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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꽃 김별아 장편소설

김별아 저 | 해냄 | 2013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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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기 [미실]로 문학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은 김별아 작가의 신작소설. 세종 초 벌어진 유씨 여인의 비극적 사랑을 다룬 작품 -MD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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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5743767 / 340쪽 133 x 197 (㎜) / 양장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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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저자 소개

1969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3년 《실천문학》에 「닫힌 문 밖의 바람소리」를 발표하며 등단했고, 2005년 장편소설 『미실』로 제1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했다.
데뷔 초기 사회 변화와 함께 불어닥친 혼란을 개인적 감성으로 써내려간 『내 마음의 포르노그라피』『개인적 체험』을 발표해 젊은 작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고, 이후 소재의 다각화에 몰두한 『축구전쟁』으로 호평을 받았다. 30대에 접어들어 우리 역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영영이별 영이별』『논개』『백범』『열애』 등을 펴내며 실존인물을 해석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으며, 1930년대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역사에 휘말린 조선 청년의 이야기 『가미가제 독고다이』를 발표했다. 이후 ‘조선 여성 3부작’으로 『채홍(彩虹: 무지개)』 『불의 꽃』 『어우동, 사랑으로 죽다』를 펴냈다. 원작을 복원한 ‘무삭제 개정판’ 『미실』을 출간했으며 한국 최초의 여성 근대 소설가 김명순을 주인공으로 한 『탄실』을 발표했다. 이외에 소설집으로 『꿈의 부족』이 있다. 
산문집 『톨스토이처럼 죽고 싶다』 『가족판타지』(『식구』개정판) 『모욕의 매뉴얼을 준비하다』 『죽도록 사랑해도 괜찮아』 『삶은 홀수다』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등을 통해 소소한 일상과 그 안에서의 깨달음을 담았고, 아들과 함께 오른 백두대간 이야기 『이 또한 지나가리라』 『괜찮다, 우리는 꽃필 수 있다』, 군에 간 아들에게 쓴 편지인 『스무 살 아들에게』, 서울 시내의 표석을 따라 걸어본 도시산책기 『도시를 걷는 시간』을 출간했다. 

책 속에서

은 장군의 패기발발한 도전과 늙은 장군의 마지막 저항이 맞부딪히는 과정에서 얼마간의 희생이 있었다. 늙은 장군은 체포되었으나 그의 잔병들을 색출하는 과정에서 민가 몇 채가 불타고 몇몇 백성들이 목숨을 잃었다. 단순한 실책이자 사고였다고, 젊은 장군의 부하 장수들은 보고했다. 젊은 장군은 매우 안타까워하고 짐짓 괴로워했다. 하지만 젊은 장군은 부하 장수들에게 왜 잔병들이 하필이면 태학생들이 많이 사는 마을에 숨어 있었는지 묻지 않았다. 그래서 부하 장수들은 저항 없는 민가에 불을 던진 경위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망해가는 나라에는 어리석은 왕과, 탐욕스런 간신과, 혼란을 틈타 떡고물을 주워먹는 정상배와 모리배가 있었다. 하지만 또한 어김없이 있었다. 침몰과 진동의 징조를 느끼면서도 쥐와 뱀처럼 본능에 따라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들, 기우뚱거리는 배와 흔들리는 땅과 함께 기꺼이 가라앉고 기어이 매몰될 운명이 있었다. 백여 년의 무신정권을 겪은 뒤 황폐해진 나라를 개혁 하려던 젊은 유생들은 불덩이가 되어 사라져갔다. 그들도 젊은 장군처럼 새로운 무엇을 세우려 했다. 다만 그것이 또 다른 나라가 아니었을 뿐이었다.

“살아라! 너라도 살아라!”
-「운명과 운명」 중에서

 

“이제부터 널 녹주(綠珠)라고 부르기로 했단다. 어떠냐, 맘에 드느냐?”
서로가 신이 나서 외쳤다. 계집아이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푸른 구슬, 녹주옥을 떠올렸다. 매화나무 아래서 피리를 부는 모습을 훔쳐보며 그 이름이야말로 맞춤하다고 확신했다.
“녹주야!”
“…….”
“녹주야! 대답해라. 녹주야!”
시시풍덩한 장난 같았지만, 서로의 목소리는 오롯이 진지했다.
“응.”
결국 계집아이가 부름에 답했다.
“녹주야, 이제부터 넌 나의 동무다!”
“응…… 서로야.”
이름을 부르고 이름이 불리고서야 비로소 처음이다. 새로이 동무를 얻은 그들은 처음의 즐거움에 한껏 들떴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아무리 찬란한 꽃이라도 모다 이별해야 한다. 기꺼운 이별로 흔들리는 매화나무가 잔드근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푸른 구슬」 중에서

 

“나를 한 번이라도 사랑했소? 진심으로 아끼고 어엿비 여겼소?”
이미 반벙어리가 되어버렸지만 악심을 부리는 딸에게 할 말도 없었다. 경심은 청화당에게 의무였다. 도망쳐버릴 수 없는 책임이었다. 그리고 천하의 여장부로 알려진 청화당에게는 정작 가장 가깝고 내밀한 책임과 의무를 기꺼워할 만큼의 배포와 아량이 없었다. 질투와 욕심이 자글자글하는 그 밉살맞은 얼굴이 떠올랐다. 자기를 꼭 닮은 딸을 사랑한다고 믿었으나, 아마도 사랑했겠으나…… 과연 그 파탄한 방식까지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청화당의 찌그러진 눈가로 눈물 한 줄기가 맥없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이씨 부인은 그것을 사과와 화해의 뜻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말해야 할 때 꼭 말할 것을 말하지 못한 죄로, 그들은 영영 각자의 고통에 갇혔다.
-「세상의 모든 처음」 중에서

 

― 우리는 참 좋은 벗이었는데…….
주먹손으로 명치를 콩콩 쳤다. 청화당 할머니와 행랑어멈은 답답한 일이 생길 때면 한숨을 쉬며 가슴을 치곤했다. 어린 그때는 영문을 몰랐다. 돌덩이가 얹힌 듯 무거운 가슴은 아파서야 조금이나마 잊힌다는 걸.
―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고 달라질까? 그때와 지금, 그리고 앞으로……?
나이를 먹어 몸이 자라도, 나이를 먹고 몸이 자랄수록 알 수 없는 것은 더 많아졌다. 글공부가
보 도 자 료
 점점 깊어진다는 서로도 매한가지인 듯했다. 청화당 할머니의 묘소를 찾아가다가 뱀에 물린 그날 이후 서로와 녹주는 어색해졌다. 공연히 멋쩍고 깔끄러워 예전 같지 않았다. 그래서 녹주는 고맙다는 말조차 변변히 건네지 못했다. 아무래도 까닭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불의 꽃」 중에서

 

총명하고 요조한 건 사실일지나 민첩한 여인은 아니었다. 어쩌면 남의 눈치를 살필 만큼 부족함이 없었던 탓일 것이다. 그녀는 정답만을 말했다. 하지만 서로가 물은 것은 정답이 없는 이야기였다. 얼마나 재주를 익히고 덕행을 쌓았는지 시험하려던 게 아니었다. 어린 시절 그녀가 어떤 아이였는지 물으려 했다. 무엇을 하고 놀았으며, 어떤 때에 기쁘고 즐거웠으며, 가장 슬펐던 기억은 무엇인지. 하지만 짧은 대화 속에서 서로는 그녀가 정씨 가문의 여식이라는 사실 외에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혹 피리를 불 줄 아는지, 체온에 덴 꽃잎의 비명 소리를 들을 수 있는지는 차마 물어볼 수조차 없었다. 어쩌면 신방을 나서는 순간 신부의 낯과 몸태를 까맣게 잊을지도 모른다. 수많은 여인들 중의 한 사람을 분별할 도리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 모르는 여인에게서 아이를 낳고, 모르는 여인과 동혈(同穴)에 묻힐지도 모른다. 돌연한 공포로 머리끝이 쭈뼛했다.
-「망석중놀이」 중에서

 

― 살기 위해 사랑하느냐, 죽지 않기 위해 사랑을 속이느냐?!
그것은 녹주에게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껏 운명이라 불리는 굴레에 묶인 채 왜바람을 맞은 검불처럼 꺼둘렸다. 죽음보다 두려운 것은 단 한 순간도 스스로 살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리하여 가장 행복한 순간에 가장 무서운 파국을 떠올릴지라도, 목숨을 걸고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그토록 어리석은 사랑이 그녀가 생에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이었다.
정사(情事) 끝에는 아득한 죽음의 예감이 있었다. 무릇 모든 숨탄것은 그로써 불멸을 꿈꾸고 그로부터 사멸하기 마련이었다. 끝을 모르고 달려간 쾌감은 마지막 순간 발치에 놓인 낭떠러지를 보았다. 한 발자국만 더 내딛으면 끝이었다. 이미 끝의 시작이었다.
-「밀회」 중에서

 

아버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강강했다. 십사 년 동안 세자로 살아온 형님을 단칼에 내쫓고 세자가 된 지 두 달 밖에 안 된 삼남을 왕위에 앉혔다. 선위한 후에도 병권을 이양하지 않으니 여전한 실세였고, 그 사이 사돈댁인 신왕의 처가를 멸문시켰다. 외척의 발호를 경계하려는 의지를 헤아리지 못할 바 아니나, 아버지의 칼은 무서웠다. 번득일 때마다 어김없이 사람과 삶을 베었다. 자애롭고도 잔인한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자신을 닮지 않은 아들을 사랑했다. 칼 대신 붓을 든,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부드러운 손으로 문치(文治)의 새 역사를 쓰기 바랐다. 아들은 책으로 세상을 배웠다. 그곳에는 뜨거운 야망과 더러운 욕심이 없었기에 차갑고 깨끗한 이지만이 가득했다. 아버지의 바람대로 아들은, 선왕의 기대대로 임금은, 한사코 바르고 옳고 분명해야 할 것이었다.
-「폭로」 중에서

목차

목차
序 길 위에서
운명과 운명
봄이거나 여름이거나 가을이 아니면 겨울이었던
푸른 구슬
나무 끝의 새
세상의 모든 처음
독을 마시다
불의 꽃
몌별(袂別)
망석중놀이
마군의 속삭임
인연과 기연(奇緣)
먼지와 티끌의 거리
햇덧의 숨바꼭질
몸과 그림자
밀회
폭로
終 다시, 길 위에서
작가의 말ㅣ 사랑은 다만 삶의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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