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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전록

구양수 저 | 강민경 역 | 학고방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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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0710535 / 310쪽 152 x 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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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저자 소개

  • 저자 : 구양수
지은이 : 구양수 (歐陽修)
북송(北宋) 때의 문학가 겸 역사가로 자가 영숙(永叔)이고 호가 취옹(醉翁) 또는 육일거사(六一居士)이며 시호가 문충(文忠)이다. 문학가로서의 구양수는 당송 팔대가(唐宋八大家)에 속하는 뛰어난 문장가요 송시(宋詩)의 특질을 확립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대시인일 뿐만 아니라 송대를 대표하는 걸출한 사인(詞人)이기도 했으며, 역사가로서의 구양수는 ≪신당서(新唐書)≫와 ≪신오대사(新五代史)≫의 저자였다.

그는 진종(眞宗) 경덕(景德) 4년(1007) 면주[綿州, 지금의 쓰촨성(四川省) �x양(綿陽)]에서 당시 면주군사추관(綿州軍事推官)으로 재임 중이던 구양관(歐陽觀, 952∼1010)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네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수주[隨州, 지금의 후베이성(湖北省) 쑤이저우]에 있는 숙부 집에 의탁했다. 다행히 양가집 딸인 어머니가 상당한 수준의 학식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구양수는 어머니에게 글자를 배울 수 있었는데 종이와 붓이 없어 갈대를 붓으로 삼고 모래를 종이로 삼아 글자를 익혔다.

스물네 살 되던 해인 인종(仁宗) 천성(天聖) 8년(1030)에 진사시(進士試)에 급제해 서경유수추관(西京留守推官)을 시작으로 벼슬길에 들어섰다. 당시 서경유수는 전유연(錢惟演)이었는데 그의 막부에 윤수(尹洙)·매요신(梅堯臣) 등의 뛰어난 문인들이 있어 그들과 가까이 지낸 덕분에 그들의 영향으로 시문 혁신(詩文革新)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경우(景祐) 3년(1036)에 재상 여이간(呂夷簡)의 횡포를 옹호하는 고약눌을 비판하다가 이릉[夷陵, 지금의 후베이성(湖北省) 이창(宜昌)]현령으로 좌천되고 말았다. 경력(慶曆) 5년(1045)에 저주[?州, 지금의 안후이성(安徽省) 추저우]지주(知州)로 나갔는데 저주지주로 재임하는 동안 그는 취옹이라는 자호를 짓고 <취옹정기(醉翁亭記)>라는 불후의 명문을 창작했다.

경력 8년(1048)에 양주[揚州, 지금의 장쑤성(江蘇省) 양저우]지주(知州)로 부임해 재임 기간에 평산당(平山堂)이라는 유명한 건물을 지었고, 황우(皇祐) 원년(1049)에 영주[潁州, 지금의 안후이성 푸양(阜陽)]지주로 부임했는데 서호(西湖)를 비롯한 영주의 산수에 매료된 나머지 나중에 그곳을 퇴거지로 삼는 계기가 되었다. 가우(嘉祐) 2년(1057)에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예부시(禮部試)를 주관한 그는 태학체를 중시하던 당시의 문풍을 바로잡기 위해 태학체로 작성한 답안을 불합격시켰고 소식(蘇軾)을 발굴했다.

구양수는 그 뒤 예부시랑(禮部侍郞)·추밀부사(樞密副使)·호부시랑(戶部侍郞)·참지정사(參知政事)와 몇몇 고을의 지주를 더 역임하고 신종(神宗) 희녕(熙寧) 4년(1071) 6월에 마침내 사직을 허락받아 7월에 영주로 돌아가서 한가로이 지냈다. 그러나 그는 한가로운 생활을 오래 즐기지 못하고 1년 뒤인 희녕 5년(1072) 윤7월에 병사하고 말았다. 향년 66세였다. 문집으로 ≪구양문충집(歐陽文忠集)≫이 있다.  

옮긴이 : 강민경
  

목차

- 옮긴이의 말
- 일러두기

『귀전록』에 대하여
「자서」
권 1
권 2
부록
Ⅰ. 일문
Ⅱ.『사고전서총목제요』
Ⅲ. 하경관 발문

- 참고문헌
-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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