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고예상일 안내
주문하신 상품이 한국에서 현지 배송을 위한 출고단계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날짜입니다. 상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부적인 사정으로 인해 출고예상일에 다소 오차가 생길 수 있습니다.
여러 상품(예약상품포함)을 함께 주문하신 경우 출고예상일이 가장 늦은 날짜에 맞춰 함께 배송됩니다.

ISBN : 9788925519425 / 230쪽 / 285g / 153 x 224 (㎜)
이 상품에 궁금하신점이 있으세요? 1:1상담문의

-
박경리
-
최익성, 문현웅
-
마이클 이스터
-
신영준, 고영성
- 22,500
- 17,100
- 19,800
- 17,820
반디앤루니스 리뷰
시인 정우영이 찾고, 닦고, 쓰다듬어 되살려낸 우리 시와 시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여타의 시 산문집과 달리 이 책은 평론과 에세이라는 장르 사이에 줄을 하나 매고 그 위를 묵묵히 걸으면서 저만의 행보를 새롭게 다지는 이른바 ‘제4의 형식’을 띠고 있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요즘 시를 소개하고 따라 읽어주는 책들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만큼 많은 공급이 이뤄진다는 것은 그만한 수요가 따른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왜 이렇게 씁쓸한 마음이 드는 걸까?. 한 시인의 신작 시 50-60편이 담긴 한 권의 새 시집보다 컴필레이션 음반처럼 대중적인 인기를 담보로 한 시편들만 추려 담은 한 권의 헌 선집이 더 유행이라 할 때 이것이 불황을 타개하는 나름의 묘안이니 고무적인 현상이라 봐야 하나, 아니면 시의 미래를 죽이는 일이니 비관적으로 여겨야 하나. 그럼에도 희망이다 할 새로운 스타일의 산... 요즘 시를 소개하고 따라 읽어주는 책들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만큼 많은 공급이 이뤄진다는 것은 그만한 수요가 따른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왜 이렇게 씁쓸한 마음이 드는 걸까. 한 시인의 신작 시 50-60편이 담긴 한 권의 새 시집보다 컴필레이션 음반처럼 대중적인 인기를 담보로 한 시편들만 추려 담은 한 권의 헌 선집이 더 유행이라 할 때 이것이 불황을 타개하는 나름의 묘안이니 고무적인 현상이라 봐야 하나, 아니면 시의 미래를 죽이는 일이니 비관적으로 여겨야 하나. 그럼에도 희망이다 할 새로운 스타일의 산문집 한 권을 여기 선보인다. ‘시평 에세이’란 꼬리표가 달린 시인의 글모음이다. 그보다 앞서 ‘이 갸륵한 시들의 속삭임’이라는 제목부터 만지고 보니 유독 ‘갸륵’이라는 단어 앞에서 뭔가의 묵직함으로 한 뼘쯤 키가 작아짐을 느낀다. 우리 본래의 근원 같은 것이 얻어맞아 힘이 빠져 그러한 연유일 테다. 절로 쏟아지는 눈물처럼 이유 없으나 또한 이유 있는 행동의 발로이기도 한 탓일 게다. 착하고 장하다, 라는 의미를 함의한 갸륵하다라는 말은 이렇듯 참 순수한 예쁨이지 아니한가. 이는 곧 情, 따져 물어간다면 인간이라는 그 원형에 가장 근접한 말이 아닐까. “산문집이라 하지 않고 굳이 ‘시평 에세이’라고 붙인 까닭은 다른 시인들 시에 내 상념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평론인가. 아니다. 평론이 끊임없이 객관과 보편을 지향한다면 나는 끊임없이 주관과 개성을 들이대었다. 더 엄밀하게 말한다면 시평이라기보다는 시 감상쯤이 될 것이다. 그러나 또 감상이라고만 할 수도 없다. 나는 이 글들에서 직관과 이성의 균형추를 세우려 적잖이 애썼다.” 『이 갸륵한 시들의 속삭임』은 시인 정우영이 찾고, 닦고, 쓰다듬어 되살려낸 우리 시와 시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여타의 시 산문집과 달리 이 책은 평론과 에세이라는 장르 사이에 줄을 하나 매고 그 위를 묵묵히 걸으면서 저만의 행보를 새롭게 다지는 이른바 ‘제4의 형식’을 띠고 있다. 객관과 주관, 보편과 개성을 넘나들 줄 알 때만이 아무런 두려움 없이 눈치 보는 일 없이 온전히 詩를 말할 수 있음을 앎으로 말미암아 시인은 분명 ‘시평 에세이’라 외따로이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서문에서 밝힌 바 있듯이 이 책이 탄생하기까지 시인의 욕심은 단 하나, “시와 사람 사이에 길을 내고 싶었”던 데 있다. “그래서 빛 가득한 곳보다는 그늘진 곳에 머문 시들을 찾아다녔다.”시가 소통의 매개로 그 자리를 잃은 지 오래라는 생각에 그가 불러 모은 시와 시인들은 소박한 순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특히나 가난하고 특히나 욕심 없어 그저 물러나고 물러서는 데만 재주가 탁월한 이 시대의 진짜 아름다운 바보들이라고나 할까. 복효근, 임성용, 백무산, 표성배, 최진섭, 김태정 등 비교적 낯설다싶은 시인들의 명명 속에서 잠시 말을 잃게도 된다. 진작 몰랐음의 무지와 진작 찾아보지 못함의 게으름, 바로 이 두 마음 사이에서. “주변을 둘러보면, 예상치 않았던 곳에서도 정말 고운 꽃이 핀다. 피어 있음 그 자체로 애틋하고 성스럽다. 누가 눈 주지 않아도 세상 천지에 자재롭다. 여기 내가 불러낸 대부분의 시들이 그렇다. 세간의 평가와는 상관없이 자취 뚜렷하다. 스스로 빛을 내뿜어 어둔 그늘에 생명의 바람 불러일으킨다. 그럼에도 굳이 나는 이 시들 아래 내 입김을 불어넣기 위해 애쓴다. 시적 더부살이라고나 할까, 군더더기 같은 애정을 덧붙여 놓는다.” 정우영은 시종일관 타협과는 거리가 먼 무덤덤함으로 글 속에 있다. 화려한 미사여구나 무조건적인 박수와 열광도 그의 문장 속에는 자리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무뚝뚝한 우리네 옛날 아버지들을 닮았다. 할 말만 하고 하지 않을 말은 죽어도 하지 않은 채 뒤돌아 뒷모습을 보일 뿐이다. 꼬깃꼬깃 가장 사랑하는 자식의 편지를 어디 가장 안 들키는 품속에 넣어두고 남몰래 꺼내 읽는 속정 깊은 아버지의 모습을 닮았다고나 할까. 그러니 재미를 기대한다면 일단 포기하라고 말하고 싶다. 대신 의무를 가지라는 충고를 얹고 싶다. 읽기 편한 것만 손에 넣어서는 놓치는 게 너무 많다고, 그런 의미에서 오래여도 좋으니 어디 손에 닿기 수월한 곳에 놓아두고 생각날 때면 자주 집어 들라고.
최근 시에 질려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독자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전문가라 할 시인들도 적잖이 불편해한다. 감동하기는커녕 읽기조차 거북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현대시의 한 흐름, 혹은 탈(脫)포스트모던 시의 한 양상인가. 안 그래도 이 천민자본주의 시대는 시를, 시의 진정성을 밀어내고자 안달인데, 시인마저 이에 적극 동조하는 것 아닌가 싶어 아찔하다. 이런 흐름이 대세라면 나는 시의 길에서 내려가겠다. 다른 방식의 글쓰기로 세상과 만나겠다.
-「마음으로 읽는 시」중에서
목차
서문
틈새에 충만한 우주
숨구멍 열어주는 소통을 찾아서
말간 우울
진저리치게 매혹적인 분노가 나타났다
압구정동에서 뱀을 만나다
이 갸륵한 시들의 속삭임_섬진강을 따라가며 들어라
마음으로 읽는 시
진정성의 물결이 우리에게 남기는 것
정갈한 그리움의 위무
세상을 정화시키는 곡비의 시
생각하므로, 텔레비전은 존재한다
비의(秘儀)적 시공간
눈물을 새기다
밥 시의 존재감
경계에 스미다
노동시에 미래는 없는가
숭고한 손에 반하다
아름다운 신념의 시 공간_최진섭 시집, 『뼈로 누운 신화』
굳은살로 세상과 맞서다
어둠 속의 불빛 한점_김태정 시집,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꽉 찬 듯 텅 빈
모정을 시로 내어 주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