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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6680437 / 296쪽 152 x 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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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이 책은 꿈과 삶에 대한 김명곤의 자전적 기록이다. 막연히 문학가가 되고 싶었던 청소년시절을 거쳐 서울사대에 입학한 후 운명처럼 찾아온 연극에 미치고, 지리산 자락에서 들려오는 판소리의 울림을 따라 박초월 명창의 애제자가 되면서 소리꾼이 되었으며, 탐미적 예술관을 가졌던 그에게 불온한 영향을 끼쳤던 남민전 사건. 이후 80년대 민중문화운동의 전위인 연극 연출가, 작가, 제작자, 배우로 왕성한 활동을 펼쳤으며, 영화에 진출해 남우주연상을 거머쥐기도 한 사연. 국립극장장, 문화부장관 재임 시의 영광과 고뇌.
여고 1년생 제자와의 부적절한(?) 로맨스, 김명곤을 바른 길로 인도하고 정작 자신은 반대편으로 가 버린 정치인 이재오와의 애매한 인연, 김명곤에게 문화예술에 대한 식견이 천박하다는 지적을 당하고도 그를 장관으로 기용한 대인배 노무현과의 인연.
한 번도 시대정신을 외면한 적이 없는, 스스로 한없이 낮아지려는 사람, 그는 광대다. 꿈꾸는 광대! 김명곤이다.
책의 내용
제1부는 날개 단 김명곤이다. 연극으로 시작했지만 그에게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준 것은 영화
<서편제>
다. 그는 서편제로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임권택 감독, 소설가 이청준과의 인연이 소개된다. 작가 이윤기와 영화감독 이장호도 그에게는 잊을 수 없는 은인들이다. 국립극장장과 문화부장관으로 만난 김대중과 노무현과의 일화는 김명곤의 강단을 알게 해 준다.
제2부는 어린 시절부터 서울대 입학까지의 청소년 시절 이야기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에게 예술의 혼을 불어넣어준 분들이다. 고전을 가르치던 고교시절 은사는 김명곤에게 문학의 눈을 뜨게 해 주었다.
제3부는 청년 김명곤이다. 연극에 미치고, 판소리에 미치면서 자기도 모르게 예술가로서의 초석을 다지는 시기. 박초월 명창을 만나고,
<뿌리깊은 나무>
한창기 사장을 만나는 등 인생의 은인들이 찾아왔지만, 병마가 찾아와 고통과 시련으로 절망하던 시절이기도 하다. 여고 1년생 제자는 아내가 되어 김명곤의 병을 ?아내 준다.
제4부는 탐미적 예술가에서 민중문화운동가로의 변신과 실천을 보여준다. 80년대 민중문화운동의 연극판 앞자리에는 늘 김명곤이 있었다. 여고 1년생 제자는 ‘거지아내’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제5부는 국립극장장, 문화부장관 등 문화행
전천후 엔터테이너 김명곤
독일어 교사,
<뿌리깊은 나무>
기자, 소리꾼, 희곡 작가, 연극연출가, 연극배우, 시나리오 작가, 영화배우, 국립극장장, 문화부장관…. 김명곤이다. 내년에 60세가 되는 이 사내는 지금도 꿈을 꾼다. 그의 꿈은 오로지 예술이다. 연극, 영화, 뮤지컬 등을 통해 표현할 수 있는 자기만의 예술. ‘불후의 명작’에 대한 꿈.
故 이윤기(소설가, 번역가)는 1991년에 나온 김명곤 수필집
<꿈꾸는 퉁소쟁이>
에서 김명곤을 이렇게 소개했다.
서울대 독어교육과를 나와도 자기 저서에는 독일어를 한마디도 안 쓰는 지독한 바지저고리. 판소리꾼인가 하면 영화배우로도 뛰고, 연극 평론을 하는가 하면 소설도 써내는 팔방미인. 20대의 카오스에서 자기를 건져준 문학과 연극에 공양미 시주 대신 거짓 민중보다 참 민중을 더 섬기겠노라 약속한 큰 광대 김명곤이 온몸으로 부르는 소리가락!
김명곤의 삶을 만나면, 우리가 산 삶은 지우개로 북북 지우고 싶어진다! 그가 살아온 험하고도 아름다운 삶을 들으면 문득 그를 닮고 싶어진다!
무대에 서면 청산유수같이 대사를 뱉어내는 김명곤도 자기 이야기를 할 때면 그렇게 어눌할 수가 없다. 그의 인생에는 대본이 없기 때문인가?
당시 고려원 편집주간이던 마흔네 살의 이윤기가 서른아홉 살 김명곤을 이렇게 평했다. 이때 김명곤은 극단 아리랑 대표로 민중문화운동의 선봉에서 가난한 민중연극을 이끌고 있었지만 대중들에게는 낯선 인물이었다.
개념광대 김명곤의 탄생
1993년 영화
<서편제>
는 그에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안겨주면서 김명곤을 일약 스타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조용히 연극으로 돌아갔다. 여전히 그는 작가였으며 배우였고 연출가였다. 2000년에 국립극장장, 2006년에 문화관광부장관을 지냈지만, 그는 다시 예술의 자리로 돌아와 연극, 뮤지컬, 영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천상 예술인이다.
신분계급이 엄격했던 조선시대에 양반을 희롱하는 광대들의 탈춤이 있었다. 1%를 위해 99%의 희생을 강요하는 부당한 사회시스템은 소셜테이너를 탄생시켰다. 광대와 소셜테이너 사이에 김명곤이 있다. 김명곤이 유일하지는 않지만 김명곤이 대표적이다. 한결 같이 한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 ‘광대’임을 자랑스레 여긴다. 하여 그는 개념 광대이다.
개념광대 김명곤의 탄생은 1979년 남민전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민전 사건에는 지금 진보신당 대표가 된 홍세화, 고인이 된 시인 김남주 등과 함께 보우수익 정치인으로 크게 성장한 이재오가 있었다. 이재오는 교사생활을 하면서 ‘이민’이라는 가명으로 교사극단을 이끌었고, 김명곤도 독일어교사 시절 이 극단의 멤버였다. 독일 희곡에 심취하며 탐미적 예술을 지향했던 김명곤은 이재오 등 극단 동료교사들의 구속을 보면서 사회를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시인 김용택의 말대로 “전봉준 같은 단단한 몸으로 깃발”을 들었다. 80년대 그는 민중문화운동의 선봉이 되었다.
그는 언제나 외로운, 꿈꾸는 광대였다
김명곤이 국립극장장이 되고 문화부장관이 되었을 때 그의 변신을 우려하는 시선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를 걱정하지 않았다. 시인 도종환은 ‘남산의 소나무가 그에게 박수를 보낼 것’이라며 김명곤에게 신뢰를 보냈다.
…그대 길 없는 길을 내기 위해 / 모든 걸 버릴 줄 아는 이였기에 / 그대 새로운 길 열어가기 위해 / 전 생애를 걸 줄 아는 이였기에 / 어느 곳 어느 자리에 있어도 / 외로운 광대임을 잊지 않으리라 믿는다… -p248
극장장, 장관 등 공익근무를 마친 김명곤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가 늘 꿈꿔 온 예술판으로 돌아왔다. 천연덕스럽게 다시 광대가 되었다. 다시 연극을 기획하고, 영화에 출연하며, 뮤지컬 대본을 쓰고 있다.
그는 대학시절 연극과 판소리의 기초를 다졌지만,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사골 출신 장남의 책임감도 적지 않았다. 타협적으로
<뿌리깊은나무>
기자가 되었지만 1년을 넘기지 못했다. 연극병이 도진 것이다. 그러나 시골의 부모님까지 상경한 터에 생활은 그를 연극판에 둘 수 없었다. 배화여고 독일어 교사가 되었다. 교사를 천직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수업이 일찍 끝나면 연극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태생부터 불량교사였던 셈인데 그 마저도 2년 만에 그만 두었다. 그리고는 본격적으로 민중문화운동의 선봉이 되었다. 故 이윤기 표현대로 “거짓 민중보다 참 민중을 섬기겠노라는 큰 광대”, 참 광대가 된 것이다.
그 뒤로
<서편제>
로 인기와 명성을 얻었지만, 그는 곧바로 연극무대로 돌아와 대본을 쓰고 연출을 하며 연기를 하였다. 국립극장장을 지내고,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뒤 곧바로 광대로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 “온 생애를 꿈꾸는 일에 의탁하고, 한 편의 영화나 연극에 바칠 때 예마는 찾아올 것이다. 나는 예마를 만나기 위해 몸부림치고”(p291)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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