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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 2 문명의 수수께끼를 풀다 1915~1939

시리즈 : 문제적 인간 [14]

피터게이 저 | 정영옥 역 | 교양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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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1799660 / 718쪽 153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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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프로이트 이해를 위한 최적의 안내서 단 하나의, 가장 완전한 프로이트 평전 우리 시대 인문학의 거인 피터 게이 정신분석의 메스로 프로이트의 삶을 해부하다 무의식의 탐험가, 정신의 정복자, 문명의 해부학자 20세기 인문의 지형을 바꾼 정신분석 혁명가에 관한 예술 작품처럼 아름답고 위풍당당한 평전 ! 인간 존재의 수수께끼를 푼 현대의 오이디푸스, 지크문트 프로이트. 그는 코페르니쿠스와 다윈에 이어 서구 지성사에 가장 심대한 변화를 일으킨 불온한 과학자, 정신의 광대한 미개척 지대인 무의식을 탐사하고 최초로... 프로이트 이해를 위한 최적의 안내서 단 하나의, 가장 완전한 프로이트 평전 우리 시대 인문학의 거인 피터 게이 정신분석의 메스로 프로이트의 삶을 해부하다 무의식의 탐험가, 정신의 정복자, 문명의 해부학자 20세기 인문의 지형을 바꾼 정신분석 혁명가에 관한 예술 작품처럼 아름답고 위풍당당한 평전 ! 인간 존재의 수수께끼를 푼 현대의 오이디푸스, 지크문트 프로이트. 그는 코페르니쿠스와 다윈에 이어 서구 지성사에 가장 심대한 변화를 일으킨 불온한 과학자, 정신의 광대한 미개척 지대인 무의식을 탐사하고 최초로 정신의 지도를 그린 정신의 탐험가였다. 프로이트가 창조한 정신분석은 정신의학을 넘어 철학, 심리학, 문화 이론으로서 인류의 지적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프로이트는 인류에게 결코 치유될 수 없는 치명적인 심리학적 모욕을 가했다. 그는 인간을 사유하는 존재, 자기 자신의 주인이 아니라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 노예의 위치로 끌어내린 환상의 파괴자였다. 또한 그는 정신분석이라는 무기를 들고 인간 집단의 삶의 기초를 이루는 예술, 종교, 문명의 뿌리까지 파 들어간 문명의 해부학자였다. 프로이트로 인해 인간은 자신을 과거와 완전히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프로이트는 언제나 맹렬한 증오와 열렬한 추종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를 미워하는 사람일지라도 그를 존경하는 사람만큼이나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정신분석의 황태자에서 가장 냉랭한 적이 되어 프로이트와 결별한, 집단무의식의 아버지 카를 융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융의 분석심리학, 알프레트 아들러의 개인심리학, 멜라니 클라인의 아동심리학, 안나 프로이트의 자아심리학, 에릭 번의 교류분석 이론에 이르기까지 20세기 심리학은 프로이트라는 하나의 뿌리에서 시작되었다. 프로이트의 이론은 심리학을 넘어 철학, 사회학, 문학, 교육학, 신학 등 많은 학문 영역에 완전히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였다. 코페르니쿠스 이후 우리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마르크스 이후 우리는 인간 주체가 역사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프로이트는 인간 주체에는 중심이 없다는 것을 밝혀주었다. - 루이 알튀세르 그에게는 신앙도, 꿈도, 인류의 의미나 임무도 문제되지 않는 광대한 무한까지 나아갈 용기가 있었다. - 슈테판 츠바이크 《꿈의 해석》은 나에게 일생일대의 발견이다. 내 꿈만이 아니라 내 인생 경험도 바로 여기 나와 있다. - 살바도르 달리 서구 근대 사상사와 문화사 연구의 대가인 역사학자 피터 게이는 《프로이트》에서 가난한 집안 출신의 명민한 유대인 소년이 세기말 빈에서 정신분석이라는 독창적 이론의 창시자로서 세계적인 정신분석 조직의 수장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촘촘히 재구성해 보여준다. 10년에 걸친 연구와 2년 반의 집필 기간을 거쳐 완성된 《프로이트》는 출간 즉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학계와 일반 독자들에게서 모두 높은 평가를 받았다. 마치 한 편의 역사 소설을 읽는 듯한 흥미진진한 서술 방식, 탁월한 문장 감각과 명쾌한 비유, 편향되지 않은 객관적 시각으로 최고의 프로이트 전기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인간 존재의 수수께끼를 푼 현대의 오이디푸스, 최초로 정신의 지도를 그린 무의식의 탐험가, 인류의 지적 패러다임을 바꾼 사유의 혁명가를 만나다 이 책은 가난한 집안 출신의 명민한 유대인 소년이 세기말 빈에서 정신분석이라는 독창적 이론의 창시자이자 세계적인 정신분석 조직의 수장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촘촘히 재구성해 보여준다. 성(性)과 인간 정신에 대한 대담한 발견으로 시대와 불화했던 불온한 과학자이자 동시에 전형적인 19세기 부르주아 신사였던 프로이트의 양면이 깊이 있게 밝혀진다. 그는 두려움을 모르는 연구자로서 자신의 가장 깊은 존재의 대부분을 대중 앞에 드러냈다. 정신분석은 프로이트의 철저한 자기 분석에서 잉태되었다. 그는 시간 낭비라고는 몰랐던 일중독자, 30여 차례가 넘는 혹독한 암 수술을 이겨낸 뒤에 마침내 자신의 죽음마저 통제한 금욕주의자, 쏟아지는 비판 속에서도 정신분석이라는 씨앗을 거대한 숲으로 일군 노련한 조직가였다. 중독의 심리적 메커니즘을 누구보다 정확히 꿰뚫었으면서도 정작 자신은 니코틴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순의 인물이었다. 프로이트는 자신을 스스로 정복자라 불렀다. 이 책은 그의 정복의 역사다. 그 정복들 가운데서도 가장 극적인 것이 프로이트 자신의 정복이었음을 이 전기는 보여준다. 1권은 1856년 5월 6일 프로이트의 출생부터 세계의 비밀에 대한 왕성한 지적 호기심으로 의학도의 길을 선택한 청년 시절, 뇌와 신경을 연구하던 뛰어난 신경학자에서 무의식을 탐구하는 심리학자로의 변신, 1890년대 말 정신분석의 탄생과 1910년대 이론적 정교화 시기까지를 다룬다. 저자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유아 성욕’ 등 정신분석의 핵심 개념들과, ‘도라’ ‘늑대 인간’ ‘쥐 인간’ 같은 유명한 정신분석 환자들의 사례, 정신분석의 기념비적 저서인 《꿈의 해석》에서 《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를 거쳐 《토템과 터부》에 이르는 주요 저서와 논문들의 의의와 내용을 프로이트의 개인적 삶과 하나로 녹여 명쾌하게 설명한다. 2권은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부터 나치 독일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1938년 영국으로 망명해 이듬해 죽음을 맞기까지를 다룬다. 1권이 정신분석의 탄생과 학문으로서 생존을 위한 분투기를 보여준다면, 2권에서는 《쾌락 원칙을 넘어서》, 《자아와 이드》, 《문명 속의 불만》 등을 통해 초기 이론의 대대적인 수정과, 개인의 차원을 넘어 종교와 예술, 문화 분석의 도구로 영역을 확장한 정신분석을 만나게 된다. 왜 피터 게이의 《프로이트》인가? 단 하나의, 가장 중요한 프로이트 평전 피터 게이의 《프로이트》는 그동안 국내 독자들에게 암암리에 널리 알려진 책이었다. 정신분석 관련 도서의 참고문헌과 추천도서 목록에 피터 게이의 프로이트 평전이 당연하게 올라가 있고, 심리학자와 정신분석을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꼭 읽어보아야 할 책으로 회자되어 왔다. 프로이트 본격 전기로는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책이자 가장 중요한 책이라 할 수 있다. 프로이트가 살아 있을 때부터 사후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출간된 모든 프로이트 전기 가운데 단 두 종만이 프로이트 연구자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그 첫 번째 책은 프로이트의 최측근이었던 영국의 정신분석가 어니스트 존스가 프로이트 사후 1953년부터 1957년까지 모두 3권으로 발표한 《Sigmund Freud : Life and Work》이다. 정신분석 운동과 프로이트의 개인적 삶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제자였던 존스는 그러나 프로이트의 전기 작가로서는 적합한 인물이 아니었다. “전기 작가가 되는 사람은 거짓말, 은폐, 위선, 윤색이라는 죄, 심지어 자신의 이해 부족을 감추는 죄까지 짓습니다. 전기적 진실은 얻을 수 없는 것이며, 설사 얻는다 해도 이용할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생전에 프로이트는 그의 전기를 쓰겠다고 제안한 작가 아르놀트 츠바이크에게 이렇게 말했다. 간단히 말해 프로이트는 전기 쓰는 일을 전혀 신용하지 않았다. 전기 작가는 어떤 주인공을 선택하든 그에게 강한 애정을 느끼기 때문에 이상화 작업이 될 수밖에 없고 진실과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어니스트 존스의 프로이트 전기는 바로 그 이상화의 늪에 빠졌다. 오늘날 그의 전기는 스승에 대한 경의를 담아 쓴 ‘스승님 찬가’라는 냉정한 평가를 받는다. 어니스트 존스의 ‘스승님 찬가’를 대신

저자 소개

미국 예일 대학 역사학 명예교수. 유럽 근대 사상사와 문화사 분야의 권위자로서 특히 계몽주의 연구, 부르주아 문화 연구에서 업적을 인정받고 있다. 정신분석을 역사 연구에 도입한 선구자로서 ‘역사학계의 프로이트’로 불린다. 
독일 베를린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무신론자 아버지 슬하에서 유대인이라는 자각 없이 자랐으나,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1939년에 고향을 떠나 1941년에 미국에 정착했다. 컬럼비아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1969년부터 예일대 역사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계몽주의》로 1967년에 전미도서상(National Book Award)을 받았다. 이듬해에는 문화사 분야의 혁신적 업적으로 꼽히는 《바이마르 문화》를 출간했다. 1970년대 중반 ‘웨스턴 뉴잉글랜드 정신분석 연구소’에서 정신분석 훈련을 받았고 이후 본격적으로 프로이트 연구를 시작했다. 나치 등장의 전주곡으로 인식되던 독일 근대 문화가 지닌 가치를 올바로 해석하려는 목적에서 쓴 《프로이트, 유대인, 그리고 다른 독일인들(Freud, Jews, and Other Germans)》(1978)에서 게이는 특히 유대인이 독일 문화에 끼친 영향에 주목했다. 그중에서도 프로이트는 학문적 관심사는 물론이고 개인적 배경에서도 게이 자신과 맞아떨어지는 인물이었다. “독일어를 쓰는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유대교와 상관없이 무신론자로 자랐고, 나치의 박해를 피해 영어권 국가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는 설명은 프로이트와 피터 게이에게 공통되는 사항이었다. 10년에 걸친 연구와 2년 반의 집필 기간을 거쳐 1988년에 출간한 《프로이트(Freud : A Life for Our Time)》는 출간 즉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학계와 일반 독자들에게서 모두 높은 평가를 받았다.
다른 저서로 《역사가를 위한 프로이트》, 《모차르트》, 《부르주아 전》, 5부작 《부르주아의 경험 : 빅토리아에서 프로이트까지》 등이 있다. 2004년 미국역사협회가 뛰어난 업적을 거둔 역사학자에게 주는 공로상을 받았다. 

역자 소개

서울대학교 영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번역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역서로는 《축의 시대》《지젝이 만난 레닌》《그레이트 게임》《칭기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마르크스 평전》《호치민 평전》《융》《신의 가면 3 : 서양 신화》《신의 가면 4 : 창작 신화》《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불안》《행복의 건축》《극단의 형벌》《권력의 법칙》 《로드》《죽음의 중지》《눈먼 자들의 도시》《눈뜬 자들의 도시》《책도둑》《포트노이의 불평》 등이 있다. 


  

책 속에서

비범한 아들이 장차 유명해질 것이라고 믿는 부모의 총애 속에서 프로이트는 자신이 특별하다고 느끼며 위대함을 향한 갈망을 키워 나갔다. 야심만만하고, 자신감 넘치고, 똑똑하고, 탐욕스럽게 책을 읽던 사춘기의 프로이트로서는 현실이 허락하는 만큼은 성공의 길이 열릴 것이라고 믿는 것이 당연했다. 김나지움을 최우등으로 졸업한 프로이트는 다른 유대인 소년들과 마찬가지로 법률가나 장관이 될 꿈을 꾸었다. 자유주의적 분파가 통치하던 1860년대의 빈은 아직까지 반유대주의에 따른 법적 차별이 심하지 않아서 유대인들에게는 기회의 땅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윈의 학설에 매료되고 괴테의 책 <자연>에 대한 강연을 들은 후에 프로이트는 의학으로 진로를 바꾼다. 그것은 과학이 세계 이해에 대한 지적 갈증을 충족시켜줄 수 있으리란 생각 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형이상학적 사변에 빠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자신을 통제하고 싶은 강한 소망 때문이기도 했다.

신을 믿지 않는 의학도
대학에서 과학과 인문학을 넘나들며 광범한 학문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뱀장어의 생식선 연구나 어류의 신경 구조 연구 등 다양한 실험과 연구 활동에 참여하느라 프로이트는 남들보다 늦게 의학 박사학위를 받는다. 이 시절에 그는 종교의 환상을 거부하는 포이어바흐의 무신론적 철학에 끌렸고, 경험심리학의 대가 프란츠 브렌타노의 철학과 저명한 생리학자 에른스트 브뤼케의 실증주의에 큰 영향을 받았다.
프로이트는 유대인이었지만 무신론자 유대인이었다. 아버지 야코프 프로이트는 성(聖)과 속(俗)을 일치시키는 조상들의 관행에서 벗어나 점점 모든 종교 의식을 버렸고 그러면서도 자신이 유대인인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부정하지는 않았다. 프로이트는 그런 분위기에서 자랐다. “우리 부모는 유대인이었다.” 그는 <나의 이력서>에서 그렇게 간결하게 말했다. 세례라는 피난처로 도피하여 반유대주의로부터 보호를 받으려 했던 유대인들을 경멸하며 그는 분명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나 또한 유대인으로 남았다.” 이것은 종교 없는 유대주의였다.

1920년대 말과 1930년대 초의 유독한 분위기 속에서 프로이트는 자신이 유대인 출신임을 부정하지 않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자신이 유대인 출신임을 널리 과시하기까지 한 것이다. 유대주의와 관련된, 대체로 무의식적인 이런 전략은 프로이트의 평생에 걸쳐 드러난다. 1873년 대학에 들어간 첫 해에는 자신의 “인종” 때문에 열등하다고 느끼도록 강요받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의 반응은 저항이었다. 그는 다수의 평결에 고개를 숙일 이유를 알지 못했다. ― 2권, 435쪽

격정적인 연인 프로이트
자연에 관한 지식을 맹렬하게 집어삼키던 프로이트는 사랑 앞에서도 격한 연인이었다. 1882년, 프로이트는 마르타 베르나이스와 만난 지 두 달 만에 약혼했다. 그러나 결혼하기까지는 4년 넘게 기다려야 했다. 프로이트는 너무 가난해서 약혼자를 자주 만나지도 못했다. 대신 두 사람은 거의 매일 편지를 썼다. 1880년대 당시의 프로이트를 자서전처럼 낱낱이 보여주는 이 편지들에서 그는 다정하게 허물없이 굴었다가, 충동적이고 다급하고 의기양양하고 우울한 모습을 번갈아 보여주고, 마르타에 대한 소유욕으로 압제적으로 굴었다가도 아주 드물게는 뉘우치는 모습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만나면 키스와 포옹이 전부였다. 폭풍 같은 내면과 달리 그는 자신의 계급과 문화가 용인하는 방식으로만 그녀와 연애했던 것이다.

4년이 넘는, 영영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기다림의 기간은 성이 거의 모든 정신 질환의 원인이라는 프로이트 이론이 형성되는 과정에 자취를 남겼다. 1890년대에 근대적 삶에 수반되는 성적 고통을 이론화할 때, 프로이트는 부분적으로는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는 엄청나게 안달이 났다. 이제 스물여섯이 된 프로이트는 한껏 충전되고, 대체로 억압되어 있던 모든 감정들, 나아가 사랑 못지않았던 분노를 하나의 대상에 쏟아부었다.
― 1권, 95~96쪽

프로이트는 연구를 계속하고 싶었지만 가난에서도 벗어나고 결혼도 하고 싶은 마음에 빈 종합병원에서 일자리를 구한다. 병원에서 가장 낮은 자리이며 일종의 의료 보조원인 지망의(Aspirant)에서 시작한 프로이트는 점차 인정을 받으며 승진도 하고 그에 따라 수입도 좋아진다. 1885년에 보수는 없지만 교수직을 바라볼 수 있는 ‘사강사’로 임명되고, 1886년는 종합병원을 그만두고 신경질환 전문의로 개업한 후에 드디어 결혼을 한다.


《꿈의 해석》, 정신분석의 탄생
1887년 말부터 프로이트는 신경쇠약 치료에서 당시 유행하던 전기 치료법 대신 최면 요법에 집중했다. 그러다 카타르시스적인 대화 치료로 넘어갔고, 이후 ‘자유연상’ 기법을 만들게 된다.

1895년 프로이트는 《히스테리 연구》와 플리스에게 보낸 개인적인 편지에서 원대한 일반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는 정신이라는 큰 수수께끼의 조각들을 수집하고 정리해서 정신분석학적 개념과 더불어 정신분석학적 어휘를 발전시켜 나갔는데, 이것은 세기말에 이르면 기본적인 것으로 정착된다. …… 그는 《히스테리 연구》를 펴낸 해에 강박에 사로잡힌 연구자의 당당한 태도로 플리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 같은 사람은 좋아하는 일없이는, 나를 지배하는 정열 없이는, 실러의 표현을 빌리면 압제자 없이는 살지 못하네. 이제 그 압제자가 나에게 왔어. 따라서 나는 이제 그 압제자를 섬기는 일에서 절제를 버릴 걸세. 그 압제자는 심리학이야.” ― 1권, 164~165쪽

1896년, 아버지 야코프의 죽음은 프로이트 내면의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던 과거를 일깨웠고, 프로이트는 그 일을 자기 분석의 자료로 삼았다. 프로이트의 자기 분석은 정신의 이론을 향한 과정에서 필수적인 단계였다. 그 모든 과정이 엄청나게 힘겹고 대단히 불쾌했지만 그는 자기 자신에 관한 환상을 하나하나 버렸다.
1899년, 꿈에 관한 문헌의 서지학적 조사에서 시작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억압의 기능, 욕망과 방어 사이의 갈등 같은 정신분석의 근본 개념을 개괄하고 풍부한 사례를 제시한 《꿈의 해석》을 출간했으나 그 당시에는 별다른 반응을 끌어내지 못했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적 사고의 진화에서 《꿈의 해석》은 전략적인 중심이었다. 꿈을 꾸는 것은 정상적이고 보편적인 경험이다. 1890년대 말부터 온갖 종류의 실수와 잘못에 관한 일화들을 수집하기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가장 평범한 실수와 가장 소박한 농담처럼, 환자보다는 정상적인 사람들로부터 끌어온 사례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병리학”은, 겉으로 보면 “우연” 같지만 분석을 해보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나는 예를 말 그대로 수도 없이 제공했다. 익숙한 이름을 잘못 쓰는 것, 가장 좋아하는 시를 잊어버리는 것, 묘한 방식으로 물건을 놓은 장소를 잘못 아는 것, 아내의 생일에 늘 보내던 꽃다발을 보내지 못하는 것 — 이런 것들은 모두 해독해주기를 간청하는 메시지들이다.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 스스로 흔쾌히 인정하지 못하는 욕망이나 불안을 파악하는 실마리들이다. 이런 발견들을 통해 프로이트는 인과 관계의 작용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인식하게 되었다. ― 1권, 253~254쪽

프로이트는 히스테리나 강박신경증에 걸린 분석 대상자들로 구성된 특수하고 좁은 영역이 아니라 인간 보편의 정신의 지도를 그리려는 시도, 즉 일반심리학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는 당대 심리학의 틀 안에서 자신의 프로그램을 전개했으나, 결정적인 지점을 넘어서자 그 틀을 깨고 나아갔다. 심리학에는 혁명의 순간이었다.

《자아와 이드》, 정신의 지도를 새로 그리다
프로이트는 1차 세계대전 와중에 정신분석 이론에 대한 대대적인 수정 작업을 이루었다. 《자아와 이드》는 이론의 수정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이전에 프로이트는 정신을 의식, 전의식, 무의식으로 나누고 의식적인 것과 무의식적인 것 사이의 갈등에서 신경증을 끌어냈다. 그러나 그는 이제 무의식이 억압된 것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했다. 무의식에는 심리적으로 억압된 부분뿐만 아니라 자아를 지배하는 충동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이런 면을 ‘이드’라고 부르자고 제안했다. 또한 스스로를 비판적으로 감시하는 자아의 특별한 부분을 초자아라고 불렀다. 이제 이드, 자아, 초자아로 이루어진 새로운 정신의 지도가 탄생한 것이다.

《자아와 이드》는 처음에 분석가들에게 약간 당혹감을 일으켰지만 저항에 부딪힌 적은 거의 없었으며, 대부분의 경우 강한 지지를 받았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 책은 그들의 임상 경험과 일치했고, 또 그 경험을 심화했으며, 정신을 세 부분 — 이드, 자아, 초자아 — 으로 나눔으로써 그 전보다 정신 구조와 그 기능의 분석이 훨씬 자세해지고 명료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 2권, 104~105쪽

자아는 충동적인 이드를 통제하려고 애쓰면서 동시에 자기를 감시하는 초자아의 눈치도 보아야 한다. 이드가 외부 세계의 요구와 초자아의 압력에 유순하게 굴복하게 하고, 한편으로는 초자아를 달래서 이드의 소망을 충족시키려고 노력하면서 자아는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거짓말을 하게 된다. 이드를 길들이는 동시에 초자아를 달래는 이중의 과제에 시달리더라도 자아는 늘 현실에 눈을 뜨고 있고 경험에서 배우는 존재라고 보는 프로이트의 인식 덕분에 예술, 종교, 정치 등 그가 아주 매혹적으로 느꼈던 분야들에 대한 분석적 연구가 한결 수월해졌다.

프로이트주의의 대유행
프로이트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미국,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헝가리, 베를린 등에 정신분석협회와 연구소가 설립됐고, 정신분석 강좌는 많은 청중을 모았고, 정신분석가 지망자들도 만족스러울 만큼 늘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유행하는 흐름에 따라 정신분석의 전문적인 용어나 근본적인 사상을 오독하였으며, 대개는 변조했다. 설교자, 저널리스트, 교육자는 그의 외설적인 관념들을 비난하고, 그의 해로운 영향을 개탄했다. 프로이트는 모든 것을 성으로 풀어내며 성에 강박되어 있다는 비난은 지울 수 없는 낙인 같았다.
대중 매체, 신문, 잡지는 모두 인간 프로이트를 희극적이면서 또 종종 다소 위협적인 캐리커처로 다루어 혼란과 경솔한 판단을 퍼뜨리는 데 한몫을 했다. 불안정한 전후 시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캐리커처는 매혹적으로 다가갔다. 프로이트는 턱수염을 기른 엄숙한 교수님(Herr Professor)이었으며, 중유럽 억양이 강한 우스꽝스러운 말투를 사용했고, 지도에 섹스를 집어넣은 사람이었다. 어떤 사람은 그의 가르침이 전혀 억제 없는 성적 자기 표현을 허가하는 것이라고 들었다. 일요판 신문 부록에서 그의 글을 붙들고 씨름하는 소수의 예의 바른 평론가들도 그의 작업에서 가르침을 얻기보다는 당황하게 된다고 고백했다. ― 2권, 182쪽

금욕주의자의 죽음
히틀러라는 재앙이 유럽을 휩쓸었다. 반유대주의도 극에 달했다. 1933년 5월 10일 나치는 프로이트도 간접적으로 박해했다. 책을 태워 구경거리로 만들면서 프로이트의 책도 포함시킨 것이다. 프로이트는 “미친 시대”라고 탄식했다. 나치의 위협 외에도 고령과 불확실한 건강이 그를 괴롭혔다. 결국 프로이트는 빈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1938년, 미국 정부 최고위층의 관심과 국제적인 외교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빈을 무사히 빠져나와 런던에 도착한 프로이트의 가족을 영국은 대대적으로 환영한다. 프로이트가 원고를 쓰는 일상으로 복귀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는 모세에 관한 논문 3부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1939년 출간된 《인간 모세와 유일신교》는 유대인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고 어떻게 자기들에 대한 증오를 불러일으켰는지 탐구한 책이다. 끔찍한 반유대주의에 직면해서 프로이트에게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브로이어, 아브라함, 페렌치, 그리고 어머니 아말리아 등 한때 가까웠거나 오랫동안 가깝게 지냈던 사람들이 하나둘 죽고 프로이트에게도 끝이 가까워 왔다.

이제 끝이 가까웠다. 궤양이 일어난 암 상처에서는 계속 고약한 냄새가 났기 때문에 차우차우 개는 아무리 꾀어도 꽁무니를 빼며 주인 옆으로 오지 않으려 했다. 슈어는 프로이트가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고, 모든 것을 다 안다는 비극적이고 그윽한 표정으로 개를 보았다.”고 말한다. 프로이트는 통증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간혹 고통에서 놓여나기도 했지만 이제 그런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 2권, 529쪽

이제 프로이트는 몹시 피곤해했다. 그에게 뭘 먹이는 것도 어려운 일이 되었다. 그러나 큰 고통을 겪고 특히 밤에는 견디기 힘들어했지만, 그런데도 진정제를 복용하지 않았고 원하지도 않았다. 그는 여전히 책을 읽을 수 있었다. 프로이트는 마지막 며칠을 아래층 서재에서 정원을 내다보며 보냈다.

프로이트는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 “슈어, 때가 왔을 때 나를 궁지에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우리의 ‘계약’을 기억하시오? 이제 고통 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소.” 슈어는 잊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자 프로이트는 안도의 숨을 쉬며, 잠시 그의 손을 잡고 있다가 말했다. “고맙소.” 이윽고 프로이트는 약간 망설이더니 덧붙였다. “안나와 상의해보시오. 만일 안나가 옳다고 생각하면, 끝을 내시오.” …… 9월 21일 슈어는 프로이트에게 모르핀 3센티그램을 주사했으며 — 단순한 진정을 목적으로 할 때 정상적인 양은 2센티그램이었다. — 프로이트는 평화로운 잠에 빠져들었다. 슈어는 불안을 느껴 다시 주사를 놓았으며, 다음 날인 9월 22일에 마지막으로 주사를 놓았다. 프로이트는 혼수 상태에 빠져들어 깨어나지 못했다. 그는 1939년 9월 23일 새벽 3시에 죽었다.
― 2권, 531~532쪽

목차

목차
·감사의 말
3부 문명의 해부학자 1915~1939
8장 전쟁과 인간
“인간은 자신이 믿는 것보다 훨씬 부도덕할 뿐 아니라
자신이 아는 것보다 훨씬 도덕적이기도 하다.”
·충동, 억압, 무의식
·전쟁과 평?화
·에로스와 타나토스
·이드, 자아, 초자아
9장 프로이트의 안티고네
“나는 유명하지 않습니다. 악명이 높지요.”
·구강암에 걸리다
·안나, 안티고네
·프로이트주의의 대유행
·정신분석의 분화
10장 여성과 정신분석
“해부학이 운명이다.”
·랑크와 출생 트라우마
·정신분석 자격 논쟁
·여자,암흑의 대륙
11장 문명 속의 불만
“인간은 문명 없이 살 수 없지만, 문명 안에서 행복하게 살 수도 없다.”
·종교라는 환상
·문명의 딜레마
·미국을 혐호하는 사람
·괴테상을 받다
12장 인간 모세의 최후
“나는 학생 때부터 늘 용감한 반대자였고, 대개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히틀러라는 재앙
·무신론자 유대인
·빈을 떠나다
·금욕주의자의 죽음
·약어 설명
·주석
·문헌 해제
·프로이트 연보
·옮긴이 후기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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