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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도시 서라벌 경주 속 신라 이야기

김성용 저 | 눌와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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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0620545 / 250쪽 150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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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저자 소개

1955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부산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웨일즈 카디프대학교에서 저널리즘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3년 부산문화방송 기자로 입사한 뒤 사회부 기자를 거쳐 보도제작부장, 보도국장 등을 역임하며 주로 도시의 발전모델을 찾는 프로그램과 시사 토론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서울이 아닌 도시에서 생활하는 기자의 눈으로 서라벌의 위상이 바랜 경주를 바라보고 의문해왔으며 서라벌 복원을 통한 경주의 진정한 발전을 모색하고 있다.

책 속에서

궁궐이 없는 고도/ 천년 고도 서라벌의 궁궐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왜 경주에는 궁궐이 없을까. 프랑스 파리의 베르사유 궁, 영국 런던의 윈저 궁, 중국
베이징의 자금성처럼 세계적인 고도에는 궁궐이 있다. 한 왕조가 천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존속했으며 56대에 이르는 왕들이 머물렀던 수도라면 당연히 궁궐이 있었을 것이다. 안압
지와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월성은 신라 궁궐이 있었던 유적이다. 지금은 소나무
를 비롯한 각종 나무와 풀이 무성한 동산인데, 신라 궁궐이 있었던 자리보다는 조선시대 영
조 때 만든 석빙고가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월성이 신라 궁궐 자리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
는 표지는 안내문이 적힌 푯말뿐이다.
“이곳은 신라시대 궁궐이 있던 곳이다. 지형이 초승달처럼 생겼다 하여 신월성 또는 월성
이라 불렀으며 임금이 사는 성이라 하여 재성이라고도 하였다. 남분, 북문, 인화문 등과 임해문이 있
었으며 그 밖에 많은 부속 건물이 있었다.” / 본문 23~24쪽
“월성은 언제 어떻게 사라졌을까. 신라 패망 이후 흙으로 만든 성은 비바람에 쉽게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만약 고고학계의 주장대로 월성의 왕궁과 왕성이 다 타서 일시에 사라진 것이라
며 현재까지 남아 있는 유물들이 예상 외로 많이 있을 것이라 기대해볼 수 있다. / 본문 38쪽
신라시대의 중요한 유적이 있었던 터임에도 월성은 1990년대까지 학술적인 관심
을 받지 못했으나 2000년대에 들어서 신라 궁궐 복원에 필요성을 느낀 경주시가 주도하여
본격적인 조사 연구와 복원 작업을 시작했다. 2004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월성 내부
기초학술조사를 통해 궁궐 내 전각마다 대문이 있었으며 현재 문터 열한 곳이 남아 있음을
확인했다. 2007년부터 2008년까지는 지하 레이더 탐사를 실시해 지하에 매장된 수많은 유
구와 유물을 확인했다. 발굴 장비 없이 맨손으로 땅을 조금만 파 보아도 건물 초석이 드러날
정도로 유구가 잘 보존되어 있어 월성 유적에 호기심을 더한다.
“불과 땅속 1, 2미터 속에서 천 년의 시간을 견딘 유물들이 언젠가 살며시 땅 위로 나와 천
년 역사를 말하는 순간을 떠올려보자……서라벌에 대한 무지와 숱한 논쟁을 일거에 잠재울 역사의
비밀에 조용히 잠들어 있다는 사실은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일이다. 월성은 우리의 상상력을
무한히 자극하는 유적지라는 점에서 새롭게 조망해야 할 것임이 분명하다.” / 본문 45쪽
봉분이 사라진 고분/ 경주 고분 관리ㆍ복원의 실태
경주 시내에 분포한 고분은 모두 155기이다. 이 가운데 현재까지 제대로 보존되고
있는 고분은 65기 정도이다. 발굴 이후 보존된 고분보다 유실된 고분이 훨씬 많은데, 제1호
고분을 비롯하여 제4호, 제5호 고분 등 28기는 모두 발굴 이후 봉분이 유실되었다. 높게 쌓
아 올린 봉분은 돌무지덧널무덤 양식이 주를 이루는 신라 고분의 상징과도 같으나 비교적
널리 알려진 제127호 고분 금령총과 제129호 고분 서봉총 역시 발굴 이후 봉분이 유실된 모
습 그대로 남아 있다.
““제1호부터 제18호 고분까지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제3호 고분 하나뿐이다
……2000년 유네스코가 경주 대릉원지구를 세계유산에 등재한 것은 경주의 고분들이 우리의 자랑
임에 앞서 더 이상 훼손해서는 안 될 유산임을 세계에 알린 것으로 보아야 한다. 노서동 길옆에 봉분
없이 초라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 금관총 역시 우리 고분 발굴과 관리의 허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 본문 100쪽
제128호 고분 금관총에서 신라 금관을 발견한 일을 시작으로 잇따라 발굴한 고분
에서 귀중한 유물이 출토되자 화려했던 신라 문화에 관심이 모였다. 이에 사람들은 새로운
고분 발굴을 기대하지만 학계의 입장은 단호하다. 아직은 발굴 기술을 포함해 고분 발굴에
필요한 여러 제반 요건을 갖추지 못했으며, 지금까지 발굴한 고분에 대한 연구도 제대로 진
행하지 못하는 실정에 또 다른 고분을 발굴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이다.
물이 메마른 물의 도시 _ 경주는 원래 물이 메마른 땅이었을까
현재 경주 시내를 흐르는 형산강(서천), 북천, 남천은 수량이 넉넉하지 않다. 인위적
으로 조성한 보문호도 마찬가지다. 경주는 신라시대 때만 해도 범람의 위험을 안고 있는 지
역이었다. 신라시대 서라벌은 물이 풍요롭다 못해 넘치는 ‘물의 도시’였다. 동서남북 5킬로
미터의 왕경 안에서 약 천 년 동안 수많은 사람이 모여 살았다면 무엇보다 물이 충분히 공급
되었을 것이다. 농업에 기반을 둔 고대 도시에서 물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과
거 경주에서는 조금만 땅을 파도 물을 볼 수 있어 시내의 유적을 발굴할 때는 항상 양수기를
동원해야 했다. 이는 이 지역이 주로 모래로 된 토양으로 지하수의 수위가 높음을 뜻하는데,
이런 토양은 과거에 하천의 영향을 많이 받은 지역에서 주로 나타난다.
경주는 북천, 남천, 대천 등이 합류하여 서쪽의 형산강으로 흘러들어간다. 형산강
은 대천, 남천, 북천 등 아홉 지류로 이루어져 가장 넓은 유역 면적을 형성하는 강으로, 과거
에는 큰비가 내리면 짧은 형산강 본류에 지류의 빗물이 모여 범람하는 일이 잦았다. 경주는
여러 하천이 만나는 곳일 뿐만 아니라 하천에 둘러싸여 있어 하천이 범람하는 일이 많아 홍
수로부터 안전하지 않았다.
“왕위 계승을 위한 화백회의를 소집했으나 왕경에서 20리, 약 8킬로미터 떨어진 집에 머물
고 있던 김주원은 회의에 참석할 수 없었다. 내린 비로 순식간에 북천 물이 불어나 다리가 떠내려갔
기 때문이다. 왕의 임종을 끝까지 지켰던 김경신은 평소 자주 제사를 올렸던 북천의 신이 자신을 도
와 천재일우의 기회를 주었다고 믿었다. 《삼국사기》에 ‘임금의 큰 지위란 본디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이 김주원을 왕으로 세우려 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라고 기술했을 정도로 신
라는 물과 하늘, 이른바 자연의 뜻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믿고 받들었다.”
/ 본문 135쪽
신라 최고의 재상이자 왕위 계승 서열 1위였던 김주원이 북천의 불어난 물 때문에
왕이 되지 못했다는 일화는 신라시대 서라벌의 수량이 얼마나 넉넉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
는 부분이다. 하천 양쪽에 제방을 쌓아 폭이 좁아진 데다 바닥까지 드러낸 현재의 북천을 보
면 전설처럼 들리는 이야기이다.
책으로 보는 경주와 서라벌에 대한 다큐멘터리
지은이는 현재의 경주와 과거의 서라벌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현재 경주가 과거 서
라벌의 풍요로운 모습을 얼마나 잃었는지를 하나하나 짚어본다. 또한 전문가의 견해와 연
구 자료를 통해 경주가 지금처럼 변한 이유를 천착하고, 경주가 과거 서라벌의 모습을 되찾
아야만 하는 당위성과 서라벌 복원을 위한 방안을 마련한다. 역사관광도시라는 미명 아래
경주는 무분별한 개발 대상이 되었고 그 결과 신라시대 서라벌의 모습을 상당수 잃었다. 서
라벌 역사로 도시의 명목을 유지하고 있으나 실은 서라벌이 사라진 도시에 다름없다. 유네
스코 세계유산에 짧은 기간 동안 여러 건의 유적을 등재하며 역사관광도시로서의 명맥을
잇고 있지만 경주 유적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는 우리에게 ‘늘 가까이 있어 제 가치를 깨
닫지 못하는’ 우리 유산의 소중함을 상기하고 그 가치에 걸맞은 자세를 요구하기 위함일 것
이다.
경주는 길을 잃었다. 대립뿐인 역사 논쟁, 보존과 개발 사이의 불균형 속에서 제 길
을 나아갈 기회를 갖지 못하고 한 나라의 수도였던 서라벌의 모습을 잃은 채 퇴락하고 있다.
“신라를 둘러싼 역사적 평가를 둘러싸고 아무리 논쟁을 하더라도 서라벌은 서라벌이다. 통
일신라시대인가 남북국시대인가에 관한 논쟁과 다툼은 있을 수 있지만 서라벌을 둘러싼 논쟁은 있
을 수 없다……통일신라시대의 서라벌과 남북국시대의 서라벌이 다른가. 역사적 평가의 대립 속에
세계유산이 된 고도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지키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 본문 202쪽
지은이는 도시 보전과 진정한 발전을 가로막는, 소모적인 역사 논쟁에 일침을 가하
며 경주가 서라벌 복원을 통해 정체성을 되찾아 우리 역사의 자랑스러운 도시로 살아 숨쉬
기를 바란다. 그것이 서라벌과 경주 그리고 우리를 위한 길임을 역설한다.

목차

목차
경주 지역 주요 유적 위치도
책을 펴내며/ 천년 고도 서라벌을 찾아서
왕궁이 없는 천년 고도
사라진 왕궁, 잊힌 왕성
세계도시 서라벌
천 년 궁성 월성
서라벌 왕궁을 찾아서
월성, 천 년 잠에서 깨어날까
천 년 잠에서 깨어난 동궁
땅 위에 그린 보물 지도
월성 발굴 100년의 꿈
잠자는 왕궁을 깨워라
경주 고분 155기
삶과 죽음이 공존한 도시
경주 고분 155기의 과거와 현재
고분, 과연 누구의 무덤인가
발굴과 도굴의 기록
고분 발굴의 현주소
물의 도시 서라벌
고대 도시와 물
물의 도시 서라벌
수해를 막는 사찰과 숲
물의 도시 복원
서라벌의 복원
천년 고도 경주 다시 보기
서라벌을 찾아서
최초의 경주관광종합개발사업
인류의 유산, 경주
2030년, 다시 살아난 서라벌
통일신라에 대한 엇갈린 평가
신라를 보는 두 가지 시각
통일신라는 없다
남북국시대의 개막
서라벌은 서라벌이다
천 년 왕조의 멸망
신라인의 천명론
당과 발해 그리고 신라의 멸망
계속되는 자연재해
왕경의 추락과 신라 멸망
21세기 서라벌, 경주의 미래
경주, 문화의 길을 묻다
천 년 수도 교토와 시안 그리고 로마
세계유산 경주
21세기 서라벌을 꿈꾸다
참고 도서 목록
사진 및 유물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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