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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6123941 / 216쪽 153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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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1. 섞임과 넘나듦, 그 공존의 민족사를 위하여 한반도는 한중일 세 나라가 공유하는 바다의 한 가운데에 있다.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으로의 길이 모두 열려 있다. 이곳은 종종 국제적 갈등의 중심지가? 되기도 하였으나, 그만큼 세계로 향해 진출하는 출발점이자 세계가 몰려드는 종착점이기도 하였다. 한반도에는 알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는 많은 종족과 민족의 사람들이 대륙과 해양의 길을 따라 대개는 필요에 의해 자연스럽게 유입되었지만 때로는 전쟁 같은 충돌을 동반하며 몰려들었다. 《우리 안의 그들! 역사의 이방인들》은 다색의 무늬를... 1. 섞임과 넘나듦, 그 공존의 민족사를 위하여 한반도는 한중일 세 나라가 공유하는 바다의 한 가운데에 있다.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으로의 길이 모두 열려 있다. 이곳은 종종 국제적 갈등의 중심지가 되기도 하였으나, 그만큼 세계로 향해 진출하는 출발점이자 세계가 몰려드는 종착점이기도 하였다. 한반도에는 알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는 많은 종족과 민족의 사람들이 대륙과 해양의 길을 따라 대개는 필요에 의해 자연스럽게 유입되었지만 때로는 전쟁 같은 충돌을 동반하며 몰려들었다. 《우리 안의 그들! 역사의 이방인들》은 다색의 무늬를 가진 이방인들이 섞이고 넘나드는 가운데 결국 우리가 되어 온 그 역사에 관한 책이다. 이민족 이주의 역사는 고대로부터 조선시대까지 끊임이 없었다. 한민족과 가장 친근한 여진인을 비롯하여 중국인, 거란ㆍ여진ㆍ 몽골 등 북방 유목민족, 일본인 심지어는 이슬람 세계의 사람들도 한반도에 스며들었다. “임금이 면복 차림으로 왕세자와 문무의 여러 신하를 거느리고 망궐례를 의식대로 행하고, 강사포 차림으로 근정전에 나아가서 조하를 받았다. 왜인이나 야인, 귀화한 회회인, 승인 그리고 기로들이 모두 조하에 참예하였다.”라는 세종실록 9년 1월 1일자 기록이 증언하듯, 조선 초기만 해도 대조회와 같은 국가 행사에는 문무백관을 비롯하여 일본인, 여진인, 및 무슬림의 대표도 참석하였다. 이 책은 한국 사회의 다민족적 성격이 최근의 현상이 아니라 전통시대에는 그 정도가 훨씬 더 심했음을 보여준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북방 유목민족 거란과 몽골의 후예인 백정이 조선 초기 전체인구의 1/3 내지 1/4 정도를 차지할 정도라고 한다. 유목민족은 기록상으로 고려 때부터 연이어 한반도로 이주해 왔다. 중국인도 중국대륙의 정치적 혼란기마다 대거 한반도로 유입되었는데 명ㆍ청 교체기 조선으로 피난 와서 정착한 수십만 명의 중국인 유민의 규모도 단적인 예이다. 이방인 유입의 파동은 고대로 갈수록 깊다. 국경 개념이 그다지 분명하지 않았던 까닭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진한과 변한의 건국 주도 세력을 진나라의 폭정을 피해온 진나라 유민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기술한다. 만주 일대와 한반도 북부에 거주하고 있던 여진인 또한 한민족의 일원이 되었다. 태조 왕건이 후백제와 전쟁을 벌일 때 여진 출신 기병 1만 명을 동원할 정도로 상당수의 여진인이 고려에 편입되었다. 왜인으로 대변되는 해양세력도 일찍부터 한반도 남부에 정착해 살고 있었다. 한반도 남부에 ‘왜’가 존재했다는 것이다. 역사상 한반도와 아랍간의 교류는 신라 때부터 있어 왔으며 이때부터 이들도 한반도에 정착해 살았다. 앞에서 보듯 조선 정부의 공식 행사에 매번 ‘회회인’으로 표현된 무슬림 대표가 초대받을 정도로 조선에 살았던 무슬림 사회의 영향력은 무시 못할 정도였다. 역사의 이방인들은 그 출신이 대륙이든 해양이든 간에 한반도의 구성원이라는 인식, 즉 정체성을 분명히 지니고 있었다. 고려의 거란인은 자신들에 대한 부당한 차별만 없애준다면 거란 침략자를 물리치는 데 앞장서겠다고 강조한다. 임진왜란 때 투항하거나 포로로 잡힌 일본인 역시 군인, 무기 제조, 검술 교습 등 여러 분야에 종사하여 조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나름의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역사의 이방인들은 문화의 다양화와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거란과 몽골인의 이주로 한반도에 육식문화가 확산되었다는 것이 그 사례라 할 수 있다. 《우리 안의 그들! 역사의 이방인들》는 현재 한국인의 관념 속에 자리하고 있는 ‘한민족은 단일민족’이란 만들어진 역사 즉, 허구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 책은 신화가 아닌 ‘역사의 눈’으로 볼 때 그 놀라운 사실들이 역사와 어떻게 부합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고대의 진나라의 유민이 세웠다는 진한이나 한반도 남부의 ‘왜’ 존재설에서 조선시대 들풀처럼 기층민으로 살았던 ‘백정’이란 존재조차도 단일민족이라는 신화를 걷어낼 때 비로소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왕조시대 이방인들의 이주와 스밈의 과정은 가혹한 차별을 동반했다. 그들의 문화를 포용하지 않는 야만적인 태도를 보여 왔던 것이다. 다민족사회가 된 현재는 어떠한가? 지금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각종 언론 매체를 통해 이주민의 피해 사례들을 자주 접한다. 이주 여성의 47%가 “이혼을 원한다”든가, 다문화가정의 청소년 여섯 명 가운데 한 명만이 “스스로 한국인이라고 생각한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다. 다민족ㆍ다문화 사회가 되었다는 현재 한국사회에서도 그러한 양상이 일고 있는 것을 보면 “역사는 반복된다”는 격언이 역설적이게도 허무맹랑한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머리말의 끝머리에서 다원적인 것에 관한 ‘관용’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제 한국인은 이러한 유엔의 권고를 차치하더라도 역사상 극소수에 불과한, 세계의 패권을 장악한 국가들인 로마, 중국의 당, 몽골, 네덜란드, 대영제국, 미국 등의 역사에서 배워야 할 교훈이 있다. 이러한 국가들은 한결같이 다원적이고 관용적이었기에 제국을 이룰 수 있었다. 한마디로 인종, 종교, 민족 등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공존하고 번영할 수 있도록 허용했기에 세계적인 패권을 휘두른 극소수의 제국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머리말 중에서 2. 조선의 마이너리티 백정, 그 역사적 원류를 찾아서 - 북방 유목인 거란, 달단 우리 역사에는 양인이면서도 천인에 가까운 대우를 받았던 소수집단이 다양하게 존재했다. 의금부의 나장, 지방 관청의 일수, 관아의 조예, 조운창의 조졸, 역참의 역보, 수영의 수군, 봉화대의 봉군 등 이른바 7반천역이 바로 그들이다. 국가의 역 체계에 포함되었기에 양인의 거주지에서 함께 살았으며 신분상승의 기회까지 있었다. 그러나 이들과 달리 평민조차도 상종하지 않은 집단이 있었으니 바로 ‘백정’이다. 고려시대의 백정은 일반 백성을 뜻하는 말이었지만 조선시대의 백정은 더 이상 평민을 가리키는 용어가 아닌 매우 특이한 집단이었다. 백정은 자기들끼리 혼인하고 그들만의 집단을 이루며 도축을 주업으로 하면서 사냥, 기예, 유기 및 가죽제품의 제조와 판매업에 종사했다. 조선의 개국과 함께 정부의 지속적인 도살금지 조치로 인해 불법도축이라는 생계형 범죄에서 강도, 살인 등에 이르기까지 아예 백정집단은 모든 범죄의 온상이 되어버렸다. 백정은 조선시대의 마이너리티였다. 백정이란 표현은 모욕적인 표현이었으며 악독하거나 천한 것을 비유하는 말이 되었다. 일상생활에서뿐만 아니라 혼례와 상례, 제례에서도 심한 차별을 받았다. 결혼식 때 백정은 말이나 가마를 탈 수 없었고 비녀를 꽃아 머리조차 올리지 못할 정도였다. 상례 땐 상여도 이용할 수 없었고 묘지도 일반인과 따로 잡아야 했다. “양반은 물론 일반 백성조차도 사회적으로 백정을 야만족으로 취급하여 그들과는 혼인은 물론 자신의 거주지에서 살지 못하게 하는 등 심하게 차별하였다. 그 결과 백정은 양인의 거주지인 촌락의 외진 곳에 집단을 이루어 살아야 했다. 복장에서도 그들은 차별을 받았다. 명주옷은 말할 것도 없이 양인의 평상복인 넓은 소매의 겉옷조차 입을 수 없었다. 물론 망건, 가죽신도 착용할 수 없었다. 평민이 쓰는 검은 옻칠을 한 갓 역시 쓸 수 없었다. 심지어 백정은 어린아이에게조차도 늘 머리를 숙이고 자신을 소인이라 부를 정도로 ...” - 본문 172쪽 중에서 그런데 저자가 이 책에서 새로이 주목한 점은 이들 백정 집단이 조선시대의 전체인구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율이 상당히 높았다는 것이다. “재인(백정)이 한 고을에 사는 수는 평민에 비교하여 1
목차
1장 한반도 남부로 이주해온 진나라 유민들
진ㆍ변한의 주도세력은 진의 유민
진ㆍ변한과 마한의 문화적 차이
일본인들을 충격에 빠뜨린 기마민족설
2장 위만조선을 건국한 위만과 중국 이주민
위만?, 준왕을 몰아내다
중국계 이주민 집단의 토착화
위만은 조선인인가, 중국인인가
3장 한반도 남부에 왜가 있었다
한의 남쪽은 왜와 접해 있다
강력했던 왜의 위상과 그 쇠퇴
가야의 한반도 왜 통치기관 ‘임나일본부’
4장 국제도시 경주에 뿌리내린 아랍인
아랍인의 신라 정착을 알려주는 기록
국제무역의 주역 신라방과 장보고
처용은 울산의 호족인가, 무슬림인가
5장 한반도의 여진인
한반도 북부는 여진의 터
발해 유민 속의 여진인들
귀화 여진인에게 자치를 허용하다
대조영은 고구려인인가, 말갈인인가
6장 고려의 거란인 사회
투항하거나 포로로 잡히다
수초를 따라 옮겨다니다
거란인은 엄연한 고려의 구성원
7장 몽골인의 후예, 달단
평안도와 황해도의 달단
제주도의 목호
달단의 백정화
8장 조선의 무슬림 집단
무슬림 이주의 역사
동남아시아 국가와의 교류
9장 북방 유목인, 백정이 되다
백정의 내력과 양인화
범죄의 온상이 된 백정
백정은 사회적 멸시의 대상
임꺽정은 의적인가
10장 조선의 백성이 된 일본인
일본군의 투항을 받아들이다
당당한 조선의 구성원이 된 왜인들
귀화 일본인은 이등 국민
11장 요동사람들 조선에 피난 오다
“피난민이 기읍과 관동에 두루 차”
중국인이 조선으로 망명한 까닭
망명자 송환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