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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8991097235 / 539쪽 148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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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마르코 복음서를 놓고 예수님과 이현주 목사가 마주 앉아 질의응답을 한 대화록이다. 다시말해 자기와 자기 속에 있는 나와의 대화라고 볼 수 있다. 이 대화 속에는 석가여래나 공자와 같은 동양의 성현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 책은 소설로 쓴 주석서로, 재미를 느끼며 읽어 내려갈 수 있는 문학책이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예수가 옆에 있어 복음서를 읽으면서 떠오르는 의문을 직접 물어볼 수 있다면 그는 어떤 과연 대답을 해 줄까? 세속의 상식을 둘러엎는 신선한 관점을 제시해 주지 않을까? 그런데 그가 만약 “악령도 하느님도 예수도 마음의 산물이다. 너에게 마음이 없으면 악령도 하느님도 나도 그리고 너도 없는 것이다.”라는 식으로 나온다면? 세례 요한이 엘리야의 환생이라는 파격적인 해석을 내놓는다면? 이 책은 작가이자 번역가인 관옥 이현주 목사가 마르코 복음서를 한 구절 한 구절 풀어 읽은 기록이다. 매일 새벽 성경 한 장씩을 읽고 대... 예수가 옆에 있어 복음서를 읽으면서 떠오르는 의문을 직접 물어볼 수 있다면 그는 어떤 과연 대답을 해 줄까? 세속의 상식을 둘러엎는 신선한 관점을 제시해 주지 않을까? 그런데 그가 만약 “악령도 하느님도 예수도 마음의 산물이다. 너에게 마음이 없으면 악령도 하느님도 나도 그리고 너도 없는 것이다.”라는 식으로 나온다면? 세례 요한이 엘리야의 환생이라는 파격적인 해석을 내놓는다면? 이 책은 작가이자 번역가인 관옥 이현주 목사가 마르코 복음서를 한 구절 한 구절 풀어 읽은 기록이다. 매일 새벽 성경 한 장씩을 읽고 대학노트 세 권에 빼곡히 손으로 써서 정리한 원고를 책으로 묶었다. 굳이 마르코 복음서를 택한 이유는 4대 복음서 중에서 가장 먼저 쓰여진 책으로서 그만큼 후대의 왜곡이나 가필이 적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독서에는 특별한 동반자가 함께 했다. 바로 복음서의 주인공인 예수님이다. 이 책에서 예수는 ‘선생님’으로 등장하여 제자인 저자와 직접 대화를 나눈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성경의 주석서이면서 스승과 제자의 문답집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이현주 목사의 책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 책도 ‘기독교 복음서 주해’라는 외양을 띠고 있기는 하지만 실은 동서양의 종교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경계 없이 하나로 결합하고 있다. 저자가 예수의 말씀에서 받은 감명을 『노자』, 『장자』, 『신심명』, 『대학』 등 동양 고전의 문구나 이슬람 수피의 시구를 인용하여 읊으면, 예수는 거기에 대해 “근사한 말이다.” 하고 화답한다. 때로는 예수 자신이 노자나 장자를 직접 인용하여 말하기도 한다. 정말 선생님이 하느님의 아들이십니까? 저자는 오랜 스승을 부르듯이 “선생님, 선생님” 하면서 예수에게 스스럼없이 질문을 던진다. 그중에는 “정말 선생님이 하느님의 아들이십니까?” 같은 도발적인 질문에서부터,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왔을 때) 선생님 심정은 어떠하셨습니까?” 같은 소박한 호기심은 물론이고, “선생님에 관한 복음인데 (세례)요한이 왜 (먼저) 등장합니까? 혹시 그의 명성에서 덕 좀 보자는 것이었나요?” 같은 다소 무례해 보이는 질문들까지 넘나든다. 그런가 하면 “이 대목은 선생님께서 몸소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기록한 것 같지 않습니다.” 또는 “이 비유는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라고 솔직 대담한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그건 내가 한 말이 아니니 지워버려라 제자의 맹랑한 질문에 대한 예수의 반응 또한 심상치 않다. “그걸 아는 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하고 대놓고 면박을 주기도 하고, “그건 내가 한 말이 아니니 지워버려라”하고 받기도 한다. 어떤 때는 오히려 제자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파격을 보여주기도 한다. 가령 “네 몸이 죽는다는 말은 삼사라[輪廻]를 아직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이요 네가 죽는다는 말은 마침내 니르바나[涅槃]에 든다는 말이다.”라고 불교 용어를 빌려 말하기도 하고, 환생과 윤회를 언급하거나, “사람들이 나와 똑같은 존재로 되게 하는 것, 그것은 곧 저마다 참된 자아[眞我]로 되게 하는 것이다.”라는 말은 어찌 보면 신성모독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발언이다. 저자의 상상력은 예수를 2천년 전 실존했던 인간은 물론 특정한 종교의 틀마저도 초월한 보편적인 존재로 재창조해 낸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요? 하느님 나라가 이스라엘에 국한되다니요?” “요즘도 그런 생각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느냐?” “많이 있지요. 그들은,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들 말합니다.” “알껍질이 얼마 동안은 병아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깨어지면 안 되지만 때가 되면 태어날 새 생명을 위해 깨어져야 하듯이, 그 생각도 이제 깨어질 때가 되었다.” “그러면, ‘예수’라는 이름을 몰라도 구원받을 수 있는 겁니까?” “사람들과 나 사이를 내 ‘이름’이 이어주는 시대는 더 이상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 곰 사냥꾼이 곰 발자국을 추적하다가 곰을 보았으면 더 이상 발자국을 들여다볼 이유가 없지 않느냐?” 사랑 때문에 살고 사랑 때문에 죽는 것이다 요컨대 예수라는 이름에만 머물지 말고 그가 가르치는 진리를 보라는 것이다. 예수가 그토록 비유를 애용했던 것은 인간의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진리의 한 조각을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나를 보았으면 또한 나한테 머물지 말고 내 ‘말’(言語)을 보아야 할 것이며, 내 말을 보았으면 또한 말에 머물지 말고 그 뜻을 보아야 할 것이며, 뜻을 보았으면 거기에 머물지 말고 그대로 살아야 한다. 이것이 ‘현상’을 통해서 ‘진상’에 이르는 길이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모든 것이 “물거품 같고 메아리 같고 꿈같은 현상(現象)”일 뿐이며, 심지어 ‘나’가 있다는 생각조차 착각에 불과하다는 말. 이는 선불교의 가르침과 통하는 것이며, 예수가 세상에 단 하나 실재하는 가르침이라고 한 ‘사랑’과도 통하는 것이다. 얼핏 알듯 모를 듯하고 고답적으로 들리기도 하는 선문답 속에는 섬광과 같은 통찰이 심심치 않게 엿보인다. 가령 예수가 갈릴래아에서 고기를 낚고 있는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는 장면을 두고 주고받는 문답이 그렇다. “시몬과 안드레아를 그날 처음 보시고 바로 부르셨습니까? 아니면 전부터 안면이 있던 사이였습니까?” “처음 보고 바로 불렀다.” “그런데 어떻게 ‘한 마디’에 그물을 버리고 선생님을 따라 나섰을까요? 그물을 버린다는 건 생계를 버린다는 건데요.” “독화살 한 촉이면 건강한 사람을 죽이고 감로(甘露) 한 방울이면 죽은 사람도 살린다. 사람의 생애를 바꾸는 데 ‘한 마디’면 족하다. 안 그러냐?” “그렇군요.” “그들은 ‘한 마디’에 목말라하고 있었다. …… 내가 그들을 부른 것도 그들이 어부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한테 자신의 인생과 세상에 근본적인 변혁이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몬과 안드레아로 하여금 그물과 그때까지의 인생 전부를 내팽개치고, 가족들에게 인사도 없이 그 자리에서 길을 떠나게 했던 것은 단 ‘한 마디 말’이었다는 것이다. 그 한 마디 말이 무엇이었는가는 어차피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인생과 세상에 근본적인 변혁이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있는 곳에 바로 신의 부름(혹은 깨달음)이 있다는 말은 정신이 번쩍 들게 한다. 깨달음의 길은 라디칼하다. 날선 칼처럼 단호해야 한다 그러나 세상에 그런 일은 희귀하다. 오히려 세상에는 유다 같은 이들의 나약한 마음,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같은 이들의 굳어진 마음,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이들의 사악한 마음이 자주 나타난다. 그들에 대해 예수는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단호한 말을 뱉는다. “반환점은 출발점에서 가장 먼 거리에 있다. 거기까지 간 자만이 돌아올 수 있다. 죽음의 문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삶으로 들어갈 수 없다. 마비된 마음을 더욱 마비시켜, 죽음의 문턱을 넘게 해야 한다. …… 가라지는 불에 타서 살고 밀은 창고에 들어가서 산다. …… 깨달음의 길은 라디칼하다. 날선 칼처럼 단호해야 한다.” 머리말에서 저자는 “글 속의 ‘선생님’을 성서의 예수나 여러분이 알고 계신 예수님과 같은 분으로 혼동하지 말 것”을 독자들에게 당부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예수의 입을 빌어 말하고 있지만, 또 예수가 저자의 입을 빌어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현주 목사가 지금까지 읽어 온 『대학·중용』『로마서』『금강경』『노자』『장자』처럼, 이 책 또한 나와 타자의 경계를 넘어서는 실천적인 글쓰기를 실험하는 장이 되고 있다. 이 책에서 성서를 읽는 자세에 대한 예수의 말은 마치 이 책을 읽는 방법에 대한 지침으로도 들린다. 그런 뜻에서 이 책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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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83
3장............................123
4장............................151
5장............................189
6장............................223
7장............................257
8장............................275
9장............................305
10장...........................343
11장...........................383
12장...........................403
13장...........................431
14장...........................451
15장...........................499
16장...........................5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