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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을 거부하라 1957년학 연구 기록

첸리췬 저 | 길정행 외 역 | 그린비 | 2012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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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6825209 / 800쪽 152 x 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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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1957년 반우파운동의 진실을 말한다!
―‘민주운동 VS 정풍운동’으로 들끓은 한 시대를 밝혀낸 회고적 연구!


중국 대륙에는 발언을 금하고 있는 네 가지 현대사 사건이 있다. 1957년 ‘반우파운동’과 이후 일어난 ‘3년 대기근’(1959~61년), ‘문화대혁명’(1966~76년)과 1989년 ‘6.4 톈안먼사건’이 그것이다. 마오쩌둥 시대에 일어난 앞의 세 사건은 모두 마오쩌둥의 정치적, 역사적 공과를 평가하는 데 중요한 부분이므로 중국 내에서는 쉽사리 발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중 특히 반우파운동은 중국 국내외적인 배경하에 수많은 정적과 지식인, 학생, 민주인사, 그리고 죄 없는 수많은 민중들이 희생당한 역사적 비극의 기원이기 때문에 55년이 지난 지금도 금기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실제로 이 책의 지은이 첸리췬이 1990년대 말에 반우파운동 연구의 필요성을 주장했다가 공산당에게 요주의 인물로 지목되어 2002년 베이징대학 교수직에서 조기에 퇴임한 사실, 그리고 반우파운동에 관한 이 책이 대륙에서는 출간되지 못했다는 사실(2007년 홍콩에서 반우파운동 50주년을 맞아 출간되었다)이 이를 잘 대변해 준다.
그러나 이 책 <망각을 거부하라> (拒絶遺忘)는 중국이 아무리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들춰낸다. 1957년 반우파운동 당시 ‘사회주의적 민주’를 주장한 선각자들이 어떻게 우파로 몰려 기나긴 시간 고통받았는지를 오랫동안 감춰졌던 우파 관련 자료와 회고록 등을 정리하고 개별적인 만남 등을 통해 보완하고 연구하여, 당시의 역사적 현장으로 안내한다. 반우파운동(반우파투쟁)이란 1956년 ‘백화제방 백가쟁명’(百花齊放百家爭鳴)의 일시적인 사상의 자유 속에서 반정부적 발언을 한 모든 인사들을 ‘우파’로 낙인찍어 탄압한 전제적 군중운동이다. 계급투쟁에 관해서는 초법적인 힘을 지닌 공산당은 아무 죄 없는 사람들(우파로 지목된 사람의 가족, 그들과 대화한 사람)까지도 우파의 함정으로 몰았기 때문에 마오쩌둥 중심의 강력한 일당 전제정치와 통제시스템이 공고화되었다. 군중을 통제하고 이용하는 방식으로 정적을 제거하고 권력을 강화하는 이런 방법을 보건대 반우파운동은 사실상 문화대혁명의 기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반우파운동의 진상을 파헤치는 이 책은 두 가지 특징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 하나는 그 당시 우파로 몰렸던 수많은 인사들의 주장, ‘우파정신’을 복원하는 것이다. 대학생을 비롯한 수많은 지식인들이 더 나은 세상을 바라며 외친 ‘사회주의적 민주’를 정리하여 그들의 요구가 톈안먼사건의 민주화 요구로까지 계승됨을 보여 주는 것이다. 또 하나는 상처로 남아 있는 중국인들의 아픈 역사를 바로잡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망각하지 않는 민족’만이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며 같은 독재자를 두 번 다시 만들어 내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 책이 밝히는 역사의 진실과 ‘사회주의적 민주’와 같은 정신적 유산은 현대 중국이 풀어내야 할 과제이기도 한 것이다.

5.19민주운동을 말한다!―민간 이단사상의 발굴


“사상을 금지시킨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사상이란 초월적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감옥, 형벌, 고통, 빈곤, 더 나아가 죽임, 이러한 것들은 사상을 억압할 수도, 속박할 수도, 금지시킬 수도 없다. 금지시키려 할수록 그것의 힘은 더욱더 강대해져서, 아무리 그것을 금지시키고 억누르고 없애 버리려 해도 그것은 어떻게든 살아남아 발전하고, 퍼져 나가 자라날 것이다.”―리다자오李大釗(린자오林昭의 인용), 본문 487쪽.

이 책은 ‘반우파운동’을 중심으로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 반우파운동 이전의 사회 분위기와 모순의 심화(특히 1부), 2. 우파인사들의 이단적 사상(특히 2부와 4부), 3. 우파로 몰린 자들의 피해와 고통(특히 3부), 4. 우파정신의 계승(5부) 등이다. 전체 내용 중 다른 무엇보다 우파인사들의 ‘정신과 활동’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반우파운동의 직접적 피해자이자 사상의 물꼬를 튼 대표적인 인물들, 예컨대 진정한 ‘백화제방 백가쟁명’을 실행하고 여러 논점과 시각을 새롭게 평가하자며 『광장』을 연 발간인들, “진정한 사회주의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며 유명한 연설을 남긴 린시링(林希翎), 공산당의 문예정신을 비판했다가 반혁명분자로 수감된 후펑(胡風)의 무죄를 주장한 류치디(劉奇弟), 특정 개인에 대한 숭배를 거부하며 정신적 독립과 자유를 부르짖은 탄톈룽(譚天榮) 등 5.19민주운동의 주체들을 가장 핵심적으로 다루고 있다.
여기서 ‘5.19민주운동’이란 1957년 5월 19일 베이징대학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민주의 벽’(학교 담장에 대자보를 붙여 민주에 관한 요구를 제기하였다)을 만든 것을 발단으로 신속하게 전국의 대학으로 퍼져 나간 학생민주운동을 가리킨다. 그들은 캠퍼스에서 대자보를 붙이거나 대중들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하였고, 『홍루』와 『광장』을 비롯한 다양한 잡지 출간을 통해 문예의 부흥과 사상의 해방을 부르짖었다. 나아가 스탈린주의적 교조주의에 반대하고 맑스주의의 비판 정신, 혁명적 본질을 회복하자는 강한 정치적 지향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당국에서는 이들의 활동을 경계심을 갖고 유심히 지켜보았고, 끝내는 반우파운동을 통해 이들의 말과 행위를 일소해 버렸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가족과 생이별하고 평생 우파 낙인을 안고 산 린자오는 당국을 향해 “계급투쟁을 명목으로 우민정책을 실행하여 정신을 기만하고 억눌러 중국 인민들을 노예화한다”며 강하게 반발하였다(그녀는 1968년에 사형당했다). 70년 말 많은 우파들이 명예회복이 될 때 끝끝내 제외된 린시링은 “국가와 백성에게 재앙을 가져온 관료, 간신, 국적(國賊)들이 ‘가장 혁명적인’ 좌파와 극좌파의 월계관을 쓰고 있다. 그들 대다수가 여전히 높은 지위와 많은 녹봉, 갖가지 특권을 누리고 있다”며 당내의 관료주의를 끊임없이 비판했다. 우파 청년들의 모순된 현실에 대한 비판과 민주를 향한 열정은 그 당시에는 철저하게 억압받았지만, 훗날 문화대혁명 중의 이단사조로, 1974년 광저우의 민주의 벽으로, 1976년 1차 톈안먼 시위, 1989년 6.4 톈안먼 시위로 그 명맥이 이어진 ‘이단의 역사’의 기원이 되었다.

첸리췬 역사서술법의 특징―1957년학

이 책의 지은이 첸리췬은 이렇게 정사(正史) 서술에서 누락된 이단적 사상의 역사를 복원하고자 한다. 위에서 발동한 운동이나 정풍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 아래에서부터의 자발적 운동이라는 점에서, 대(大)우파로 지목된 장보쥔(章伯鈞) 등의 민주당파와 달리 민주에 대한 열망이 새롭고 뜨거웠던 청년, 대학생들의 주장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지금껏 역사 연구에서 철저히 소외당한 부분이라는 점에서? ‘5.19민주운동’의 복원은 중국 현대사 연구에서 의미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는 이 속에서 관심의 시선을 반우파운동으로 고통받은 사람들, 특히 보통 사람들의 운명, 심리, 정신에 두고 있다. 그는 “우리 역사에는 늘 사건만 있고 사람은 없다, 혹은 역사의 위대한 인물만 있고 보통 사람은 없으며, 집단의 정치는 있으나 개체의 영혼세계는 없다”며 지금껏 중국사 서술에서 소홀히 다뤄졌던 평범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고통스러웠던 1957년의 역사를 재생시키고 민간의 사상사를 새롭게 펼쳐 보임으로써 ‘1957년학’이라는 연구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인민들의 비극적 삶을 말한다!

“예전에 단테의 『신곡』을 읽었는데,「지옥」편에서 난 이 작가가 지닌 잔혹한 상상에 놀랐다. 그러나 지금은 그가 그래도 너그러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의 아주 극히 평범한 고통과 처참함이 누구도 보지 못했던 지옥이라는 것을 그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루쉰(첸리췬의 인용), 본문 400쪽.

가정과 일상의 유린
이 책은 반우파운동으로 인해 우파로 몰린 인사들의 처절한 삶의 투쟁과 이와 연관된 수많은 평범한 중국인들의 억울하고 고단한 삶을 기록하고 있다. 반우파운동을 전후로 중국 사회에서는 개인 소유의 토지를 집단화하는 농업합작화와 국가와 민간이 공동 출자하는 공사합영 등 사회주의적 시스템이 급격히 도입되면서 국가와 인민의 이익 사이에 모순이 심화되고 있었다. 기업의 업무 성과가 국가의 이윤, 국가의 생산능력으로 환원되면서 상사들은 국가로부터 호평을 얻기 위해 노동자들의 월급을 비롯한 생산단가를 낮추고 이윤을 최대화하려 했다. 한 노동자의 말에 따르면, “건설사업을 하면서, 어떤 사람은 개인의 명예와 상급기관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 인민의 피땀을 먼지처럼 대합니다. 사고가 백출하고, 끊임없이 재공사를 하는데도 완공된 후의 품질은 오히려 떨어집니다.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의 생명을 다치게 했는지, 얼마나 많은 국가 재산을 낭비했는지 모릅니다!”라고 한다(54쪽).
체제 공고화 작업에 따라 공산당 간부들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이 일어났고 피해도 급증하였다. 한 공산당 간부는 버스와 항구를 장악해 폭리를 취했고, 무노임으로 사람들을 부려 자신의 저택을 지었다. 심지어는 권력의 힘으로 끊임없이 “여자를 찾아다녔고”, 현역 군인의 아내와 여성 간부까지 그의 ‘탐문’ 대상이 되었는데, 어느 누구도 감히 이것을 고발하지 못했다고 한다. 신문기자 다이황(戴煌)이 이와 같은 행태를 당국에 알렸지만, 그의 말은 오히려 죄가 너무 커서 용서받을 수 없는 ‘우파’의 확증이 되어 버렸다(48쪽 이하). 이렇게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권력을 소유한 당 간부들은 결혼 상대마저도 정해 줄 정도로 일상에 깊숙이 개입했다. 장셴츠(張先癡)의 기록이 이를 잘 예증한다. 모 군정대학에서 어느 소대장과 그의 대학 동기가 연애를 하면서 혼인을 준비하였는데, 생각지도 않게 사령부의 나이 든 간부가 그의 약혼녀를 마음에 두어, 조직 심사를 통해 허가를 받았고, 조직은 나서서 그녀에게 순종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물론 그녀는 마음에 둔 사람이 있다고 했지만, 조직에서는 “우리가 그에게 일을 줄 수 있다”고 안심시키고는 이를 “혁명을 위해 개인 이익을 희생하는 하나의 시험”이라며 강요했다. 그녀에게 선택지는 두 가지밖에 없었다. 순종해서 그럭저럭 살아가거나 거절하고 죽는 것으로 “혁명을 배반했다”는 죄명을 지는 것이었다. 결국 그녀는 순종했고, 소대장은 자살했다(449쪽).

수많은 우파 인사들의 수난
마오쩌둥은 반우파운동을 발동하고 나서 우파를 구분하는 기준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우파의 특징은 그들의 정치태도가 우(右)라는 것이고”, 둘째는 “우파의 비판은 늘 악의적이며”, “선의와 악의는 추측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지는 것”이다(457쪽). 우파 구분 기준이 매우 모호하고 주관적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적용된 기준은 사상, 정치성향, 태도뿐 아니라 출신가정, 인맥, 심지어는 각급 지도자의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이었다. 더구나 마오쩌둥의 이 발언은 준법률적인 효력을 지녔기에 당의 주관적 판단은 그야말로 절대적이었다. 그래서 많은 우파들이 사실은 우파로 분류될 만하지 않음에도 당을 반대한다는 죄명을 뒤집어써 억울함을 겪었다. 그 숫자가 어찌나 많은지 80년대 관방 언론에 따르면 55만 명이라고 하고, 학자 딩수(丁抒)에 따르면 180만 명, 심지어 2006년 홍콩에서 발표된「반우파운동의 기밀해제」에서는 중우(中友)를 포함하여 3,178,470명이라고 한다(8~9, 724쪽).
이 책에 소개된 우파인사들은 감옥과 노동개조대에서 오랜 기간 고난의 세월을 보냈다. 그러나 그들에게 더 큰 고통은 그들의 가족과 친구들, 심지어는 관련 없는 사람들까지도 고통의 수렁에 빠졌다는 점이다. 린시링의 경우, 그녀의 가족과 친척, 친구, 한 번 정도 교류했던 사람, 그녀의 연설을 듣고 편지를 쓴 사람, 이런 사람들의 가족과 친척, 그녀가 불쌍해서 한 번 도와준 어린 간호사 등등 수많은 사람들이 줄줄이 우파로 몰려 군중대회에 회부되는 등 오랜 기간 고초를 겪었다.
나아가 이런 분위기가 심화됨에 따라 사회 전체적으로는 모든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감시망의 통제 아래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데에만 열중하게 되었다. 허펑밍(和鳳鳴)의 회고에 따르면, “같은 처지의 친구들 간에도 교류가 불가능했다. 심지어 냉혹한 처벌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 비판받고 있던 친구에게 쪽지를 보냈다가 그 친구가 그녀를 반격하는 바람에, ‘공수동맹을 맺는다’는 죄명이 첨가되어 집과 가족을 모두 잃게 되었다.”(410쪽) 또 룸메이트에게 외로운 마음을 털어놓았다가 밀고되어 “개조에 전념하지 않는다”는 죄명까지 얻었다. 이렇게 반우파운동은 중국의 모든 인민들을 공포 속에 몰아넣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잔인한 이리와 흉악한 이리의 관계’로 만든 광기의 시대였다. 이 책은 이런 ‘혁명지옥’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증언하고 있다.

중국의 모순은 반우파운동에서 시작되었다!

“자기와 맞지 않는 사람들을 제거하는 알력투쟁을 일으키고,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정직하고 선량한 마음을 지니고서 민족의 질병을 걱정하던 그나마 깨어 있던 몇 안 되는 일부 인사를 숙청하고, 마오 한 사람에게만 지나치게 집중시킴으로써, 영웅투쟁의 역사 몇 페이지쯤은 자기 것으로 하고 있었던 중국공산당은 정의감을 거의 모두 상실하게 되었고, 나아가 그 생명력을 상실하게 되었다.”―린자오, 본문 511쪽.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 중국은 1949~53년 국민경제 회복기와 1954~56년 사회주의 개조기를 겪었고 또 그 사이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사회주의 사회’의 기본 골격을 갖추었지만, 수많은 모순들이 드러나 중국 사회에 쌓이게 되었다. 관료주의와 부패를 막기 위한 1951~52년 삼반오반(三反五反)운동, 1954년 부주석 가오강(高崗)과 중앙조직부 부장 라오수스(饒漱石)가 반당 연맹을 결성해 권력 탈취를 도모한 충격적인 사건(가오라오 사건), 1955년의 반후펑운동과 반혁명분자 숙청운동 등 정풍운동이 끊이지 않았다. 대외적으로는 소련공산당 20차 대표대회의 스탈린주의 비판에서 시작된 국제적 규모의 사회주의 개혁운동, 특히 1956년 폴란드와 헝가리에 일어난 반소련 민중운동은 중국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던져 주었다. 그리하여 “사회주의 중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란 첨예한 문제가 제기되었고, 정권을 잡고 있던 마오쩌둥과 중국공산당, 민주당파, 지식인, 청년학생들은 모두 이에 대해서 각자의 반응을 내보이게 되었다. 이것은 ‘5.19민주운동’의 한 배경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마오쩌둥은 민주당파와 지식인들을 연합시켜 당내 관료에 타격을 입혔고, 또 반우파운동을 빌려 당내 관료를 연합시킴으로써 민주당파와 지식인, 청년학생 가운데 ‘우파’를 타도하였다. 쌍백운동(백화제방 백가쟁명)으로 사상의 자유를 엶과 동시에 반당 세력을 우파로 몰아 한꺼번에 잡아들이는 그물망을 펼친 것이었다. 1958년 초에는 이 여세를 몰아 ‘당내 우경보수세력’에 타격을 가했다. 민주당파와 우파 지식인, 당내 관료와 반대파 모두에 타격을 줌으로써 중국공산당 집정 지위와 마오쩌둥 자신의 영도 지위를 공고히 한 것이다. 그러나 이 와중에 강행한 무리한 대약진운동과 인민공사운동(1958년)은 대기근을 불러와 전 인민을 재난의 구렁에 빠뜨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그는 정풍운동을 그치지 않고 1964~5년 사청(四淸)운동(정치.사상.조직.경제 정화운동)을 일으켰고, 마침내는 1966년 ‘프롤레타리아 전면 독재정치’ 실행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문화대혁명을 발동시켰다.
이를 보건대 ‘반우파운동’의 발동은 역사의 결정적인 순간에 중국이 잘못된 선택을 했음을 증명해 준다. 권력의 집중과 특권 등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고 민주 확대와 법제 실행을 거부했으며, 나아가 현행제도 속의 폐단을 극단으로 몰고 감으로써 결국은 계속해서 정풍운동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덩샤오핑이 평가한 바와 같이, “자각적이고 체계적으로 인민의 민주적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를 수립하지 못했으며”, “실제적으로 지도의 제도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결과 “문화대혁명 10년의 재난을 야기하고”, 전체 국가와 당 자신이 모두 붕괴될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347쪽). 이런 의미에서 1957년의 반우파운동은 문화대혁명으로 가는 길을 예비한다. 그리고 정풍의 역사, 탄압의 역사는 1989년 6월 4일의 톈안먼 시위대를 무참히 살해한 사건으로 반복된다. 이런 역사는 어쩌면 지금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뇌관으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이렇기 때문에 첸리췬은 반우파운동을 과거사 해결의 기점으로 보고 있다. “나는 반우파운동이 바로 매듭을 풀고 단추를 푸는 결정적 지점이기에 역사는 바로 거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11쪽)

* * *
60여 년 중국 사회주의의 실험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개혁개방 이후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면서 세계 경제의 큰손으로 자리 잡은 현재의 중국은, 그러나 1957년의 우파 인사들이 바랐던 진정한 의미의 개인의 자유와 독립, 사회적 평등은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 스마트 시대를 맞이한 오늘날 정보가 비대하게 늘어나고 대중들은 대중문화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지만, 권력자들은 사상과 정보를 통제하고 대중을 호도하며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한다. 비정규직을 비롯한 소수자의 외침은 잘 들리지 않고, 무수한 노동자들이 여전히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으며, 극빈계층이 증가하여 불평등구조가 심화되고 있다. 그리고 이는 남의 얘기가 아니라 우리의 얘기이기도 하다. 그들의 광기 어린 정권 수호 운동이 우리 사회에 오버랩할 수 없는 것이라고 어찌 단언할 수 있겠는가?

저자 소개

1939년 충칭重慶에서 태어났다. 1956년 베이징대학에 입학했다가 런민대학人民大學 신문학과新聞系로 학적을 옮겨 졸업했다. 1978년 베이징대학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ㆍ박사 학위를 받고 베이징대학 교수직에 임명되었다. 2002년 8월 정년퇴임했다. 그의 강의는 베이징대학의 최고 인기 강좌였고, 한 번에 수백 명에서 천여 명 이상이 몰려 성황을 이루었다. 1990년대 말 베이징대학 10대 우수교수 선정 행사에서 재학생의 투표로 1위에 선정되었고, 그 후 베이징대학의 ‘정신적 스승精神導師’으로 일컬어졌다. 루쉰魯迅 연구의 1인자이며, 문화대혁명을 가장 신랄하게 비판해온 지식인이다. 현재 중국에서 양심적이며 철두철미한 비판적 지식인으로 많은 이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퇴임 후에도 민간의 비판적 지식인들과 연계를 맺고 왕성한 집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루쉰과의 만남』 『저우씨 형제 이야기』 『저우쭤런을 읽다』 『저우쭤런전』 『심령의 탐색』 『정신의 연옥』 『풍부한 고통』『나는 존재한다, 나는 노력한다』 『학혼 재창조』 『망각을 거절하라』 등 30여 종이 있다.

역자 소개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중국 베이징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한국외대, 인하대 등에서 강의한다. 옮긴 책으로 『망각을 거부하라』 등이 있다. 

숙명여대 중문과, 베이징대학 중문과 중국현대문학 석・박사 졸업. 현재 숙명여대 중문학부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중국 문화연구에 관심을 갖고 있다. 지은 책으로 『在“說”與“不說”之間―上海淪陷區雜誌<萬象>硏究』(中國傳媒大學出版社), 옮긴 책으로 『숨겨진 서사』(공역), 『21세기 중국의 문화지도』(공역), 『중국현대통속문학사』(상・하, 공역)가 있고, 논문으로 「중국대중문화기호 ‘공을기’의 생산과 소비」, 「<웰컴투동막골>과 <鬼子來了> 속의 문화헤게모니 양상」 등이 있다.


 

이화여대 중문과, 베이징대학 중문과 중국현대문학 석・박사 졸업. 현재 전문번역에 종사하고 있으며, 옮긴 책으로 『착한 사람, 예로센코』, 『 사랑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슬픔』, 『구린내 나는 아홉번째 놈』, 『매의 노래』(공역) 등이 있다.


 

책 속에서

‘반우파운동’의 발동은 역사의 결정적인 순간에 중국공산당 최고 당국이 잘못된 선택을 하였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그 결과는 덩샤오핑이 총결한 바와 같이, “자각적이고 체계적으로 인민의 민주적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를 수립하지 못했으며”, “실제적으로 지도의 제도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이는 모두 ‘우파’들이 그 해 제기한 책무였다) 그 결과 “‘문화대혁명’ 10년의 재난을 야기하고”, 전체 국가와 당 자신이 모두 붕괴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본문 347쪽)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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