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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영과 젊은 그들

이덕일 저 | 역사의아침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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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3119121 / 360쪽 153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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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이 책은 1910년 강제로 한일합방조약이 체결되어 나라를 일제에 빼앗기자 여섯 형제 일가를 모두 이끌고 만주로 가 전 재산은 물론 목숨까지 민족해방을 위해 바친 이회영과 여러 동지들에 관한 것이다. 세칭 삼한갑족三韓甲族(예로부터 대대로 문벌이 높은 집안)으로 불린 명문대가 출신인 이회영이 독립운동을 펼치기 위해 중국으로 망명하기까지의 과정과 망명 후 그의 활동은 물론 수많은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한 모습, 어떻게 아나키즘을 받아들여 아나키스트가 되었는지, 극심한 가난으로 인한 고통을 참고 견뎌내며 독립운동을 벌이다가 최후를 맞이해야 했... 이 책은 1910년 강제로 한일합방조약이 체결되어 나라를 일제에 빼앗기자 여섯 형제 일가를 모두 이끌고 만주로 가 전 재산은 물론 목숨까지 민족해방을 위해 바친 이회영과 여러 동지들에 관한 것이다. 세칭 삼한갑족三韓甲族(예로부터 대대로 문벌이 높은 집안)으로 불린 명문대가 출신인 이회영이 독립운동을 펼치기 위해 중국으로 망명하기까지의 과정과 망명 후 그의 활동은 물론 수많은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한 모습, 어떻게 아나키즘을 받아들여 아나키스트가 되었는지, 극심한 가난으로 인한 고통을 참고 견뎌내며 독립운동을 벌이다가 최후를 맞이해야 했던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조국의 독립과 이상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동지들, 그 100년의 기억! 1910년 8월 22일 강제로 한일합방조약을 체결한 일제는 그해 10월 7일 대한제국이 망하는 데 큰 공을 세운 76명의 조선인들에게 작위와 은사금을 내려주었다. 일본 귀족과 유사한 공·후·백·자·남의 작위를 수여해 귀족으로 임명하고 은사금도 주어 작위에 걸맞은 경제생활을 하도록 보장한 것이다. 비록 군사력으로 영토를 점령했다고 해도 이들 매국 사대부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일제가 그리 순조롭게 대한제국을 병탄할 수 있었을지는 미지수다. 이른바「한일병합조약문韓日倂合條約文」제5조에는 “일본국 황제폐하는 훈공勳功 있는 한국인으로서 특히 표창에 적당하다고 인정된 자에게 영작榮爵을 수여하고 또 은급恩級을 부여한다”고 명기해놓기도 했다. 수작자授爵者들 대부분은 조선과 대한제국의 유력 가문 출신으로, 국망國亡의 위기를 맞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기는커녕 오히려 일제에 나라를 팔아먹는 데 적극 협력했던 것이다. 이렇게 매국 수작자들이 일제의 작위와 은사금을 받은 지 두 달 후, 대륙에서 불어오는 차디찬 바람을 무릅쓰고 만주로 떠나는 40여 명의 무리가 있었으니 바로 우당 이회영과 그 형제 일가였다. 최근 역사의아침에서 펴낸『이회영과 젊은 그들』은 1910년 강제로 한일합방조약이 체결되어 나라를 일제에 빼앗기자 여섯 형제 일가를 모두 이끌고 만주로 가 독립운동을 펼치며 전 재산은 물론 목숨까지 민족해방을 위해 바친 이회영과 여러 동지들에 관한 글이다. 이 책에서는 세칭 삼한갑족三韓甲族(예로부터 대대로 문벌이 높은 집안)으로 불린 명문대가 출신인 이회영이 독립운동을 펼치기 위해 중국으로 망명하기까지의 과정과 망명 후 그의 활동은 물론 수많은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한 모습, 어떻게 아나키즘을 받아들여 아나키스트가 되었는지, 극심한 가난으로 인한 고통을 참고 견뎌내며 독립운동을 벌이다가 최후를 맞이해야 했던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그뿐만 아니라 엄형순, 유자명, 이을규, 이정규, 정화암, 백정기, 김대락, 오면직, 김종진, 유림 등의 아나키스트들에게 사상적 구심점이 되어주고 함께 독립운동을 펼친 모습과 당시 중국에서 이루어진 독립운동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재조명했다. 조국의 독립과 이상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몸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동지들의 일생은 현재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해줄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 우당 이회영.『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개정판 출간! 한일합병 조약체결 소식을 듣고 매천 황현이 고향 구례에서 목숨을 끊던 1910년 8월 하순, 이회영은 이동녕과 장유순 그리고 이관직과 함께 북쪽으로 향했다. 만주에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고, 독립군을 양성하기 위한 무관학교 설립의 적지를 물색하기 위해서였다. 일행은 한 달 남짓 남만주 일대를 돌아다니다가 귀국했다. 이회영은 형제들에게 전 가족이 만주로 이주해 일제와 싸우자고 하며 “이것이 대한 민족된 신분이요, 또 왜적과 혈투하시던 백사白沙(이항복) 공의 후손된 도리라고 생각한다. 여러 형님들과 아우님들은 나의 뜻을 따라주시기를 바라노라”고 설득했다. 여섯 형제는 모두 가산을 정리했는데, 급하게 팔다 보니 제값을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회영 형제 일가가 가산을 정리해 마련한 자금은 약 40만 원의 거금이었다. 당시 쌀 한 섬이 3원 정도였는데, 이를 2000년대 쌀값으로 단순 계산하더라도 약 600억 원이나 된다. 이회영은 여섯 형제 중 넷째인데, 위로 이건영, 이석영, 이철영이 있었고 아래로 이시영과 이호영이 있었다. 가문 배경으로 보면 그 누구보다 기득권을 유지하려 했을 것 같으나 이회영을 비롯한 형제들은 기득권에 연연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듯 평생 동안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이회영을 재조명한『이회영과 젊은 그들』은 2001년 웅진닷컴에서 펴낸『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을 개정한 것이다. 전작에서는 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아나키즘에 대해 초점을 맞추어 기술한 반면, 개정증보판『이회영과 젊은 그들』에서는 이회영의 아나키스트적 색채보다는 그가 아나키즘을 사상적 바탕으로 어떻게 독립운동을 위한 기초를 다졌으며, 여러 동지들과 독립운동을 전개해나갔는지에 중점을 두었다. 또한 당시의 실상을 엿볼 수 있는 생생한 컬러사진 50여 컷을 새로 넣었으며, 최근 발표된 자료를 근거로 이회영이 대련 수상경찰서 유치장이 아닌 여순감옥에서 고문사당했다는 사실을 추가로 밝혀냈다. 헤이그 밀사파견을 주도하다! 이토 히로부미가 이른바 을사조약을 체결하기 위해 서울에 온 1905년. 이회영의 집에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의정부 참찬 이상설과 훗날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으로 활약하는 이동녕 등이 그들이었다. 그들은 의논 끝에 조약 체결을 막기 위한 여러 방책을 세웠으나 일제의 방해로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조병세와 민영환이 자결했고, 이 소식을 들은 이상설도 자결을 시도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이상설과 이회영은 새로운 운동방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이상설은 만주 용정촌으로 망명해 독립군을 양성하기 위해 서전서숙을 열었다. 1907년 4월 3일 이상설은 이동녕, 정순만과 함께 용정촌을 떠났다. 혼춘에 학교를 하나 더 세우겠다는 것이 명목이었다. 그러나 이상설의 목적지는 혼춘이 아니었다. 그가 가려는 곳은 만국평화회의가 열릴 네덜란드의 수도 헤이그였다. 이상설, 이준, 이위종 세 사람은 고종의 특사 자격으로 헤이그로 향했는데, 이 헤이그 밀사사건의 배경에도 이회영이 있었다. 당시 일제는 궁내 곳곳에 일본의 간자를 심어두고 고종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으나 이회영은 대신 조정구와 내관 안호형을 통해 고종에게 밀사파견을 주청했다. 고종은 헐버트에게 신임장을 전달했고, 이회영은 헐버트에게 신임장을 받아 비밀연락망을 통해 간도에 있는 이상설에게 전했던 것이다. 헤이그 밀사사건은 알려진 대로 구체적 성과를 이루어내지 못했고, 이상설은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했다. 고종의 국외 망명을 추진하다! 국내에 남아 독립운동을 벌이던 이회영은 1910년 여섯 형제 일가를 모두 이끌고 만주로 집단 망명했는데, 1913년경 그곳을 떠나야 했다. 일제가 이회영을 비롯해 이시영, 이동녕, 장유순, 금형선 등을 체포 또는 암살하기 위해 형사대를 파견했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이회영은 일제의 허를 찌르기 위해 국내로 밀입국을 단행했고, 고종을 국외로 망명시키기 위해 기회를 엿보던 중 드디어 방안을 찾아냈다. 아들 이규학의 신부례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이규학은 1917년 어머니 이은숙과 함께 국내로 왔다. 이회영이 5년 동안이나 돌아오지 않자 이회영을 찾아 귀국했던 것이다. 신부례 상대인 조계진은 조대비의 친족이자 고종의 조카딸이었다. 이미 결혼한 지 3년이 지난 1918년 11월에 신부례를 올린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이

저자 소개

1997년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를 필두로 한국사의 쟁점을 새로운 시각에서 제시하며 역사서 서술의 새 장을 열었다. 1차 사료를 중심에 두고 뚜렷한 관점과 흡입력 있는 문체로 당대의 문제를 현재의 문제로 전환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뛰어난 강연으로 기업체를 비롯하여 중앙공무원교육원의 고위공직자 과정 최우수 강사로 선정되는 등 한국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한국사학자로 평가받는다. 1차 사료 강독과 교양한국사 강의를 진행하여 대중과 꾸준히 소통하는 한편 다양한 미디어 활동을 통해 대중을 역사현장으로 이끌고 있다.
그간 한국사의 쟁점에 정면 도전하는 역사서와 생존 당시 주목받지 못했던 비운의 천재나 승자의 역사에 묻히고 왜곡됐던 인물들을 찾아내 재해석하는 책들을 펴냈다. 저서로 《사도세
자가 꿈꾼 나라》,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조선 왕 독살 사건》, 《이회영과 젊은 그들》, 《조선 왕을 말하다》, 《정도전과 그의 시대》, 《세상을 바꾼 여인들》, 《김종서와 조선의 눈물》, 《칼날 위의 역사》 등이 있다. 현재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며, 식민사관 척결과 21세기 한국을 이끌어갈 신주류 사학의 정립을 위해 애쓰고 있다.

목차

목차
저자의 글
1. 왕조의 마지막 두 풍경
이완용의 밀사 이인직/내가 죽어야 할 의리는 없으나/떠나는 사람들 /횡도촌, 망명자들의 촌락
2. 일가 망명
망국을 막기 위해/헤이그 밀사사건/북풍 부는 만주로
3. 독립군의 요람, 신흥무관학교
모든 것을 버리고 만주로 떠나다/이 머리는 자를 수 있지만/작위와 은사금에 환호하는 집권 노론/조국의 독립을 위해서라면
4. 고종이 망명한다면
밀입국을 단행하다/고종 망명이 갖는 폭발성
5. 북경과 상해를 오가며
임시정부를 둘러싼 파문/독립운동가들의 단골 거처/임시정부도 사회주의도 버리고
6. 아나키즘의 깃발
양명학과 아나키즘/아나키즘으로
7. 의열단과 다물단
의열단의 직접행동과 유자명/조선총독부 폭파와 다나카 대장 암살사건/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한 무기다/다물단의 밀정암살이 준 충격
8. 극도의 곤경 속에서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 발족하다/극심한 자금난/일제의 체포를 피해 수만 리를 걷다
9. 만주운동의 새바람
김좌진과 연합하다/일본 조계지의 은행을 털다/자유연합적 지방자치에 대한 반발
10. 1930년대, 상해의 풍경
일제를 공포에 빠뜨린 아나키즘 조직들/백정기와 윤봉길의 엇갈린 운명
11. 무장투쟁의 길과 순국
무장투쟁의 길로/운명의 만주행/밀고자들
12. 망명자들의 최후
만주로 간 선비들/신채호의 순국
13. 남은 동지들
죽기 위해 제비를 뽑는 사람들/공포의 서간단/재일 거류민단장 사살사건/일제가 점령한 상해에서/무장투쟁으로 최후의 승리를/미완의 과업/되살아나는 역사
이회영 가계도
이회영 연보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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