지고 백성들의 생업이 안정을 얻은 상황에 이르면 마땅히 차례대로 다른 나라와도 통상을 맺어야 한다”(외편, 「강남 절강 상선과의 통상론」)라고 하여, 중국과 일본은 학습과 개방과 통상의 1차 목표이고 궁극의 목표는 전 세계로 확장하는 데 있음을 밝혔다. 박제가는 국제정세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서양 제국주의가 세력을 확장하는 시기에 국제적이고 역사적인 관점에서 조선이 당면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제국주의의 강압에 의해 개방되기 훨씬 이전에 주체적인 개방을 통해 스스로를 지키자고 웅변적으로 주장한 것이다. 『북학의』는 1778년 연행에서 돌아온 뒤 집필된 것으로, 박제가의 나이 겨우 29세의 저술이다. ‘외편’이 대략 완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1782년 어름으로 계산해도 33세에 불과하다. 패기만만한 젊은 시절의 저서이다. 사상적 순수성과 열정을 간직한 시기에 18세기의 가장 위대한 사상서의 하나를 완성한 것이다. 이는 박제가 자신의 학문적 능력과 열정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홍대용과 박지원, 이덕무와 성대중을 비롯한 동시대 학계의 지적 역량의 총화다. 한편으로, 『북학의』의 출현은 토정 이지함 이래 유몽인, 김신국과 같은 북인(北人) 경세 사상가로부터 면면히 이어져 온 상업과 유통을 중시한 학문적 토양에서 배양되었다. 박제가가 속한 소북(小北) 당파의 학문적 자산을 박제가는 가장 극적으로 되살려냈다. 『북학의』(北學議)의 현대적 가치 『북학의』는 조선시대에 쓰인 많은 저술들과 비교하면 저술의 패러다임 자체가 다르다. 변화에 대한 강렬한 욕구와 개혁의 논리가 책 속에 담겨 있다. 사변적이거나 현학적이지 않으며, 직선적으로 또렷하게 자신의 소견을 표출했다. 『북학의』는 첫대목을 읽으면 옛날의 기술책을 보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또 조선의 현황을 지나치게 낮추어 보는 반면에 중국과 일본, 서양의 수준을 지나치게 추켜세우는 태도가 거슬리기도 한다. 우리말을 버리고 중국어를 공용어로 쓰자는 주장에 이르러서는 주체성을 의심받기도 한다. 그러나 조선의 부국강병과 민생 향상, 개인의 인간다운 삶을 설계하고자 하는 충정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다. 설정한 목표를 실현하려는 사유의 깊이와 분석의 예리함은 그가 살던 시대의 굴레를 벗어나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를 보여준다. 박제가는 조선 조정에 강력하게 개방을 요구했다. 하지만 조정은 반대로 쇄국의 방향으로 나아갔다. 안타깝게도 박제가의 경고는 수십 년이 지나지 않아 그대로 현실로 드러났다. 고종 시대에 이르러 제국주의 압력에 의해 강제로 개혁과 개방이 진행되었다. 자율적 개혁과 타율적 개혁의 차이는 너무도 컸다. 박제가의 경고는 현재도 현실적 의의를 지닌다. 『북학의』를 통하여 박제가가 제기한 많은 구상은 18세기 중후반 조선 사회의 특수한 역사 배경에 기원을 두고 있지만 좀처럼 낡은 사상 같지가 않다. 국제정세가 안정되어 있는 시절에 주체적으로 개혁을 실행하지 못한다면 바로 국가 위기로 이어진다는 경고를 내리는 박제가의 목소리는 한국의 현실 속에서 지속적으로 반추할 가치가 있는, 보편성을 갖춘 생동하는 사상으로서 그 의의를 잃지 않는다. 교감과 역주를 통해 완성된 완역 정본 『북학의』 10년을 공들인 교감(校勘) 작업과 번역·주석 작업 『북학의』는 ‘내편’과 ‘외편’으로 구분되며, 이와는 별도로 정조(正祖)에게 진상한 ‘진상본’이 있다. 이 세 부분을 구별하여 보면, ‘내편’은 대체적으로 중국 여행을 통해서 확인한 문명세계에 대한 보고가 주축인 반면, ‘외편’은 북학의 논리를 설명하는 글이 주축이다. 특히, ‘내편’이 구체성을 띤 각론이라면, ‘외편’은 개혁을 직설적으로 주장하는 원론에 속하는데, ‘내편’에서 밝히지 못한 이론이 전개된다는 점에서 사상의 심화를 엿볼 수 있다. 사상의 심화는 ‘진상본’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새로 설정된 항목인 ‘유생의 도태’(汰儒) 조에서 그야말로 조선 왕조 신분제도의 근간인 양반의 도태를 유도하자고 주장함으로써 사회제도의 근본까지 개혁의 대상으로 삼았다. 『북학의』는 조선 후기의 사상서 가운데 상대적으로 필사본의 수량이 많은 편에 속한다. 중간에 전란과 여러 가지 이유로 소실된 것까지 포함한다면 그 수는 더 늘어나겠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사본의 수는 대략 20여 종이다. 안대회 교수는 국내는 물론이고 일본 덴리(天理)대학에 소장되어 있는 금서본(今西本), 미국 버클리 대학에 소장되어 있는 버클리본에 이르기까지 국외의 이본을 널리 수집하여 교감 작업을 거쳐 정본(定本)을 만들었다. 이본마다 적지 않은 차이가 존재하는데, 구체적인 차이를 원문에 일일이 교감주를 달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정본 텍스트를 만드는 작업을 통해 ?북학의? 이본들의 차이와 변모 과정을 파악함으로써, 『북학의』의 내용을 더욱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북학의』의 번역본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중에서 학술적으로 검토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는 3종이 있다. 첫 번역은 1947년 김한석(金漢錫)에 의해 조선금융조합연합회(朝鮮金融組合聯合會)에서 나왔으나 이는 ‘진상본’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 한계가 있었다. 이어서 북한의 학자 홍희유·강석준이 1955년 평양의 국립출판사에서 간행한

저자 소개

조선 후기의 실학자. 밀양이 본관. 자(字)는 차수(次修), 호(號)는 초정(楚亭), 정유(貞□), 위항도인(葦抗道人)이다. 우부승지 박평(朴坪)의 서자로, 영조 25년인 1750년 11월 5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열한 살 때 부친을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살았다. 
1779년에 정조의 특별한 배려로 세 사람의 서얼 출신 학자와 함께 규장각 검서관으로 출사했다. 1792년에는 외직인 부여현감으로 부임했다. 1799년에는 춘당대 무과 별시에 장원으로 뽑혀 오위장에 임명되었다. 그 후 영평현령으로 부임했으나, 순조 원년인 1801년에 있었던 신유사옥의 주모자 임시발의 무고 때문에 함경도 경성부로 유배되었다. 그곳에서 2년 반을 지내다가 1805년 3월에 귀양살이에서 풀려 서울로 돌아왔고, 그 해 4월 25일에 45세를 일기로 작고했다. 1778년, 1790년, 1801년 세 차례에 걸쳐서 사신의 수행원으로 청나라 연경에 다녀왔다.

목차

목차
책머리에
차례
일러두기
자서自序
북학의서_박지원
북학의서_서명응
북학의 내편 北學議 內編
수레 / 배 / 성 / 벽돌 / 기와 / 자기 / 삿자리 / 주택 / 창호 / 뜰 / 도로 / 교량 / 목축 / 소 / 말 / 나귀 / 안장 / 구유통 / 시장과 우물 / 장사 / 은 / 화폐 / 철 / 목재 / 여자의 의복 / 연극 / 중국어 / 통역 / 약 / 장 / 인장 / 담요 / 저보 / 종이 / 활 / 총과 화살 / 자 / 문방구 / 골동품과 서화 / 방아공이
북학의 외편 北學議 外編
밭 / 똥거름 / 뽕과 과일 / 농업과 잠업에 대한 총-작두와 착유기의 제작 방법 / [부록] 이희경의 「농기도서」 / [부록] 용미차설 / 과거론 1 / 과거론 2 / [부록] 정유년 증광시에서 제출한 시사책 / 북학변 1 / 북학변 2 / 북학변 3 / 관직과 녹봉 / 재부론 / 강남 절강 상선과의 통상론 / 장지론 / 병론 / 존주론 / 병오년 정월에 올린 소회
진상본 북학의 進上本 北學議
『북학의』를 임금님께 올리며 / 수레 / 밭 / 똥거름 / 뽕 / 농기구 / 철 / 볍씨 / 곡식의 이름 / 지리 / 논 / 수리 / 전업 농부 / 구전 / 모내기 / 고구마 심기 / 말단의 이익 / 유생의 도태 / 둔전에 드는 비용 / 하천의 준설 / 창고 쌓기 / 배 / [부록] 노하운선기 / ‘오행을 잃고 버렸다’는 데 대한 생각 / 번지와 허행 / 장생불사의 방법 / 농업과 잠업에 대한 총론 / 재부론 / 강남 절강 상선과의 통상론 / 존주론
輯校(標點) 北學議
北學議 內編
北學議 外編
進上本 北學議
해제
박제가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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