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구간

서림청화 - 중국을 이끈 책의 문화사

섭덕휘 저 | 박철상 역 | 푸른역사 | 2011년 06월

북트리

정가
$80.00
판매가
$44.00 (45%↓) 최저가 보상
적립금
$0.88 (2%P)
출고예상일
2026년 10월 09일 수령예상일 안내
북카트 담기 바로구매하기 위시리스트담기

평점 -  ·  리뷰 0

리뷰 쓰기

ISBN : 9788994079509 / 590쪽 188 x 257 (㎜)

이 상품에 궁금하신점이 있으세요? 1:1상담문의

추천inside
Adobe Flash Player 가져오기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

아래의 도서와 구매하시면 이 도서들의 적립금을 즉시적용해 드립니다.

  • 34,200
  • 42,300
  • 22,500
  • 18,000

책 소개

출판사 리뷰

100년 전 중국의 서재를 엿보다
-중국 서지학의 고전 <서림청화> 최초 완역


책을 사는 것은 첩妾을 사는 것과 같아 / 고운 용모에 마음 절로 기뻐지네. / 첩이야 늙을수록 사랑이 식어가지만 / 책은 낡을수록 향기 더욱 강렬하지. / 책과 첩, 어느 것이 더 나을지 / 쓸데없는 고민이 자꾸 이어지네. / 때로는 내 방에 죽치고 있는 첩보다 / 서가에 가득한 책이 더 낫지.
-환빈 섭덕휘 <환빈이 책을 사는 노래> 중에서

21세기 서치, 20세기 서치를 만나다
고문헌 연구에 탁월한 행보를 보여온 박철상이 국내 최초로 <서림청화書林淸話> 를 완역했다. <서림청화> 는 청나라 말기 판본학·목록학의 대가 섭덕휘葉德輝(1864~1927)의 저술로, 책 자체를 다룬 저작으로는 전무후무하다는 평을 듣는 중국 서지학의 고전이다. 우리 시대 고문헌 분야에서 일가를 이뤘다고 평가 받는 박철상과 이 책의 만남은 그래서 의미가 남다르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그토록 그리던 목판본 <서림청화> 원본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출장 가기 전에 만나 술자리에서 한 이야기를 그 친구가 기억하고 있다가 인연을 맺어준 것이다. 1997년의 일이다.
그로부터 얼마 후 나는 번역을 시작했다. 금융위기로 온 나라가 시끄러울 때였다. <서림청화> 를 번역하며 심란한 마음을 달랬다. 열 권이나 되는 분량이었지만, 초벌 번역은 4개월 만에 끝이 났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섭덕휘가 <서림청화> 를 저술했던 상황도 비슷했다. 호남성湖南省에 병란兵亂이 일어나 사람들이 모두 피난을 떠나자 섭덕휘도 옛날에 살던 소주蘇州로 돌아가 <서림청화> 를 저술했다. 피난을 고통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고향으로 돌아가 <서림청화> 의 저술에 몰두했던 것이다.
- <옮긴이 서문> 중에서

박철상의 생업은 은행원(광주은행 외환영업부 부부장)이지만, 고문헌 연구와 관련된 역사학, 한문학, 고미술학, 서예사, 국문학, 서지학 등에 조예가 깊다. 한학자인 부친의 영향을 받아 옛 서적에 깊은 관심을 가지면서부터 매우 이채로운 경력을 쌓아오게 되었다. 그는 장서인에 대한 일련의 연구 발표를 통해 학계에 장서인의 중요성을 고취시키기도 했으며, 또한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완당평전> 비평을 통해 200여 군데의 오류를 지적하는 등 추사 관련 연구에서도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서림청화> 의 번역 작업은 그간 오랜 연구 활동의 결과물이자 오늘의 그를 있게 한 밑거름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고문헌을 이해하기 위해 중국에서 유입된 책들을 빼놓을 수 없었으며, 한문은 물론 고문헌 연구에 필요한 무수한 관련 분야를 알지 못하면 <서림청화> 의 번역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책 속에 각종 판본들을 비교해 놓은 주석과 그동안 수집한 여러 도판 자료들이 그 증거다.
중국 출판이 걸어온 길
<서림청화> 는 중국 출판문화 전반을 체계적으로 다룬 최초의 저작이다. 고서의 판본에 사용되는 각종 용어와 명칭을 정리하고 그 근원을 추적했으며, 또한 역대 출판기관과 그 곳에서 출판한 서적들을 시대별로 개괄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판본학, 목록학 분야의 고전이 된 <서림청화> 는 이후 등장한 수많은 저술에서 중요하게 인용되고 있다. 중국 고서의 판본과 고대 중국의 출판문화를 이해하는 데 이보다 더 적당한 저술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옮긴이의 생각이다.
원저자 섭덕휘의 가문은 대대로 유학을 했고 장서에 취미가 있었다. 섭덕휘가 수집한 고서 중에는 송·원대의 판본도 있었지만, 명·청 이래의 정각본精刻本·정교본精校本·초인본初印本 및 초교본?校本 등이 핵심이었다. 특히 청대 장서가들의 장서가 포함된 별집別集은 당대에 독보적이었는데, 이는 섭덕휘 장서만의 특색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총 10권으로 구성, 항목별로 편집된 <서림청화> 의 특징을 옮긴이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서림청화> 는 고서의 판본에서 사용되는 각종 용어와 명칭을 고증하고 그 근원을 추적했다. 예를 들면, 책冊·권卷·본本·엽葉·부部·함函·판본板本·판편板片 등의 명칭이 언제부터 시작되었고, 절초본節抄本·건상본巾箱本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으며, 서사書肆는 언제 생겨났고, 그림이 있는 책은 언제 시작되었는가 하는 것 등이다.
둘째, <서림청화> 는 중국 고대 서적 출판에 관한 각종 전문지식을 비교적 체계적으로 논술한 최초의 저작이다. 역대 목판본의 규격과 비용 등을 비롯하여 서적의 수장·교감·판각·인쇄·장정·구입·감별· 보존 등의 분야에 대해서도 비교적 자세하게 서술했다.
셋째, <서림청화> 는 역대 출판기관과 그 곳에서 출판한 서적들의 차이점을 비교하고 우열을 논했다. 예를 들면 역대 관각官刻·사각私刻·방각坊刻·초본?本의 유통과 전승은 물론, 장서가로부터 각공刻工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성명과 공적에 대해 가능한 한 자세하게 고증하고 비교했다. 역대 개인 출판가들의 출판 현황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했다.
- <서림청화 해제> 중에서

우리에게 중국 고서란 어떤 의미인가?
옮긴이가 <서림청화> 를 번역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중국의 출판문화와 중국 고서에 대한 이해야말로 조선시대 우리 출판문화 이해의 첩경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중국 고서란 어떤 의미일까?
중국 고서는 조선시대 출판물의 저본底本이었다. 조선시대 출판 방식의 하나는 중국에서 간행된 서적을 수입하여 활자나 목판으로 재간행하는 것이었다. 이런 방식의 출판은 정보의 수입과 유통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했기 때문에 중국과 교류를 시작한 이래 꾸준히 추진되었고, 간행된 서적도 상당수에 이른다. 중국 고서가 조선의 출판과 장서문화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이유이다.
조선과 중국 출판문화의 가장 큰 차이는 상업출판의 성행 여부에 있었다. 안정적인 수요층을 전제로 하는 상업출판은 광범위한 서적의 유통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책이 다양해진다는 측면에서도 중요했다. 그러나 조선의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빈약한 경제력과 주자학 위주의 사상적 흐름, 일부 계층에 한정된 서적 수요는 관판官版 중심의 출판 시스템을 유지하게 했고, 본격적인 상업출판의 출현을 지연시켰다. 이때 중국본의 수입은 조선 출판문화의 취약점을 보완해주는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조선에서 출판되지 않은 서적들을 접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가 되었다.
또한 중국 고서는 조선시대 출판의 공백을 보충해 주었다. 특히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출판 시스템이 붕괴되었던 시기에는 그 역할이 더욱 컸다. 임진왜란은 조선 역사상 가장 큰 문화적 파괴가 자행된 시기였다. 조선 전기에 간행된 중요한 전적典籍의 상당수가 멸실되었고, 출판의 핵심이었던 동활자와 고려조부터 전해오던 왕실도서들이 약탈되거나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출판을 하려고 해도 그 저본마저 구하기 어려운 출판 공황이 발생한 것이다. 정부는 멸실된 전적들을 정비하기 위해 국내에 흩어져 있던 서적들을 수집하는 한편, 사행을 통해 명나라로부터 수입을 추진했다. 중국본의 수입은 빠른 시일 안에 부족한 서적을 보충하는 성과를 거두었을 뿐 아니라, 조선 지식인들의 장서구조를 바꾸어 놓음으로써 문학과 사상에까지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다양한 중국본을 대량으로 수장한 새로운 형태의 장서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의 일이라고 옮긴이는 말한다.
이후 정조가 등극하면서 출판과 장서문화에 또 한 번의 변화가 일어난다. 정조가 청나라 문물에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하면서 청나라에서 간행된 서적들을 대량으로 수입했기 때문이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중국본을 직접 수입해 지적 갈증을 채워나갔고, 청나라 문사들과 교유를 넓히면서 청나라에서 간행된 서적들이 조선 지식인들의 서재에 넘쳐나게 되었다.

중국 고서는 또 다른 형태의 우리 책
옮긴이에 따르면 우리 선조들이 수입한 중국 고서는 또 다른 형태의 우리 책이다. 조선에 수입된 중국본은 형태적으로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조선 지식인들은 중국본 서적을 수입하자마자 대부분 능화문이 들어간 조선식 장정으로 바꿨다. 거기에다 새롭게 제목을 쓰고 정성스럽게 장서인을 찍었으며, 때론 빼곡히 필기를 남기기도 했다. 외형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우리 책의 형태로 개장한 것이다.

현재 국내외 도서관에는 이런 모습을 한 엄청난 양의 중국 고서들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이들은 조선본 코너가 아닌 중국본 코너에 꽂혀 있다. 이들은 단순한 중국본 고서가 아니라 조선 지식인들의 지적 탐색 과정을 보여주는 ‘우리 책’이다. 조선에서 간행되지는 않았지만 조선에서 유통됨으로써 조선 지식인들의 지적 자양분이 된 ‘우리 책’이다. 고려시대부터 왕실에 전해 내려오다 임진왜란 때 약탈되어 지금은 일본 궁내청宮內廳 서릉부書陵部에 소장되어 있는 북송본北宋本 <통전通典> 이 그 대표적이 사례다. 2002년에 발견된 원판본元版本 <지정조격至正條格> 도 그렇다. 과연 중국에서 간행된 책이라는 이유로 이들을 도외시하면서 조선의 지성사를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제대로 된 조선의 학술사를 말할 수 있을까?
- <옮긴이 서문> 중에서

2011년, 올해는 <서림청화> 가 저술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최근 해외로 유출된 문화재, 특히 전적典籍에 관심이 높은 반면, 우리의 선조들이 수입했던 중국본에는 아직까지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남의 나라에서 간행된 책이기에 우리 책이란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출판의 주체만큼이나 독서의 주체 또한 중요한 문제다. 그것은 지식 유통의 문제이자 우리 학술사, 지성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중국 출판문화를 깊이 있게 다룬 <서림청화> 는 출판과 판본에 관한 수많은 물음을 던지고 답한다. 옮긴이 박철상은 섭덕휘가 <서림청화> 에서 던진 질문을 조선의 출판문화에도 똑같이 던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섭덕휘가 가지고 있던 문제의식을 우리 책에도 적용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서림청화> 는 중국 출판문화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히는 것은 물론, 나아가 우리 출판문화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더하는 징검다리가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저자 소개

  • 저자 : 섭덕휘
저자 : 섭덕휘 (葉德輝)
청나라 말기 학자로 자字는 환빈煥彬, 호는 직산直山 또는 해원?園이다. 주정산민朱亭山民이란 별호를 사용하기도 했다. 호남성湖南省 장사長沙 출신으로 1892년에 진사進士에 합격한 후 이부주사吏部主事가 되었지만 곧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는 장사에 관고당觀古堂과 여루麗樓를 세우고 고서를 수집해 그 안에 수장했다. 그의 장서 속에는 왕사정王士禎·공계함孔繼涵·유희해劉喜海·원영방袁芳瑛 등 청대 장서가들의 장서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의 장서는 명·청 이래의 정각본精刻本·정교본精校本·초인본初印本 및 초교본?校本 등이 핵심이었다. 특히 청나라 사람들의 별집別集은 그 수장이 비교적 온전해 당대에 독보적이었다. 판본학版本學과 목록학目錄學에 뛰어나
<서림청화>
10권,
<서림여화書林餘話>
2권,
<장서십약藏書十約>
1권,
<해원독서지?園讀書志>
16권,
<관고당장서목觀古堂藏書目>
4권 등을 저술했다.  






역자 : 박철상
1967년 전북 완주에서 출생했다. 한학자인 부친의 영향을 받아 일찍부터 우리 옛 전적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조선시대 장서인(藏書印)에 대한 일련의 연구 성과를 발표함으로써 학계에 장서인의 중요성을 고취시켰고, 조선후기 추사 김정희의 학예에 관한 독보적인 연구 성과를 발표하였다. 「조선시대 금석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 논문의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모하(慕何)실학논문상을 수상했다. 현재 옛 간찰, 금석문, 조선시대 출판 및 장서문화, 연행(燕行), 여항인(閭巷人) 등 19세기 학술과 문화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 『세한도』(2010), 『서재에 살다』(2014), 역서로 『서림청화(書林淸話)』(2011)가 있다. 공저로 『정조의 비밀 어찰』(2011), 『사상으로 조선시대와 소통하다』(2012)가 있으며, 다산 정약용의 문집에 수록되지 않은 간찰을 모은 『다산 간찰집』(2012)을 펴내기도 했다. 이 밖에도 4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역자 소개

  • 역자 : 박철상
1967년 전북 완주 출생. 한학자이신 부친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우리 옛 전적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고문헌古文獻을 바탕으로 우리 문화의 특질과 한중韓中 문화 교류 등을 연구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역대 장서인藏書印에 관한 연구 성과를 발표해 학계에 장서인의 중요성을 고취시켰으며, 추사 김정희에 대해서는 독보적인 연구 성과를 발표했다. 이 밖에도 옛 간찰, 금석학, 연행, 여항인 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논문으로 「󰡔완당평전󰡕, 무엇이 문제인가?」, 「추사 김정희의 장황사 유명훈」, 「조선 후기 목활자 ‘장혼자張混字’ 명칭의 재검토」, 「조선 후기 문인들의 인장印章에 대한 인식의 일면」 등 20여 편이 있다. 저서로 󰡔세한도󰡕가 있고, 공저로 󰡔19세기 조선 지식인의 문화지형도󰡕, 󰡔정조의 비밀 어찰, 정조가 그의 시대를 말하다󰡕 등이 있다. 현재 옛 책과 그림 연구자들의 모임〈포럼 그림과 책〉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책 속에서

◉―〈출판은 왜 하는가?〉중에서
예로부터 “돈을 모으는 일은 책을 모으는 것만 못하고 책을 모으는 일은 음덕을 쌓느니만 못하다”는 말이 있지만, 책 모으는 일과 음덕 쌓는 일을 겸하면서도 돈을 모으는 일과 다름없는 게 하나 있다. 바로 책을 출판하는 일이다.

◉―〈불법복제 금지는 송나라 사람들이 시작했다〉중에서
출판사에서 다른 사람의 서판書板을 번각하는 것은 참으로 사림에 피해가 가는 일이었다. 송대에는 법망이 너무 헐거워 관에서 출간한 책은 모두 번각을 금지하지 않았지만, 세상의 기풍이 날로 나빠져 선본이 유행하기만 하면 여기저기서 번각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따라서 책을 출판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권익을 지키는 데 더욱 신경을 썼던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송판본은 한 사람이 글씨를 썼다〉중에서
한 사람의 힘으로 1천 권의 책을 썼으므로 악가가 자신의 시집을 쓴 것과 비교해 보면 훨씬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육심원이 소장했던 것은 전초본傳鈔本이었는데, 지금은 모두 일본으로 팔려갔다. 만일 당시에 한 권이라도 남아있었다면 장서가들이 송판본에 찍던 ‘갑甲’자 인장 말고도 다시 무슨 글자를 써서 표시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아쉽게도 그것들은 전해오지 않는다.

◉―〈명나라 사람들은 출판을 잘 몰랐다〉중에서
명대에 출판한 서적들은 방송각본仿コ宋刻本이 아니고, 왕왕 자신의 주석을 섞어 놓거나 원문을 어지럽게 뜯어고치기까지 하였다. 월창月窓과 같은 경우가 너무나 많아 이 두 책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아! 명나라 사람들의 거짓된 풍습이 어찌 서적 출판이라는 한 가지 일에서만 그러했겠는가!

◉―〈여자가 필사한 서적들〉중에서
예나 지금이나 여자 중에 초서鈔書(책을 베끼는 것을 말함)를 많이 한 사람으로는 오채란吳彩鸞이 으뜸이다. 󰡔열선전列仙傳󰡕에는 다음 기록이 있다. “오맹吳猛의 딸인 오채란吳彩鸞이 길을 가다가 서생書生인 문소文簫를 만나 뜻밖에 결혼을 허락하였다. 문소가 가난하여 가계를 꾸릴 수 없자 채란이 󰡔당운唐韻󰡕을 필사했는데 운필運筆이 나는 듯했다. 하루에 한 부部를 만들어 팔아 돈 5민緡을 받고 또 베꼈다.”<

목차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