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구간

황소와도깨비-좋은그림동화5

시리즈 : 좋은그림동화(가교) [24]

이상 저 | 가교 | 2002년 10월

북트리

정가
$18.00
판매가
$9.90 (45%↓) 최저가 보상
적립금
$0.20 (2%P)

품절된 상품입니다.

이 책을 꼭 원하시는 고객님께서는 아래 "상품문의"를 클릭 후 구매의사를
알려주세요. 책이 확보 될 경우 연락 드리겠습니다.

북카트 바로구매 위시리스트

평점 -  ·  리뷰 0

리뷰 쓰기

ISBN : 8977770831 / 50쪽 188 x 257 (㎜)

이 상품에 궁금하신점이 있으세요? 1:1상담문의

추천inside
Adobe Flash Player 가져오기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

아래의 도서와 구매하시면 이 도서들의 적립금을 즉시적용해 드립니다.

  • 15,750
  • 5,850
  • 19,800
  • 20,700

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천재작가 이상의 유일한 동화작품인 이 작품은 권선징악이라는 교훈적 요소를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다. 나무를 팔아서 살아가던 돌쇠에게는 한 마리밖에 없는 황소가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다. 나무를 팔고 시장에서 돌아오던 어느 날 꼬리를 다친 도깨비를 만난 돌쇠는 황소뱃속에서 두 달만 살게 해달라는 도깨비의 간청을 들어주게 되고 황소는 도깨비의 능력으로 힘이 10배로 커지게 된다. 그런데 큰일이 났다. 두 달이 지나 나올 때가 된 도깨비가 그만 살이 쪄서 황소뱃속에서 나올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도깨비는 무사히 밖으로 나올 수 있을까? 돌쇠의 황소는 무사할 수 있을까? 우리 나라 옛날이야기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인 도깨비를 작품배경으로 설정하여 친근감을 더하고 있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작품줄거리 부모, 일가친척 없는 돌쇠는 황소 한 마리를 애지중지 키우며 외롭게 살고 있습니다. 돌쇠는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산에서 나무를 해 황소 등에 싣고 읍내 시장에 내다 팔고는 합니다. 어느? 겨울날 역시 시장에서 나무를 팔고 돌아오던 길에 이상한 것을 만나게 됩니다. 그 이상한 것은 바로 도깨비입니다. 하지만 도깨비는 꼬리가 잘려 재주를 피울 수 없고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상태입니다. 꼬리 잘린 도깨비는 돌쇠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하는데 방법은 황소 뱃속으로 들어가 두 달 동안 지내는 것입니다.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 작품줄거리 부모, 일가친척 없는 돌쇠는 황소 한 마리를 애지중지 키우며 외롭게 살고 있습니다. 돌쇠는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산에서 나무를 해 황소 등에 싣고 읍내 시장에 내다 팔고는 합니다. 어느 겨울날 역시 시장에서 나무를 팔고 돌아오던 길에 이상한 것을 만나게 됩니다. 그 이상한 것은 바로 도깨비입니다. 하지만 도깨비는 꼬리가 잘려 재주를 피울 수 없고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상태입니다. 꼬리 잘린 도깨비는 돌쇠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하는데 방법은 황소 뱃속으로 들어가 두 달 동안 지내는 것입니다.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도깨비를 불쌍히 여긴 돌쇠는 도깨비의 청을 들어주고 결국 도깨비는 황소뱃속으로 들어갑니다. 어느새 두 달이 지나 도깨비가 황소뱃속에서 나오려고 하지만 그동안 살이 찐 도깨비는 쉽게 황소뱃속을 빠져 나오지 못하고 맙니다. 황소가 하품을 하면 그때 빠져 나오려는 궁리를 하게 되지만 황소가 어떻게 해야 하품을 하는지 돌쇠로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갖은 방법을 다 써보고, 동네 어른들에게 물어보고는 했지만 헛수고로 끝나고 실망한 돌쇠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불쌍한 황소만 쳐다보다 하품을 하게 되고, 돌쇠를 따라 황소도 하품을 합니다. 그리고 그 틈을 타 도깨비가 빠져 나옵니다. '도깨비 아니라 귀신이라도 불쌍하면 살려주어야 하는 법'이라고 말하며 돌쇠는 혼자 흐뭇해합니다. 해설- 윤성근(시인ㆍ문학평론가) 이 작품은 이상의 유일한 동화작품입니다. '황소와 도깨비'는 1937년 3월 5일 자부터 9일까지 에 연재되었던 작품입니다. 4월에 그가 사망했으므로 이 작품은 이상이 죽기 불과 40여일 전에 발표된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비교적 단순한 편입니다. 이 작품은 기발한 착상과 특이한 상황설정이라는 다른 작품과는 달리 완만한 이야기체의 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작품이 동화라는 형식적 측면도 있을 것이나 이 작가가 말년에 선회하기 시작한 낭만성으로의 회귀라는 내용상의 측면도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이상 동시대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도깨비라는 설정은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까지를 말하여 주는 것은 아닙니다. 장작을 해다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돌쇠와 같은 삶은 상당한 기간 우리 역사에서 지속되어 온 형태의 것입니다. 돌쇠가 도깨비를 만나 한 순간은 곤경에 처하지만 결국 자신의 선행의 대가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결말 부분에 돌쇠는 \"도깨비 아니라 귀신이라도 불쌍하면 살려주어야 하는 법\"이라고 자신의 믿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이런 표현에서 이 이야기가 가지는 권선징악이라는 교훈적 요소를 엿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동화에서는 순수한 작가 정신을 엿볼 수 있습니다. 소박한 작가의 손길은 이 작품을 읽는 매순간마다 느껴집니다. 특히 돌쇠가 황소에게 하품을 시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결국 자신이 황소와 도깨비를 살리는 부분에서는 절로 탄성이 터져 나옵니다. 이런 과정이 비견할 수 없이 소박하고 구수합니다. 개인적, 사회적으로 참으로 어두운 시대에 이처럼 밝은 이야기를 그려낸 이 작가의 작가 정신에 다시 한 번 머리가 숙여집니다. 저자 소개 지은이 이 상 암울한 일제 식민지 시대의 천재 작가 이상의 생애를 잠깐 살펴볼까요. 이상은 본명이 김해경입니다. 이상은 1910년 8월 20일(음력)에 서울에서 태어나 1937년 4월 17일 새벽 일본의 수도 동경에서 사망하였습니다. 원래 그의 집안은 중인층에 속했으나 그의 생부는 이발업에 종사하여 생활의 여유는 없었습니다. 이 조숙한 천재는 보성고보를 졸업하고 경성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학내지에 시를 발표하기도 하는 등 문필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때부터 이상이라는 필명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처녀작 '12월 12일'을 잡지 에 연재하면서부터입니다. 그러던 1933년 그는 그동안 앓아오던 지병인 폐결핵이 심해지자 그 때까지 근무하던 총독부 건설국을 사임하고 본격적으로 문학에 매달리게 됩니다. 이 때 시인 정지용의 소개로 여러 편의 시를 잡지에 발표하기도 하고 에 시 '오감도'를 발표하여 독자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항의를 받아 연재를 중단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1934년 우리 문학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문인들의 모임인 '구인회'에 가입합니다. 이 때 그는 유명한 소설 '날개'를 발표합니다. 1937년 2월 그는 동경에 있었습니다. 사상불온자로 일경에 체포되어 3월 16일 석방되었으나 그 때 이미 그의 병은 악화될 대로 악화된 다음이었습니다. 그는 4월 17일 새벽 동경제대 부속병원에서 사망하였는데 그의 아내가 시신을 수습하여 미아리 공동묘지에 안장하였습니다. 이 천재 작가의 삶은 그의 문학만큼 짧고 강렬하게 타오르다 한 순간에 진 것입니다. 그린이 고성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서울예술고등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한 그림을 그리고 있으며, 작품으로 '우리 집 보물' '바람의 교향악' '임진강 이야기' '선암사 연두 꽃잎 개구리' 등이 있습니다.

저자 소개

1910년 9월 23일 새벽 6시경(음력 8월 20일 묘시경) 지금의 서울시 종로구 사직동에서 아버지 김연창(金演昌)과 어머니 박세창(朴世昌)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3세 때 조부 김병복(金炳福)의 성화로 자손이 없는 백부 김연필(金演弼)의 양자로 들어가게 된다. 1917년 4월 인왕산 밑에 자리한 4년제 학교인 신명학교(新明學校)에 입학한다. 과목 중에 지리와 도화를 특히 좋아했다고 한다.
1921년 신명학교를 졸업한 뒤 불교 재단에서 경영하는 견지동의 동광학교(東光學校)에 입학한다. 하지만 해경이 입학한 지 4년째 되던 해 동광학교가 조선불교중앙교무원이 인수한 보성고보에 합병되어 4학년으로 편입하게 된다. 그림을 잘 그렸으며, 교내 미술전람회에서 <풍경>으로 입선하기도 한다. 1926년 3월 5일 보성고보를 졸업하고 해경은 곧장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에 입학한다. 12명의 입학생 중에 조선인은 불과 3명에 지나지 않았으며, 해경은 3년 동안 수석을 다툴 정도로 뛰어난 성적을 유지한다. 2학년 때에는 경성고공 회람지인 <난파선>의 편집을 주도했으며 여기에 삽화와 자작시를 싣는다. 
1929년 3월 경성고공을 졸업하고 그해 4월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사로 취직한다. 그해 11월 조선총독부 관방회계과 영선계 기수로 자리를 옮긴다. 12월 조선건축학회 기관지 <조선(朝鮮)과 건축(建築)> 표지 도안 현상 공모에 1등과 3등으로 당선된다. 이듬해 그의 처녀작인 ≪십이월 십이일≫을 ≪조선(朝鮮)≫에 9회(2월∼12월)에 걸쳐 연재한다. 이 소설은 그의 최초의 한글 창작 소설이자 최초의 소설이며, 또한 유일한 장편소설이다. 그해 여름에는 그를 죽음으로 내몬 첫 각혈을 하게 되어 건강이 쇠약해진다. 
1931년 7월 <조선과 건축> 표지 도안 현상 공모에 당선된 인연으로 이 잡지의 ‘만필(漫筆)’란에 일문 시 <이상(異常)한 가역반응(可逆反應)>을 발표한다. 시에 전념하면서도 해경은 그림을 놓지 않았으며, 조선미술전람회에 <자화상(自畵像)>이 입선되기에 이른다.
그는 서양화가 구본웅(具本雄)을 알게 된다. 꼽추 구본웅과의 교류는 그의 집으로까지 이어진다. 당시 구본웅의 집은 당대의 시인, 소설가, 화가, 영화감독 등이 모여들던 문화 아지트(구인회)였다. 1934년에 여기에 가입하여 박태원, 이태준, 정지용, 김기림, 김유정, 김환태 등과 교류한 전후로 수많은 작품이 탄생한다.
그러나 이러한 교류와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은 백부의 죽음(1932년 5월 7일, 뇌일혈), 총독부 기수직 사임(1933년 3월), 금홍과의 만남과 다방 ‘제비’ 경영(1933년), 동거(1933∼1935년), 결별(1935년), 카페 ‘제비’·‘쓰루’·‘69’·‘무기’ 경영 실패, 결혼(1936년), 죽음(1937년) 등으로 이어지는 그의 생의 형언할 수 없고 돌이킬 수 없는 허무의 심연이다. 이것은 생의 아이러니와 역설을 가능하게 하여 독화(毒花)로서의 미적 파토스를 발생시킨다. 생의 파멸(육체의 죽음)과 예술의 탄생이 아이러니하게 혹은 역설적으로 뒤얽혀 있는 것이다. 
1932년 3월과 4월에 소설 <지도(地圖)의 암실(暗室)>과 <휴업(休業)과 사정(事情)>, 시 <건축무한육면각체(建築無限六面角體)>는 그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꽃나무>(1933), <이런 시(詩)>(1933), <거울>(1933)을, 1934년 8월에는 ≪조선중앙일보(朝鮮中央日報)≫에 우리 시사(詩史)의 기념비적인 작품인 <오감도(烏瞰圖)>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독자의 거센 항의로 15회로 연재가 중단된 이 작품은 근대적인 삶과 예술 전반에 만연해 있는 상투성의 파괴와 해체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방가르드의 한 표상으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에게 1936년은 생의 한 정점을 이룬다. 무엇보다도 <지주회시>(6월), <날개>(9월), <봉별기>(12월) 같은 그의 생을 총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작품들이 모두 이해에 쓰였다. 그의 생이 맞닥트린 생의 심연을 넘어서려는 강한 열망을 담은 소설이 <날개>라면 <종생기>는 여기에서 훨씬 더 나아가 죽음 이후의 생이라는 역설까지 이야기하고 있다. 
1936년 10월 중순경 동경에 건너가 동경부(東京府) 신전구(神田區) 신보정(神保町) 삼정목(三町目) 101의 4호의 니시카와가(西川家)에서 생활한다. 그곳에서 ‘삼사문학(三四文學)’ 동인들과 교유하기도 하고, 김기림, 안회남, 동생인 김운경과 서신을 교유하기도 하지만 동경 생활에 환멸을 느낀다. 1937년 2월 12일 일본 경찰에게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체포되어 니시간다(西神田) 경찰서에 34일간 수감되어 있다가 3월 16일 건강악화로 풀려난다. 결국 그는 1937년 4월 17일 새벽 동경제대 부속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목차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