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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자매

시리즈 : 범우 희곡선 [42]

안톤 체호프 저 | 홍기순 역 | 범우 | 2012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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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3650654 / 194쪽 128 x 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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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 서 문 체호프는 19세기 위대한 러시아 고전 문학 작가들 중 마지막 작가이다. 그는 비판적 사실주의의 전통을 계승하였고, 단편 소설과 중편 소설 장르에서도 완성도 높은 작품을 선보였으며, 세계 연극사에 커다란 영향을 준 희곡 예술의 새로운 형식을 창조하였다. 체호프는 러시아 사회의 심각한 전환기를 살아가는 동안 다양한 층위에서 자신의 시대를 진단했다. 그는 외모의 형상을 거의 묘사하지 않으면서도 등장인물의 사회적, 심리적 상황에서 중요한 내용들을 독자들에게 정확하게 전달해 준다. 체호프는 단편 소설과 희곡 작품에서 다양한 상황과 주인공의 심리를 묘사하면서, 현실을 통찰력 있게 보여주었는데, 그는 어느 한 사회 집단의 삶이 아닌 러시아 사회 전체 모습과 ‘평범한 민중’의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제시해 보여준다. 체호프는 자신의 문학 활동 초기 단계부터 드라마에 몰입했다. 그는 ‘그 어떤 학문이나 예술도 연극 무대만큼 인간에게 그렇게 강렬한 영향을 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의 희곡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갈매기>, <바냐 아저씨>, <세 자매>, <벚꽃동산> 등을 꼽을 수 있다. 여기에서 언급되고 있는 체호프의 4대 희곡은 ‘체호프 드라마 예술의 새로운 경향’과 더불어 ‘체호프 드라마 시학의 현대성’을 깨닫게 해주는 중요한 작품들이다. 체호프는 자신의 희곡 작품을 통해 러시아 지식인의 운명과 사회에서의 역할에 대해서 고찰했다. 그의 주인공들은 자유로우면서도 새롭고 행복한 삶을 꿈꾸지만,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무엇을 행해야 할지, 어떻게 자신과 자신의 친지들의 내면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두려움과 노예근성에서 벗어나게 해야 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모르고 있다. 체호프는 언어 예술가였으며, 희곡과 단편 장르의 혁신자였다. 체호프는 평범한 일상생활을 살아가는 민중들의 묘사를 통해서 동시대 삶의 복잡성을 심도 있게 전달하였다. 그는 어떤 교리나 철학을 분명하게 주장하지 않았지만, 그의 작품들에는 의미 있는 생각들과 도덕적인 내용들이 가득하였고, 예술적인 면에서도 완성된 작품을 발표하였다. 체호프의 대부분의 작품들은 인간의 보편적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도록 하고, 인간의 가치에 대한 믿음을 더욱 강화시켜 준다. 체호프의 희곡은 사회적일 뿐만 아니라 복잡한 내면의 심리적인 갈등을 묘사하고 있다. 그의 희곡의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무대에서 연출되는 공연의 내용은 모든 것이 일상의 삶처럼 복잡하기도 하고 단순하기도 하다. 체호프의 등장인물들은 식사를 하고, 날씨에 관해 이야기하고, 이곳저곳을 왕래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왜 불행하고, 사회에 아무런 쓸모가 없는지, 또 그런 것이 누구의 잘못인지, 누가 자신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희곡에 등장하는 인물의 단순한 대사 속에는 의미심장하고, 때로는 비극적이기까지 한 생각이나 감정, 그리고 행동이 숨겨져 있다. 바로 이것이 유명한 체호프의 ‘숨겨진 텍스트’이다. 체호프의 희곡 작품들에서는 의미로 가득 찬 기호가 빈번하게 텅 빈 껍데기로 변하면서, 기호의 기호로써 작동하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호는 다시 모종의 의미를 보존하면서 독자에게 전달되고, 독자로 하여금 작품의 올바른 이해와 해석을 하도록 도와주는 중요한 요소들을 제공한다. 텍스트와 기저 텍스트 차원에서 드러나는 이러한 특성들은 체호프의 희곡작품들을 항상 새롭게 인식하게 하는 예술적 차원에서의 중요한 근거를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있다. 체호프의 희곡 작품들에 대한 평가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양상들이 ‘삶과 인간’ 그리고 ‘현실과 문학’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더 풍요롭게 하면서, 그 지평을 확장시켜 준다. 그리고 체호프와 그의 예술 세계가 지금,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자신과 ‘소통의 한 공간’을 만들어 준다. 체호프의 희곡 작품들은 다양한 차원에서 ‘예술의 자율성’을 획득하고 있으며,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독자와 자유롭게 만나면서 ‘적극적인 여백의 미학’을 만들어 내고 있다. 따라서 체호프의 시학은 변화하는 다양한 현실 상황들에 맞추어 늘 새롭게 적용할 수 있고, 새로운 해석이 가능한 ‘현대성’을 담보하고 있다.

저자 소개

안톤 체호프(Антон Павлович Чехов, 1860~1904)는 러시아 남부 아조프 해에 있는 항구도시 타간로크(Таганрог)에서 태어났다. 체호프가 열여섯 되던 해인, 1876년 그의 아버지는 파산했다. 파벨은 세간을 정리하고 모스크바로 이사했다. 그러나 체호프는 타간로크 중학교를 마쳐야 했기 때문에 홀로 고향에 남았다. 아버지가 돈을 보내 주지 않자 그는 돈을 벌어 스스로 생계를 꾸리고 나아가 가정교사 생활을 하면서 가족을 도와야 했다. 소년 체호프에게 이것은 혹독한 시련이었다. 그러나 이 경험은 체호프가 인간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게 해 주었으며, 이후 이러한 특성들은 예술적 이미지, 예술적 사실(작품)로 이어졌다. 여기서 소개하고 있는 <어수룩한 사람>과 <가정교사>는 이때의 경험이 녹아들어 있는 작품이다. 
체호프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면 한눈에 보기에도 참 어려운 시기였다. 명문가와는 거리가 먼 집안 내력에 경제적 어려움까지 겹쳤다. 어린 나이에 학교 공부와 집안을 돌보는 일까지 도맡아 해야 했다. 그러한 상황은 대학에 진학하고도 별반 달라질 것이 없었다. 1879년 체호프는 모스크바로 이주해 모스크바대학 의학부에 입학했다. 동시에 생활비를 벌기 위해 당시 유행하던 유머 잡지에 글을 싣기 시작했다. 물론 체호프의 문학적 재능은 타간로크 중학교에 다니던 시기부터 나타났다. 그러나 독자들과 폭넓은 관계를 만들어 내면서 체호프가 가진 작가적 역량을 발현하는 것은 대학에 진학한 이후로 보는 것이 옳다.
1880년 3월 페테르부르크의 주간지에 <박식한 이웃에 보내는 편지(Письмо к ученому соседу)>가 게재되었다. 오만한 어투를 활용한 서간체를 빌려 시골 지주의 교양 없는 상태를 풍자한 이 짧은 작품이 체호프가 지면을 통해 발표한 최초의 작품으로 간주된다. 그 후 체호프는 여러 필명을 이용해 패러디적 성향이 짙은 작품이나 소품을 대중 잡지에 실으면서 인기 있는 유머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가장 즐겨 사용한 필명인 안토샤 체혼테(Антоша Чехонте)에 근거해 이 시기를 ‘체혼테 시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1년에 100편이 넘는 작품을 쏟아 내는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면서도 <관리의 죽음(Смерть чиновника)>(1883), <뚱뚱이와 홀쭉이(Толстой и Тонкий)>(1883), <카멜레온(Хамелеон)>(1884) 등 지금도 회자되고 즐겨 읽히는 뛰어난 작품을 양산했다.
1884년 대학을 졸업한 후 체호프는 모스크바 근교에 병원을 개업해 시골 마을이나 소도시에 왕진을 다녔다. 그러면서도 젊고 유명한 예술가들 및 문학가들과 친교를 맺었다. 그는 개업의로 열심히 일하는 와중에 계속해서 많은 작품을 집필했다. 1884년 그의 첫 단편집이, 1886년에는 그의 두 번째 단편집이 출간되었다. 이 두 작품집은 작가로서 체호프의 명성을 높여 주었다. 체호프는 의사의 길을 접고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선다. 그러나 의과대학 공부와 개업의 활동, 여기에 지칠 줄 모르는 창작 활동이 겹치면서 폐결핵의 징후를 보인다. 정신착란이 고골의 평생 지병이었고, 신장결석이 투르게네프의 평생 지병이었으며, 간질이 도스토옙스키를 평생 따라다녔다면, 폐결핵은 체호프의 평생 지병이 된다.
1890년, 마차와 배를 이용해 시베리아를 통과해서 3개월간의 힘든 노정 끝에 사할린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할린 섬의 역사와 지리를 공부하고, 죄수들의 일상을 3개월여에 걸쳐 조사한 다음, 그해 10월 인도, 싱가포르, 스리랑카, 콘스탄티노플, 오데사를 거쳐 12월에 모스크바로 귀환했다. 무려 8개월간에 걸친 길고 긴 여행의 성과는 인상기 ≪시베리아 여행(Из Сибири)≫(1890)과 조사 보고서 ≪사할린 섬(Остров Сахалин)≫(1893)으로 남아 있다.
귀국 후, 1892년에 체호프는 모스크바 근교 멜리호보의 영지를 사들였다. 그곳에서 1897년까지 머문 ‘멜리호보 시대’는 건강을 회복하고 왕성한 작품 활동에 매진하던 시기였다. 1892년 6월 콜레라가 창궐하자 체호프는 톨스토이 등과 함께 구호 활동을 벌였다. 의사로서 봉사했으며 기아의 구원과 학교의 설립에 힘을 기울이는 등 사회 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들로는 <다락방이 있는 집(Дом с мезонином)>(1895), <3년(Три года)>(1895), <나의 인생(Моя жизнь)>(1896), <농부들(Мужики)>(1897) 등을 꼽을 수 있다. 인간 생활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면서도, 등장인물의 행위와 사고를 보다 넓은 시야에서 밝히려는 자세가 두드러진다는 평가다.
체호프는 1897년 3월에 폐결핵이 악화되어 객혈을 하게 된다. 크림반도의 얄타로 거처를 옮겨 요양 생활을 시작한다. 얄타에서 고리키(М. Горьки, 1868~1936)나 부닌(И. А. Бунин, 1879~1953) 등 신진 작가들과 만남을 가졌으며, 톨스토이의 병문안을 받았다. 이러한 요양 생활의 와중에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Дама с собачкой)>(1899) 등의 소설을 내놓았다. 그러나 체호프의 말년을 대표하는 장르는 희곡이었다. ≪갈매기(Чайка)≫(1898), ≪바냐 아저씨(Дядя Ваня)≫(1900), ≪세 자매(Три сестры)≫(1900), ≪벚꽃 동산(Вишнёвый сад)≫(1903) 등이 모스크바예술극장에서 공연되어 관객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말년에 불후의 희곡 작품을 남겨 놓고, 체호프는 1904년 당시 유명한 요양지였던 독일의 바덴바덴에서 폐결핵이 악화되어 숨을 거두었다. 그의 시신은 러시아로 옮겨져 노보데비치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목차

이 책을 읽는 분에게·5 등장인물·10 제 1 막·13 제 2 막·56 제 3 막·99 제 4 막·133 작품 해설·172 연 보·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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