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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과 선생님이 뽑은 이광수 무정

시리즈 : 국어과 선생님이 뽑은 문학 읽기 [49]

이광수 저 | 북앤북 | 2009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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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89994220 / 415쪽 152 x 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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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줄거리) 이형식은 동경 유학에서 돌아와 서울 경성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미국에 유학하려는 김 장로의 딸 선형에게 영어를 개인 지도하기 위해 가정교사가 된다. 어렸을 때 헤어진 옛 은사(恩師) 박 진사의 딸인 영채가 형식의 하숙집에 찾아온다. 영채는 애국지사로 투옥된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기생이 된다. 기생이라 해도 아버지의 말을 믿고 형식을 사모하며 절개를 지킨다. 영채는 형식이 자신의 기생 처지를 어떻게 생각할까를 몰라 이야기하지 않은 채 떠난다. 형식은 영채가 떠난 뒤 영채의 아름다움에 반한 자신의 사이에서 고민하지만 선형에게 연정을 품게 된다. 영채에게 흑심(黑心)을 품고 있던 경성 학교 교주의 아들 김현수는 배 학감으로 하여금 그녀를 청량사로 유인케 하여 겁탈한다. 영채는 자신의 순결을 잃어 버렸기 때문에 죽을 것을 결심을 하고 형식에게 유서를 남기고평양으로 떠난다. 다음 날 형식은 영채가 정조를 지키며 자신을 기다리며 살다 정조를 잃게 되자 죽으로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형식은 영채에 대해 자책을 느끼며 그녀를 찾기 위해 평양으로 갔지만, 영채를 찾지 못하고 서울로 돌아온다. 영채로 인해 주저하는 형식은 김 장로의 집에서 선형과 약혼을 하고 성례는 유학 후에 하기로 한다. 영채는 죽으러 평양으로 가다 기차에서 음악을 전공하는 동경 유학생인 김병욱을 우연히 만나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부모의 말로 인해 남편을 결정하는 구습 때문에 죽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은 병욱은 자기 집으로 영채를 데려가 집에서 같이 있다 유학을 함께 가자고 한다. 영채는 병욱의 도움으로 마음을 가다듬게 되고 일본으로 음악과 무용을 공부하러 간다. 유학 겸 신혼여행중인 부산으로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형식과 선형은 영채와 병욱을 만나게 된다. 형식은 선형에게 과거 이야기를 하고 영채를 만난다. 형식은 영채에게 미안하다고 하자 영채는 걱정시켜 미안하다고 한다. 형식이 영채를 만나러 갔을 때 선형은 질투를 느끼게 되고 형식을 의심하다가 추악해진 자신을 하나님께 용서를 빈다. 선형이 있는 차안으로 돌아온 형식은 자는 체하는 선형에게 손에 입을 맞추지만 형식이 몹시 미웠다. 다음 날 삼랑진역에 닿았을 때 홍수가 나 이 광경을 보고 있던 형식, 선형, 영채, 병욱은 수재민을 돕고 선형과 영채는 서로 협심하게 된다. 병욱이 즉석에서 음악회를 열어 돈을 모아 서장에게 수재민을 도우라고 준다. 형식은 여관방에서 일행들에게 우리의 이런 불행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열심히 배워 조국을 위해 살자고 한다. (작품정리) [무정]은 1917년 1월 1일부터 6월 14일까지 에 연재된 이광수의 첫 장편 소설이자 한국문학사 최초의 근대 장편 소설이다. [무정]은 민족주의적 이상과 계몽주의적 정열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난 작품이다. 「무정」에는 봉건제의 타파, 개인의 행복 추구, 근대 민족국가의 건설이라는 시대정신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봉건 도덕의식을 가진 박영채와 근대적 인간형인 이형식을 비롯한 여러 유형의 과도기적 인물을 설정하여 상호 갈등을 전개시킴으로서 전환기의 시대상과 가치관을 집약적으로 표현하였다. 특히 정절이라는 옛 가족 제도의 가치를 지키려는 인물인 박영채와 근대 문물의 세례를 받은 이형식, 김선형 등 세 주인공 사이의 삼각관계는 당대 사회의 풍속의 갈등을 예리하게 표현한다. 옛 가치와 새로운 가치의 갈등 속에서 고민하던 당시의 대중들한테 열렬한 호응을 받기도 하지만 수많은 비평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여주인공인 박영채의 삶을 중심으로 해서『무정』은 가족의 몰락을 거쳐 근대적이고 독자적인 개성의 자각과 의식의 독립화에 근거하여 근대적인 삶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다룬 작품이다. 과도기적 인물을 설정하여 상호 갈등을 전개시킴으로서 전환기의 시대상과 가치관을 집약적으로 표현하였다. 박영채의 삶은 아버지의 무고한 투옥으로 인해서 행복한 가족 상태가 붕괴되는 데서 비롯되지만 박영채가 겁탈을 당했다는 중요한 상징을 표현하고 있다. 자신의 정절을 훼손당함으로써 선택하는 자살은 지나간 시대의 무기력한 가치를 묻어버리는 의식으로 이전과는 다른 삶의 의미를 지닌다. 이 작품의 주제는 민족주의 이념과 자유연애 사상이다. 이광수의 첫 장편소설『무정』은 전대 문학인 신소설의 발전 형태로, 현대소설사에 획기적인 기념비적인 의의를 지니고 있다.

저자 소개

이광수(1892∼1950)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춘원(春園) 이광수는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아명은 보경(寶鏡)이고, 작가이자 문학평론가, 사상가이자 기자, 논객으로 활동하며 고주(孤舟), 외배, 올보리, 장백산인(長白山人), 춘원생, Y생 등의 필명을 썼다.
이광수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1905년 일진회(一進會) 유학생으로 도일해 일본 와세다 대학 문학과와 철학과에서 수학하면서 신학문을 접하게 된다. 홍명희·최남선 등과 교류하고 톨스토이·바이런 등의 외국 사상가의 저서를 읽으면서 세계를 향해 시야를 넓혀 가던 이 시절은 그가 한국 근대문학의 기틀을 닦는 사상적 자양분을 마음껏 흡수할 수 있던 시기였다. 이때 발표한 <문학이란 하오>는 한국 근대문학의 범주와 방향을 제시한 본격적인 근대문학론이라 할 수 있다. 이광수는 1909년 첫 작품 <사랑인가>를 발표한 이후 <어린 벗에게>, <윤광호>, <소년의 비애> 등의 소설을 통해 자유연애를 옹호하고 기성의 도덕을 부정하는 진보적 사상을 고취했다. 특히 1919년 학비 보조를 위해 ≪매일신보≫에 연재하기 시작한 ≪무정≫은 계몽주의적 자유연애론과 근대적 자아의 각성 문제를 다룸으로써 인습에 반기를 들고 신문명의 기치를 든 청년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소설뿐 아니라 시와 논설, 평론 등을 발표해 사상가로서 초석을 닦고 있던 이광수는 이미 재일 유학생 사회에서 저명인사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였다. 이에 따라 그는 자연스럽게 유학생 활동에 앞장서면서 1919년 ‘2·8독립선언서’의 초안을 작성하는 일을 맡게 된다. 이후 상하이로 탈출해 그곳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관지인 ≪독립신문≫의 주간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여기서 그는 도산 안창호를 만나고 그의 사상에 깊이 감화되어 그를 ‘아비’로 칭하고 평생에 걸쳐 존경심을 표한다.
1921년 귀국한 즉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지만 춘원의 후원자인 아베 요시이에(阿部充家)의 도움을 받아 불기소처분을 받아 풀려난 뒤로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지낸다. 1921년 ≪개벽≫에 조선 민족의 민족성을 개조하자는 내용을 골조로 하는 <민족 개조론>을 연재해 조선 사회에 엄청난 반향과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춘원의 집과 개벽사가 습격당할 만큼 거센 반발이 있었지만 그의 입장에서 이 논설은 돌출되거나 변질된 사상이 아니라 그가 일관되게 주장해 온 민족 개조론과 실력 양성론을 실천적으로 구체화한 글이라 할 수 있다.
1924년 ≪동아일보≫에 발표한 소설 ≪재생≫은 문학사적 의의 외에도 이광수가 본명을 사용한 첫 소설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이를 계기로 춘원은 10여 년간 가장 왕성한 문학 활동을 펼치면서 문단의 중심에 서게 되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그는 순문예지 ≪조선 문단≫의 주재로 활동했고, ≪혁명가의 아내≫, ≪사랑의 다각형≫, ≪삼봉이네 집≫에 이르는 ≪군상≫ 3부작과 역사소설 ≪단종애사≫, ≪마의태자≫ 등의 작품을 발표했을 뿐 아니라 ≪흙≫(1932), ≪유정≫(1933) 등의 대표작을 남겼다. 특히 ≪흙≫은 그가 조직한 흥사단의 국내판 수양동우회와 ≪동아일보≫ 편집국장 신분으로 전개한 ‘브나로드 운동’의 방편으로 쓰인 농촌계몽소설이다. 1938년에 발표한 전작 소설 ≪사랑≫에는 아들의 죽음, 도산의 죽음, 수감 생활로 이어지는 일련의 고통스러운 사건을 거친 후 종교적 세계에 안주하려는 춘원의 현실 초극 의식이 잘 드러나 있다.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은 이광수에게 변절의 오명을 덧씌운 결정적 계기가 되는데, 이 사건 이후 그는 “천만 동포를 천황의 독자로 만드는 데 여생을 바치겠다”는 맹세에 따라 친일 행각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그는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로 창씨개명을 하고, 황국 위문 작가단을 결성하고, 친일 단체인 조선문인협회 초대 회장으로 앞장서 내선일체 구현을 강조하는 일본어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후에 이 모든 행위가 조선 민족을 보호하기 위한 타협책이었다고 변명하기도 했으나 광복 후 반민특위에 의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러나 이때 이미 폐병과 결핵으로 온몸이 만신창이 상태였던 이광수는 아들의 탄원 덕분에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불행히도 1950년 납북된 후 그의 마지막 모습은 확인할 수 없으나, 평양감옥에 수감되었다가 자강도 고개동에서 사망, 모처에 매장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광수의 삶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해방에 이르는 역사의 파고 가운데 민족의 운명과 더불어 부침을 겪었다. 그는 문사(文士)이자 지사(志士)로 공론의 장에 참여해 목소리를 높이면서 역사 속으로 자신의 삶을 투항했다. 비록 친일의 낙인이 찍힌 ‘흠 많은’ 우리 문학의 아버지일지언정, 이광수의 삶과 문학에는 우리 근대사의 공과가 그대로 새겨져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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