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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84944077 / 348쪽 160 x 2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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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조선 후기 실학사상을 체계화한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 1629~1703)이 남긴 두 종류의 연행록인『서계연록(西溪燕錄)』과 『사연록(使燕錄)』을 대상으로 한 본격 연구서가 이번에 혜안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서계연록』은 특히 박세당이 남긴 저술 가운데 지금껏 미공개 상태를 유지해 온 마지막 저술로 그 구체적인 내용 소개와 분석이 아쉬운 상황이었다. 올해 6월 『서계연록』의 정갈하고 읽기 쉬운 국역본을 소개한 바 있는 저자 김종수는 『서계연록』?의 주요 내용을 사행(使行) 시집인 『사연록』과의 관계성을 고려하면서 그 전모를 특정 ... 조선 후기 실학사상을 체계화한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 1629~1703)이 남긴 두 종류의 연행록인『서계연록(西溪燕錄)』과 『사연록(使燕錄)』을 대상으로 한 본격 연구서가 이번에 혜안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서계연록』은 특히 박세당이 남긴 저술 가운데 지금껏 미공개 상태를 유지해 온 마지막 저술로 그 구체적인 내용 소개와 분석이 아쉬운 상황이었다. 올해 6월 『서계연록』의 정갈하고 읽기 쉬운 국역본을 소개한 바 있는 저자 김종수는 『서계연록』?의 주요 내용을 사행(使行) 시집인 『사연록』과의 관계성을 고려하면서 그 전모를 특정 주제별로 나누어 입체적인 조명을 시도하였다. 저자는 효율적인 논의를 위한 전략으로서 이른바 사상문화적 연구 방법론을 채택하여 위의 두 연행록을 박세당의 여타 저술 혹은 사상체계와 접목시키는 논의 방식을 시종 적용하였다. 결과적으로 저자가 채택한 연구방법론은 논의의 폭을 확장하고 깊이를 더해줌으로써, 연록과 박세당 사상체계 간의 정합적인 논의를 이끌어내주었다. 또 그 연장선에서 저자는 두 연행록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로서 사실주의적(事實主義的) 사조에 주목하여 이를 박세당 사상체계의 전체적 규모와 연관시켜 논의를 개진하였는데, 이 책만이 갖는 고유한 특징이라 하겠다. 책 내용 박세당이 구축한 사상체계는 일단 사서(四書)·이경(二經)을 대상으로 한 탈주자학적 경학론과 노장(老莊)사상으로 대별해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박세당의 학문세계는 『색경』으로 표방되는 농학(農學)과 독자적인 고증학(考證學), 그리고 양명학과 역(易) 방면에까지 천착하는 등 실로 다양한 경계지대를 아우르면서 17세기 중·후반 조선 지성계의 대표적인 사상가로 우뚝 서게 되었다. 박세당은 빈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약 10세의 늦은 나이에 글공부를 시작하여 32세의 나이에 입사(入仕)하였으나, 그마저도 8년이라는 극히 짧은 관직생활을 마감하고 수락산 석천동으로 퇴은하였다. 이후 박세당은 직접 농사를 지으며 곤궁한 여건 속에서 강학과 연구 활동에 몰두했다. 박세당은 당시 노론의 거두 송시열(宋時烈)과 대립하여 사문난적으로 낙인이 찍힌 끝에 불행한 최후를 맞이하였으나, 그의 경학은 조선후기 실학사상의 본격적인 포문을 열어 후대 다산(茶山) 경학론의 중요한 연원을 제공해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책은 박세당이 석천동으로 퇴은하기 직전인 1668년에 동지사의 서장관 자격으로 청의 수도 연경(燕京)을 다녀오면서 작성한 연행록을 다양한 시각으로 분석한 것이다. 저자는 처음에는 박세당이 연경(북경)에서 남긴 행적을 추적하기 위해 『서계연록』을 접했다고 한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박세당은 황폐한 당시 북경의 모습과 지적 소양이 결여된 북경 사류(士類)들에 대한 지극한 실망감만을 형인 박세견에게 띄운 서신에서 피력하였을 뿐이다. 형에게 보낸 서신은 박세당이 창안한 훈고학적 경학방법론의 자생성을 시사해 주었다는 점에서 그 행간의 의미가 가볍지 않다. 저자는 박세당이 북경에서 남긴 족적을 추적하려던 당초의 계획 대신『서계연록』에 등재된 주요 서술단위들의 내용에 주목했다. 실제 두 연행록에 기재된 서술단위들의 목록과 그 순위는 박세당 내면에 은장된 의도인 서브텍스트(subtext)를 차별적으로 대변해 주는 지표들이기 때문이다. 이에 무엇보다 저자는 박세당이 사행 동안 내내 청조(淸朝) 정국을 대상으로 한 일련의 정탐(偵探)에 주목하였다. 이러한 정탐 활동은 대청탐규(對淸探窺)로 명명할 만한 사안으로서, 연행의 왕환 노정에서 보여준 그의 치열한 실증적 탐구노력과 더불어『서계연록』의 가장 특징적인 국면을 형성하고 있다. 기실 『사연록』이 시의 소재로 삼은 여양(閭陽)·고평(高平)·광녕(光寧)·요하(遼河)·요택(遼澤)·산해관(山海關)·이제묘(夷齊廟)·계주(?州)·통주(通州)·북경(北京)·옥류천(玉溜泉)·연대(燕臺)·조양문(朝陽門)·조어대(釣魚臺)·영평(永平)·연대(烟臺) 등의 역사적 공간과 주요 상관물들 역시 대표적인 두 서술단위들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이 책의 목차에서도 드러나듯 박세당이 수행한 대청 정탐 활동의 대상은 실로 광범위하였다. 먼저 박세당의 대청탐규는 중국에서의 명·청(明淸) 간 왕조교체에 따른 조선왕조의 첨예한 관심사가 잘 드러난 결과였다. 박세당은 청조의 정국 전반에 걸친 정보는 물론이고 황제 강희제에 관한 정보를 획득하는 데에도 무척 부심하였다. 실제로 황제 관련 사항은 조선왕조가 가장 궁금해하는 일급 정보였고, 박세당은 1669년 정월 초하룻날 진행된 조참의(朝參儀) 때 강희제의 일거수일거족에 예의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다. 나아가 한족이 받는 차별적 실상과 ‘희봉사’로 별칭된 몽골의 군사적 동향, 소수민족인 묘족의 동태까지 예의 주시하면서 정탐활동을 지속하였다. 특히 남명정권의 동향과 반청세력의 활동에 대한 그의 지대한 관심은, 암암리에 명조 부흥을 갈망한 조선왕조와 지성계의 관심을 극명하게 반영한 사례였다. 이상과 같은 정치·군사적 탐규에 추가하여 박세당은 소위 관풍(觀風)으로 지칭되는 대청 풍속 및 예악의 관찰에도 상당한 집중력을 발휘한다. 특히 변모한 대륙의 언어와 복제, 두발 상태를 누차 접한 끝에 그 화이혼속(華夷混俗) 양상에 비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러한 심정은 원일(元日)의 조참의와 그에 부속된 오후의 연회석상에서도 재차 읽을 수 있다. 박세당은 조회가 진행되는 동안 여타 번국 사절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차별대우를 받았던 조선의 초라한 위상을 누차 확인했다. 게다가 전투 장면을 형상화한 청조의 희극과 제왕 대신들의 폐·전 위에서의 춤 한마당, 누릿하니 기름진 차맛 등은 그에게 상스러운 이미지의 원천을 제공해준다. 결국 진(塵)이라는 기호로 압축된 박세당의 대청 이미지는 귀국 후 소론계 주요 인사들의 연행 자문에 응하는 과정에서 연속적으로 재생되기에 이른다. 『사연록』의 기저를 장식하는 한(恨)스러운 심색(心色)도 이 ‘진’이라는 이미지와 무관하지 않다. 이상이 제2장과 제3장의 주요 내용이다. 한편 또 다른 대표적 서술단위인 제4장 는 박세당의 진지하면서도 치열한 학문적 태도를 환기시켜 준다. 박세당이 보여준 실증적 관심권 속에는 연행 때 그가 참고한 『지지(地志)』와 앞선 사절단들이 남긴 전록(前錄)은 물론이거니와, 비석과 사원, 누각[樓]과 누대[臺] 및 묘지, 성(城)과 강하 등의 명칭과 여타의 산천지리 관련 소재들이 모두 망라되어 있다. 심지어 박세당은 북경에 체류했을 때 사용한 숙소인 회동관(會同館)의 벽면 낙서까지 무심히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나아가 박세당은 그가 참고한 전록까지 고증해 내고, 길거리 통신류의 와전된 소문도 그 실상을 규명해 내고자 하였다. 이러한 실증적 탐구 과정 속에서 박세당은 전칭(傳稱)·상전(相傳)·전설(傳說)의 오류로 명명되는 해석학적 각성을 싹틔우게 된다. 실제 박세당이 지적한 오류 유형들은 해석학적 전구조(前構造)에 상응하는 의미로서, 경전 주석학의 전통에서 운위되는 소위 전문(轉聞)의 오류와 내용상 동의어에 해당한다. 이처럼 박세당이 연행 노정에서 획득한 해석학적 이해구조에의 각성은 차후 그가 개척한 비판적 경학론에서 더욱 완결된 형식의 해석학적 체계로 재조직된다. 결국 연행 노정에서 시도된 박세당의 실증적 탐구 노력은 그가 무신년 사행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물로 남게 된다. 앞서의 내용에 이어 제5장의 불교 관련 서술단위, 제6장의 조선 피로인(被擄人) 묘사와 민물(民物) 견문 등은 『서계연록』의 차상위 소재거리에 해당한다. 저자는 박세당을 원시유학을 강력히 지향한 근본 유자로 보면서도 연록의 불교 관련
목차
책머리에
제1장 서 론
1. 연구 범위와 방법론
2. 『서계연록(西溪燕錄)』의 구성과 특징
3. 생애와 연행
1) 생애
2) 연행 전후
제2장 박세당의 대청탐규(對淸探窺)
1. 정치·군사적 정탐
1) 한족(漢族?)의 실태와 청조의 범죄자 및 반민(叛民) 대책
(1) 사행과 탐규 (2) 한족의 차별 실상 (3) 청조의 범죄자와 반민 처벌
2) 청조와 몽골의 군사적 동향 정탐
(1) 청조의 정국과 거리 탐문 (2) 반청세력의 정탐과 반청복명에 대한 기대
(3) 몽골의 범경(犯境) 사태:희봉사(喜峯事)
3) 소결
2. 사회·문화적 탐문:대청(對淸) 예속(禮俗) 인식
1) 풍속 관찰
2) 예악(禮樂) 관찰
3) 소결
제3장 1669년 원일(元日)의 조의기(朝儀記)
1. 조참의와 주요 관찰 포인트
1) 원일 정조
2) 황제의 동정(動靜)과 여타의 시점
2. 사연(賜宴)과 주요 관찰 포인트
3. 소결
제4장 『서계연록』의 고증기록과 실증적 탐구
1. 산천지리의 실증과 그 원칙
2. 사원과 성 및 여타의 소재
3. 비(碑) · 명(銘)과 회동관의 벽서 고증
4. 소결
제5장 불교적 서술단위와 박세당의 불교 인식
1. 사원과 승려에 관한 묘사
2. 계율·수행 인식과 몇 쟁점
3. 소결
제6장 조선 피로인 묘사와 민물(民物) 견문
1. 병자호란의 잔흔과 이주의 몇 유형
1) ??서계연록?? 속의 조선 피로인
2) 쇄래(刷來) 이주와 동래(東來) 이주
(1) 쇄래 이주 (2) 동래 이주:「강세작전(康世爵傳)」
3) 소결
2. 사행(使行)과 청조 문물의 체험
1) 민물 견문
2) 역법논쟁의 체험
3) 소결
제7장 결론 : 『서계연록』과 박세당식 사실주의(事實主義)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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