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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지나간 후

2020년 4월 9일 오늘의 책

파도가 지나간 후

상드린 콜레트 | 현대문학 | 2020.03

분류 : 소설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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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비한 자연재해에 속수무책으로 내몰린 일가족이 생존 앞에서 맞닥뜨린 잔인한 선택의 딜레마 엿새 전, 화산이 바닷속으로 무너져 내리면서 거대한 파도가 일어났고 루이와 그의 부모, 8명의 형제자매를 둘러싼 세상은 사라졌다. 언덕 높은 곳에 위치한 그들의 집은 무사했지만 이제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은빛의 바다밖에 보이지 않는다. 구조대를 기다린 지도 엿새, 먹을 것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바다의 수위는 다시 높아지기 시작한다. 부모는 고지대를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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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유로든 차별하지 않는, 모두를 위한 선택을!

 

딥임팩트, 2012, 투모로우, 샌 안드레아스, 해운대 등 재난 영화를 보면 어김없이 거대한 파도가 밀려들고 도시의 모든 것을 초토화하며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다. 이 소설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바다 저편 어느 섬에서 화산이 분출, 폭발로 인해 어마어마한 쓰나미가 발생하고 주위의  땅 대부분의 물속에 잠겨버린다. 이 아수라장 속에서도 높은 언덕에 위치한 집 덕분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가족이 있다. 무려 열한 명이나 되는 가족.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집 주위로 바닷물이 빠지기는커녕 서서히 차오르고 급기야 폭풍우까지 거세게 불어 닥치는데……

 

사랑도 없어.
명예도 이제 없어.
우리는 짐승과 다를 바 없어.

 

쓰나미에서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기적인 그들 가족에게 남은 땅은 고작 3,000㎡(대략 907.5평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몇 차례의 폭풍우가 휘몰아치고 점점 집 주위로 바닷물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처음 쓰나미를 겪었을 때 떠나야 했단 걸 뒤늦게 깨닫게 된 파타(아버지)는 아내인 마디(어머니)에게 떠나야 한다고 말하며 11명을 보트에 전부 다 태우지 못하니 조심스레 두고 갈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마디는 쓰나미 발생 이튿날부터 떠날 준비를 하자고 했다. 파타는 그럴 필요 없다고, 물이 빠질 때까지 버티기만 하면 된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녀가 옳았고 그가 틀렸다.
때가 왔다.
단지 그 뿐이었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 (p.33)

 

아버지로서 도저히 입 밖에 꺼낼 수 없는 문제, 그의 입속을 활활 태우는 문제. 그들에게 배는 달랑 한 척뿐이었다. (중략) 그녀는 바다, 폭풍, 불운이 모두 그의 탓이라는 듯이, 순전히 그의 탓이라는 듯이 중얼거렸다.
“누구를 남길 건데?” (p.35)

 

어느 어머니가 그런 상황에서 자식을 단 한 명이라도 두고 갈 수 있겠는가. 물론 아버지도 마찬가지겠지만. 허나 결국 파타는 나름의 기준으로 보트에 태우지 못할 자식들을 선택하고야 만다.

 

“절름발이, 애꾸, 난쟁이, 그러니까 제일 성치 못한 애들을 남기자는 거네. 타고난 불운에 어미 아비가 쐐기를 박는 셈이야.” (44~45쪽)

 

공교롭게도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선택되었다. 부모가 자신들을 깨우지 않은 채 떠난 뒤 세 아이들 중 제일 어리며 왜소해 난쟁이로 불린 노에는 말한다.

 

“나는 너무 작고, 루이 형은 한쪽 다리가 불편하고, 페린 누나는 한쪽 눈이 안 보이니까. 그래서 우리만 남겨두고 간 거 아니야? 우리를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 거 아니야?”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형과 누나는 동시에 대꾸했다.
“아니야.” 페린이 말했다.
“맞아.” 루이가 말했다.  (43쪽)

 

한동안 극심한 혼란과 슬픔에 빠진 나머지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루이, 페린, 노에는 부모가 남기고 간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아빠가 데리러 온다는 말을 믿는다 해도 그 전에 언덕까지 바닷물이 차올라 잠겨 죽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달리 뾰족한 방법도 없고, 바닷물이 차오르기 전까지만이라도 어떻게든 살아야 하니까 아이들은 조금씩 기운을 내어 자기들 나름의 생활을 꾸려나가지만……

 

한편, 세 아이를 두고 떠나야만 했던 마디와 파타, 그리고 나머지 아이들은 고지대를 찾아 보트를 몬다. 하지만 거듭 예상치 못한 상황에 부딪히고, 엄청난 슬픔과 혼란 속에 빠지게 되는데…!

 

남겨진 세 아이는 하루하루 잠겨가는, 아니 죽음을 향해 가까워져 가는 언덕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떠난 가족들은 무사히 고지대를 찾아 남겨진 아이들을 데리러 갈 수 있을 것인가?! 과연 이들의 결말은??

 

애초에 처음부터 어떻게든 모두 다 데려가려 했다면? 아니, 처음부터 누구를 고르지 않았어야 했던 건 아닐까? 어떤 이유로든 차별하지 않고 모두를 위한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천재지변으로 생겨난 일이지만 소설은 그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을 때론 잔인하면서도 섬뜩하게, 때론 가슴 아프면서도 뭉클하게 그려낸다. 가족 모두에서 세 아이들로, 그리고 떠난 가족들로, 그러다 다시 세 아이들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엄청난 몰입감을 선사하며 자꾸만 결말이 확인하고 싶어져 손이 근질거리지 않을 수 없다. 끝까지 읽고 난 지금,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 혹은 재난 영화를 본 듯한 기분이다.

 

서로가 가진 것을 뺏으려 하지 않고 나눌 때 비로소 폭풍우가 걷히고 그제야 바닷물도 잔잔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세 아이들이 서로를 보듬으며 살아남으려 애쓰는 의지와 끝까지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 엄마의 의지가 돋보이는 가슴 시린 이야기이다. 최악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소설 후반부에 등장하는 또 다른 인물 뤼세트와 아델, 두 할머니와 세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왠지 일말의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많이 씁쓸하지만 마음 한 켠이 따스해지는 이야기다. 결말 부분이 아주 조금만 더 길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진한 아쉬움은 남지만.

 

그들을 지켜보며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지 생각이 많아진다.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들이 처한 현실과 상황이 무척 냉혹하고 몹시 비정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또 사람의 마음속 깊은 곳에 감춰진 어두운 그림자를 마주하게 될까봐 두려울 지도 모른다. 그래도 직접 이 가족을, 남겨진 세 아이들을 꼭 한번 만나보면 좋겠다. 너무나도 당연해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마주하고 한 번쯤 깊이 생각해볼 수 있으니까. 파도가 지나간 후, 그들에게 남은 건 무엇일까?

 

 

오늘의 책을 리뷰한 'canal21'님은?
아침이면 동쪽에서 찬란하게 떠오르는 따스한 빛을 사랑합니다. ‘키미스(kimise)의 사색공간’이라는 블로그에서 마음씨 고운 블로그 친구들과 함께 책을 읽고 뭔가를 끄적이고 사색하는 걸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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