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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진보의동아시아적의미

김기현 저 | 사계절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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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1969267 / 258쪽 148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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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대학>은 매우 짧은 글임에도 유교의 실천 강령을 명확히 제시한 탁월한 개론서로 간주되어 왔고, 그래서 주자는 "먼저 <대학>을 읽어 학문의 체계를 파악하라"고 말했다. 저자는 유학이 현실에서 유용하게 쓰이는 실학임을 강조하면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유교 경전을 유용하게 활용하게끔 하고자 <대학>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있다. <대학>이 유학의 전개 역사에서 갖는 지위와 주요관념들이 함의하는 정신 문화적 의미들을 현대적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기획 의도 지난 2001년 당시 중국의 최고지도자였던 강택민은 당 간부들에게 『대학』 『중용』 등 유교 경전 읽기를 권고하였다. 이후 북경의 25개 초등학교에서 사서삼경 과목이 개설되었고, 공자탄?신 2550주년 기념식에서 중국 초등학생들의 경전 암송 경연대회가 열렸다. 개혁개방 이후에 중국 공산당이 막스주의 이외에 또다른 철학적 근거를 유교에서 찾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러한 중국의 행보는 지금으로부터 약 900년 전, 중국이 외래 사상을 극복해야 했을 때 유교를 선택했던 것과 아주 흡사하다. 당시의 외래 사상은 불교였고,... > 기획 의도 지난 2001년 당시 중국의 최고지도자였던 강택민은 당 간부들에게 『대학』 『중용』 등 유교 경전 읽기를 권고하였다. 이후 북경의 25개 초등학교에서 사서삼경 과목이 개설되었고, 공자탄신 2550주년 기념식에서 중국 초등학생들의 경전 암송 경연대회가 열렸다. 개혁개방 이후에 중국 공산당이 막스주의 이외에 또다른 철학적 근거를 유교에서 찾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러한 중국의 행보는 지금으로부터 약 900년 전, 중국이 외래 사상을 극복해야 했을 때 유교를 선택했던 것과 아주 흡사하다. 당시의 외래 사상은 불교였고, 불교에 맞서 유교의 새로운 체계를 세웠던 사람은 주자였다. 주자 이후 700년 이상 주자의 이상은 동아시아 정치의 이상이었고 그 핵심에 놓였던 텍스트가 바로 『대학』이었다. 900년의 간극을 두고 중국은 유사한 선택을 하고 있다. 『대학』이라는 텍스트를 통해 현대 중국의 선택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그리고 동아시아에 뿌리 깊게 내재되어 있는 정치적 이상형은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 주목할 만한 내용 - 중국이 새삼스레 유교를 강조하는 이유 아편 전쟁 이후 서세동점의 역사가 시작되면서 중국은 근대 이전의 모든 것을 개선의 대상으로 간주했고, 특히 중국 공산당은 과거를 전적으로 거부했으며, 문화대혁명만큼 극단적으로 전통을 파괴한 사례는 이웃 나라들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서세동점의 시대가 끝나갈 무렵 중국은 그렇게도 타파의 대상으로 주장해오던 유교를 새삼스레 강조하고 있다. 아시아의 용들과 비교되지 않을 만큼 강력한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은 사상적 자신감을 유교에서 찾고자 하는지도 모른다. 이는 송나라의 주자가 외래사상인 불교에 맞서 유학을 신유학으로 재편했던 의도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새로운 중화주의의 이념적 근거를 중국은 유학에서 찾고자 하는지도 모른다.(1장 참조) - 대학은 언제부터 중요한 책이 되었는가? 비교적 단순했던 고대의 중국 사상에 전 우주를 일관되게 설명하는 불교가 상륙하자 중국 사상은 설 자리를 잃어버렸다. 무려 500년 동안 중국 사상의 중심은 불교가 차지하고 있었다. 외래 사상인 불교에 맞서 중국적 사상을 완성하고자 했던 주자는 유학을 사회관계뿐 아니라 우주 전체를 해석하는 사상 체계로 재구성하고자 했다. 그 체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글을 주자는 『예기』의 「대학」 편에서 발견하였던 것이다. 주자는 40대 중반부터 『대학장구』(大學章句)의 초고를 시작하여 60세에 원고를 완성한 뒤 71세 세상을 뜨기 수일 전까지 교정을 계속했다. 원본 『대학』은 당위적 실천 강령을 적은 글이었다면 주자는 이를 철학적 텍스트로 이해했고, 그 맥락에서 세 글자를 바꾸었으며, 143자를 덧붙이기도 했다. 이후 대학은 유교의 핵심 경전으로 자리잡게 된다.(2장 참조) - 유교에서 대학이 차지하는 위치 『대학』은 매우 짧은 글임에도 유교의 실천 강령을 명확히 제시한 탁월한 개론서로 간주되어 왔다. 그래서 주자는 이렇게 말했다. ”먼저 『대학』을 읽어 규모를 정하고(학문의 체계를 파악하고), 다음으로 『논어』를 읽어 근본을 세우고, 다음으로 『맹자』를 읽어 발전을 보고, 다음으로 『중용』을 읽어 옛 성인들이 깨달았던 것을 구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고전시리즈 둘째 권으로 출간되는 본서는 바로 『대학』이 제시하는 학문의 규모가 무엇인지를 쉽고도 분명하게 서술하고 있다.(머리말 참조) - 『대학』은 없다? 이처럼 『대학』은 유교의 기본 이념을 집약한 개론서로 평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원본조차 확정되지 못했다. 『대학』은 원래 『예기』라는 책에 포함된 45편의 글 중 제42편으로 실린 글로서, 실제 내용은 불과 1,753자에 불과하다. 종이책의 형태가 나타나기 전, 그러니까 죽간으로부터 전해지던 글이라서 원본을 확정하는 문제는 언제나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주자 또한 『고본대학』에서 자신의 관점에 따라 세 글자를 바꾸고 143자를 덧붙였다. 고대 유교를 새롭게 정립하고자 했던 주자 시대 이후에도 그 논란은 끊이지 않았으며, 우리나라에서도 1954년 『대학착간교정』이라는 책이 출간되기도 하는 등 현대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주자가 집필한 『대학』(원제는 『대학장구』) 또한 수많은 개정본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현재 서점에 있는 대부분의 책은 주자의 개정본을 원본으로 삼고 있다.(2장 참조) - 영조와 정조의 꿈 주자가 꿈꾸던 세상은 중국뿐만 아니라 적어도 700년 이상 동아시아를 지배했던 정치적 이상이었다. 그러나 이상은 이상일 뿐 현실로 나타난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가장 가까이 근접한 예는 중국이 아닌 조선, 그것도 진경시대로 불리는 영정조 시대로 일컬어진다. 조선조의 대다수 지식인들과 마찬가지로 영조와 정조 또한 주자가 설정한 이상국가 건설을 그들의 이상으로 가지고 있었으며, 그 이상에 따라 왕이면서 동시에 철학자가 되고자 했다. 특히 영조는 『대학』을 직접 정조에게 가르쳤으며, 정조는 『대학』을 직접 편집하고 서문을 붙이기까지 하였다. 실로 哲人王이 실현된 것이다.(4장 8장 참조) - 근대 이후 잃어버린 것 대부분의 사람들이 근대 이후를 이전에 비해 발전된 사회로 간주하지만, 동시에 잃어버린 것들이 있다. 『대학』의 내용 중 몇 가지를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과연 우리는 어떤 면에서 진보를 이루었는가? 학문의 이념_ 우리의 대학교는 서양 ”University藍?체제와 내용을 수입하여 세워진 교육기관이지만, ”우주”라는 본래의 뜻과 달리 대학교라 불린다. 물론 중국과 고구려 등 고대로부터 이어져오던 대학(태학)전통의 영향이지만, 그 학문의 지향과 내용은 사라지고 이름만 남아 있는 현실이다. 실제와 이름이 어긋나는 현실은 아직도 우리의 역사와 현실에 뿌리박은 교육 제도를 만들어내지 못한 우리 시대의 문제를 반영하고 있는데, 교육개혁이 단발성으로 그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1장 참조) 제왕학_ 지도자는 힘보다는 지식을, 지식을 넘어서 덕을 갖추어야 하는 의무를 가졌고, 실제로 조선의 왕들은 사극에서 묘사되는 것과는 달리 상당한 학문적 수준을 유지하였다. 군부독재는 논할 것도 없지만, 오늘날 지도자의 요건은 과연 무엇인지 돌이켜볼 일이다.(5장 참조) 노블레스 오블리지_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 사회의 지도층에게는 고유의 특혜와 함께 의무도 있게 마련이다. 조선에서도 공직자들에게는 부정축재는커녕 재물 자체가 금기시되었던 선비 문화가 있었다. 과연 현대 한국 사회 지도층의 문화는 어떤가?(8장 참조) - 진보의 동아시아적 의미 폭군 걸왕을 정벌하고 상 왕조를 연 탕 임금은 자신의 욕조에다가 ”만약 어느 날 새로워졌거든 날마다 새롭게 하고 또 새롭게 하라(若日新 日日新 又日新)”는 뜻의 글귀를 새겨 두었다고 한다. 만약 이 문장을 서구식 진보 관념을 적용하여 읽는다면, ”국가를 위하여, 민족을 위하여 식민지를 더 개척하라”, 또는 ”역사를 새로운 단계로 자꾸 발전시켜라”는 의미가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문장에는 동양적 진보 관념이 배경으로 깔려 있다. 마음 바깥에서의 정복과 확장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의 새로움과 진보를 추구하는 것이 위 문장의 맥락이다. ”신(新)”의 목적어는 자신의 마음이고, ”신” 공부를 하는 목적은 백성들을 내 가족처럼 대하는 인(仁)의 정치를 하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위 문장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만약 어느 날 내 마음이 깨끗하게 새로워졌거든 날마다 새롭게 하고, 또 날마다 새롭게 하라.”

저자 소개

  • 저자 : 김기현
지은이 김기현
대만 동해대학교 철학연구소 졸업(철학박사). 현 성균관대학교 유교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 저서로 『조선조를 뒤흔든 논쟁』(상 하)이 있고 번역서로 『유학과 현대 세계』가 있다.

목차

목차
소학과 대학
예기의 한편에서 핵심경전으로
인간의 두마음
친민인가 신민인가
청치와 수신
새들도 머물곳을 안다
동아시아적 진보
대학과 조선의 싱크탱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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