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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바꾼 동일본 대지진

박형준 저 | 논형 | 2012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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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3571232 / 208쪽 152 x 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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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동일본 대지진과 이후 일본의 변화상

일본은 지진의 나라다. 일본 기상청에 따르면 2011년 한 해 동안 일본에서 진도 1 이상의 지진은 9,723회 일어났다. 그 중 3월 11일에 발생한 진도 9의 지진을 ‘동일본 대지진’이라 부른다. 지진과 쓰나미, 원전 사고가 겹치면서 전례 없는 충격을 받았고, 일본 언론들은 고유명사처럼 동일본 대지진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동일본 대지진은 일본의 지각만 흔들어놓은 게 아니라 사회 문화 종교 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 변화를 불러 왔다. 일본인들이 대지진에 순응해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위기 때 자신의 안부를 물어오는 사람은 역시 가족이었다. 극히 개인주의적이던 일본인들이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저 세상으로 떠난 사람들의 넋을 기리면서, 또 자신의 정신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종교에 기대는 사람이 늘어났다. 초고층 맨션에 대한 인기가 시들해지고 얼마나 지진에 튼튼한지가 집을 고르는 주요 기준으로 떠올랐다. 원전이라면 손사래를 치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었다. 이 같은 변화는 쓰나미처럼 단번에 나타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세숫대야에 걸쳐놓은 수건이 서서히 젖듯 일본사회를 조용히 바꾸고 있었다.

필자는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발생 직후 일본 현장에 보름 동안 파견됐고, 같은 해 7월 일본 외무성 초청으로 복구 상황을 열흘 간 살펴봤다. 그 이후 게이오대학에서 1년 동안 객원연구원으로 지내며 동일본 대지진의 영향을 총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러한 경험을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일본의 변화상’으로 주제화하여 9개 장에 걸쳐 소개했다. 마지막 9장은 정치를 다뤘다. 일본의 각종 문제를 나열하고 그 원인을 따지다보면 깔때기처럼 모아지는 결론, ‘문제는 정치’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일본의 정치는 대지진이라는 충격 속에서도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보였다.

저자 소개

1974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다. 1999년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2002년 고려대 국제대학원을 졸업했고, 2007년 핀란드 알토대학(전 헬싱키대학) MBA를 끝냈다. 대학원 졸업 전인 2001년 10월 동아일보에 입사해 사회부, 경제부, 국제부, 정치부, 경영전략실, 방송설립추진단, 산업부를 거쳤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곧바로 일본 현지에 파견되어 보름 동안 지진과 쓰나미, 원자력발전 사고를 취재했고, 그 해 7월 일본 외무성 초청으로 지진 복구 과정을 열흘 간 지켜봤다. 그 이후 게이오(慶應)대학에서 1년 동안 객원연구원으로 지내며 ‘동일본 대지진이 미친 영향’에 대해 연구했다. 

책 속에서

34세의 회사원 이토 슈지로(伊藤修次郎) 씨는 대지진 후의 바뀐 가치관을 잘 보여준다. 그는 2011년 10월 도쿄(東京) 신주쿠(新宿)에 있는 인재파견회사로 직장을 옮겼다. 세 번째 전직이었다. 지진이 있었던 3월말부터 10여 개 회사를 검토한 끝에 인재파견회사를 결정했다. 가장 큰 고려 요소는 ‘급료’가 아니었다. 집과의 거리 그리고 얼마나 편하게 휴가를 쓸 수 있는지 두 가지였다. 이토 씨는 인재파견회사에서 집까지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재해로 교통시설이 마비되더라도 걸어서 집으로 가 가족의 안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1장 바뀌는 정신세계‒ ‘개인’에서 ‘우리’로)

음식을 나눠주는 것을 보고 줄을 서서 따뜻한 밥 한 그릇과 졸인 꽁치 1마리, 미소시루(味噌汁)를 받아들었다. 먼저 국부터 한 모금 마셨다. 국물이 입에서 목으로 흘러내려갔다. 그때까지 줄곧 마셨던 물과 달리 따뜻하고 영양분이 있는 국물이었다. 뭔가 속에서 ‘울컥’ 했다. 이어 꽁치를 얹어 밥 한 숟갈을 떠먹었다. 그러자 ‘밥이라는 게 이렇게 소중한 것이구나’는 감사함이 마눈물을 음속 깊은 곳에서 솟구쳐 나왔다. 주위를 보니 밥 한 공기를 들고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당시 나는 그 눈물의 의미를 충분히 알 수 있었다.
(2장 자원봉사자와 밥 한 공기 그리고 눈물)
물품을 나눠주는 자원봉사자 종교인들은 유가족의 상처를 보듬을 뿐 아니라 피난소와 구호품을 공급하는 역할도 했다. 지바(千葉) 현의 한 절은 지진 직후인 3월 16일부터 4월 중순까지 1달 동안 원전사고로 피난해야했던 후쿠시마(福島) 현민 9세대 25명을 받아들였다. 받아들인 피난민 숫자는 많지 않지만 이런 사례가 늘어난다면 그 힘은 커질 수 있다고 내다보고 먼저 시작한다는 데 의의를 뒀다. 이 절의 승려는 5명. 첫째 날 저녁과 이튿날 아침 식사는 승려들이 준비했지만 그 이후는 피난민들이 직접 해결하게끔 했다. 유치원 아동부터 79세의 고령자까지 피난민들은 3개조로 나눠 조리와 청소 등을 했다.(3장 종교의 재발견) 이와테(岩手) 현 오후나토(大船渡) 시내 모습 일본 경제는 2000년대 초반 상승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금융 구조조 정이 가닥을 잡아갔고 세계적으로 경제 호황을 맞으면서 기업들도 상황이 나아졌다. 이때 부동산도 반짝 탄력을 받기도 했다. 2003년부터 도쿄 도심에서 부동산 거래가 활성화되면서 주택 가격이 올랐다. 동일본 대지진 전 일본인들의 주택 구매 기준은 실용, 도심, 학군이었다. 하지만 대지진 후 일본인의 주택관은 크게 바뀌었다. 그 무엇보다 ‘안전’을 중요한 요소로 따지기 시작했다. 일부 깐깐한 일본인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인 두 명 중 한 명은 대지진으로 주택 구매 기준이 바뀌었다.(4장 부동산 시장의 지각변동)

지바 현에 사는 나카무라 지즈코(中村千鶴子·31·가명) 씨는 2011년 6월부터 오키나와(沖縄) 나하(那覇) 시에서 4살짜리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남편은 지바 현에 남아 계속 일했다. ‘도저히 불안해서 살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나카무라 씨는 원전 사고가 발생한 후쿠시마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도시를 찾았다. 답은 오키나와. 지바에서 약 1,500㎞ 떨어져 있었다. 비행기로 가자면 2시간 50분 정도 걸린다. 오키나와 현 사회복지협의회에 따르면 대지진 발생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나카무라 씨처럼 오키나와로 피난 온 가구는 181세대 496명이다. ‘비정상적일 정도로 민감한 사람’만이 피난 온다고 보기에는 너무 많은 숫자다.(5장 무너지는 ‘일본 신화’)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한 홋카이도 모임’이 집회하고 있는 장소에서 작은 인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일본인 20여 명이 모여 반대 시위를 했다. 그들의 주된 주장은 “지금 일본이 대지진 복구로 정신이 없는데 너희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위안부 집회를 여느냐. 지금이 그렇게 한가한 때냐”라는 것이었다. 홋카이도 모임 회원들은 집회를 끝내며 한국어로 된 아리랑 노래를 불렀다. 그러자 반대 시위자들은 기미가요를 불렀다. 노래가 끝난 후 반대 시위자들은 “덴노헤카 반자이(천황폐하 만세)”를 수차례 외쳤다. 침략의 역사에 눈을 감으려 하는 일본인들은 아직도 많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덴노가 최고의 정점에 자리하고 있다.(6장 덴노가 움직인다)

전력을 생산하는 것은 발전 사업자만 하는 것은 아니다. 개별 가정에서도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지붕 위에 태양전지 모듈을 설치해놓고 태양광을 전기로 변환한 뒤 축전지에 모아 두면 된다. 천재지변으로 전력 공급이 되지 않아도 걱정 없다. 자체 발전을 통해 전등을 켜고 가전제품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정용 발전 시스템은 동일본 대지진 이후 크게 주목을 끌고 있다.(7장 새로운 에너지 실험)

지진과 쓰나미 피해로 일본 동북부 지역의 부품공장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생산 차질을 겪다보니 수출이 주춤했다. 2011년 일본은 31년 만에 무역수지 적자로 돌아섰다. 경제성장도 마이너스가 확실시 된다. 대지진 피해를 복구하려면 천문학적인 정부 재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일본의 국가채무는 국내총생산(GDP)의 200%를 넘어서 추가 재원 마련이 쉽지 않다. 세금으로 충당한다면 국민들의 생활은 더욱 힘들어지고 그런 만큼 소비를 줄일 것이다. 그럼 내수 시장이 위축된다. 종합해보건대 엔화 가치가 떨어져야 정상이지만 실제 상황은 반대로 움직였다.(8장 환율 미스터리)

동일본 대지진은 국민들의 가치관과 생활방식을 바꿀 정도로 일본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일본의 정치 행태는 예전 그대로다. 일본 사회의 문제점을 논하다보면 결국 ‘정치적 리더십 부재’로 귀결될 정도로 일본 정치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무디스가 2011년 8월 일본의 국가 신용등급을 하향하며 그 이유로 ‘리더십이 없다’고 밝힐 정도다. 1년이 멀다 하고 총리가 바뀌는 상황은 경제는 물론 사회 전반에 부담을 주고, 이는 다시 정치를 압박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일류 경제국가가 삼류 정치를 하는 이유가 뭘까.(9장 그러나 바뀌지 않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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