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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2525367 / 147쪽 147 x 1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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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북정록>은 조선 군대가 1658년 두번째 나선정벌의 지휘관인 신류 장군이 출동을 앞뒤로 해서 조선으로 돌아오기까지 약 다섯 달에 걸쳐 쓴 일기입니다. <북정록>은 자신을 과시하고 자랑하기 위한 모험담이나 영웅담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부대를 통솔하는 무장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오는, 솔직하고 담백한 자기 자신에 관한 기록이었습니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소박한 붓, 진솔한 기록 덕분에 더욱 큰 감동 이곳은 쑹화 강과 무단 강이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두 강물이 섞이면서 잔잔해진 물결은 끝없는 바다와 같고, 드넓은 들은 하늘과 맞닿아 있다. 이 풍경 앞에서 멀리 떠나온 고향과 부모님이 떠올라 참말이지 뜨거운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 5월 15일 일기에서 「북정록」은 군인이 전선에서 하루하루 써 내려간 소박한 일기다. 행군과 전투, 주둔지에서 수집한 정보 또는 첩보가 기록의 중심을 이루며, 보고 들은 대로 간략하게 군더더기 없이 사실을 전하고 있다. 파병 조선군 부... 소박한 붓, 진솔한 기록 덕분에 더욱 큰 감동 이곳은 쑹화 강과 무단 강이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두 강물이 섞이면서 잔잔해진 물결은 끝없는 바다와 같고, 드넓은 들은 하늘과 맞닿아 있다. 이 풍경 앞에서 멀리 떠나온 고향과 부모님이 떠올라 참말이지 뜨거운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 5월 15일 일기에서 「북정록」은 군인이 전선에서 하루하루 써 내려간 소박한 일기다. 행군과 전투, 주둔지에서 수집한 정보 또는 첩보가 기록의 중심을 이루며, 보고 들은 대로 간략하게 군더더기 없이 사실을 전하고 있다. 파병 조선군 부대원은 1658년 5월 2일(음력), 두만강을 넘어 닝안으로 행군 방향을 잡는다. 조선군의 행군을 따라 기록자가 맨 처음 펼쳐 보이는 것은 보통 조선 사람이 전에는 한 번도 접한 적이 없는 비바람․지평선․벌판을 가로지른 넓은 강․사나운 여울․진흙탕길․해를 가린 침엽수림 들이다. 난생처음 만난 자연에 대한 기록이 기록자의 긴장을 넌지시 드러내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위에서 보듯, 긴장과 향수에 얽혀 파병군 사령관이 흘린 눈물까지도 남김없이 기록되어 있다. 전선의 첩보는 더욱 불안하다. 지역 주민이나 소수민족이 내놓는 첩보에서 제대로 된 정보를 걸려낼 도리가 없다. 무단 강, 쑹화 강, 헤이룽 강 어디쯤에서 언제 갑자기 총알이 날아올지, 어떤 싸움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지휘권을 가진 청 고급 지휘관은 조선군에게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않는다. 연합함대가 구성된 뒤 벌어진 러시아 원정대와의 본격적인 전투에서는 조선군이 선봉이 되어 백병전까지 치러야 했지만 청 지휘관의 잘못된 현장 지휘 때문에 조선군은 승리하고도 사상자를 내고 만다. 운구할 방법은 도무지 없으므로 숨진 이들은 싸움터 언덕에 묻어야 했다. 이때 청 사령관은 ‘화장’을 권하지만, 신류 장군은 돌아간 사람들을 ‘조선식’으로, ‘한 고향 사람끼리’ ‘매장’한다. 마지막 길에, 고국 풍속 그대로의 예우를 갖춘 장면은 어떤 사족 없이도, 독자의 심금을 울린다. 살아남는 이들도 쉬이 고향에 돌아갈 수 없었다. 청 사령관은 조선군을 예비군으로 활용하면서 철수를 지연시켰고, 그 때문에 드는 경비 일체는 조선에 떠넘겼다. 닝안-베이징-서울 사이에 한바탕 외교전이 벌어진 끝에 드디어 조선군이 철수할 즈음 신류 장군이 손에 넣은 전리품은 청 통역관과 청 사령관에게 구걸하다시피 해 간신히 얻은 신식 서양 소총 단 한 자루뿐이었다. 그러나 고향으로 향한 길은 헤이룽 강으로 향한 길과 같을 수 없다. 걸으며, 울며 쓴 여정 막바지의 한순간에는 수사(rhetoric)가 필요없는 곡진한 인정이 오롯하다. 앞길이 점점 조선을 향해 트이자 병이 나 잘 못 걷던 병사까지도 용기를 내어 걸었다. 새벽에 출발하여 밤중까지 행군하니 집으로 돌아가는 기쁨을 알고도 남겠다. 머나먼 땅에 뼈를 묻은 죽은 병사들을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 옷깃이 젖곤 한다. ― 8월 22일 일기에서 350년 전이 환기하는 오늘 일기에 나온 것처럼, 조선군과 러시아 원정대는 서로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서로를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싸움을 벌였다. 그때 조선과 러시아는 서로 원수 맺을 일도 알은 체할 일도 없는 사이였다. 하지만 조선은 강대국의 요구를 이길 수 없어, 남의 싸움터에 파병할 수밖에 없었다. 백성의 목숨과 세금을 건 파병이었다. 350년 전을 돌아보면, 너무나 쉬이 오늘이 환기된다. 1)파병의 근거 병자호란 뒤에 맺은 강화조약은, 조선과 청 사이의 ‘종속적동맹’을 분명히 선언하고 있다. 조약은 ‘명과 충돌이 있을 때 조선의 청 지원’을 명시했고, 1654년과 1658년의 파병은 이를 억지로 견강부회한 결과였다. 2)약소국의 전비 부담 파병에 드는 비용 일체를 조선이 부담했다. 청은 최소한의 수송만을 맡았을 뿐이다. 심지어 탄약마저 빌려갔다. 물론 조선군이 꿔준 탄약을 돌려받았다는 기록은 없다. 청은 조선군의 철수를 막고 있으면서도 식량과 연료를 제때 보급하지 않았다. 4)강대국의 전리품\u003d정보 독점 나선정벌의 선봉에는 조선군이 있었다. 뛰어난 사격술로 러시아 원정대를 제압한 뒤, 백병전도 마다하지 않고 싸워 노획한 소총만 해도 수백 자루가 넘었다. 그러나 청은 그 모든 것을 거두어갔다. 서양 소총은 전리품이자 정보이다. 상하관계의 위에 있는 동맹국은 모든 것을 독점했다. 3)통역관의 횡포 당시 청의 통역관 대부분은 원래 조선 출신이었다. 이들 가운데는 서울에 부모와 친척을 두고 일하면서 도 ‘청제국인’으로서 강대국에 기대 동포를 못살게 굴고 사리사욕을 채우는 자들이 많았다. 그들의 서울 친척은 조선 사정을 이들에게 알려주는 정보원이었다. 일기에서 보듯, 통역관은 스스로를 청제국의 대리인으로 여겨 조선군 사령관쯤은 내놓고 무시하기 일쑤였다. 5)소수민족의 운명 일기에는 후르카, 헤쩨, 골간, 퍅가, 몽골 등 당시 쑹화 강, 무단 강, 헤이룽 강 일대에 살던 여러 소수민족이 등장한다. 이들은 러시아 세력이 강성할 때는 러시아에, 청 세력이 강성할 때는 청에 붙어 안전을 보장받기를 바랐다. 그러나 전쟁의 와중에, 러시아도 청도 소수민족의 삶을 돌보지 않았다. 소수민족은 오로지 약탈 대상이거나 물건 다루듯 납치했다 버릴 수 있는 정보원일 뿐이었다. 제2차 나선정벌 주요 사항과 「북정록」 ― 삼전도의 치욕을 지켜보았으며, 청으로 끌려가 볼모 생활까지 한 조선 효종은 왕위에 오른 뒤 훈련도감 병력 1만 명, 어영청 병력 2만 명 증강을 목표로 군사력 강화를 추진. 단 청이 눈치 못하도록 극비리에 사업 진행. ― 청은 제1차 나선정벌 이듬해인 1655년 밍안달리(明安達禮)의 대군을 출동시켜, 헤이룽 강 상류 쿠마르스크 요새에서 치열한 진지전을 벌임. 그러나 현지에서 월동하며 전력을 보강한 스테파노프가 이끈 러시아 원정대에게 대패. ― 1657년(효종 8년) 스테파노프 군이 쑹화 강을 거슬러 내륙 깊숙이 침투하여 접전이 벌어짐. 이에 당황한 청은 현지 사령관 사르후다(沙爾虎達)의 주관 아래 대규모 반격 작전을 준비. 사르후다는 병력과 화력의 증강, 수상전을 위한 대형 선박 건조를 추진하는 한편, 화력 보강을 위해 자국군보다 우수한 조선군 포수(소총부대) 출병을 요구하기로 결심. ― 1658년(효종 9년, 청 세조 순치 15년) 3월 파병 부대 작전 기간에 필요한 약 5개월 소요 군량을 비롯한 일체 군수품과 전투병력 2백 명 요구: 러시아 원정대가 제1차 나선정벌 당시보다 한층 강화된 군사력을 동원해 헤이룽 강으로 진출했으므로 이를 공략하는 데 더 많은 조선군 포수가 필요했음. ― 효종은 원정군의 장거리 수송비용 절감 대책으로 식량보다 종이나 담배 등, 부피가 작고 현지에서 높은 가격으로 식량과 교환할 수 있는 잡화를 보급하려 했지만 청이 이를 거부함. ― [일기 시작] 함경도 북병마절도사 김시성의 추천에 따라 함경도 북병마우후 신류를 파병부대의 영장, 즉 사령관에 선임. ― 4월 6일, 회령부에서 포수들의 사격훈련 실시, 표적 명중 51명, 21일 재사격 훈련. 4월 30일, 청국 통사 도착, 군량 일부 두만강 이북으로 수송, 대기. ― 1658년 5월 1~2일, 회령에서 두만강 도하, 제1차 변급 원정대의 행군로를 따라 북상. 강행군, 일부를 후속대로 남겨두고 선발대 편성, 5월 9일 해질녘에 닝안 인근 도착, 청군과 합류, 다시 10일 아침부터 행군, 11일 선박으로 이동하기 위해 포수 200명이 청군 8명의 지휘 아래 각각 24명씩 분산 탑승
목차
글을 열며_나선, 그리고 나선정벌
두만강을 넘어: 일기 시작~5월1일 | 낯선 땅, 머나먼 나라: 5월 2일~6월 4일 | 나선과 싸우다: 6월 5일~6월 16일 | 고향으로 돌아갈 날은?: 6월 17일~8월 2일 | 조선으로?, 조선으로: 8월 4일~8월 27일
글을 맺으며_소중한 기록에 깃든 뜻을 되새기며
해설_책을 덮기 전에(임홍빈, 전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민족군사실 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