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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유기

시리즈 : 기파랑 고전 명저 시리즈 [8]

이광수 저 | 기파랑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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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5239499 / 264쪽 148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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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90년 만에 다시 선보이는 춘원의 기행문 춘원 이광수(春園 李光洙)는 일제 식민지 하이던 1921년과 1923년 여름, 두 차례에 걸쳐 금강산을 유람한다. 한반도 최고의 경승(景勝)을 돌아본 천재 작가는 1922년 3월부터 8월까지 잡지 에 첫 번째 금강산 기행문을 연재했다. 그리고 두 번째 금강산 유람에 대하여 쓴 글을 합쳐 1924년 출판사 시문사에서 이 책『금강산 유기(遊記)』를 출간했다. 그로부터 근 90년 세월이 지난 이 시점에서 ‘기행문의 백미로 삼을 만큼 보기 드문 명문’을 다시 한 번 감상하기로 했다. 다만 한... 90년 만에 다시 선보이는 춘원의 기행문 춘원 이광수(春園 李光洙)는 일제 식민지 하이던 1921년과 1923년 여름, 두 차례에 걸쳐 금강산을 유람한다. 한반도 최고의 경승(景勝)을 돌아본 천재 작가는 1922년 3월부터 8월까지 잡지 에 첫 번째 금강산 기행문을 연재했다. 그리고 두 번째 금강산 유람에 대하여 쓴 글을 합쳐 1924년 출판사 시문사에서 이 책『금강산 유기(遊記)』를 출간했다. 그로부터 근 90년 세월이 지난 이 시점에서 ‘기행문의 백미로 삼을 만큼 보기 드문 명문’을 다시 한 번 감상하기로 했다. 다만 한문과 한자식 어투가 많아 가능하면 당시의 표현과 문법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오늘의 어법에 맞도록 쉽게 고쳤다. 해제를 맡은 작가 문형렬은 “문장이 유려하면서도 섬세하고 사실적이다. … 금강의 아름다움을 그린 그의 글을 따라 읽으면 함께 금강산 구경을 다니는 느낌이 들 만큼 절승(絶勝)을 묘사한 솜씨가 뛰어나면서도 구체적이라 가슴을 울렁울렁하게까지 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철마다 다른 흥취, 이름마저 다양한 금강산 잘 알다시피 금강산은 철마다 이름이 다르다. 봄에는 금강산, 여름에는 봉래산, 가을에는 풍악산, 겨울에는 개골산으로 불리는 것이다. 하필 두 번 다 여름철에 구경 간 춘원은 이렇게 썼다. “단풍철에 석양이 천봉만만(千峯萬巒\u003d천개의 봉우리와 만개의 산, 무수한 산과 봉우리)을 비추는 경치는 참 아름답다 합니다. 그래서 금강의 진면목은 단풍철에 있고 단풍철의 진면목은 석양에 있다 합니다. 나는 불행히 여름철에 왔기 때문에 이 단풍과 석양의 금강을 보지 못함이 한이거니와, 그렇다고 금강의 아름다움이 반드시 단풍철에만 한할 것은 아니외다. 겨울철에 허옇게 흰 눈이 내린 금강과 봄날 차가운 노을이 가득한 금강도 좋은 것이요, 지금 내가 목전에 대하고 있는 여름철 안개의 금강, 구름의 금강, 비오는 금강, 넘치는 햇빛 속의 금강, 물소리의 금강도 아름다움을 버릴 것은 아닙니다. 도리어 그 변화의 다양함은 여름철이 제일일 것입니다.” 그야 어쨌든 금강산 길이 막혀 있는 지금, 우리는 이제 언제가 될지 모르는 기행을 기약하며 춘원을 따라 상상의 나래를 펴기로 한다. “안개가 봉우리의 허리를 두르니 봉은 창천에 달린 듯하고, 봉의 머리를 싸니 봉은 머리 없는 봉이 됩니다. 다시 그 안개가 봉을 머리에서 배까지 가르니 문득 하나의 봉우리가 쌍봉이 되고, 그 안개가 소나무와 잣나무 속에 스러지니 쌍봉이 일봉이 됩니다. 다시 안개가 송백 속에서 나와 엉키니 문득 흰 바위가 되고, 엉키었다 새로 흐르니 문득 폭포가 되고, 폭포가 되었다가 마침내 흩어지니 한 무리 면양(綿羊)이 되고, 스러져 하늘로 오르니 신선이 차를 달이는 연기가 됩니다.” 슬행, 수행, 지행, 복행? 난코스로 알려진 수미암 가는 길의 어려움을 표현한 글을 읽노라면 왠지 슬그머니 웃음이 나온다. “둔행칠리(臀行七里), 내려오려면 엉덩이를 대고 걷는 데가 7리나 된다는 뜻이외다. 과연 암자에서 몇 십 걸음을 못 가서부터 풀뿌리를 더위잡으며 바위 뿌다귀에 손가락을 걸고 매어달릴 데가 옵니다. 무릎을 발삼아 쓰니 슬행(膝行)이요, 손을 앞발 삼아 쓰니 수행(手行)이외다. 게다가 일전에 비가 와서 미끄럽기가 한이 없습니다. 약한 풀뿌리를 더위잡아 가며 몸의 탄력을 이용하여 뛰어오르니, 우뚝 서기만 하면 미끄러질 데가 있습니다. 손가락을 바위 조금 턱진 데다가 걸고 한 손가락씩 발발 떨며 옮겨 놓아, 그 힘에 몸이 한 치씩 두 치씩 배밀이를 하여 올라가는 데가 있으니 이는 복행(服行)이요, 지행(指行)이외다.” 아쉬움 한 보따리, 안타까움 한 보따리 기행을 마치며 춘원은 “백탑동 구경으로 다시 금강에 든 목적도 다 달하였습니다. 아직도 남은 것이 비로봉의 일출과 월출을 보는 것과, 발연의 달님 목욕을 하는 것과, 성문동에 들어가는 것이거니와, 이보다도 금강의 봄 풍경과 가을철 단풍과 겨울철 구름 풍경을 봄이니…”라며 잔뜩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군데군데 낙서로 더럽혀진 광경을 목도하고는 이렇게 한탄하기도 했다. “참말 금강산 바윗돌은 행복이외다. 석수(石手)가 들어와 때려낼 근심도 없고, 천공(天公)이 만들어놓은 그대로 오직 맑은 물과 맑은 바람에 천공의 자애로운 조탁(彫琢)을 받아 날로날로 모양을 변하며, 날로날로 아름다워지면서 천국에 임하기를 기다릴 뿐이외다. 오직 사람의 발이 갈 수 있는 바위가 수없는 추한 자들 이름자에 더럽혀진 것이 한이외다.” 그가 만약 북한의 온갖 구호로 범벅이 된 오늘의 금강산을 보면 가슴을 치면서 눈물을 뿌릴 것만 같다.

저자 소개

이광수(1892∼1950)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춘원(春園) 이광수는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아명은 보경(寶鏡)이고, 작가이자 문학평론가, 사상가이자 기자, 논객으로 활동하며 고주(孤舟), 외배, 올보리, 장백산인(長白山人), 춘원생, Y생 등의 필명을 썼다.
이광수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1905년 일진회(一進會) 유학생으로 도일해 일본 와세다 대학 문학과와 철학과에서 수학하면서 신학문을 접하게 된다. 홍명희·최남선 등과 교류하고 톨스토이·바이런 등의 외국 사상가의 저서를 읽으면서 세계를 향해 시야를 넓혀 가던 이 시절은 그가 한국 근대문학의 기틀을 닦는 사상적 자양분을 마음껏 흡수할 수 있던 시기였다. 이때 발표한 <문학이란 하오>는 한국 근대문학의 범주와 방향을 제시한 본격적인 근대문학론이라 할 수 있다. 이광수는 1909년 첫 작품 <사랑인가>를 발표한 이후 <어린 벗에게>, <윤광호>, <소년의 비애> 등의 소설을 통해 자유연애를 옹호하고 기성의 도덕을 부정하는 진보적 사상을 고취했다. 특히 1919년 학비 보조를 위해 ≪매일신보≫에 연재하기 시작한 ≪무정≫은 계몽주의적 자유연애론과 근대적 자아의 각성 문제를 다룸으로써 인습에 반기를 들고 신문명의 기치를 든 청년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소설뿐 아니라 시와 논설, 평론 등을 발표해 사상가로서 초석을 닦고 있던 이광수는 이미 재일 유학생 사회에서 저명인사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였다. 이에 따라 그는 자연스럽게 유학생 활동에 앞장서면서 1919년 ‘2·8독립선언서’의 초안을 작성하는 일을 맡게 된다. 이후 상하이로 탈출해 그곳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관지인 ≪독립신문≫의 주간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여기서 그는 도산 안창호를 만나고 그의 사상에 깊이 감화되어 그를 ‘아비’로 칭하고 평생에 걸쳐 존경심을 표한다.
1921년 귀국한 즉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지만 춘원의 후원자인 아베 요시이에(阿部充家)의 도움을 받아 불기소처분을 받아 풀려난 뒤로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지낸다. 1921년 ≪개벽≫에 조선 민족의 민족성을 개조하자는 내용을 골조로 하는 <민족 개조론>을 연재해 조선 사회에 엄청난 반향과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춘원의 집과 개벽사가 습격당할 만큼 거센 반발이 있었지만 그의 입장에서 이 논설은 돌출되거나 변질된 사상이 아니라 그가 일관되게 주장해 온 민족 개조론과 실력 양성론을 실천적으로 구체화한 글이라 할 수 있다.
1924년 ≪동아일보≫에 발표한 소설 ≪재생≫은 문학사적 의의 외에도 이광수가 본명을 사용한 첫 소설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이를 계기로 춘원은 10여 년간 가장 왕성한 문학 활동을 펼치면서 문단의 중심에 서게 되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그는 순문예지 ≪조선 문단≫의 주재로 활동했고, ≪혁명가의 아내≫, ≪사랑의 다각형≫, ≪삼봉이네 집≫에 이르는 ≪군상≫ 3부작과 역사소설 ≪단종애사≫, ≪마의태자≫ 등의 작품을 발표했을 뿐 아니라 ≪흙≫(1932), ≪유정≫(1933) 등의 대표작을 남겼다. 특히 ≪흙≫은 그가 조직한 흥사단의 국내판 수양동우회와 ≪동아일보≫ 편집국장 신분으로 전개한 ‘브나로드 운동’의 방편으로 쓰인 농촌계몽소설이다. 1938년에 발표한 전작 소설 ≪사랑≫에는 아들의 죽음, 도산의 죽음, 수감 생활로 이어지는 일련의 고통스러운 사건을 거친 후 종교적 세계에 안주하려는 춘원의 현실 초극 의식이 잘 드러나 있다.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은 이광수에게 변절의 오명을 덧씌운 결정적 계기가 되는데, 이 사건 이후 그는 “천만 동포를 천황의 독자로 만드는 데 여생을 바치겠다”는 맹세에 따라 친일 행각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그는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로 창씨개명을 하고, 황국 위문 작가단을 결성하고, 친일 단체인 조선문인협회 초대 회장으로 앞장서 내선일체 구현을 강조하는 일본어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후에 이 모든 행위가 조선 민족을 보호하기 위한 타협책이었다고 변명하기도 했으나 광복 후 반민특위에 의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러나 이때 이미 폐병과 결핵으로 온몸이 만신창이 상태였던 이광수는 아들의 탄원 덕분에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불행히도 1950년 납북된 후 그의 마지막 모습은 확인할 수 없으나, 평양감옥에 수감되었다가 자강도 고개동에서 사망, 모처에 매장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광수의 삶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해방에 이르는 역사의 파고 가운데 민족의 운명과 더불어 부침을 겪었다. 그는 문사(文士)이자 지사(志士)로 공론의 장에 참여해 목소리를 높이면서 역사 속으로 자신의 삶을 투항했다. 비록 친일의 낙인이 찍힌 ‘흠 많은’ 우리 문학의 아버지일지언정, 이광수의 삶과 문학에는 우리 근대사의 공과가 그대로 새겨져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목차

목차
* 남대문역에서 고산으로 * 고산역∼철령관∼장안사 * 영원동∼망군대 * 만폭동
백운대∼선암∼수미암 * 선암 * 수미암 * 비로봉 * 은정령 * 만물초 * 구룡연 * 보광암∼동석동 * 유점사 * 은선대 * 미륵봉∼중내원 * 안무재 * 백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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