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시단(詩壇)을 대표하는 시인이자 수필가인 유안진(柳岸津)은 1941년 4월(호적에는 10월)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 조부에게 천자문과 동몽선습을 배웠고, 친가와 외가의 할머니들에게 내방 가사와 시조, 한시 등을 들으며 자랐다. 가문의 역사를 가사처럼 지은 세덕가나 제사상 차리는 법을 가르쳐 준 할머니들 덕분에 삶과 글이 별개가 아니라 더불어 완성되는 삶의 형식 그 자체라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몸으로 배웠다. 전통적 가치에 대한 배움과 경험은 이후 유안진의 수필 세계와 학문에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
유안진에게 현대시가 찾아온 결정적 계기는 소월과의 만남이다. 대전여자중학 시절, <산유화>에서 소월은 왜 계절의 순서를 무시하고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또 지네’라고 했는지 선생님께 질문했던 소녀는 스스로 그 답을 찾기 위해 소월의 시를 읊조리며 시와 대면하기 시작했다. 충남 대전 호수돈여자고등학교를 다니던 고교 시절엔 여성 판사가 되기를 꿈꾸기도 했다고 한다. 1961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에 입학한 첫 학기에 5·16이 일어나는 바람에 대학은 휴교 상태였는데, 그 무렵 유안진은 다시 습작을 시작하고 시인이 되기를 꿈꾸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로 부임하던 무렵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1965년 3월 ≪현대문학≫에 <달>을 처음 발표하게 되었다. 1966년엔 <별>을, 1967년엔 <위로>를 이어서 발표함으로써 3회 추천을 마치고 시인으로서 문단에 발을 내딛었다.
교사로, 시인으로 본격적 활동을 시작한 유안진은 학문적 열망을 품고 대학원에 진학해 교육 심리학 전공자로서 학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73년엔 국비 장학생에 선발되어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학교로 유학을 떠났고, 1976년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후 유안진은 한국교육개발원 책임연구원, 단국대학교 교수, 서울대학교 생활과학대학 아동가족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학자로서 유안진은 전통 사회의 여성−아동 민속 분야에 집중해서 학문 분야를 개척하기 위해 우리나라 전역에서 관련 자료들을 수집하고 연구했다. 이러한 학문적 결실은 전공 서적만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저작으로도 출간되었다. ≪한국 전통 아동심리 요법≫, ≪한국 전통 사회의 육아 방식≫, ≪한국 전통 사회의 유아교육≫, ≪한국 전통 아동 놀이≫ 등의 학술 연구서 외에도 학술 장르와 에세이를 아우르는 교양 산문집 ≪한국 여성 우리는 누구인가? 상·하≫(1991), 속요집 ≪딸아 딸아 연지 딸아≫(2003), ≪옛날 옛날에 오늘 오늘에≫(2002) 등의 저서는 실증적 연구의 토대 위에서 완성될 수 있었던 결과물이다.
시인이었지만 산문에도 남다른 감각을 지녔던 유안진은 수필집 ≪그대 빈손에 이 작은 풀꽃을≫(1979), ≪실패할 수 있는 용기≫ 등을 출간하면서 대중과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시와 서사시로서의 소설 그리고 여러 권의 학술 연구서와 대학 교재, 연구 논문 등의 저자로서도 인정받았지만 ≪우리를 영원케 하는 것은≫(1985), ≪그리운 말 한마디≫(1985), ≪내 영혼의 상처를 찾아서≫(1989) 등이 잇달아 출간되면서 유안진은 수필가로서 대중의 열광적 지지를 받았다. 대표적인 수필집 ≪우리를 영원케 하는 것은≫은 1986년 가장 많이 팔린 책 중 하나로 기록되기도 했다. 또한 1980년에 결성되었던 ‘문채’의 동인 신달자, 이향아와 함께 수필집 ≪지란지교를 꿈꾸며≫(1986)를 펴냈는데, 일반 독자만이 아니라 청소년들에게도 널리 읽히며 화제가 되었다.
지란지교의 주인공으로 이름을 떨친 후에도 유안진은 시인으로 수필가로 꾸준하고 성실한 활동을 이어 갔다. 수필집 ≪축복을 웃도는 것≫(1994), ≪바람 편지≫(2003), ≪사랑, 바닥까지 울어야≫(2008), ≪상처를 꽃으로≫(2013) 등이 출간되었고, 이외에도 다수의 수필 선집들이 출간되었다. 시집의 경우도 첫 시집 ≪달하≫를 1970년에 출간한 이래 ≪구름의 딸이요 바람의 연인이어라≫, ≪다보탑을 줍다≫, ≪둥근 세모꼴≫, ≪숙맥 노트≫ 등 신작 시집 17권과 ≪세한도 가는 길≫ 등 다수의 시선집을 펴냈다.
시인이자 수필가로서 유안진의 작품 세계는 명실공히 한국 문단을 대표하고 있다. 대표적인 시 <세한도 가는 길>, <다보탑을 줍다>, <빨래꽃>, <춘천은 가을도 봄이지> 등과 더불어 <지란지교를 꿈꾸며>, <강철과 쇠붙이 시대의…> 등 여러 편의 수필은 중고교 교과서와 참고서 등에 게재된 바 있다. 시와 산문 등이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 등으로 번역되어 해외에 소개되었고 하와이대학과 오하이오대학 등의 동아시아학과에서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2007년 서울대학교 교수직을 퇴임한 후 현재는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며, 2012년부터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 되어 활동하고 있다. 또한 한국 시인 협회 고문, 한국 작가 회의 자문위원, 국제 펜클럽 한국 본부 이사, 한국 문인 협회, 한국 여성 문인 협회 자문위원 등으로도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