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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0755540 / 212쪽 153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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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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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손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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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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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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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1. 평범한 행복을 꿈꾸는 천재 이야기 45년 전 일본의 후지TV는 1967년 12월 2일 “2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라고 불렸던 한국의 4살짜리 꼬마 김웅용의 놀라운 재능을 보여줌으로써 수많은 일본 시청자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그리고 국내외 언론으로부터 ‘인류의 보물’, ‘세 살짜리 피타고라스’ 등으로 불리며 8세 때는 미국 NASA의 선임 연구원으로 일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어느 순간 ‘실패한 천재’라는 낙인을 받고 김웅용은 세인의 기억에서 멀어졌다. 그러나 2006년,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 1. 평범한 행복을 꿈꾸는 천재 이야기 45년 전 일본의 후지TV는 1967년 12월 2일 “2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라고 불렸던 한국의 4살짜리 꼬마 김웅용의 놀라운 재능을 보여줌으로써 수많은 일본 시청자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그리고 국내외 언론으로부터 ‘인류의 보물’, ‘세 살짜리 피타고라스’ 등으로 불리며 8세 때는 미국 NASA의 선임 연구원으로 일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어느 순간 ‘실패한 천재’라는 낙인을 받고 김웅용은 세인의 기억에서 멀어졌다. 그러나 2006년,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인명사전 『ABI(American Biographical Institute)』에 으로 선정된 김웅용은 2012년에는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마이크로소프트(MS)의 공동창업자 폴 앨런 등과 함께 에 선정되어 또다시 화제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IQ 210 김웅용――평범한 삶의 행복을 꿈꾸는 천재』는 우리가 ‘IQ 210 천재’라 부르는 김웅용이 겪은 평범하지 않은 삶의 이야기와 평범한 행복을 위한 그의 꿈을 담고 있다. 45년 전 당시 후지TV에서 근무하던 저자 오오하시 요시테루는 수십 년에 걸친 집념의 추적 끝에 우리 기억에서 사라진 천재와 그 동안 그가 겪었던 파란만장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2. ‘세 살짜리 피타고라스’, 꼬마 김웅용의 어린 시절 물리학 교수인 아버지와 의학교수인 어머니―─두 사람은 생일(1934년 5월 23일)이 같을 뿐 아니라 혈액형(A형)도 같다――그 사이에서 태어난 김웅용은 출생시 몸무게가 2.7킬로그램으로 평균보다 약간 작게 태어났지만, 신체 성장이 빨라 100일에 19개의 이가 났고, 생후 3개월 즈음에 엄마, 아빠라고 말했고 8개월 때는 장기를 배웠다고 한다. 만 1살 때는 한자를 읽고, 2살 때 받은 지능검사에서 IQ 200이라는 놀라운 수치가 나왔고 1969년 6월 12일에 미국 전문가의 테스트를 통해 IQ 210이라는 판정을 받아 이것이 영국에 본부를 둔 기네스 사무국에 전해진다. 그 후 국내외 언론으로부터 ‘인류의 보물’, ‘세 살짜리 피타고라스’ 등으로 불리며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던 김웅용은 만 3세에 미적분을 풀었다. 3세 때는 그간 쓴 글과 그림을 모아 『별한테 물어 봐라』라는 책을 출판했다. 당시 언론보도에 따르면 『별한테 물어 봐라』는 베스트셀러였다. 당시 광고에는 이런 말이 덧붙여져 있다. “3世 天才가 불러일으킨 이 絶讚! 人氣!” 광고를 낼 당시에만 46판을 찍고 있었던 그 책은 10만 부가 팔렸으며, 세계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별한테 물어 봐라』는 영어와 독일어로 쓰인 글과 직접 그린 그림, 일기, 동시, 작문, 편지, 그리고 양친의 육아비화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동시 부분에는 다음과 같은 동시가 실려 있다. “크리스마스는 X자 교회 안은 十자, 크리스마스 날은 X자를 쓰고 사람들은 목에 十자를 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十(더하기) 하지 말고 X(곱하기) 해야 한다. 그러면 이 세상에 광명이 올 것이다” “지금은 우리나라는 분수 셈한다. 지금은 우리나라는 소수 셈한다. 그러나 분수와 소수는 합해서 한 개의 자연수가 됩니다. 남북통일 만세” 4세 때 한양대 과학교육과에 청강생으로 입학한 김웅용은 5세 때는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일본어 등 4개 국어를 구사했다. 4세 때는 일본 후지TV에 출연해 도쿄공업대학의 야노 켄타로 교수가 내는 적분 문제를 단숨에 풀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2명의 도쿄대 학생이 김웅용과 함께 문제에 도전했으나 김웅용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한국의 김웅용의 천재성이 TV를 통해 일본 전역에까지 알려진 순간이었다. 일본에서는 이후 김웅용의 책 『별한테 물어 봐라』를 번역 출간한 것은 물론, 『4세의 대학생』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8세 때인 1970년에는 그의 천재성을 파악한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초청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콜로라도 주립대 대학원에서 석?박사를 수료한 후 1974년부터 NASA 선임 연구원으로 일했다. 3. “웅용은 천재 소년에서 평범한 소년이 되었다” 만 1살 때 한자를 읽고 4세라는 어린 나이에 적분 문제를 푸는 등 천재성을 보였으나 사춘기를 지나 대입 체력 검사에 나타난 김웅용에 대해 한국의 매스컴은 일제히 대입 검정시험에서 하위로 겨우 합격했다는 뉴스와 함께 “김웅용은 천재 소년에서 평범한 소년이 되었다”고 보도한다. 촉망받는 신동으로 평가받으며 승승장구하던 김웅용은 미국에서 1978년 돌연 귀국하였고, 1979년 대입 체력장이 있던 날 충격적인 모습으로 다시 등장했다. 서울 시내의 영훈고등학교에서 실시된 체력검사장에 김웅용이 나타났던 것이다. 어머니 유명현과 함께 수험장에 나타난 김웅용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10년 만이었다. 신장 165센티미터. 체중 55킬로그램. 스포츠형 머리에 상하 흰 체육복 차림이었다. 왼쪽 가슴에는 사진이 붙은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얼굴은 창백하고 핼쑥한 모습이었다. 체력검사는 100미터 달리기, 턱걸이, 공 던지기 등 5과목이었다. 김웅용의 100미터 달리기 기록은 15초 8. 공 던지기는 45미터. 턱걸이는 겨우 2회. 그 결과 김웅용은 100점 만점에 31점을 받았다. 김웅용은 1977년도에 고등학교 자격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그 2년 뒤에 대학입학 검정시험에도 응시한 것이다. 김웅용의 평균점은 65점이었고, 그 결과 합격자 2,763명 중 2,420등이었다. 하위로 겨우 합격한 것이다. 이에 대해 그의 아버지는 동아일보의 기자에게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아들은 시험 준비를 전혀 하지 않은 상태에서 검정고시를 보았다. 백지 상태에서 자신의 실력을 시험해 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일부러 그애가 자신 있는 과목인 수학과 물리를 빼고 상업과 지학을 선택한 것이다.” 체력장 당시의 왜소한 체격에 당황한 듯한 표정의 사진 한 장과 함께 국내의 매스컴은 일제히 대입 검정시험에서 하위로 겨우 합격한 김웅용의 기사를 내보냈다. 그 중심 내용은 “김웅용은 천재에서 평범한 소년이 되었다”였다. 그와 동시에 ‘집안에 가둬놓고 키워졌다’, ‘바보?정신병자가 됐다’ 등의 악성 소문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일이 대응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온갖 낭설에 그는 차라리 침묵을 택했고, 그 이후 그에게는 ‘실패한 천재’ 라는 오명이 뒤집어씌워졌다. 그리고 그는 세상에서 잊혀졌다. 4. 평범한 길 위에 선 천재의 행복 김웅용은 1970년 8세 때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초청으로 미국 콜로라도 주립대학에 갔다. 그 후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 학위 과정을 수료하고 1975년부터 NASA의 전임 연구원으로 일했다고 한다. 그러나 1978년에 갑자기 귀국했다. 그는 귀국 이유에 대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또래도 친구도 없이 NASA가 주는 과제를 수행하는 쳇바퀴 같은 생활에 질려 돌아왔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국립 충북대학교에 입학하여 물리학의 세계에서 토목공학의 세계로 이동했다. 그리고 박사학위 취득 후에는 모교와 연세대학교의 강사로 교단에 섰다. 또한 카이스트 강사 겸 국토환경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며 수리학 분야의 논문을 발표했다. “김웅용 씨는 국토환경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연세대와 충북대 등에서 강의를 하는 등 바쁜 일상 속에서도 국내외의 학술지에 수리분야 등의 논문을 90여 편 게재, 그 결과 세계적인 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렸다.”는 신문기사와 함께 그는 다시 세인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2006년 김웅용은 세계에서 가장 권위
목차
한국어판 서문 …… 5
프롤로그 …… 11
제1장 2011년 봄, 기내에서
천재를 만나러 가다 …… 14
4살짜리 꼬마, 도쿄대생을 이기다 …… 17
인류 역사상의 천재들 …… 23
김웅용의 부모를 설득한 ‘엄마와 아이의 후지TV’…… 26
한자를 읽는 1살짜리 꼬마 …… 29
김웅용이 태어난 시대 …… 30
3살 때 출판한 『별한테 물어 봐라』…… 32
역대 천재의 IQ 순위와 뇌의 무게 …… 34
천재가 되는 방법? …… 39
일본에서의 마지막 TV 출연 …… 42
제2장 1983년 가을, 김웅용 21세
『기네스 북』에서 김웅용의 이름이 사라졌다 …… 46
김웅용을 찾는 여행, 제1탄 …… 48
“아들 얘기는 지금 하고 싶지 않다”…… 50
김웅용이 다시 한 번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이유 …… 52
조기 교육의 공적과 허상 …… 55
천재 교육―내 주변 사람들의 예 ……59
천재의 길을 걷게 하겠다 …… 64
“거짓말도 한 방편” ……67
천재의 기구한 운명 …… 70
오오노 프로듀서 덕분에 …… 74
“지금은 조용히 지켜봐 주세요”…… 79
“그렇습니까? 그가 평범한 사람이 됐습니까?”…… 83
제3장 2011년 봄, 김웅용 48세
김웅용, 다시 한 번 …… 86
한국의 교육―입시 학원·대학 진학률 1위 …… 91
세월 속에 묻힌 단서…… 95
아버지에 대한 반발? …… 98
일본대지진과 ‘21세기의 위대한 지성’……101
제4장 2011년 봄, 한국
미시마 유키오와 김웅용 ……106
여전히 가로막고 있는 부모라는 장벽 …… 109
이것이 한국의 영재교육 …… 114
만날 수 있다, 만날 수 없다, 만날 수 있다…… 118
김웅용의 직장에 도착 …… 123
제5장 드디어 찾았다!
김웅용은 “안에 있습니다”…… 128
그 사진이 궁지에서 구출해 주었다! …… 130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 된 김웅용 …… 134
김웅용과 위너 …… 139
평범한 행복을 발견한 천재 …… 143
남겨진 중요한 임무 …… 148
제6장 2011년 봄, 일본
오오노 프로듀서의 부재 이유 …… 152
또 하나의 재회 …… 155
여행의 마지막 …… 158
에필로그 …… 160
맺는말 …… 161
부록 2012년 봄, 한국
김웅용이 말하는 ‘IQ 천재’ 그 이후의 삶 | 정용인 …… 16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