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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80407439 / 162쪽 173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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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조선의 마지막 무동 김천흥 할아버지| 처용무, 종묘제례악, 춘앵전, 포구락…. 지금까지 그 아름다움과 우수함을 인정받고 있는 우리 궁중무용들입니다. 궁중무용이란 왕실에서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추던 춤으로, 나라의 중심에 놓인 정서와 예전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예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우리 유산이라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이 아름다운 궁중무용이 역사의 유물로 사라질 뻔했던 때가 있습니다. 바로 일제강점기 때였지요. 김천흥 할아버지는 바로 그 즈음 우리 춤을 시작해 ‘조선의 마지막 무동’으로, 인간문화재로, 궁중무용은 물론 민... |조선의 마지막 무동 김천흥 할아버지| 처용무, 종묘제례악, 춘앵전, 포구락…. 지금까지 그 아름다움과 우수함을 인정받고 있는 우리 궁중무용들입니다. 궁중무용이란 왕실에서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추던 춤으로, 나라의 중심에 놓인 정서와 예전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예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우리 유산이라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이 아름다운 궁중무용이 역사의 유물로 사라질 뻔했던 때가 있습니다. 바로 일제강점기 때였지요. 김천흥 할아버지는 바로 그 즈음 우리 춤을 시작해 ‘조선의 마지막 무동’으로, 인간문화재로, 궁중무용은 물론 민속무까지 겸비한 예술가로, 대중들과의 거리를 좁히고자 학생들을 가르쳐 끊임없이 공연을 열어 온 “무악인들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스승으로, 그리고 아흔넷 나이에 궁중무용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답다고 손꼽히는 춘앵전을 공연한 ‘춤꾼’으로 평생을 살다간 우리의 춤꾼입니다. 어릴 때부터 가설극장과 남사당패를 좋아하던 김천흥 할아버지는 열네 살이 되던 해, 일제강점기 궁중무용과 음악을 관장하던 ‘이왕직 아악부’에 들어가 우리 전통 음악과 무용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시작된 할아버지의 춤 인생은 99세가 되어 돌아가실 때까지 이어져, 춤과 함께한 세월은 할아버지의 역사인 동시에, 우리 궁중무용의 역사가 되었지요. 그런 만큼 할아버지가 우리 예술에 남긴 노력과 수고는 어마어마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열다섯 살, 순종 황제가 태어난 지 50년이 되던 해를 기념하는 잔치 때 임금 앞에서 춤을 추어 ‘조선의 마지막 무동’으로 널리 알려진 김천흥 할아버지는, 그때 배워 놓은 춤을 복원해 많은 제자들에게 가르쳤으며, 우리 궁중무용이 잊혀지지 않도록 하는 데에도 힘썼습니다. 공부를 마친 뒤에도 계속 이왕직 아악부에서 일하던 김천흥 할아버지는, 조선인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에 화가 나 아악부를 그만둔 뒤, 온 나라를 떠돌며 다양한 우리 고유의 춤까지 익혔습니다. 그 뒤 다시 이왕직 아악부로 돌아온 김천흥 할아버지는 해방이 된 뒤 국립국악원에서 일하는 한편, 김천흥 고전무용연구소를 열어 우리 전통 무용과 음악을 살리고 지키는 일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쳐 공연을 하며, 우리 전통 무용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 같은 무용극을 직접 만들고 《한국무용의 기본 무보》 같은 책을 써 많은 이들로 하여금 우리 예술을 사랑할 수 있게 한 할어버지는 2007년 돌아가실 때까지 수많은 상을 받았으며, 많은 예술인들로부터 ‘가장 닮고 싶은 스승’으로 손꼽히며 존경받고 있습니다. |김천흥 할아버지는| 국악인이자 우리 나라 전통무용을 지켜 온 무용가인 김천흥 할아버지는 중요무형문화재 1호인 종묘제례악의 해금과 일무, 중요무형문화재 39호인 처용무의 기능보유자였습니다. 할아버지는 1909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열네 살에 이왕직 아악부원 양성소에 들어가 우리 전통 음악과 무용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순종 황제가 태어난 지 50년을 기념하는 기념잔치 때, 무동이 되어 순종 황제 앞에서 춤을 추었지요. 공부를 마친 뒤에도 할아버지는 계속 아악부에서 일하며 1932년에는 아악수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해방 뒤 아악부가 국립국악원으로 바뀌자 이사 겸 무용부장, 예술사로 일했으며, 1955년에는 김천흥 고전무용연구소를 열었습니다. 이렇게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우리 전통 무용과 음악을 살리고 지키는 일에 평생을 바치셨지요.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수많은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지난 2007년 8월에 돌아가셨으며, 남긴 작품으로는 무용극 과 , 지은 책으로는 《한국무용의 기본 무보》, 《우리춤 이야기》가 있습니다.
손을 들면 흥이요, 발을 들면 멋이라
"이제는 춤을 추는 일은 우리 때처럼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남들에게 엄신여김을 받는 일도 아니지.
오히려 춤을 추는 게 꿈이라고 말하는 너희들을 보면 시대가 많이 변했다는 걸 새삼 느낀단다.
이제 이 할아비가 바라는 단 한 가지는 우리 고유의 음악과 춤을 학교에서 정식으로 배울 수 있게 되는 거란다.
우리 민족이 살아오면서 그 뿌리를 함께 지켜 온 우리 것이니까 말이야.
나라를 잃은 시절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간 전쟁 중에도 꿋꿋이 지키고 가꾸어 온게 바로 우리 음악과 춤이잖아.
너희들도 이 춤과 음악을 즐기고 지켜 가길 바란다면 너무 큰 욕심일까?"
-본문에서-
목차
- 이 책을 읽는 어린이에게
- 조선 마지막 임금, 순종 황제 앞에서 춤을 추다
-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왜 춤을 추는 거야?
- 신바람 나서 따라다닌 가설극장
- 남사당패가 오던 날
- 만세 소리는 온 나라?에 퍼지고
- 운명을 바꾸어 준 아악부에 들어가
- 음악을 공부하러 왔는데 춤이라니요?
- 다시 살아난 궁중무용
- 신의주에서 당한 설움
- 순종 황제 돌아가시다
- 가곡과 12잡가를 배우다
- 아악부를 떠나다
- 떠돌고, 떠돌고, 떠돌다
- 장단에 껍죽껍죽 움직인다고 다 춤인가
- 자랑스런 우리 예술에 나도 뭔가를 보태고 싶어
- 춤과 음악으로 살아온 세월
- 자연과 사람과 세상을 잇는, 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