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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신화

시리즈 : 펭귄 클래식 시리즈 [126]

김시습 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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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01091570 / 139쪽 133 x 2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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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한국 문학사의 기념비적 작품들 펭귄판으로 거듭나다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 본격적인 고소설을 꽃피운 원류-『금오신화』 최초의 한글 소설, 허균 사상과 철학의 집합체 -『홍길동전』 ▣ 고어와 한문의 현대적 번역, 수준 높은 작품해설과 원문 목판본 함께 실어 웅진의 단행본 그룹 임프린트 문학에디션 뿔이 영국 펭귄클래식과 공동 투자하여 설립한 펭귄클래식 코리아에서 두 편의 한국 작품을 동시에 선보였다. 그간 펭귄클래식 코리아는 ‘오랜 세월에 걸쳐 예술성과 문학사적 의의를 검증받은 작품’들로 라인업을 구축해 왔다. ... 한국 문학사의 기념비적 작품들 펭귄판으로 거듭나다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 본격적인 고소설을 꽃피운 원류-『금오신화』 최초의 한글 소설, 허균 사상과 철학의 집합체 -『홍길동전』 ▣ 고어와 한문의 현대적 번역, 수준 높은 작품해설과 원문 목판본 함께 실어 웅진의 단행본 그룹 임프린트 문학에디션 뿔이 영국 펭귄클래식과 공동 투자하여 설립한 펭귄클래식 코리아에서 두 편의 한국 작품을 동시에 선보였다. 그간 펭귄클래식 코리아는 ‘오랜 세월에 걸쳐 예술성과 문학사적 의의를 검증받은 작품’들로 라인업을 구축해 왔다. 금번에 출간된 김시습의『금오신화』는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이자 대표적인 전기소설(傳奇小說)로서 전대(前代)의 설화와 가전체를 발전시켜 후대 작품에 다방면으로 큰 영향을 미친 작품이다. 펭귄클래식 『금오신화』는 한문 원본의 예스러운 문체를 살리면서도 세련되고 현대적인 느낌으로 번역되었고, 현시대 젊은이와 청소년들도 충분히 음미할 수 있도록 생소한 고사(故事)나 어려운 한자어 해설을 주석으로 달아주었다. 펭귄클래식 판 『금오신화』에는 작품 전체에 대한 해설과 함께 조선 명종 때의 문인이었던 윤춘년이 편집한 목판본을 실어 독자들에게 아름다운 책이자 어렵고 딱딱하지 않은 작품으로 다가설 수 있게 하였다. 한국 최초의 국문소설이자 한국 문학사에서 소설 시대의 문을 연 허균의 『홍길동전』역시『금오신화』에서 제시된 사회 비판 의식을 계승하면서 그것을 좀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전개한 작품이다. 또한 매력적인 캐릭터와 환상과 현실을 적절히 융합한 내러티브 등으로 대중적 호응도를 높여 자칫 딱딱하게 다가갈 수 있는 소설의 사회적 기능을 일깨운 작품이기도 하다. 펭귄클래식 판『홍길동전』에는 수십 종의 이본(異本) 중 작품성이 뛰어나면서 각 판본의 특징을 비교하며 읽기 적합한 경판 24장본과 완판 36장본을 현대 한국어로 번역해 실었고, 책의 말미에는 내용 분석과 함께 『홍길동전』 연구사의 쟁점과 흐름을 한눈에 짚어볼 수 있는 작품 해설을 담았으며, 1880년경 서울 방각본 제판소에서 만들어진 경판 24장본의 원본을 실어 번역된 현대 한국어와 비교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하였다. ▣ 붓끝 하나로 현실을 꿈처럼 펼쳐낸 시대의 저항아들 김시습과 허균의 공통점이 많다. 두 사람은 모두 어려서부터 비범한 글재주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고, 당시의 주류 학문은 물론 그에 반(反)하는 것일지라도 관심이 가는 학문에는 굶주린 듯 파고들어 폭넓게 배우고 익혔으며, 본인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비판하고 저항하는 반골 기질을 지니고 있었다. 두 사람은 상반된 사상 체계를 융화시키는 데 성공한 철학자이자 천재적인 문학자였으나 유교 중심의 당시 관료 사회에서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이단자였다. 그러나 오늘날의 입장에서 보면 편협한 유교 문화에 한계를 느끼고 다양한 문화를 수용함으로써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기 위해 몸부림쳤던 선각자라고 할 수 있다. 알려진 바와 같이 김시습은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이후 방랑길에 올랐는데 그 시기에 『금오신화』를 쓴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허균의 『홍길동전』은 여러 차례 파직과 복직이 반복되던 끝에 마지막 파직을 전후하여 쓰인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두 작품 모두 작가의 현실이 지극히 절망적이고 비극적인 상황에서 쓰인 것인데 『금오신화』와 『홍길동전』에서는 작가가 현실 속에서 느낀 많은 부조리와 비극적인 정서가 ‘꿈’ 그리고 ‘이상’과 결합하여, 때로는 아름다운 묘사로 때로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붓끝을 타고 춤을 추듯 펼쳐진다. ▣『금오신화』 조선 초기 한문학이 이룩한 시문과 산문의 미학적 성과 그대는 나와 두 세상을 떨어져 있었어도 나를 만났으니 천 날의 즐거움을 누리시라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인 『금오신화』는 김시습의 현실 인식이 짙게 배어 있는 작품들로 주인공들이 처한 결핍과 부재의 상황이 중요하게 부각되어 있다. 주인공이 겪고 있는 고독하고 부정적인 현실은 작가 김시습의 정치적 좌절과 이에서 비롯된 현실 인식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 장래가 촉망되는 수재였으나 계유정난(癸酉靖難) 이후 비분강개하여 공부를 접고 평생 방랑하며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그는 늘 자신과 세상이 어긋난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 느낌을 마치 ‘둥근 구멍에 모난 자루를 박는 것과 같다.’라고 표현하였다. 그의 이러한 비극적 현실 인식은 『금오신화』에 실린 다섯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다섯 작품 모두 새로운 만남이나 세상의 인정을 갈망하는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들은 원하던 만남을 이루거나 인정을 받게 되지만 결국은 다시 혼자 남거나 세상을 등지는 결말을 맞게 된다. 그러나 이 비극적 결말은 오히려 현실적인 문제들을 환기하며, 보이지 않는 세계와의 소통이라는 장치는 환상을 통해 새로운 미감을 낳는다. 특히『금오신화』에 등장하는 시들은 주인공들의 내면을 표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 작품 전체에 우아한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있다. 연꽃 휘장 따스한데 향기 실낱같이 여리고 창밖엔 어지러이 붉은 살구꽃 휘날리네 누각 머리에서 남은 꿈 만지작거리는데 오경 종 울리고 때까치 목련 가지에서 지저귄다 -「이생규장전」중 신라 말, 고려 초에 창작된 애정전기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는 「만복사저포기」와 「이생규장전」을 비롯해서 몽유록, 산수유기, 가전 등의 문학 전통을 잇고 있는 「취유부벽전기」, 「남염부주지」, 그리고 「용궁부연록」은 조선 초기 한문학이 이룩한 시문과 산문의 미학적 성과를 보여 주는 귀중한 작품들이다. 후일 「숙향전」, 『홍길동전』과 같은 본격적인 고소설을 꽃피운 원류이자 전범이라 할 수 있는『금오신화』는 한마디로 전대 문학의 전통에서 거둘 수 있는 모든 예술적 성과를 집대성하여 후대에 전해 준 소설이다. 그 성과는 현대의 한국문학에도 이어져 오고 있기에 오늘날의 독자는 물론 미래의 독자 들에게도 영원히 유의미한 작품으로 남을 것이다.

저자 소개

김시습(金時習, 1435~1493)
김시습은 1435년 서울 성균관 북쪽에 있는 반궁리(泮宮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강릉이다. 친가 외가 모두 대단한 집안이 아니었다. 외가에서 자라면서 말을 배울 무렵부터 외조부에게서 글자를 익히기 시작했다. 
김시습은 유년 시절 장안의 화제였다. 두 살 때 “난간 앞에 꽃 웃으나 소리 아니 들리고, 숲 아래 새 울지만 눈물 보기 어렵네(花笑檻前聲未聽, 鳥啼林下淚難看)” 구절을 듣고는 병풍의 꽃과 새를 가리켰다거나, 다섯 살 때 자기를 보러 온 정승 허조(許稠, 1369∼1439)를 두고 “고목에 꽃이 피니 마음 늙지 않았다오(老木開花心不老)”라는 시구를 지었다는 종류의 이야기가 여럿 전해 온다. 소년의 천재성은 궁궐 안에까지 들려왔고, 세종은 그를 불러 시험하게 했다고 한다. 
하지만 유년기의 천재성과 이로 인한 주변의 칭찬은 김시습의 삶을 불행한 쪽으로 몰아갔던 것으로 보인다. 예나 지금이나 천재성은 비정상성과 통하고, 유년기의 능력은 나이가 들면서 퇴색하기 십상이며, 그 자질은 건강하고 행복한 삶과 비례하지 않는다. 김시습은 내성적이며 부끄럼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뒷날 그는 친지와 이웃의 넘치는 칭찬 때문에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과거엔 실패했고 집안은 빈한했다. 유년기의 충만감은 일순 공허감으로 뒤바뀌었다. 
15세에 어머니를 여의었다. 오래도록 치유되기 어려운 내상을 입었다. 아버지는 곧 재취했다. 평생 집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떠도는 계기가 되었다. 18세 즈음에 혼인을 했지만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이후 계유정난(癸酉靖難, 1453), 단종의 선위와 세조의 즉위(1455), 단종 복위 운동의 실패와 사육신 등의 죽음(1456), 단종의 죽음(1457) 등 정치적 격변이 잇달아 일어났다. 여러 문헌에는 김시습이 사육신의 시신을 수습해 매장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458년, 24세의 김시습은 승려 행색으로 관서 여행을 떠났다. 평생의 방랑이 시작된 것이다. 이후 관동과 호남을 유람하고, 서른 살 무렵에 경주에 안착한다. 
37세(1471)에 경주 생활을 청산하고 서울로 이주했다. 이듬해 수락산 동쪽에 집을 짓고 평생을 이곳에서 살려고 마음먹었다. 수락산 시절 김시습은 외부 활동과 교유를 자제하고 수행과 학문에 전념했던 것으로 보인다. <십현담요해(十玄談要解)> 등의 주요 불교 저술을 지었다. 이 시기 가장 가까이 지낸 사람은 남효온(1454∼1492)이었다. 후대 사람들은 두 사람을 생육신으로 묶어 일컬었다. 47세에는 잠시 환속해 다시 결혼하고 부친의 제사를 지냈다. 잠시 공부와 시작(詩作)의 방향이 유교로 급격하게 쏠렸다. 하지만 두 번째 결혼 생활도 오래가지 못했다. 
수락산에 터를 잡은 지 만 10년이 되는 1483년 봄, 49세의 김시습은 다시 짐을 꾸려 길을 떠났다. 남효온이 지은 시에 따르면, 김시습은 육경(六經)과 역사서 등을 싣고 관동의 산수를 돌아다니다가 농토를 얻어 생계를 꾸릴 것이며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작정이라고 했다. 이후 10년 그의 발걸음은 춘천, 홍천, 인제, 양양, 강릉 등지를 지났다. 오봉산과 오대산과 설악산에 머물렀다. 바닷가에서 한 철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에 늙어 갔다.   
1493년, 죽음을 직감한 코끼리가 깊은 동굴을 찾아들 듯이, 이승을 떠날 때가 된 김시습은 백제로 향했다. 무량사(無量寺), 지금은 부여군 외산면에 있는 아늑하고 포근하며 부드러운 절집에서 그는 평생 방랑에 지친 영혼을 안식한다. 

책 속에서

하루는 이생이 여자에게 말했다.
"옛 성현이 말씀하시기를 '부모가 계시면 밖에 나갈 때 반드시 행방을 알리라.'고 했는데 이제 나는 아침저녁 문안을 못 드린 지 벌써 사흘이 지났소. 부모님께서 문에 기대 나를 기다리실 텐데 이는 자식의 도리가 아니오."
여자가 슬퍼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담장을 넘어 보내주었다.
이생이 그 뒤로 밤마다 여자 집에 가지 않을 때가 없었다. 어느 날 저녁 이생의 아버지가 물었다.
"네가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오는 것은 옛 성현이 말한 인의의 격언을 배우기 위한 것이다만, 밤에 나가서 새벽에 돌아오는 것은 무슨 일을 위한 것이냐? 필시 경박한 사람 모양으로 담장을 넘어가서 남의 집 아가씨를 엿보는 일이나 하고 다니는 것이겠지. 일이 드러나면 사람들이 모두 내가 아들을 엄히 가르치지 못했다고 탓할 것이고, 만약에 그 여자가 높은 가문에 잘사는 집 딸이기라도 하면 너의 정신 나간 행동이 그 집안을 더럽히고 남의 집에 해를 끼치는 것일 테니 그 일이 작은 일이 아니다. 당장 영남으로 가서 종들을 데리고 농사나 감독하고 다시는 돌아오지 마라."
(p.40~41 중에서)

목차

목차
[만복사저포기]
저포 놀이가 맺어준 사랑
[이생 규장전]
이생이 엿본 사랑
[취유부벽정기]
부벽정에서의 짧은 만남
[남염부주지]
염마왕과의 대화
[용궁부연록]
물거품처럼 사라진 용궁 잔치
[서갑집?후] 갑집의 뒤에 쓰다
작품 해설
부록 [금오신화] 목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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