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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텍쥐페리, 내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앙투안 드 셍텍쥐페리 저 | 김보경 역 | 시공사 | 2011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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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52761835 / 407쪽 124 x 1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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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철없던 어린 시절의 고백들에서
죽음 이후 1년, 마침내 어머니에게 돌아온 마지막 편지까지
어머니의 손에서 다시 태어난 생텍쥐페리의 일생

《어린 왕자》의 작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마지막 편지


1944년 7월 31일, 앙투안은 비행시간에 맞춰 구내 장교식당에 모습을 나타냅니다.
“왜 날 깨워줄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 건가? 내가 나갈 차례였는데.”
앙투안은 김이 나는 뜨거운 커피를 마시고 훌쩍 밖으로 나갑니다. 이어서 그의 전투기가 이륙하는 굉음이 들려옵니다. 그는 지중해와 베르코르 산악지대 상공을 정찰하기 위해 출발했습니다. 레이더가 프랑스 해안까지 비행기를 추적한 이후로 연락이 두절됩니다.
정적이 흐르다가 이제는 기다림이 됩니다.
레이더는 살아 있다는 신호가 될 만한 일말의 음파라도 포착하려 애씁니다.
시간이 흐릅니다, 마치 피처럼 흐르고 있습니다. 그는 아직도 비행을 계속하고 있는 걸까요?
- 어머니 마리 드 생텍쥐페리의 서문에서

《생텍쥐페리, 내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는 생텍쥐페리가 기숙학교에 다니던 십대 시절부터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하기 직전까지 어머니에게 보낸 100여 통의 편지를 그의 어머니 마리 드 생텍쥐페리가 직접 책으로 엮은 것이다.
예술적 감성이 풍부했던 귀족 가문의 처녀 마리 드 퐁콜롱브는 1896년 6월 장 드 생텍쥐페리 백작과 결혼하면서 생텍쥐페리 가문과 인연을 맺게 된다. 이후 남편 장이 급작스런 뇌출혈로 사망하자, 그녀는 아이들의 외가와 친가를 오가며 다섯 남매를 자신 만의 교육 방침과 각별한 사랑으로 키웠다. 그 자신이 프랑스미술전에서 수상한 화가이자 작가로,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인생과 문학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그녀는 그가 실종되기 전 마지막 남긴 편지의 수신자이기도 했다. 생텍쥐페리가 실종된 이후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였던 마리는 마지막까지 차분한 어머니의 모습을 유지하다, 1년 후 자신에게 전해진 그의 마지막 편지를 받고서야 오열을 터뜨렸다. 그리고 십년의 세월이 흐른 1955년, 그녀는 이 마지막 편지를 포함, 생텍쥐페리가 평생 동안 자신에게 보냈던 편지들을 모아 책으로 발간한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작가의 가장 솔직하고 천진난만한 기록들

우리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야간 비행》 《인간의 대지》 등을 통해 알게 된 극한의 상황을 직접 체험하고 이를 바탕으로 인간의 숭고함을 노래했던 작가, 《어린 왕자》를 통해 알게 된 놀랍도록 섬세하고 독창적인 ‘작가’ 생텍쥐페리이다. 더 나아가 언제나 창공에서만 진정한 자유를 느꼈던 고독한 비행사이자 세상을 잠식한 불의와 의미 없는 전쟁에 맞서 싸웠던 한 위대한 인간으로서 그를 기억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실린 편지들 속의 생텍쥐페리는 주말 외출 때 쓰고 나갈 새 모자를 사고 싶어 어머니를 조르기도 하고, 수학 시험 성적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기도 하며, 우연한 자리에서 본 또래 아가씨들에게 느낀 두근거림을 농담에 섞어 고백하기도 한다. 또한 그는 언제나 마음에 품고는 있지만 말로는 하지 못하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제대로 전하지 못해 안타까워하고,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위로 받기를 원하는 등 어머니 앞에서는 언제나 어리기만 한 아들이기도 하다.
사람들에게 읽혀질 것을 염두에 두고 쓴 글이 아니기에 더욱 진솔하고, 언제나 무한한 사랑으로 감싸주는 어머니에게 보내는 글이기에 더욱 천진난만한, 이 편지들은 어린 소년이 성숙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과, 마냥 사랑받던 자식이 어느새 부모의 보호자가 되어가는 과정, 행복하기만 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고통스러운 현실에 맞부딪혀 인간과 세상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변모되고, 마침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를 의식 있는 인간으로 살게 하는 그 모든 과정이 담겨 있는 성장 일기라 할 수 있다.
또한 《어린 왕자》 속 장미의 모델이었던 아내 콘수엘로 순신에 대한 애정, 어린 왕자의 마지막 순간을 묘사하는 데 영감을 주었던 동생 프랑수아의 죽음 등 작가 생텍쥐페리에게 커다란 흔적을 남긴 사건들도 엿볼 수 있다.

모든 이들의 ‘어린 왕자’

이 책의 서문에서 어머니 마리 드 생텍쥐페리는 자신의 아들이 작가이자 투쟁가, 성인이기 전에 한없이 다정한 인물이었으며, 그것이 아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공개하기로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고 말한다. 그녀의 말처럼 곳곳에 배어 있는 앙투안의 애정은 이 특별한 모자 사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랑 받을 귄리를 가진 모든 인간들을 향한 것이고, 그것이 사람들 사이의 정신적 유대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자했던 생텍쥐페리의 작품들이 여전히 전 세계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린 아이는 벌레를 보면 밟지 않으려고 길을 돌아서 다녔습니다.
산비둘기를 길들인다고 전나무 꼭대기까지 오르내렸지요.
사막에서는 영양들을 길들였습니다.
그리고 무어인들을 길들였습니다.

그리고
침묵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는 계속해서 인간을 길들이고 있습니다.

“길을 들인다는 것이 뭐야?” 어린 왕자가 묻는다.
그러면 여우가 대답한다. “서로에게 관계가 생긴다는 거지.”

- 어머니 마리 드 생텍쥐페리의 서문에서

저자 소개

  • 저자 : 앙투안 드 셍텍쥐페리
저자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Antoine de Saint Exupery)
1900년 프랑스 리옹에서 태어났다.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하고자 했으나 시험에서 실패하고 미술학교 건축과에 들어갔다. 1921년 공군에 입대해 조종사 면허를 땄고, 1926년 라테코에르에 들어가 아프리카 북서부와 남대서양 및 남아메리카를 통과하는 우편비행을 담당하게 되었다. 1930년대에는 시험비행사, 에어프랑스의 홍보담당, <파리수아르 Paris-Soir> 기자로 일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시절 모습은 『어린왕자』의 주인공과 너무나 흡사하다. 굽슬굽슬한 갈색 머리털을 가진 소년 생텍쥐페리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소한 일들을 경이와 찬탄으로 바라보았고, 유난히 법석을 떨고 잔꾀가 많은 반면, 항상 생기가 넘치고 영리했다. 감성이 풍부하고 미지에 대한 열정이 넘치던 그는 1917년 6월, 대학 입학 자격 시험에 합격한 후 파리로 가서 보쉬에 대학에 들어가 해군사관학교 입학을 준비하였으나 구술 시험에서 떨어져 파리 예술 대학에 들어가 15개월간 건축학을 공부했다. 『어린 왕자』에 생텍쥐베리가 직접 삽화를 그릴 수 있었던 것은 이때의 공부 때문이다.
자동차 회사, 민간항공 회사에 각각 근무하다가 에르 프랑스의 전신인 라테코에르 항공사에 입사하여 『야간 비행』의 주인공인 리비에르로 알려진 디디에도라를 알게 되고 다카르-카사블랑카 사이의 우편 비행을 하면서 밤에는 『남방 우편기』를 집필하였다. 1929년 아르헨티나의 항공사에 임명되면서 조종사로 최고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야간 비행』를 집필했다.

1939년 육군 정찰기 조종사가 되었으며, 1940년 2차세계대전으로 프랑스가 독일에 함락되자 미국으로 탈출했다. 1943년 연합군에 합류해 북아프리카 공군에 들어간 후 1944년 7월 31일 프랑스 남부 해안을 정찰비행하다 행방불명되었다. 2000년, 한 잠수부가 프랑스 마르세유 근해에서 생텍쥐페리와 함께 실종됐던 정찰기 P38의 잔해를 발견했고 뒤이은 2004년 프랑스 수중탐사팀이 항공기 잔해를 추가 발견했다.

<남방우편 Courrier-Sud>(1929), <야간비행 Vol de nuit>(1931), <인간의 대지 Terre des hommes>(1939), <전투조종사 Pilote de Guerre>(1942), <어느 인질에게 보내는 편지 Lettre a un otage>(1943), <어린왕자 Le Petit Prince>(1943) 등을 썼다.  

역자 : 김보경
프랑스 스탕달그르노블3대학에서 언어학 학사, 석사 학위를 받고, 리옹2대학에서 언어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극단 프랑코포니 창단 멤버로 극단 활동에도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프랑스어와 한국어 언어 문제에 대해 비교언어학 관련 연구 논문을 여러 편 썼고, ≪새한불사전≫(공저)의 한불 대역 집필 작업에 참여했으며 ≪페로 동화로 배우는 프랑스어 I, II≫(공저)를 펴냈다. 역서로는 ≪라팽 라팽≫(공저), ≪나는 감자≫, ≪뿡! 방귀 뀌는 나무≫, ≪톡! 쏘는 물고기≫, ≪무대 게임≫ 등이 있다.  

역자 소개

  • 역자 : 김보경
프랑스 그르노블3대학에서 언어학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고, 프랑스 리옹2대학에서 언어학 박사 학위를 받았어요. 프랑스어와 한국어의 언어 문제에 대한 여러 편의 비교 논문을 썼고, 《페로 동화로 배우는 프랑스어》(I, II)를 펴냈어요. 지금은 서울여자대학교에서 대학생 언니들을 가르치면서, 프랑스의 좋은 책들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하고 있어요. 《나는 감자》, 《뿡! 방귀뀌는 나무》를 번역했어요.

책 속에서

사랑하는 엄마,
수학 시험 석차가 나왔는데, 저번 시험보다 5등이 오른 것을 보고 무척 기뻤습니다. 물론 상위권까지는 아직 멀었지만, 이렇게 계속 잘해서 곧 도달하길 기대하고 있어요! 저한테 3년 동안 해야 할 수학을 3개월 만에 따라잡았기를 바라시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편지를 쓴 것 말고는 한 것이 전혀 없어서 다른 아이들보다 대략 3년이 뒤처져 있거든요. 그러니까 이번 학기 평균이 저로서는 상당히 잘한 거예요. 낙제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시험 석차에서 제 밑으로 3년 동안 열심히 이과 공부를 한 녀석들이 약 여덟 명이나 있다고요!
내일은 제가 진짜로 방돔 공작부인의 초대를 받아 함께 코메디 프랑세즈에 갑니다. 사람을 시켜 저에게 초대권을 보내주셨어요. 좌석이, 있잖아요, 1층 칸막이 특별석인데, 특별석은 40프랑이에요! 정말 볼 만하겠죠!
- 1917년 파리의 생-루이 고등학교에서 보낸 편지


우리 연대는 간단히 말해 하나의 거대한 축구 학원입니다. ……이곳이 학교와 다른 점이라면 그런 훈련들이 명령에 의해 움직인다는 점과 놀이를 잘 못한다는 점, 그리고 지하 감방 눅눅한 짚더미 위에서 잔다는 점이라고나 할까요. 고등학교와 비슷한 점도 있습니다. “신병 아무개, 내 말을 백 번 복창한다, 실시. 집합할 땐 사령관 왼쪽으로 이동한다. 실시.”
오늘 저녁엔 티푸스 예방주사를 맞았습니다.
같은 내무반에 마음에 드는 동료들이 생겼습니다. 기다란 베개로 대교전을 벌입니다. 동료들은 저한테 호감을 갖고 잘 대해 주는데 저로서는 그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라, 베개 치기만큼은 제가 받는 것보다 더 많이 돌려주고 있습니다.
- 1921년 스트라스부르에서 보낸 편지

오늘 오후에 한 미국 여인의 집에서 차를 마셨는데, ……세 명의 귀여운 얼굴의 아가씨들이 와 있었고, 정말 맛있는 쿠키가 나왔습니다. 전 말이 좀 서툴기는 했어도 좌중의 압도적인 공감을 얻었습니다. 세 아가씨들은 세 명 모두 동시에 대답하고, 세 명 모두 같은 연극과 같은 오페라를 좋아하고, 세 명 모두 차에 같은 양의 설탕을 넣습니다. 그러니 작별의 키스도 세 명 모두에게 똑같이 해주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세 아가씨들은 모두 함께 5시 10분에 돌아갔고, 그래서 저는 세 배로 슬펐습니다.
- 1922년 파리에서 보낸 편지

날씨가 스산합니다. 그래도 일요일에는 오를리 공항에서 비행기 조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로 아름다운 비행이었어요. 엄마, 전 이 일을 너무 사랑합니다. 비행기 엔진과 단 둘이 마주보며 4,000미터 상공에 있을 때의 그 고요함, 그 고독을 엄마는 상상도 하지 못하실 겁니다. 그리고 아래로 내려와서 느끼는 현장에서의 멋진 동지애도 말입니다. 우린 자신의 비행 차례를 기다리면서 풀밭에 누워 있다 잠이 들곤 합니다.
-1924년 파리에서 보낸 편지

차를 운전하고 왔더니 손가락이 꽁꽁 얼어버렸습니다. 지금은 자정이에요. 모자를 벗어 침대 위에 던져 놓고 나니 고독이 밀려옵니다.
들어오다가 엄마의 쪽지를 발견했습니다. 그 쪽지가 저의 말동무가 되어주고 있어요. 엄마, 비록 제가 편지를 쓰지 않아도, 비록 제가 나쁜 놈일지라도, 엄마는 이 세상 그 무엇도 엄마의 애정을 대신할 수 없다고 말씀하고 다니셔도 됩니다. 그건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인데도 제가 한 번도 표현할 줄 몰랐던 말입니다. 그래도 그 말은 제 마음속 깊은 곳에 살고 있으며, 아주 확실하며 한결같습니다. 전 그 누구도 그렇게 사랑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엄마를 사랑합니다.
-1925년에서 1926년 사이 파리에서 보낸 편지


카멜레온 한 마리를 길들였어요. 이곳에서의 제 역할은 길들이는 것입니다. 저한테 맞아요, 참 재미있는 표현이지요. 그런데 제가 길들이고 있는 카멜레온은 태곳적 동물을 닮았어요. ……몸동작이 놀랍도록 느리고, 거의 인간에 가까울 정도로 조심스러운 성격입니다.
- 1927년 쥐비에서 보낸 편지

자나 깨나 9월에는 돌아가게 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료 한 명이 포로로 붙잡혀 있는 이상, 그가 위험에 처해 있는 한, 여기 남아 있는 것이 제 의무입니다. 제가 도움이 될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전 꿈을 꿉니다. 꿈속에는 식탁보가 깔려 있고, 그 위에 과일이 놓여 있으며, 보리수 아래서 산책을 하는 생활과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에게 총을 쏘는 대신 상냥하게 인사를 하고, 안개 속에서 시속 200킬로미터로 달리는데도 그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으며, 끝도 없는 사막 대신 하얀 자갈 위를 걷고 있는 그런 꿈입니다.
그 모든 것이, 너무 멀리 있군요!
- 1928년 쥐비에서 보낸 편지

시간이 있어 책을 쓰려면 쓰겠지만, 아직 어떻게 써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아직 제 안에 있는 책이 무르익지 않았어요. 사람들의 “목을 축여 줄 것 같은” 그런 책이 말입니다.
- 1940년 오르콩트에서 보낸 편지

아주 잘 지냅니다, 대단히. 하지만 엄마를 본지가 너무 오래 되어 마음이 이다지도 서글플 수가 없습니다. 엄마 생각을 하면 전 눈앞이 캄캄합니다, 나의 작고 늙으신 사랑스러운 엄마. 이 시대는 왜 이토록 불행한 걸까요.
디디의 집이 없어져버렸다는 소식에 가슴에 못이 박히는 것 같았습니다. 아, 엄마, 제가 그 아일 도울 수만 있다면! ……언제쯤에나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될까요?
-1944년 보르고에서 보낸 마지막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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